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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접근성 리서치랩 《비무대지대: 드러내거나 넘고 뒤집으며》 ‘함께 존재하는 감상’은 어떤 것일까

  • 박준우 작가
  • 등록일 2024-09-25
  • 조회수 241

리뷰

비장애인의 입장에서도 공연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공연장으로 가서 공연을 감상한다’는 문장 이상의 품이 들고 그만큼 경험의 양을 가지게 된다. 공연이 열리는 공간까지 찾아가게 되는 그 과정에서 여러 관문을 거쳐야 한다. 그리고 도착해서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그걸 넘어 공간의 분위기와 온도, 습도 등을 피부와 진동으로 느낀다. 경험 자체가 다층적이기 때문에 장벽을 해제한다는 접근보다는 그 모든 경험을 허락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더 맞다고 생각한다. 앞서 다층적 경험을 한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그 경험을 제한하는 규칙을 암묵적으로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클래식 공연이나 발레, 현대무용, 연극 등의 공연에서 우리는 공연 중간에 소리를 내면 안 된다고 교육받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공연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 가장 큰 제약은 제반 여건이지만, 둘째는 다수가 감상하는 태도에도 있다.

《비무대지대: 드러내거나 넘고 뒤집으며》는 그 두 가지를 모두 고민하게 도와주는 전시였다. 전시의 메인 프로그램 격인 〈달아나다〉(2채널 비디오, 컬러, 2채널 사운드, 26분 27초, 2024)의 상영은 접근성의 확장에 있어서 의미 있는 실험이자 성과였다. 청각장애인 관객과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만들어진 2채널의 비디오와 사운드는 그 자체로 좋은 작품이기에 더욱 유의미하다. 다양한 해설과 설명이 본편에 부가되는 존재 혹은 보조 장치로서 덧입혀진 존재가 아닌, 작품 그 자체로 존재한다는 점을 주목했으면 한다. 수어 연기 또한 연기 자체가 잘 구현되어 몰입을 가져온다. 무엇보다 다채널로 구성된 작품이라고 해서 산만하거나 다소 집중할 수 없는 구성으로 한계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채널 전체가 하나로 모여 유기적으로 작품을 구성한다. 그렇게 의도했듯, 작품은 존재하는 방식에 상상력을 더하며 하나의 새로운 포맷을 제시한다.

작품의 구성 형태로서 그 가치에 관해 이야기했지만, 본 작품은 포맷의 변화만큼 다양한 장르를 더한 동시에 그 장르를 자연스럽게 넘나든다. 연극 영상부터 오디오비주얼까지 더해진 작품은, 앞으로 더 높은 접근성을 위해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해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마 어느 영역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인가에 따라 누군가는 타이포그래피 그래픽 영역에서의 유기적 비주얼과 미적 확장의 시도를 고민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는 연극 영상의 또 다른 형태를 덧입혀볼 것이다. 더 이상 접근성을 위해 무언가를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요소들이 모일수록 완성도와 밀도가 증가한다. 창작자 입장에서 확장을 얘기했다면, 수용자 입장에서도 ‘이런 감상도 가능하구나’, ‘이렇게도 작품을 접할 수 있구나’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 창작과 감상 양쪽에서 경험과 상상력이 확장되면서 접근성은 지금까지의 고민과는 다른 방식으로 허물어지고 경계가 모호해진다. 이처럼 접근성은 기존 작품에서 장벽을 해제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경험을 부여하면서 해체된다.

전시는 〈달아나다〉 하나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서 추가로 형성된, 텍스트를 3D 프린트로 제작한 형태의 작품도 있었고 접근성 현장 연구에 관한 데이터도 있었다. 휠체어 사용자가 입장 가능한 공간을 택했다는 점, 대안을 제시하는 전시공간에서 전시가 열렸다는 점도 충분히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부분이 부차적이라고 느껴지겠지만, 이를 통해 관객은 그 의미에 한 발 더 다가갈 수 있었다. 비장애인과 장애인 모두에게 긍정적인 방식으로 화두를 던지고, 감상 태도는 물론이고 예술 작품에 접근하는 태도와 공간을 바라보는 시야까지 변화시키고자 한다. 그렇게 더 많은 사람에게 도달할 수 있는 작품과 감상이 만들어진다. 그래서 전시는 결과이지만 과정으로서 의미도 있다.

《비무대지대: 드러내거나 넘고 뒤집으며》를 보며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다양한 경험과 감상을 공유하며 또 다른 창작의 결과가 나왔으면 하는 점이었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의 작품을 다층적으로 풀어내며 일종의 해방감을 전달하고, 어느 부분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 느끼는 바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이 전시 속 작품이 지닌 큰 장점 중 하나이기도 하다. 덧붙여 디자인 작업을 한 아인투아인의 접근성 위키와 현장 연구에 모인 자료도 후에 좀 더 활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나의 전시, 하나의 작품에서 그치지 않고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꾸준히, 오래 생명력을 유지했으면 한다. 그래야 확장의 시도와 작업의 과정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으리라. 더불어 더 많은 작품, 더 많은 전시가 생겨나 하나의 시도가 아닌 운동처럼 확산되었으면 한다. 이 전시는 그만큼 어젠다로서도 훌륭하게 기능을 수행했다.

  • 관람객이 헤드폰을 쓰고 의자에 앉아 벽면에 투사되는 영상을 보고 있다. 영상에는 점선의 그리드가 투사되고 있다.

    영상을 보고 음성을 듣는 관객들

  • 화면은 여러 개의 그리드로 구성되어 있다. 한 그리드에는 두 명의 배우가 나란히 서 있고, 아래 그리드에는 “셀라가 농장에 가까워질수록 닭들의 울음이 점점 커집니다.”라고 쓰여 있다. 옆 그리드에는 “점점 커지는 닭들의 울음”이라고 쓰여 있고, 아래 그리드에는 파장이 표시되고 있다.

    〈달아나다〉
    (2채널 비디오, 컬러, 2채널 사운드, 26분 27초, 2024)

  • 한 사람이 바닥에 휠체어 픽토그램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전시장에 붙인 접근성 픽토그램

  • 벽에 ‘쏴아아아’라는 흰색 입체글자가 붙어 있다. 그 뒤에는 자주색 물줄기가 쏟아지는 것 같은 느낌의 배경이 그려져 있다.

    텍스트를 3D로 프린트한 설치 작업

비무대 지대 :드러내거나 넘고 뒤집으면

비무대지대: 드러내거나 넘고 뒤집으며

접근성 리서치랩|2024.7.24.~8.2.|포에버 갤러리

전시는 희곡 「달아나다」를 약 20분 주기로 반복 상연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희곡 「달아나다」는 웹진 [연극in](2022년 5월, 219호)에 처음 게재되었고, 2023년 3월 낭독극 형태로 무대에 올랐다. ‘접근성’ 리서치랩은 연구자 아인투아인(고재현, 김재아, 박현일, 박현진)과 창작자 구지수, 김내원, 황재현으로 구성된 집단으로, 이들의 협업으로 창작한 〈달아나다〉는 비인간 동물인 닭이 착취당하는 현실과 인간의 삶이 겹쳐지는 이야기다. 작가들은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위한 접근성 도구인 음성해설과 소리 정보를 먼저 작업하였고, 더 많은 관객이 함께 상상할 수 있는 극을 만들었다. 본 전시는 접근성 실험이나 시도가 아닌, 하나의 완성된 공연이다. 이곳에서 창작자와 관객이 감각하는 모든 요소가 연극 〈달아나다〉의 본 공연이다.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전시정보

박준우

디자인프레스 객원기자, 여성주의저널 [일다] 필자, 월간 [재즈피플] 필자, 한국대중음악상 사무국장, 멜론 트랙제로 전문위원, EBS 〈스페이스 공감〉 기획위원을 지내며 음악과 영화, 디자인에 관해 글을 쓰고 공연이나 음반을 기획하거나 제작하기도 한다. [손끝으로 읽는 국정] 기자를 1년간 했고, 배리어프리 공연과 유니버설 디자인이 주된 관심사다.
blucshak@gmail.com

사진 제공.김재아(사진 박현진)

2024년 10월 (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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