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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에서 인물의 서사를 포착하는 지점

이슈 큰 차이이면서도 동시에 차이가 아니었다

  • 전강희 [창작공감] 운영위원
  • 등록일 2022-07-27
  • 조회수946

이슈

며칠 전에 리차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라는 소설을 읽었다. 숲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책으로 총 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국어판으로 700페이지에 달하는 만큼, 9명의 삶이 세세하게 담겨있다. 이들의 조상과 부모의 이야기,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성인이 되고 중년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나무’라는 비인간 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몇몇 인물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고, 다른 몇몇은 살면서 점차 장애를 갖게 된다. 이 설정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쭉 넘겨 가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국립극단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창작공감: 연출] 작품개발 과정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다 보니, 인물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읽을 때면 장애인·비장애인의 구성 비율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 작업에 참여하기 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감각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장착하게 된 점일 것이다. 『오버스토리』를 다 읽고 나서 작가는 등장인물 9명의 외형을 어느 시점에 결정했을까가 궁금해졌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 장애인이 많았을까? 아니면 꼼꼼한 조사를 거친 후에 만든 인물일까? 질문이 계속 생겨났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각각의 장애 유형과 심리적인 결핍이 인물들의 큰 차이이면서도, 동시에 차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장애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고유성을 강조하느냐, 차이를 지워 보편성을 보여주느냐로 한정된 설정이 아니었다. 두 개념을 모두 담는 커다란 서사구조, 정확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이를 글로 잘 풀어낸 장면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었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드는 공동창작 과정에서도 인물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가다 보니, 한 인물 안에서 교차하는 지점들이 무엇인지를 포착해내고자 전 프로덕션 차원에서 모두 모여 고심하곤 한다. 가끔은 이 과정에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하다 보니 이야기가 착하기만 하다 끝나기도 하고, 개개인의 이야기가 단순 나열로만 그치기도 하고, 인물들 사이에 어떤 시너지가 전혀 발생하지 않을 때도 있다. 공동창작으로 만드는 작업이 이 난관을 뛰어넘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작년에 [창작공감: 연출]의 리서치 단계에서 연출들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방문해서 영국 백투백시어터의 <가네샤 대 제3국(Ganesh Versus the Third Reich)> 영상 자료를 보았다. 백투백시어터는 창단한 지 30년이 넘는 극단으로, 아직도 예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장애인들이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면서 싸우는 장면이 있다. 상대의 말에 꼬투리를 잡거나 평소 못마땅했던 지점들을 토로하는 장면인데, 분명 이들이 가까운 사이로 보이지만 메울 수 없는 간극도 보이는 장면이다. 공동창작을 자주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연습실의 실제 풍경을 그대로 가져왔거나 워크숍을 통해 배우들의 말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민감해 보일 수 있는 이 장면은 관객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불편하지 않은 웃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열거한 난감함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을 프로덕션이 함께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관객들도 장애인 배우들을 무대에서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만났기 때문에 그런 편안한 웃음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예술 현장에도 이 극단처럼 30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개성 있는 인물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를 무대에 올릴 때, 협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창작자들이 배리어프리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제 배리어프리는 창작자뿐만 아니라 극장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추세다. 작품 속에 창작방법론으로 녹여 냈던 배리어프리가 점차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극장이라면 갖추어야 하는 기본값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창작자들의 협업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결국 어떤 인물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 협업의 출발선이 되지 않을까.

  • 무대 위, 왼쪽 사람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왼팔을 옆으로 뻗고, 오른쪽 사람은 오른발을 까치발 하고 양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두 사람은 서로 검지손가락을 마주 대고 있다. 뒷편 스크린에는 대화라고 쓴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
    (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2022)

전강희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예술가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변방연극제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서 축제를 만들었다. 인천아트플랫폼, 우란문화재단, 광주ACC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 국립극단 창작프로젝트 [창작공감: 연출]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winnie3000@hanmail.net

사진 제공. 국립극단

2022년 8월 (33호)

상세내용

이슈

며칠 전에 리차드 파워스의 『오버스토리』라는 소설을 읽었다. 숲과 인간의 관계를 다룬 책으로 총 9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한국어판으로 700페이지에 달하는 만큼, 9명의 삶이 세세하게 담겨있다. 이들의 조상과 부모의 이야기,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 성인이 되고 중년에 이르기까지, 각자가 ‘나무’라는 비인간 종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를 그리고 있다. 몇몇 인물은 태어날 때부터 장애가 있고, 다른 몇몇은 살면서 점차 장애를 갖게 된다. 이 설정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페이지를 쭉 넘겨 가며 이야기 속에 빠져들 수 있었다.

국립극단에서 2021년 한 해 동안 ‘장애와 예술’을 주제로 [창작공감: 연출] 작품개발 과정에 운영위원으로 참여하다 보니, 인물이 많이 나오는 작품을 읽을 때면 장애인·비장애인의 구성 비율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살펴보게 되었다. 이 작업에 참여하기 전의 나와 이후의 내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이런 감각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장착하게 된 점일 것이다. 『오버스토리』를 다 읽고 나서 작가는 등장인물 9명의 외형을 어느 시점에 결정했을까가 궁금해졌다. 어릴 적부터 주변에 장애인이 많았을까? 아니면 꼼꼼한 조사를 거친 후에 만든 인물일까? 질문이 계속 생겨났다.

책 속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지점은 각각의 장애 유형과 심리적인 결핍이 인물들의 큰 차이이면서도, 동시에 차이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장애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어 고유성을 강조하느냐, 차이를 지워 보편성을 보여주느냐로 한정된 설정이 아니었다. 두 개념을 모두 담는 커다란 서사구조, 정확하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이를 글로 잘 풀어낸 장면들이 촘촘하게 엮여 있었다.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극을 만드는 공동창작 과정에서도 인물에 대한 고민은 중요하다. 자전적인 이야기를 중심으로 극을 이끌어가다 보니, 한 인물 안에서 교차하는 지점들이 무엇인지를 포착해내고자 전 프로덕션 차원에서 모두 모여 고심하곤 한다. 가끔은 이 과정에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하다 보니 이야기가 착하기만 하다 끝나기도 하고, 개개인의 이야기가 단순 나열로만 그치기도 하고, 인물들 사이에 어떤 시너지가 전혀 발생하지 않을 때도 있다. 공동창작으로 만드는 작업이 이 난관을 뛰어넘으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작년에 [창작공감: 연출]의 리서치 단계에서 연출들과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 방문해서 영국 백투백시어터의 <가네샤 대 제3국(Ganesh Versus the Third Reich)> 영상 자료를 보았다. 백투백시어터는 창단한 지 30년이 넘는 극단으로, 아직도 예술 현장에서 활발하게 작업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장애인들이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면서 싸우는 장면이 있다. 상대의 말에 꼬투리를 잡거나 평소 못마땅했던 지점들을 토로하는 장면인데, 분명 이들이 가까운 사이로 보이지만 메울 수 없는 간극도 보이는 장면이다. 공동창작을 자주 해 본 사람이라면, 이 장면이 연습실의 실제 풍경을 그대로 가져왔거나 워크숍을 통해 배우들의 말로 만들어진 장면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민감해 보일 수 있는 이 장면은 관객의 웃음소리가 떠나지 않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 터지는 웃음소리가 불편하지 않은 웃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앞에서 열거한 난감함을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을 프로덕션이 함께 보냈기 때문이 아닐까. 또한, 관객들도 장애인 배우들을 무대에서 보는 것이 낯설지 않을 만큼 오랫동안 만났기 때문에 그런 편안한 웃음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우리 예술 현장에도 이 극단처럼 30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면 개성 있는 인물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장애를 무대에 올릴 때, 협업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창작자들이 배리어프리를 구현하는 방식에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제 배리어프리는 창작자뿐만 아니라 극장이 함께 고민해야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추세다. 작품 속에 창작방법론으로 녹여 냈던 배리어프리가 점차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극장이라면 갖추어야 하는 기본값이 되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창작자들의 협업 방향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결국 어떤 인물을 만들고 어떤 이야기를 만들지 고민하는 것이 협업의 출발선이 되지 않을까.

  • 무대 위, 왼쪽 사람은 옆으로 비스듬히 누워 왼팔을 옆으로 뻗고, 오른쪽 사람은 오른발을 까치발 하고 양팔을 양쪽으로 벌렸다. 두 사람은 서로 검지손가락을 마주 대고 있다. 뒷편 스크린에는 대화라고 쓴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사람이 보인다.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
    (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2022)

전강희

영문학과 연극학을 전공하고 예술현장에서 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그, 축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다. 새로운 극적 언어를 탐색하고 장르 간 해체와 협업이 활발한 공연 만들기에 관심이 많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장르의 신진예술가 작업을 기록하고 소개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는 서울변방연극제 대표이자 프로그래밍 디렉터로서 축제를 만들었다. 인천아트플랫폼, 우란문화재단, 광주ACC 레지던시에 입주작가로 참여한 바 있다. 현재 국립극단 창작프로젝트 [창작공감: 연출] 운영위원으로 참여 중이다.
winnie3000@hanmail.net

사진 제공. 국립극단

2022년 8월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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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03 1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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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이 글을 쓴 전강희입니다. 공연의 대본은 따로 없어요. 저와 연출가들은 운이 좋게도 영상을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영상은 제작 단체 측의 내부 자료여서 비공개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들렸던 관객의 웃음에 대한 해석은 저의 주관적인 느낌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장애인과 오랫동안 작품을 올렸던 이 단체와 이들의 작업을 오랫동안 봐왔던 관객 사이에 발생하는 깊은 신뢰와 이해에서 나올 수 있는 웃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어떤 필터가 될만한 장치들에 대해서 무엇을 말씀드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우선은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고, 당사자분들에게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다는 말씀 밖에 못드리겠어요. 직접 만나보고 이야기 나누기 전에 준비하는 필터는 내 경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면, 크게 소용없는 것 같거든요. 요즘은 그냥 직접 여쭤봅니다. 가끔 저의 무지 때문에 격양되는 순간이 오기도 하고, 제가 같은 질문을 계속 반복하고 있다고 스스로 자각할 때도 있지만, 이런 순간들을 거쳐야 필터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2022-07-31 02: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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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에서 장애인들이 상대의 잘못을 들춰내면서 싸우는 장면이 있다. 상대의 말에 꼬투리를 잡거나 평소 못마땅했던 지점들을 토로하는 장면인데> 요기가 넘나 궁금해서요, 혹시 댓글로 대본 일부라도 공유해주실 수 있는지 부탁드려봅니다. 그러면, 장애인을 만날 때 작은 필터가 될수 있겠다 싶어요. 뭘 잘못했는지 그래서 어떻게 오해가 생기는지 당사자의 입장을 알지 못하기에 실수를 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극에서는 웃음이지만, 현실에서는 상처가 될테니까요.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