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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유석 미디어 아티스트 시각을 넘어서는 감각의 파동에 관한 탐구

  • 심지언 월간미술 편집장
  • 등록일 2024-09-25
  • 조회수 105

인터뷰

미디어 아티스트 박유석은 어린 시절 태양을 응시한 후 남는 빛의 잔상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자주 맨눈으로 태양을 응시한 박유석 작가는 강하고 지속적인 빛의 자극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게 되었다. 작가는 어린 시절의 감각적 경험을 좇아 빛과 그 파장을 주제로 영상, 미디어, 설치 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에게 무엇보다 중요했던 보는 감각 행위는 시각을 넘어 청각과 공간을 만나 공감각으로 확장하고 있다. 다양한 미디어를 바탕으로 보고 듣고 경험하는 공간 실험을 펼쳐내고 있는 박유석 작가를 만나 작품 세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박유석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배경으로 한 손을 턱에 괴고 앉아 있다. 왼편에는 길쭉한 미디어월 작품이 있고, 오른편에는 붉은 동그라미가 그려진 평면작업이 걸려 있다

 

작품의 주요 주제와 관심사, 작업을 풀어내는 방식 등 전반적인 설명 부탁한다.

빛과 색, 물성 등을 탐구하고 감각하는 것에 주목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린 시절 빛을 보고 난 뒤에 남아 있는 잔상을 관찰하는 놀이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가지고 왔고, 그런 놀이 과정에서 느꼈던 감정이나 상태에 주목한 작업을 해오고 있다. 영상과 설치,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고 있다.

주요 주제 관심사가 빛의 파장과 물성에 대한 탐구인가?

그렇다. 빛과 파장이라는 현상에 대한 여러 가지 실험을 하고 있다. 내가 가진 주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개인, 그리고 자연과의 관계를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는 마치 빛의 잔상 놀이를 즐겼던 것처럼, 어떤 상태에 다가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맨눈으로 빛을 바라보는 놀이가 본인에게 특별히 인상적이었고 정서적인 안도감을 주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빛의 잔상이라는 시각적인 요소에 몰입하면서 다른 상황이 다 잊히는 경험을 했는데, 몰입해 있는 시간 그 자체를 즐겼던 것 같다. 놀이의 시작은 편안함이나 안도감 같은 감정적인 상태에 대한 추구였는데, 나의 작업도 그 연장선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정 시기에 내가 느꼈던 감정적인 상태나 상황을 담아내고 공유하고자 한다.

영상과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영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에서 영상, 애니메이션을 전공하며 모션그래픽 등 시간성을 가지고 변화하는 것에 관심 가지게 되었다. 고정된 상태보다 그것이 움직일 때 생기는 시간의 변화에 주목했다. 이것은 음악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는데, 음악을 들을 때의 경험과 즐거움이 영상에서의 그것과 비슷해 영상이라는 매체를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시간성과 움직임, 음악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작가로서 영상 작업을 시도하게 된 과정은 어땠나?

어릴 적부터 음악을 즐기다가 VJ(비주얼 자키)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혼자서 공부하면서 영상을 제작하는 소프트웨어를 찾아내고, 그 툴을 이용해 실시간으로 영상을 만들며 그 작업에 매료되었다. 주로 클럽이나 공연장에서 뮤지션, 혹은 디제이가 연주하면 VJ로 그에 맞는 시각적인 효과와 인터랙티브 영상을 제작했다. 돌아보면 초기의 놀이에 가까운 형태로 즐기면서 했던 것들이 쌓여서 지금의 작업으로 발전해 온 것 같다. 작가로서의 접근은 한참 뒤의 일로, 우연한 계기로 전시에 참여하면서 영상 작업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계속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흘러오게 되었다.

다양한 이력의 영향도 있겠지만 작업에 음악, 사운드, 노이즈 등 청각적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작업에서 음악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하는가?

음악을 들으면 항상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는데 감각이 전이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음악을 듣고 이미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나의 작업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부분이다. 공간이라는 접근도 시각과 청각적인 요소의 복합이다. 복합적인 감각들이 모였을 때 일어나는 시너지가 일종의 파동으로, 나의 작업에서 음악이 그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런 지점에서 시각 작업을 하고 있지만, 음악은 영상과 비등한 비중을 가지고 있다.

빛의 잔상 이미지 작업을 전개해 오다가 최근에는 공간에서의 시각 또는 감각 효과와 진행형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에 영상 작업을 선보일 때 보통 프로젝션 매핑, 또는 모니터를 이용한 스크리닝을 선택했는데, 기성품인 모니터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주변 빛의 간섭을 많이 받는 매핑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방법을 모색해 왔다. 더불어 공간에서 작품을 감각하는 방식에 관심 가지게 되었다. 〈잔상〉 시리즈가 빛의 본질적인 형태나 거기에서 오는 감정적인 부분을 포착하려고 했다면, 최근에는 시간이라는 개념과 그 속에서의 변화에 주목해 공간 속에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평면 매체나 스크린을 넘어 공간에서 사람들의 감각, 그러니까 시각적인 감각을 떠나서 공간에 대한 체험으로 연결하고자 영상과 사운드를 함께 배치하면서 지금과 같은 설치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 박유석 작가가 작품을 배경으로 책상에 팔을 기대어 환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뒷면 작품은 하얀 바탕 위에 중앙의 검정색이 사방 모서리를 축으로 그라데이션으로 번지는 형상이다.

다양한 협업자들과 함께하는 퍼포먼스를 ‘라이브’라고 표현하는데, 보통의 퍼포먼스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사운드 아티스트와 협업을 자주 하는데, 대부분 사운드와 영상의 싱크를 정교하게 맞추지 않고 상황에 따라 라이브로 연주하고 영상도 라이브로 제작한다. 기본적인 틀은 협업자들과 논의하지만, 현장에서의 우연성을 받아들이면서 라이브로 진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녹음된 음악을 플레이하면 매번 일정한 품질의 음악을 들을 수 있지만, 라이브로 연주하면 같은 곡이더라도 연주마다 느낌과 뉘앙스가 달라진다. 그 순간 거기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을 선보이고 있어 ‘라이브’라고 한다.

협업 외에도 콜렉티브로 그룹 활동도 하고 있는데, 이런 활동이 개인의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개인 작업에서의 협업은 많은 영감을 받는다는 장점이 있다. 협업의 내용에 따라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시도해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작업이 나오기도 해, 그 우연한 발견에서 영감을 받기도 한다. 더불어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도움도 많이 받는다. 팀 작업의 경우는 개인과 개인이 아니라 여러 명이 모여 하나가 되는 형태이다. 지금 속해 있는 팀은 아티스트 외에도 조경 스튜디오 관계자들과 협업을 진행해서 개인으로는 시도할 수 없는 규모와 영역을 경험할 수 있다. 팀 작업의 경우 내부에서 모든 작업을 수행해 팀원들과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프로젝트를 발전시켜 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최근 ‘녹음(nogm)’이라는 콜렉티브로 활동하며 서울식물원, 아모레퍼시픽재단 등의 기획전에서 자연과 예술을 결합한 형태의 프로젝트를 선보여 왔다. ‘녹음’의 구성원과 활동을 소개해 달라.

‘녹음’은 조경 스튜디오인 수무(綏無)에서 조직한 아티스트 콜렉티브로, 미디어 아티스트, 사운드 아티스트와 피지컬 인터랙션 담당자 등 4명이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조경회사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이다 보니 자연과 식물을 주로 다루고, 단순히 조경에서 표현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자연에 대한 이야기를 미디어를 통해 극대화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로 자연을 매개로 해 자연에서 발견되는 형태, 구조, 기능, 패턴 등의 모습과 원리에 영감을 받아 자연의 흥미로운 지점과 요소들을 표현한다. 최근에는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소통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어릴 때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안구는 괜찮은데 시신경이 다쳐서 보는 것이 뇌까지 가닿지 않는다.

시각장애가 있는 작가가 보는 행위, 그 행위로 인해 큰 타격을 입은 시감각을 계속 탐구하고 있다. 장애는 예술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할 것 같다.

눈이 안 보이게 된 것은 태양을 맨눈으로 많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장애가 나에게는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움직이는 것에 대한 공간감이 떨어지는 등 일상적인 불편함은 가끔 있지만, 작품 활동을 하는 데 있어 특별한 불편함은 없다. 어릴 때 시력을 잃어 이제 워낙 익숙하기도 하고, 내가 무엇인가 보는 것에 몰입하는 계기가 된 동시에 내가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해준 계기라고 생각한다. 이 장애는 나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고, 오히려 시각성에 더 관심 가지게 한다.

현재 장애예술인 레지던시인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해 있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본 장애예술창작센터의 장점 또는 아쉬운 점은 무엇이 있는가?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평소 장애에 대한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 센터에 와서 다른 작가들과 그들의 장애를 보며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점이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작가로서 스스로를 정리하거나 표현하는 작가 노트, 포트폴리오 제작 등에 큰 도움을 받았고, 비평가 매칭을 통해서 작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과정 또한 무척 의미 있었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입주 작가들과의 교류 부족이다. 내향적인 성격이어서 다른 작가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작가들 간의 교류 프로그램이 있으면 협업 등 우연한 기회가 생기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지점이나 즐거움의 순간은 언제인가?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다. 작업하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다양한 형태의 협업을 통해 누군가와 함께할 때 일어나는 시너지의 희열이다. 특히 퍼포먼스가 끝난 후 관객과 협업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나에겐 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작가로서 계획과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말해달라.

최근 작품에서 자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연에서 느끼는 경외감과 같은 것을 일상에서 느끼게 하는 새로운 종류의 전시를 선보이고 싶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먼 훗날이 되더라도 관람객이 전시장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자연에 젖어 드는 것과 같은 공간 체험을 할 수 있는 전시를 실험해 보고 싶다.

  • 회색 바탕 하단에 푸른색 빛이 반원 형태로 있다. 가운데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짙어지다가 테두리에서 다시 명도가 높아진다.

    박유석, 〈잔상 푸른〉, 피그먼트프린트, 50x50cm, 2024

  • 공간의 정면과 좌우의 삼면에 붉은색 빛이 비추고 있다. 정면에는 빛이 여러 겹의 원 모양이 겹쳐 있다.

    박유석, 〈어떤 상태〉, 3채널 비디오 설치, 2024

박유석

미디어 아티스트. 그래픽 디자이너, 모션그래퍼, VJ 등 독특한 이력을 이어왔고,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전시마다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 전시에서 선보인 작품은 새로운 전시공간에서 다른 맥락에 놓이기 때문에 반복해서 전시하지 않는다. 새 작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늘 해결해야 하는 도전 과제를 만나지만, 그것을 배움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자기 복제나 반복을 허용하지 않고 매번 ‘라이브’로 그 공간, 그 순간에만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작품 세계를 선보이고 있다. 개인전 《표류 : 오고 감》(2015), 《경계와 경계》(2018), 《어떤 상태》(2023)를 열었고, 그룹전 《가장 조용한 집》(2022), 《내가 사는 너의 세계》(2023), 《녹색갈증》(2024) 등에 참여했다.
monoideist@gmail.com

심지언

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술관, 비엔날레 등에서 전시기획자로 근무했으며,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시각사업본부장, 서울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 전시팀장 등을 역임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운영위원(2022~2024), 해외문화홍보원 월간지 [KOREA] 기획·편집 자문위원(2021) 등 공공기관 운영‧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예술정책과 미술시장, 국제교류 등에 대한 강의와 연구를 진행하고, 시각예술 전문 매체인 [월간미술]에서 편집장으로 근무하며 동시대 미술 현장을 기록・진단하고 있다.
rachel.monthlyart@gmail.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 사진.박유석

2024년 10월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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