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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비평의 쓸모 다양한 말들이 엉키고 섞여 새로워질 때

  • 이진아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4-09-25
  • 조회수 124

이슈

공연을 예약한 후 접근성 관련 문자 안내를 받거나 극장에서 수어 통역, 자막, 음성해설을 접하는 일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위스퍼링 음성해설이나 폐쇄형 자막을 위한 태블릿을 이용하는 관객도 종종 만나게 된다. 입・퇴장이 자유로운 공연도, 큰 활자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프로덕션도, 접근성 매니저를 두는 작품도 이제 익숙해졌다.

무대의 변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객석의 변화다. 다양한 몸과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모여 객석을 채우는 일을 일상으로 여긴다는 것은, ‘관객’이 누구인지를 넘어서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 사회’가 어떤 모습인지를 구체적으로 마주하게 한다. 공연에 대한 감사와 만족감을 전달하는 방법이 손바닥을 마주치는 박수가 유일하지 않다는 것, 나의 시각 기능을 통해 받아들인 정보가 배우에 대한 음성해설의 묘사를 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 보고 듣는 나의 감각이 기실 섬세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아 자막에 표시된 조명이나 음향의 변화를 항상 의식적으로 인지하지는 못했다는 것, 때로는 묘사되거나 서술된 음성해설에 동의하지 않아 혼자 입을 삐죽거리기도 한다는 것. 이러한 경험들이 객석의 세계를 현실의 세계로 확장한다. 내 옆에 앉은 이가 경험한 공연을 나는 절대 알 수 없다는, ‘잘 알고 있지만 사실 잘 몰랐던’ 개념적 진실도 새삼 깨닫게 한다.

비평이란 아마 이를 공론화하고 공유하는 일일 것이다. 막이 내린 자리에서 다시 대화가 시작되도록 하는 일, 서로가 느낀 것을 더 잘 풀어내고 나눌 수 있도록 판을 까는 일, 우선 내 위치에서 본 풍경을 꺼내 놓음으로써 나와 다른 것을 보고 들은 이를 초대하는 일, 그것이 비평의 시작이다.

막이 내린 자리에서, 다시 시작하는 대화

비평은 일차적으로 작품과 창작자를 향한, 그리고 이어 관객을 향한 발화다.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며 더 큰 대화의 장을 위한 출발점이다. 거기서 어떤 논쟁자를 만날지는 알 수 없다. 비평이 그저 작품을 쫓아가며 해설만 보탠다면 반쪽짜리 역할에 자족하며 주저앉는 일이 될 것이다. 기록하는 일조차 제 문장을 의심하고, 애써 마련한 기준을 다시 흔들며, 타인의 말을 끌어들일 때야 온전해진다. 그 때문에 객석의 다양한 존재들만큼이나 평단의 다양한 목소리는 절실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장애예술의 정체성은 양날의 검이다. 그것은 가능성을 읽게도 만들지만, 동시에 가능성만을 읽게도 만든다. 장애 정체성이 종종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하며 전방에 나서기 때문이다. 장애예술 비평도 이 지점에서 길을 잃는다. 사회의 정상성 이데올로기와 비장애중심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 장애예술가가 무대 위에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비평가가 그리 즐겨 말하는 ‘미학적 전복’은 과연 누구에게 전복인가. 그 말을 할 때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장애예술에 대한 그러한 가치평가는 역설적으로 예술의 비장애중심성을 재승인한다.

장애예술 정체성의 딜레마

모든 예술가가 그렇듯 장애예술가도 세계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는 자신의 존재를 걸고 말하지만, 또 그의 장애는 그의 존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지만, 그는 자신의 장애로만 말하지 않는다. 만약 그의 장애가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으로 느껴진다면, 그건 극장 밖 우리 사회의 현실, 그 불공정성 때문일 것이다. 정체성은 우리가 존재하기 전에 이미 자리 잡은 사회 체계가 만들어 놓은 경계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현실은 법칙도 예의도 미학도 무시한 채 무대에 아무 때고 난입한다.

무대 안팎을 오가며 할 말이 많아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말들의 맥을 잡아 판을 까는 비평이 필요한 순간이기도 하다. 전복은 무대가 아니라 비평에 더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더 다양한 목소리가 더 많이 들려야 하기 때문이다. 어려운 미학적 개념으로 무장한 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더 다양한 위치에서 더 다양한 한계를 지닌 말들을 풀어낼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충돌하고 논쟁하는 말들이 엉키는 장이 필요하다.

작품에 대한 관심을 리뷰, 낭독, 수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 영상으로 기록해 둔 ‘입체리뷰 모니터링단’이나, 간단한 리뷰 뒤에 댓글을 달게 하여 릴레이로 대화를 이어 나갈 수 있게 해 둔 ‘이음리뷰클럽’이 흥미로웠던 것은 그 때문이다. 새로운 형식은 새로운 말을 가능하게 한다. 서로의 작업에 관심이 있는 동료들의 비평은 기존 비평가가 할 수 없었던 영역을 열어젖힌다.

모두를 위한 예술이라는 이상, 혹은 허상을 위하여

‘모두를 위한 보편적 예술’이라는 이상은 도달할 수 없는 것을 알면서도 지향하게 되는 그런 일이다. 객석 공동체니, 연결이니, 연대니 하는 이상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삶이 사실 그렇지 않은가. 끊임없이 발버둥을 치며, 그런 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가장 이상에 가까워진 순간을 붙잡는 것이다. 운이 좋으면 우리는 극장에서 그러한 ‘순간’을 현실보다는 좀 더 자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인가’ 싶은 순간 바로 사라지겠지만.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극장에 간다. 막이 내린 후 서로 말을 섞는다. 이것이 비평의 시작이자 쓸모이다.

이진아

연극평론가, 숙명여자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 비평을 필요로 하지 않는 시대에 비평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tikicat@empas.com

썸네일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젤리피쉬〉 ⓒ옥상훈)

2024년 10월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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