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갈팡질팡하는 마음 혹은 구구절절한 변명
김미란 연극연출가
나는 한국 수어와 한국어가 동시에 무대에 존재하는 공연을 두 편 만들었다. 두 작품의 제목은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미지의 세계로, 엘사 아님)〉 그리고 〈맥베스〉다. 두 작품 모두 두 언어 중 ‘한국 수어’에 좀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의도적으로 한국 수어만으로 진행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한국어’만 할 줄 아는 관객은 정보가 누락된 장면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두 작품 모두 한국 수어가 제1 언어인 농인 배우가 등장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관객은 우리나라에 두 언어가 존재한다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관객은 공연의 드라마에 대해 좀 더 활발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기를 바라곤 한다.
작업에 비평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예스(YES)”다. 하지만 어떤 비평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어쩐지 대답하기 어렵다. 장애예술이라는 테두리에 묶이지 않길 바라는지, 텍스트의 완성도가 중요한지, 혹은 비주류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 안에서 미학적 평가를 바라야 하는지, 아니면 이러한 시도가 가지는 사회적 맥락에 대한 것을 봐주길 바라야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게다가 혹평을 만날 때면 공연창작 과정에서 부딪혔던 많은 문제 혹은 공연이 의도했던 것들에 대해 마음속으로 구구절절 변명하게 되는데,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거면 이미 그 공연은 말아먹은 것이 아닌가 싶어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비평이 나에게 항상 깨우쳐 주는 것이 있는데, 두 공연 모두 배우의 열연과 창작진의 훌륭한 아이디어와 별개로, 불안 가득한 공연이 되었다는 점이다. 두 언어를 사용하는 양쪽 모두 이 공연을 이해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했던 불안이 형식적 완성도와 별개로 공연에 군더더기를 만들어 낸다. 비평은 항상 내가 고뇌했던 불안 중 어떤 부분이 해결되었는지를 확인하게 해주고, 다음에는 군더더기를 떼어내고 더 과감해져도 된다고 말해준다.
갈팡질팡하는 마음과 구구절절한 변명 속에서 내가 명확하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당사자의 비평이란 것이다. 이를 위해서 무조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장애인 관객 모객이다. 장애인 관객 모객이 어렵다는 것은 이제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니, 더 다양한 시도로 방법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한국어를 제1 언어로 하는 관객들의 평가와 비교해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당사자의 평가는 만나기가 진짜 어렵다. 한국 수어를 사용하는 관객에게 나의 공연이 어떤 감각으로 다가가는지, 무엇이 좋았는지, 무엇이 싫었는지 알고 싶다. 나아가 한국 수어를 공부하고 다방면으로 자문을 해온 농인 전문가들의 의견도 공유되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조심스럽게 내비쳐본다. 이 평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플랫폼에서 공유되길 바란다. 언제일지 모르겠으나 한국어 사용자와 한국 수어 사용자가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게 되는 것이 결국 이 공연들이 완성되는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더 깊은 의미와 맥락 쌓기
이선근 미술작가
모든 창작자는 각자의 위치에서 창작 작업을 통해 예술의 역사를 이어 나가는 멋진 행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행위는 어떠한 형태로든 기록되고 저장되어 동시대 혹은 후대에 전달돼 예술의 역사가 된다. 단순히 창작물뿐만 아니라 작가 노트, 비평 등 작품에 내재한 의미와 의도의 이해를 돕는 기록물들과 함께 말이다. 이 중 비평에 관하여, 나아가 장애예술에서 비평의 쓸모에 대한 개인적 사유를 짧게 적어보려 한다.
비평은 작가와 대중, 또는 작가와 미술계 사이의 다리 역할을 한다. 작품이 가지는 의미나 메시지가 비평을 통해 설명되거나 해석될 때, 더 많은 사람이 작품에 접근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과정은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더 명확하게 전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렇기에 비평받을 기회가 있다면 작가로서는 대환영이고 유의미하며 필요한 부분이다. 또한 비평은 작품을 역사적・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를 통해 작가는 자신이 속한 예술사적 흐름이나 위치를 이해하고, 그에 맞춰 자기 작품을 더 깊이 있게 발전시킬 수 있다. 이 부분이 내가 생각하는, 장애예술에 비평이 필요한 가장 큰 이유이다.
전체적인 예술사에 비교해 보았을 때 장애예술이라는 상대적으로 소수의 예술에 대중이 관심을 두고 그 의미를 정립해 나가기 시작한 것은 매우 짧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장애예술 비평의 표본이 더 많이 쌓여야 하고, 역사적 흐름이 끊기지 않아야 한다. 장애예술이 더 많이 논의되고 대중에게 소개되면서 예술계 전반에서 포용성과 다양성이 증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나아가 장애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더 쉽게 발표하고, 다양한 관점과 경험이 예술계에서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하게 도와줄 것이다. 또한 장애예술가 개인으로서도 자기 작업을 객관적으로 돌아볼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작품을 발전시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에 비평은 필요하다.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조금은 늘어나고 있는 지금, 우려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평의 내용에서 ‘장애’라는 키워드에만 집중해 단발적인 마케팅 도구로만 사용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또한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부분일 수도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평범한 예술가의 입장에서가 아닌 장애예술가로서 처음 비평을 받았을 때, 그 내용을 통해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사회적 약자의 기분을 느낀 경험이 있다. 나의 작업에 대한 이해는 크게 기억에 남지 않고 장애에 대한 서사가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애예술 비평이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단순히 장애를 주제로 다루는 것 이상의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또한 잘 피력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작품 속에서 사용된 창의적인 표현, 기술적인 접근, 그리고 철학적인 메시지 등이 분석되면서 장애예술의 깊이를 탐구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각자의 위치에서 예술의 역사를 써나가는 위대한 행위를 지속하는 예술인, 장애예술인 모두를 응원한다. 자부심을 갖고 오늘도 열심히 창작하길 바란다.
다른 몸과 경험의 세계에 더 깊이 들어가기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현실과 너무 다르지 않아?” 장애여성공감에서 장애여성의 삶을 다루는 영화나 연극 등을 보고 난 후 나누는 이야기 중 꼭 차지하는 의견이다. 장애여성들이 당사자로 살아온 현실 세계와 동떨어져 있기에 감정 이입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마치 장애여성 대부분의 이야기로 이해될까 봐 걱정스러운 마음, 언제나 소심하고 불행이 반복되는 장애여성의 서사가 답답하면서도 또 비슷한 나를 발견하기 싫은 부대낌. 이런 복잡한 감정을 나누면서, 우리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장애여성의 현실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건 장애여성의 현실이 주인공을 설명하기 위한 장치로 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맥락을 담아낼 수 있을지, 그 안에 일상과 관계, 차별의 경험을 드러내는 방식이 장애여성의 삶과 어떻게 맞닿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기도 하다. 그리고 항상 이 고민의 끝자락에는 장애인이 등장하지 않는 현실이 걸려서, 이 질문들을 던지는 게 너무 이른 것은 아닌지 점검 또 점검하며 갈등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삶을 관심 두고 지켜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아주 작고 사소한 (부분이라고 여겨졌던) 것을 드러내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장애여성인 나에게 ‘비평’이란, 멀리 떨어진 위치에서 평가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이 작은 차이들을 분석하고 사회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장애여성공감 동료들과 문화비평을 준비할 때는 평가한다기보다는 내가 모르는 몸과 삶에 대한 경험에 접촉하고 찾아내기 위해 집중했다. 한 장면을 가지고 어떤 관점으로 볼 것인지 우리 안에서 먼저 토론하고 분석해 보는 것은, 먼저 내 경험을 다시 돌아보는 것이었고 서로의 관점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비평은 거리를 둬야 보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더욱 깊숙하게 관계 맺기 위한 자리를 열기도 한다.
몇 해 전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에서는 비평이란 무엇인지를 함께 공부해 왔다. 그 시간에 장애여성 배우들은 장애여성으로 살아온 몸이 익혀왔던 감각을 믿으면서 자신이 느낀 생각과 감정을 말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연습해 왔다. 이 연습이 일상에서 계속되어 왔고 또 계속해 가는 과정일 때, 장애여성의 경험을 무대 위로 올리는 것은 어느 한 장소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일이 아니라 새롭게 시도하거나 계속해서 실패하는 일상의 장면들이 그대로 옮겨지는 것이었다.
이 연습을 같이할 때, 현실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 늘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다음 어떤 언어들로 삶을 드러낼지, 장애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들을 뒤집고 ‘아차’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언어들이 필요하다. 그때 너무 심각하거나 진지하지 않기를 바란다. 장애 개그로 장애여성공감의 일상 문화를 보여주는 〈이게 웃겨〉라는 웹콘텐츠 코너가 있다. 장애를 말하는 건 언제나 낯설고 불편한 주제가 되어버리지만, 장애여성들과 함께 활동하는 공간에서 어쩌면 ‘우리끼리만’ 웃긴 이야기들로 농담에 대한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 장애를 동정하느라, 또 나와는 다른 사람들로 관계 맺지 않을 때, 같이 웃지 못하는 상황들을 다시 질문하는 것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기존의 관점 자체가 완벽히 뒤바뀌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을 비꼬는 것이 〈이게 웃겨〉가 담고 싶은 의미다. 그래서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를 더 많이 만들기 위해서는 그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동료가 필요하다. 우리는 동료를 만들기 위해서 비평한다. 이것은 비평을 통해 관점을 달리하고 내가 가진 기준을 바꿔야 보이는 일이기 때문이며, 장애여성인 나의 삶과 현실이 함께 변화하는 일이다.
김미란
연극연출가, 연극동호회 ‘소구’ 회원. 〈좋아하고있어〉 〈영지〉 〈강진만 연극단 구강구산 결과보고서〉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 〈다른 부영〉 〈맥베스〉 외 다수 작품을 연출했다. 〈이것은 어쩌면 실패담, 원래 제목은 인투디언노운〉으로 제58회 백상예술대상 젊은연극상을 수상했다.
alfks.15@daum.net
이선근
미술작가. 평면 회화 작업을 기반으로 조형, 설치 등 여러 매체로 활동한다. 어린 시절 바라보던 장난기 가득한 세상과 성장 과정을 거치며 많은 시간을 함께한 시감각에 관한 사유를 바탕으로 진지함이 공존하는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추상적이면서도 형태가 존재하며 다양한 색채를 조화롭게 조합하여 만들어 내는 것이 특징이다. 2019년 《私の心は君に向かって流れている。》(일본 오사카, Holbein Gallery)와 《CUPID》(한국, 자하 갤러리) 개인전을 시작으로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
sgmao@naver.com
∙ 인스타그램 @yi.sun.geun
진은선
장애여성 독립생활 운동을 하며 〈이게 웃겨〉라는 장애여성 유머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해왔다. 곧 있을 공연에서 배우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장애여성공감 독립생활센터 숨 활동가이다.
wdc214@gmail.com
∙ 장애여성공감 홈페이지
2024년 10월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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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들과, 관객들과 잘 소통하고 공감을 얻는지 전전긍긍하고 걱정하는 마음을 딛고 꾸준히 작업을 밀고 나가는 예술가들분들을 응원합니다. 계속 시도하고 관계를 쌓아가는 순간을 포착하는 비평이 더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공연전시가 넘쳐나는 요즘, 더 열심히 공연장을 찾고 전시를 보고 수다를 펼쳐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