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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좌담] 지역 장애예술을 북돋기 위해 경계를 흐리고 넘어서야 더 크고 또렷해진다

  • 고주영·김효진·이진희·최선영·홍은지 
  • 등록일 2025-07-02
  • 조회수 218

이슈

 

2024년 10월부터 지역의 장애예술을 주제로 강원권, 충청권, 전라권, 제주권, 경상권 등 권역별 현황을 분석하고 전문가 좌담, 예술가 인터뷰 등을 진행했다. 이 기획을 주도하며 자료를 조사하고 좌담을 이끌었던 전·현 기획위원이 모여 지역의 장애예술 정책과 현장을 조망한 소감을 나누고 지역 장애예술 생태계가 더욱 활발해지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개요

  • 일시2025년 6월 11일 오전 10시

  • 장소모두예술극장 연습실1

  • 참석자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이음온라인 5기 기획위원
    김효진 문학작가, 이음온라인 5기 기획위원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이음온라인 5기 기획위원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이음온라인 5기 기획위원
    홍은지 공연예술가, 이음온라인 6기 기획위원

  • 다섯 명이 진한 회색 배경 앞에서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세 명은 등받이가 있는 의자에 앉아있고, 두 명은 뒷줄에 서 있다.

    왼쪽부터 이진희, 최선영, 김효진, 고주영, 홍은지 기획위원

지역 장애예술 현장을 만나다

고주영우리에게 지역은 큰 과제였던 것 같다. 매번 기획위원회 때마다 리서치로는 잡히지 않는 지역의 장애예술 신을 궁금해하다가 결국 직접 찾아가자는 얘기를 나누었다. 제가 맡은 강원권으로 시작했는데, 처음이라서 힘들었다기보다는 활발히 움직이는 현장을 찾기 힘들어서 안타까웠다. 좀 더 현장을 보고 싶었고, 지원기관 얘기도 들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가 없어서 아쉬웠다. 올해 초 다시 강원 지역 장애예술을 보러 갈 기회가 있었는데,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고, 장애예술에 대한 인식이나 경험이 균등하지 않고 편차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효진올해 1월에 전라권 좌담을 위해 광주에 다녀왔었는데, 너무 오래전 일 같다. 지역 현장에서 장애예술에 대한 애정이나 고민을 활동가들과 직접 얘기 나눌 수 있어서 좋았고, 지역의 척박한 지형 속에서 사업의 맥락과 과정이 어떻게 펼쳐졌는지 훨씬 디테일하고 다채로운 이야기를 접할 수 있었다. 물론 예상했던 대로 힘든 부분이 있었지만, 그것은 우리 모두의 고민인 것 같다.

최선영충청권은 지역사회와의 연결성을 가지고 실천하는 사례를 예술과 연결해서 소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지역은 시스템이 부재해서 더 개별적이고 살아있는 사례들을 보고 싶었는데, 좌담을 진행해 보니 현장은 개별적으로 무언가 하기 어렵고 교류할 자리가 없다는 것을 재차 확인했다. 그래서 좌담에 참석한 분들도 다른 분들과 만나고 얘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이진희제주 지역은 기존에 장애예술의 구심점이었던 장애인 그룹과 이주한 예술가 그룹 간의 교류 시기를 지나, 각자의 영역이 만들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럴 때 장애 당사자의 위치나 주도성은 어디에 있을까 고민이 들었다. 제가 조사했던 제주권 자료들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장애인 문화예술 활동 실태조사 결과보다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을 만났을 때 문제가 좀 더 또렷해지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쟁점이나 고민의 스펙트럼을 어떻게 펼쳐야 제도에 반영할 수 있을지 자문하면서, 그런 고민을 연결하는 게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차별의 장면들이 비가시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한 것들을 확인하려면 찾아가서 만나고 얘기 듣는 방법밖에 없고, 이렇게 얘기라도 할 수 있는 게 너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반복되는 것 같다.

홍은지가장 최근, 5월 말에 경상권 좌담을 위해 부산에 다녀왔다. 5, 6년 전쯤 지역에 장애예술 사업을 평가하러 갔다가 장애인을 수혜 대상으로 보는 것에 좌절했던 탓에 약간의 불안과 편견이 있었는데, 부산과 대구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지역에서의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부산의 경우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장애예술 거점 공간에 대한 기대가 큰 것 같았다. 일단 모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게 중요하고, 자연스러운 교류가 자극이 되는 것 같았다. 대구에도 지역 커뮤니티 안에서 예술을 통해 장애인 권리와 이동권, 일자리를 고민하면서 성취를 이루어내는 사례들을 나눠줘 반가웠다. 서로 만난 적이 없어서 이런 만남의 자리 자체를 반가워했고, 이후에 서로 만나서 프로그램 교류를 해보고 싶다는 의지도 보여서 좋았다.

지역 장애예술의 지형과 특성

고주영강원권은 광역시도 없고 경제적・산업적 측면에서 크게 발전된 것도 아니다. 전반으로 지역 자원이 적다 보니 장애인에게 가는 자원은 더 적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사회적・경제적인 자원 분포와 장애예술 지형이 맞물려 돌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형적으로 영동・영서로 나뉜 상황에서, KTX가 다니지 않고 대부분이 산악지역이어서 이동성이 떨어지는 지역이라는 게 가장 큰 약점이자 난관이라고 생각한다. 자원이나 경제적 기반도 산재해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로 각자도생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애예술 자료를 리서치하고 관계자들을 만나고 나서도 강원권 장애예술만의 특성은 별로 못 느낀 것 같다.

최선영충청 지역도 상황은 비슷하다. 대전과 세종, 아산을 빼면 이 지역에도 KTX가 없다. 지역에 교통 거점이 있다는 건 정말 중요하다. 한편, 제가 좌담에서 만났던 분들은 지역 특성을 반영한다기보다는 사실상 무리할 정도로 각자 자신의 역량과 인프라를 마구 쏟아붓는 상황이었다. 충청권의 문화재단들도 다양한 실험적이고 시의적절한 사업을 많이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강원문화재단만 하더라도(장애예술 관련은 아니지만) 실험성 있는 사업이나 연구모임처럼 어떤 주제를 가지고 모일 수 있는 제도가 있는데, 충청권은 많지 않다. 충청권 문화재단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단기 사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아젠다를 던지는 자리는 부족하다. 지역을 한차례 훑어보니 이런 제도적인 측면도 보이는 것 같다.

이진희장애예술 전반을 살펴보려면 그 지역의 현황이나 이슈와 연결하는 통합적인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육지에선 제주라는 섬을 한 덩어리로 생각하기 쉬운데, 제주와 서귀포의 차이를 섬 밖 사람들은 알기 어렵다. 두 지역이 서로 왕래를 잘 안 하고, 한라산을 넘어가는 게 상당히 큰 이동이라고 생각하는 역사・문화적 배경이 있다. 교통이나 지형적 조건이 장애인 지원정책이나 인권 관련한 이슈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수치로도 드러난다. 그런 면에서 제주 지역은 탈시설이나 자립정책 관련한 이슈에서 장애인들이 열악한 조건이고 시설 중심의 정책이 여전하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2023년과 최근 발생한 장애인 인권침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유관기관이나 인맥, 지연으로 형성된 조건들이 문제를 풀기 어렵게 만들었는데, 장애인이나 장애예술인이 다른 조건을 만드는 데도 불리한 상황을 초래할 수 있겠다고 느껴졌다. 기존에 오랫동안 공공지원도 받고 장애인 예술을 진행했던 장애 당사자 그룹과 이주한 예술인들과의 협업 속에서 당사자의 권한이나 위치, 힘이 어떤 방식으로,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지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서울에 비해 자원이나 사람이 부족한 상황에서, 다른 시도를 해보거나 실패해도 괜찮을 조건이 만들어지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고주영강원도처럼 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상황에서는, 제주 같은 괸당문화가 발동해 연결되기라도 해야 그 안에서 역동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더더욱 거점이 중요한 것 같다. 문화예술이 아니더라도 장애인이 모일 수 있는 거점이 있어야 움직임이 만들어질 텐데, 강원도는 그런 거점이 될 만한 공간이나 단체, 축제뿐만 아니라 인권운동조차 미약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적어도 이번 기획을 통해서는.

이진희예를 들면, 강원에는 원주장애인인권영화제가 있고 제주에서는 2000년부터 제주장애인권영화제를 시작했다. 제주전국장애연극제도 한다. 그런데 이게 이 안에서만 순환하는 것 같다. 장애연극인 1세대인 김상홍 배우 인터뷰 중에, 새로운 문화가 육지에서 제주까지 오는 데 너무 느리고, 그러니까 자극이 덜하다고 이야기하더라. 섬이라는 지역적 특징으로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왜 우리를 조명하지 않는지, 스포트라이트가 안 가느냐는 거다. 김상홍 배우는 또 제주의 자연이 아름답다고 얘기하면서, “나는 못 간다. 휠체어 탔으니까. 그렇지만 나만의 오솔길이 있다”고 말한다. 저는 그 표현에서 고립감도 느꼈지만, 그 속에서도 자기 길을 찾아 나서는 성취와 자긍심을 느꼈다. 웹진 [이음]이 그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만나야 한다. 그건 사실 예산, 사람, 시간이 움직여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지역 얘기를 할 때면 정책 구조나 권력의 안배 문제가 지역소멸 문제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 고주영 위원

    고주영 기획위원

  • 최선영 위원

    최선영 기획위원

  • 홍은지 위원

    홍은지 기획위원

  • 이진희 위원

    이진희 기획위원

  • 김효진 위원

    김효진 기획위원

열악한 환경에서도 또 다른 가능성을

김효진자료 검색과 좌담만으로 전라 지역 전반을 얘기하기가 조심스럽다. 다만 주관적인 의견이지만, 각자 무에서 유를 만들어 가다 보니 모색하는 단계였고, 아직 서로 경쟁 관계는 아니라는 점이 강점 같다. 모색 단계이다 보니 가장 먼저 시도할 수 있는 게 축제 형태였던 것 같고 완주무장애예술축제 서로, 매드프라이드, 부안무경계예술축제 날다 등이 눈에 띄었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연령대가 높아서 같이 할 수 있는 방식이 축제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한편으로는 장애예술도 다분히 엘리트화되어 있는데, 같이 어울리기 위해 대중성을 담보하려는 노력이 인상적이었다.

최선영엘리트화와 연결해서 드는 생각이, 지역 공공기관에 장애예술 활동이 활성화됐다고 말하는 지표나 신호가 있는지 생각해 보면 다양하지 않은 것 같다. 이를테면, 모두예술극장이나 모두미술공간과 같은 포맷으로 공연하거나 전시했다는 게 지역 활동의 지표가 되면 안 된다. 공공에서 지역의 유의미한 시도를 그 자체로 잘 읽어주고, 엘리트화된 몇 개의 상을 지표로 제시하지 않는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 지역에서 개별적으로 하는 활동들은 열악하지만 자연스러움이 있다. “나만의 오솔길”을 찾고, 그 모습 그대로 어떤 가치나 의미가 있는지를 해석하고 응원해 주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웹진 [이음]도 그것을 조금씩 시도해 본 정도인데, 지역문화재단이 할 수 있을까? 저는 좀 어렵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는 전문성이 필요하고, 개별적인 활동이나 장애예술인의 삶에 관심 있는 누군가가 이걸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지역 매개자가 많아지면 좋겠다.

홍은지정말 중요한 얘기다. 경상권의 경우도 앞서 말씀하신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대구나 부산은 광역시인데다 수도권 다음으로 자원이 축적된 도시 중심으로 장애예술 활동이 가능한 토대가 마련되어있지만, 경상권 전체로 놓고 봤을 때는 경북 쪽은 산간지역이 많아서 무언가를 시도하기에 아예 접근 자체도 안 된다. 한편, 경상 지역이 수도권 다음으로 경제 규모가 크고 인구가 많은 지역이다 보니 공공정책에 조금 민감한 것 같다. 정책이든 공공사업이든 지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빠르게 감지하고 반응하면서, 그걸 활용해서 앞으로 나아가려는 적극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정책이 가리키는 방향에는 마치 정답인 듯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보니, 너무 형식적으로 사업화되면 어떻게 하나 고민이 생겼다.
대구의 경우, 지역의 장애인권단체나 복지관, 예술단체, 문화공간이 연대하고 문화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민간에서 지자체의 편의증진 사업 지원을 받아 극장시설을 개선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작업을 적극적으로 했다. 이러한 인프라가 공동체성을 만드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편, 매개자 지원과 양성교육 필요성을 강조하며 충청 지역의 매개자 지원사업을 부러워했다. 모두예술극장 공연이 지역에도 오면 더 많은 관객이 장애예술을 접할 수 있고 인식개선도 될 수 있다는 얘기도 했다. 역시 한 곳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있었다.

최선영제가 충남문화재단 매개자 양성교육 사업에 3년간 멘토로 참여했었다. 교육과정에 참여한 분들과도 계속 대화하는 자리가 많은 게 좋았지만,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 지원사업이 끝나면서 지속되지 못했고, 기록이나 자료도 남아 있지 않아 아쉬웠다.

고주영충북문화재단은 장애인, 비장애인 모두 매개자 양성교육 사업을 열심히 하고 있는 것 같다. 저는 재작년에 비장애인 매개자 양성교육에 함께했는데, 오히려 재단이 앞서가는데, 현장으로 흡수가 잘 안되는 느낌이 들었다. 프로그램은 열심히 잘 짜놨는데, 참여자도 너무 적고, 확산이 안 되는 거다. 예술인 인프라가 적은 원인도 분명히 있겠지만, 재단이 올바로 잘 판단했더라도 너무 앞서가면 현장과 만나기가 어려워진다.

최선영사실 지역에 기획자도 많지 않다. 행사 기획자가 아니라, 담론도 형성하고 관계도 계속 만들어 나갈 사람, 장애예술을 포괄하는 것까지 기대하면 정말 거의 없고 열악하다. 그런데 또 지역의 작은 단위로는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려는 단체도 있고, 작은 책방에서도 이런 시도를 한다. 저희가 동네에 만든 공간도 교통이나 접근성도 너무 좋고, 장애인 화장실 등 인프라도 갖춰져 있는데, 이것들을 활용해서 뭔가를 기획하거나 예술적인 것과 연결할 수 있는 주체가 없다. 이걸 예술 분야 안에서 계속 답을 찾으려고 하면 어렵다. 오히려 장애인과 함께하며 지역사회에서 명확한 자기 역할을 가지고 고민하는 주체와 연결해서 협력하면 속도가 날 수 있다. 공주시의 경우 장애인 당사자 부모님이 직접 장애인가족지원센터를 만들었는데, 그곳과 뭔가를 추진하면 공주 지역사회에 파급력도 생길 것이다. 지역이 가진, 열악하지만 또 다른 가능성을 활용할 수 있는 움직임이 생겨나면 좋겠다.

예술이라는 이름 대신 자기표현에 주목하기

고주영지역의 장애예술을 살펴보면서, ‘예술’에 대한 개념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라고 명명하는 순간 직업화에 대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둔 부모님들의 가장 큰 바람은 자녀가 예술가가 되는 거다. 공공에서도 성과지표를 만들고 몇 명이 고용되었는지 계량화한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사용하는 게 과연 올바른가? 우리가 장애인들과 어떤 문화예술 활동을 하려고 하는지, 궁극적으로 무엇을 지향하는지 생각해 보면, 결국 자기를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예술’이라는 개념을 차용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것을 예술이라고 하는 순간, 이상한 제도화부터 엘리트 의식에 휘감긴다. 일본의 경우, 우리 기준으로 보면 장애예술을 하는 분이 많지만, 아무도 본인이 장애예술을 한다고 얘기하지 않고, 사업 자체도 ‘장애예술’이 아니라 ‘자기표현 활동’이라고 한다. 장애인, 소수자들이 자기표현을 하기 위해서 예술을 방법론으로 선택하는 거다. 가령 꿈이자라는뜰의 활동이나 장애인 권익옹호 단체의 활동, 권리중심 공공일자리 같은 것이 모두 정말 훌륭한 ‘자기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김효진과거에는 예술이 치료의 수단이었다가 갑자기 일자리 수단이 되어버린 거다. 예술로 일자리를 갖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쉽게 진입할 수 있는 어떤 것이 되었고, 예술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도 이런 상황을 부추긴다. 그리고 그 모든 성과 측정을 일자리로 수렴하는 거다. 그 과정에서 정작 장애인 당사자는 성장할 기회를 오히려 잃어버린다. 아까 주도성을 말씀하셨는데, 장애 당사자가 주도성을 갖기 진짜 어렵다. 주도성은커녕 따라가기도 힘들고, 하면 할수록 서툰 예술, 아마추어가 되어버린다. 어떻게 변화할 수 있을까?

홍은지경상권 좌담에서 창파 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오랜 친구인 구족화가와 함께 작업해보고 싶어서 프로젝트에 초대했는데,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 친구가 서울에서 부산에 오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는 거다. 기차를 타는 것도, 지역을 둘러보는 것도. 그렇게 동행하다 보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발견해가는 과정이 큰 경험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오히려 지표가 아니라 각자 삶의 조건에 맞추고 예술이 분리되지 않는 방식의 구체적인 사례와 이야기가 많이 드러나야 할 것 같다. 자꾸 사업의 일환으로 프로세스에 끼워 맞추다 보면 정작 발견해야 할 것들을 놓치는 것 같다.

이진희예술‘만’ 강조할수록 전혀 예술답지 않게 되는 걸 자꾸 목격하게 된다. 권력과 규범성이 작동하는 방식으로 장애예술계를 다시 형성하기보다는, 예술생태계가 바뀌기 위해서 필요한 사회적・문화적 정치구조의 토대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고 바꿔나가야 한다. 접근성이야말로 총체적으로 구조를 바꿔야 하는 건데, 포괄적으로는 접근하기 어렵다. 저는 기본적으로 예술, 장애예술, 장애예술계라는 승인에 집착하는 게 장애 등급제와 연결된다고 본다. 필요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복지가 아니고 자격을 증명하고 국가가 승인한 요건을 갖춰야 시작되는 지원 시스템이라는 구조가 연동된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차별과 평등에 대한 정책적 감각이 매우 낮다. 그래서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 않은 후과가 장애예술계에도 이렇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한편 사회적 차별에 대한 문제와 동시에, 몸이 경험하는 통증이나 고통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경험을 또 어떻게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이 감각들을 토대로 의존과 돌봄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고민스럽다. 장애미학에 대한 기울어진 관점이 사회적 차별을 지우고 납작하게 만들어, 갑자기 의존과 돌봄을 얘기하면 사회적으로 실현될 수 없는 허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행정과 정책에서 ‘사회적 차별’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데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주영정책도, 지원사업도, 개별 프로젝트도 기본적인 기획의 요소가 빠져 있다. “왜” 하는지를 잊어버리고 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ESG, 포용, 인클루시브 그렇게 따라가는 거다. 그게 중앙정부의 정책으로, 지자체의 정책으로 수혈되는 거다.

최선영여기에 자본주의도 한몫한다고 본다. 미술 분야가 정말 강하다. 발달장애인이 작품을 제작해서 판매하고 유통하려는 단체가 늘고, 지역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급속도로 늘고 있다. 장애인의 삶이 불안정하니,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가 있는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일자리의 대안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시도가 의미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다수에게 지속적으로 안정적 결과를 가져다준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럴수록 공공영역에서 다른 신호를 분명히 보내야 한다.

지역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시도를 위해

이진희지역의 장애예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이동권과 예술 활동을 연결한 프로젝트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예술 접근성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지역으로 갈수록 이동권 문제는 더 열악하고, 모든 것을 가로막는 장벽이 된다. 공공기관은 복지기관이나 장애 관련 협회를 넘어 지역사회로 다양하게 협력을 확장해야 하고, 지역에서 의미 있는 단체들이 함께 예술 접근성을 시도해 보는 게 중요하다. 한편으로 지역을 넘어서 장애예술인들이 교류하는 레지던시 프로젝트가 있으면 좋겠다. 다른 지역을 만남으로써 지역의 경계가 흐려지고 연결되는 주제들이 나올 수 있다. 장애예술인 간의 독립성에 대한 실험도 될 수 있다. 경계를 넘고 지역을 넘어, 플랫폼 만드는 방식이 좀 더 다양해지면 좋겠다. 그럴 때 레지던시 공간이 있으면 강력한 구심점이 될 수 있다.

고주영장애예술계를 대표하는 축제들도 서울에서만 할 이유가 없다. 예술에 대한 개념 정의가 협소하면 공연화하고 전시화해야 하는데, 거기에는 자기표현 활동이 들어갈 틈이 없다. 그러다 보면 서울에서 알음알음 모아서 실행하는 데 그치는 거다. 축제의 개념을 확장하고 형식도 넓혀 다양한 자기표현의 장이 되면 좋겠다.

최선영지역의 장애예술을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장문원의 역할을 살펴보게 된다. 장애예술 전문기관인 장문원은 지원사업 예산을 분배하는 역할도 중요하지만, 지역에서 활동하는 공공기관 행정가, 매개자, 장애예술가들과 얘기 나누며 장애예술 담론을 형성하고, 장문원이 가진 좋은 자원을 나누고 퍼트리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장 급한 직접 사업, 직접 교육만 하다 보면 다 휘발되고 만다. 지역마다 직접 교육을 계속할 수 있는 붐을 일으키는 게 장문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장문원은 중앙기관의 역할을 좀 더 권위를 가지고 설정할 필요가 있다. 제가 보기엔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예술의 일반성에 장애인도 맞추라는 것 같은데, 어떻게 보면 예술은 일반성에서 계속 멀어져야 예술성이 확보되는 잔인한 영역이잖나. 그런데 다들 삶이 불안정하다 보니 안정성을 찾느라 일반성을 모색한다. 사실 예술은 다른 속성도 있다고, 좀 더 적나라한 얘기를 나누는 자리가 많아져야 한다. 그런 다양성에 관한 논의를 바탕으로 장애예술이 등장했다고 생각하는데, 정책적인 움직임을 보면 그게 아닌 것 같다.

이진희그런 배경 속에서 장애예술이 등장했는데 행정이 칸막이를 만들고 예술을 구획화하는지도 모른다. 장문원이 부처 간·기관 간 행정적 칸막이를 열어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어떻게 이식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장애인・비장애인 부문을 따로 구축하는 게 아니라, 이 생태계를 점진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려면 여러 방향으로 여러 트랙을 만드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장을 어떻게 다르게 구성하고 지원할 것인지, 지역이 자체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관의 경험을 어떻게 환류하고 연계할 것인지, 또 정부 부처 간에 무엇을 재현할 건지 고민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여러 층위의 일을 해나가는 것이 장문원의 역할이 아닐까.

최선영사실 현재는 그렇게 하기 어려운 구조다. 장문원에 연구팀이 필요하다. 장애예술과 관련해서 10여 년간 축적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어떤 흐름이 있었고 무엇이 비었는지 연구하고 분석하는 관점이 있어야 한다. 자꾸 직접 사업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있겠지만, 명확히 내용을 고민할 주체를 내부에 두어야 한다.

고주영장문원 차원 혹은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예술 관련 주무부서와 보건복지부 간에 협업 체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우리가 지역에서 만난 복지관 관계자 중에는 문화예술 활동을 열심히 꾸리는 분도 있고, 문화예술을 전공한 사람도 있었잖나. 예술만 떼어놓고 장애를 생각하는 건 한계가 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정부 부처 간에, 그리고 장문원 역시 장애와 관련된 단체들과 연결과 협업을 확장하고 장애에 대한 이해를 높여야 한다. 타 부처와 협업하고 설득하는 건 문체부나 장문원의 역할이다.
지역의 장애예술에서 접근성이 큰 장벽이라고 얘기했는데, 충북문화재단 예술교육 프로그램 중에 배달 프로그램이 있다. 충북도 교통이 안 좋아서 소외지역으로 찾아가는 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원사업을 했고, 소외 계층을 만나는 계획을 내면 이동비를 지원해 주고 파견되었는데, 그중 어떤 팀은 지역에 있는 장애인 커뮤니티에 찾아갔다. 장애예술교육, 이음 아카데미를 찾아가는 활동으로 구성해 보면 어떨까? 한두 개의 거점을 만들기 어렵다면 이동성을 가진 거점을 다양하게 시도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김효진사실 접근성에서 편의시설을 구축하는 게 가장 어려운데, 장문원에서 직접 시설 지원사업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지역별로 거점이 될 곳을 지원해 주는 방식이 가능할 것 같다. 지역에서는 공공 공연장에 장애인 화장실을 만들어 접근성을 높였다는 것도 기사가 되는 현실이다. 이런 것이 시혜나 서비스처럼 비치는 것도 인권이나 감수성 측면에서는 거슬리는 부분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바꿔나가는 동시에 인식개선도 미디어 리터러시 측면에서 살필 필요가 있다.

고주영지역마다 장문원 지부를 두자는 요구도 있었는데, 가능할 것 같다. 예를 들면, 광역과 기초거점마다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있어서 회의도 하고 지역의 이슈를 공유하는 것처럼, 장문원도 광역재단과 기초재단에 장애예술지원센터를 만들고 연석회의를 하며 정보와 의견을 교류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거다. 지역에 접근 가능한 장애예술 공연이 있으면 유통도 가능해진다. 대구시 사례처럼 지역의 거점에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을 지원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홍은지모두 정말 필요한 얘기다. 코로나로 침체된 후 요 몇 년 사이에 정책 방향이 급속도로 분과주의와 성과에 매진하는 칸막이 정책이 강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화예술 생태계가 활기와 생기를 찾을 방법이 무엇일지 집중하고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장애예술 생태계라고 말하기에 ‘생태’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역에서 예술을 매개로 자연스러운 공동체가 생기고 같이 살아가면서 예술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을 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다른 곳에도 없지 않을 것 같다. 지역의 이런 활동을 조명하고 꾸준히 발굴하면서 이들이 지속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최선영맞다. 지역에는 이미 다 있을 것이다. 오히려 지역에 자원이나 활동이 너무 없다거나 너무 뒤처져 있다고 느끼지 않게 해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의미를 읽어주고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자리를 구체적으로 마련하면 좋겠다.

  • 직사각형으로 놓인 테이블을 둘러싸고 마주 앉아 논의를 나누고 있다.

    왼쪽부터 김효진, 최선영, 홍은지, 고주영, 이진희 기획위원

고주영

고주영

공연예술 독립기획자. 연극의 확장과 새로운 연극의 발생을 시도하는 ‘연극연습 프로젝트’(2018~현재), 발달장애인 연극 프로젝트 등을 기획·제작하고 있다. 연극과 연극 아닌 것, 극장과 극장 아닌 것, 예술과 예술 아닌 것 사이에 있고자 한다. 이음온라인 4기, 5기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breeeeze@naver.com

김효진

김효진

문학작가. 장편 동화 『깡이의 꽃밭』 『달려라, 송이』 『착한 아이 안 할래』와 수필집 『특별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이런 말, 나만 불편해?』 『오늘도 차별, 그래도 삶』을 썼다. 2021년부터 이음온라인 장애문학방송 팟캐스트 ‘A의 모든 것’을 진행하고 있고, 이음온라인 4기, 5기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skyhoho21@hanmail.net

이진희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 장애여성 동료들과 연극을 만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음온라인 2기~5기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wdc214@gmail.com

최선영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2007년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개별성 중심의 활동을 기획 및 연구하고 있다. 이음온라인 2기~5기 기획위원으로 활동했다.
voslss@hanmail.net

홍은지

홍은지

공연예술가. 전환의 계기로 작동하는 예술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며 다양한 창작방식을 고안하는 것에 관심을 가진 공연예술 연출가. 서울프린지페스티벌, 신촌문화발전소 등에서 일했고, 얼라이브아츠 코모(alivearts como)에서 여러 분야의 아티스트와 함께 〈팰름시스트〉 〈벙어리시인〉 〈카페더로스트〉 등을 연출했다. 이음온라인 6기 기획위원이다.
eufy6542@hanmail.net

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PD suna.choe@gmail.com
사진. 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2025년 6월 (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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