이슈
이젠 소개하기에도 머쓱하다. ‘국내 최초의 시각예술 분야 장애예술인 레지던시’인 잠실창작스튜디오는 최근 몇 년간 유의미한 프로젝트 진행을 통해 ‘협업’을 키워드로 하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입주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굿모닝 스튜디오>에서는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기획자를 섭외하여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결과전시에서 연계하여 협업의 형태를 가져가면서 장애예술인의 동시대성을 실험하고 선보였다. 또한 2019년부터는 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 레지던시 작가 간 교류를 통한 장애·비장애 예술인 공동창작 워크숍을 진행했다. 이 역시 해당 프로그램을 잘 구성하고 이끌어갈 수 있는 기획자와 함께 협업을 진행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들에게는 교류의 폭을 넓히고 현장에서 시도되는 새로운 방식이나 장르를 넘어선 표현을 접하면서 감각을 확장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작가들의 피드백도 나쁘지 않았다. 주로 비장애인인 기획자들 또한 때마침 현장에서 주목받고 있는 장애예술과 관련해서 관심과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고, 이 분야에서 독창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작업하는 보석 같은(!) 작가를 만날 수도 있었다. 조금은 조심스럽고, 그래서 알아가기를 미뤄왔던 ‘장애’라는 영역으로 너도나도 조금씩 한 발 담그는(?)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최근 3~4년간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며 말 그대로 정말 매끄럽기만 했었는지, 까끌까끌해서 말 못 할 속사정은 없었는지 생각해보면, 왜 없었겠냐는 대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만, 이 지면을 통해서는 개개인의 어떠함보다는 구조적이고 태생적인 한계에 직면하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해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일지 두서없이 풀어보기로 한다.
다 하려다 아무것도 못 한 건 아닐까
공동창작이든 입주작가 프로그램이든, 장애·비장애 예술인이 함께 무언가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사전 약속 같은 것이 좀 더 명확하게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애인 작가의 경우에는 편견에 대한 오랜 노출로 인해 닫힌 마음을 어떻게 열 수 있는지, 명확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할지 마음을 다질 시간이 필요했다. 비장애인 작가에게는 장애 예술인과 소통할 때 어떤 점에 유의하고 고민해야 할지 같은 부분이다. 한편, 장애 유무를 떠나 분명한 태도가 필요한 순간이 있는데, 그 지점은 어디일지 조금 더 같이 약속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이나 개인을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협업의 빈도와 기간에 비해 조심하다가 시간을 다 보낸 경우가 의외로 적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행정 특유의 조바심으로, 또 무슨 인식개선교육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또 다른 간섭이 될까 싶어 고민하다 말았는데 그냥 과감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잠실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 작가 12명은 각자 개성도 강하고 장애 유형도 다양하다. 그럼에도 ‘장애’라는 말로 뭉뚱그려서 운영하는 것에 한계를 자주 느낀다. 같은 장애인이라도 유형에 따라, 더 정확하게는 개인에 따라 인식과 사고의 범위가 다르고, 교류든 교육이든 각자의 니즈가 다른 상태에서 일괄적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는 데서 오는 한계가 분명히 있었다. 여러 기획자, 예술가를 초청해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한 것이 각자의 작업과 감각에 작은 물꼬를 터주는 것 이상으로 정말 유의미한 자극이 되었을까. 그건 모를 일이다. 최근 들어 발달장애 작가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속도가 다른 작가 간에 이런 ‘집체교육’이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고 나누어서 별도로 진행하자니 배제하는 모양새가 될 것 같아 선뜻 시도하지 못했다. 결국 이도 저도 못한 것 같아서 아직도 이 생각을 하면 이불킥을 날리곤 한다. (그러면서도 그걸 또 내가 어떻게 다 책임지나 하는 변명도 한 번씩 던지기도 한다.)
새로움에 깊은 연결을 쌓기 위해
잠실창작스튜디오가 속한 서울문화재단 또한 서울시 출연기관이기 때문에 조직개편과 인사발령 같은 직원의 신변에 영향을 끼치는 변화가 자주 찾아온다. 현재 이 글을 쓰는 시점에도 앞에서 언급한 협업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직원들은 모두 다른 부서로 발령받아 이동하게 되었다. (나는 남았다.) 함께 고민하고 꾸려온 동료들, 협업의 고리를 연결하며 많은 경험을 축적한 사람들이 허무하게 떠나거나 헤어지게 되는 순간을 자주 목격하면서 무력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가는 사람이 있으면 오는 사람도 있는 법. 태도를 바꿔, 이 주제를 함께 고민하고 매개할 누군가가 또 온다는 생각과, 옛 동료들이 새롭게 둥지를 튼 곳에서 장애예술을 고민하고 접목하길 기대하며 억지로 힘을 내본다.
2021년 진행한 입주작가 기획전시 《나란히 함께, 이미지 형태 파레이돌리아(PAREIDOLIA)》(기록영상 바로가기 링크)의 클로징 퍼포먼스로 비장애인 무용수와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들이 함께한 순간을 기억한다. 짧지만 아름다운 마법에 잠깐 빠졌던 것 같은 그 순간. 까끌거리는 마음과 한계를 직면하면서도 그 마법 같은 몇 번의 순간이 내게 큰 힘을 준다. 그래서 다시 힘을 내려 한다. 어쩌면 장애예술에 대한 호기심 혹은 「장애예술인지원법」 제정 이후 암중모색하는 마음으로 웹진 [이음]을 정독하고 찾아온 독자 여러분, 그리고 함께했던 기획자, 예술가, 흩어진 옛 동료들도 모두 다 결국 연결되어 있다는 마음으로.
이승주
2012년 서울문화재단에 입사해 경영관리, 창작지원, 메세나 등의 업무를 하다 2020년부터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기획전시 <비커밍> <나란히 함께, 이미지 형태 파레이돌리아(PAREIDOLIA)>, 장애·비장애 동행 프로젝트 <같이 잇는 가치>, 서울문화재단 레지던시 간 협업 프로젝트 ‘장애·비장애 공동창작 워크숍’ 등을 기획·운영해 왔다. 6년째 진행 중인 장애예술인 창작활성화 지원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biglee3414@sfac.or.kr
사진 제공.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2022년 8월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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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팀에서 일할때 공장이전 하기전에 작가들과 함께 공장 미술제를 기획하여 개최한 적이 있는데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업과는 또 다른 공공기관에서 이러한 일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렵지만 아무쪼록 잠실창작스튜디오에서 좋은 성과가 있길 바랍니다. 멀리 밴쿠버에서 응원을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