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몇 해 전 필자가 근무했던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길은 너무나 길고 종이는 조그맣기 때문에》의 제목은 참여 작가 김동현에게 던진 한 기획자의 질문에서 이어졌다. 발달장애 특유의 복잡한 선 그림을 본 기획자가 “왜 그렇게 구불거리냐?”고 물으니, 작가는 “종이는 너무 조그맣기 때문”이라고 답하였다. ‘작은 종이’의 비유는 장애예술가들이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편견, 그리고 그들의 예술창작에 있어 제한적이고 협소한 생태계 문제를 떠올리게 한다. 장애예술가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러나 사회는 그에 귀 기울여 들으려 하지 않고, 그들 목소리가 사람들에게 나아가 닿지 않는다. 아니 더 본질적으로 말하면, 예술로 발언하는 장애예술가는 많지 않고 이들의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관객은 더 많지 않다.
마로니에 공원에서 장애인의 권리를 외치던 시위대의 목소리가 아르코미술관에 와닿으면서 시작된 《여기 닿은 노래》는 미술관이 서울, 부산, 광주 3개 문화재단과 함께 기획한 전시다. 이 전시에는 이들 재단이 운영하는 장애예술창작센터에 입주 경력이 있는 작가와 리서치를 통해 선발한 작가 등 13명(팀)이 참여했다. 그동안 장애를 주제로 다루거나 장애예술가들이 직접 참여한 전시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시도는 생소했고, 동시대 미술 언어가 장애예술 영역에서 확장되는 새로운 경험을 관람객에게 선사하는 의미도 있었다. 전시장에는 전시를 준비하면서 대두되었던 접근성 문제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긴 지시문과 시각장애, 청각장애, 지적장애를 강박적으로 배려한 장치가 고루 배열되어 있었다.
창작자의 장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전시의 배치와 작품이 제안하는 이야기가 서로 얽혀 수수께끼 같은 동시대 미술관의 그 어떤 풍경보다도 난해했을 것이다. 이 전시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필자가 오래전에 보았던, 안산시의 외국인주민상담지원센터가 발행한 8개국 언어를 지원하는 다문화 소식지가 떠올랐다. 모두를 배려해서 제작된 소식지는 여러 언어가 부유해 막상 누구도 읽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이런 어려움은 단순히 전시를 감상하는 데만 있지 않다. 6월 30일, 《여기 닿은 노래》 전시 마지막 날 열린 연계 토크에서 담당 큐레이터 김미정과 이채원, 이현주 전시 코디네이터는 전시 준비 과정에서 있었던 어려움을 털어놨다. 그들 기획자는 각종 장애를 배려한 접근성이 좋은 미술관을 위해서 고려해야 할 사항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무엇보다 ‘모두를 위한 미술관’이 되어야 한다는 무게감을 떨쳐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해 앞서 정책적 고민이 깊었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은 여러 예술 영역에서 장애예술인의 창작과 향유를 돕는 매뉴얼을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이 매뉴얼의 실제 전시장 적용은 장애 특성 간 서로 간섭하거나 충돌하는 현상을 낳았는데, 나는 이 시행착오를 먼저 경험하고 우리에게 공유해준 미술관과 큐레이터에게 감사했다.
한편 토크에 토론자로 나선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는 이 전시가 제도적으로 규정지어진 참여 작가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또 이런 프로그램이 대개 장애・비장애 통합이라는 구실로 작가 간의 협업을 제안하는데, 이 협업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과도기적인 문제일 수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장애를 마주하는 일은 부자연스럽다. 따라서 이 ‘협업의 만남’은 제도적으로 촉발돼 구성된다. 서울문화재단의 다섯 개 창작공간이 참여한 전시 《위험 재앙! 그것이 바로 우리다》도 비슷한 협업을 시도한 바 있다. 다소 급하게 설계된 협업 프로그램 안에서 장애예술가는 ‘협력’ 자체를 연기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한다. 구체적인 예술적 목표를 제안하는 행위가 가져올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로 이런 협업은 자주 ‘협업 자체’가 그 목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토론자 문영민 서울대학교 보건환경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휠체어를 타고 경험했던 전시 《여기 닿은 노래》에 대하여 “장애의 맥락에서 감각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감각이 다른 감각으로 교환되거나 대체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경험이었다.”고 술회했다. ‘만지는 것’이 금지된 미술관에서 ‘만질 수 있는 작품’을 전시하거나 청각장애인을 위해 문자통역을 통해서 전시를 소개하는 배려는 많은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 측면에서 아르코미술관이 시도한 이번 전시의 주요 장치들은 모든 미술관이 적용을 검토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는 더 나아가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일상에서 만나 삐걱거리며 만들어내는 배려의 기술, 장애인이 삶에서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아온 접근성의 장치와 기예들은 아직 장애인의 삶에 닿지 못한 저 너머의 기술보다 더욱 가까이에서 다양한 몸을 가진 사람들의 몸을 포용하고, 경험의 의미와 가능성을 주목해야 하고, 미술관이 다양한 장애인을 환대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나은 상상력이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런가 하면 ‘우리는 무엇을 향해 가는가?’라는 질문과 함께 시작된 부산의 신수항, 신현채 작가는 협업 과정에서 있었던 좌충우돌의 경험을 토크에서 소개했다. 두 작가의 첫 만남에서 신현채는 폭풍처럼 자기 말을 쏟아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 말을 조금 듣다가 돌아서 가버리기 때문에, 만나는 순간 모든 것을 쏟아 놓지 않으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작가의 습관 같은 것이었다. 자폐성 장애를 안고 작업하고 있는 작가는 “장애로 인해서 다른 사람의 말이 잘 안 들리고 특정 단어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저와 대화하시고 싶으시면 천천히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의 부탁처럼, 그리고 최선영의 말대로, 이 협업에는 충분한 시간이 더 필요해 보인다. 그런 시간 속에서 만남이 잦아지면 그/그녀의 목소리가 더 잘 들리고 낯선 대화는 비로소 ‘여기 닿아’ 더 자연스럽고 편안해질 것이다.
《여기 닿은 노래》 전시 연계 토크 ‘그럼에도, 끝나지 않을 노래에 대하여’
아르코미술관|2024.6.30.|아르코미술관 1층 공간열림
2024 아르코미술관×지역문화재단 협력 주제기획전 《여기 닿은 노래》(4.5.~6.30. 아르코미술관)의 일환으로 진행된 클로징 토크로 전시 담당자, 작가, 기획 및 연구자 등 다양한 역할의 구성원이 현장에서의 경험을 공유했다.
《여기 닿은 노래》는 자신의 존재와 권리를 알리는 장애인들, 소위 ‘정상성’의 규범에 벗어난 듯 보이는 이들의 목소리에 주목하며, 서로 다른 몸이 가진 목소리를 어떻게 듣고 보고 말할 수 있을지를 함께 고민하려는 전시다. ‘미술관’이 어떻게 접근성을 말하고 실천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며 작품 외에도 쉬운 글쓰기로 전달하는 작품 해설, 영상 작품의 한글 자막 해설, 접근성에 대한 안내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시를 느낄 수 있는 요소를 담았다.
고권금, 김선환, 김은설, 김채린, 꿈꾸는베프, 라움콘, 신수항×신현채, 오로민경, 유다영, 이지원, 전동민, 피네건 샤논, 한영현 작가가 참여했다. 연계 프로그램으로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꿈꾸는베프, 제로셋프로젝트가 함께했다.
백기영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에서 회화를, 독일 뮌스터 쿤스트 아카데미에서 영상미디어를 전공하였다. (사)미술인회의 사무처장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다원예술 소위원을 거쳐 의재창작스튜디오와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디렉터를 역임했다. 경기문화재단이 운영하는 경기창작센터와 경기도미술관 그리고 북부사무소에서 일하면서 예술가들을 위한 창작환경과 제도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해왔다.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으로 일했다.
kpeik@hanmail.net
사진 제공.아르코미술관(사진 홍철기)
2024년 8월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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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분들의 예술도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