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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예술가의 인생 곡선② 혼자만의 동굴에서 미술의 세계로

  • 김진주 미술작가
  • 등록일 2024-07-24
  • 조회수 426

이슈

예술가는 어떤 질문으로 예술을 할까? 예술가로서 자신을 성장하게 한 것은 무엇이고 그 속에는 어떤 기회와 과정이 있었을까? 장애예술가의 정체성은 어디에서 비롯되고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오랫동안 꾸준히 예술 활동을 해오고 있는 예술가들에게 예술 활동 이력과 의미를 들어본다.

① 김진옥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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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김진주 미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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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박재홍 시인

  • X축과 Y축에 그래프가 그려져 있다. X축에는 10대부터 50대까지 나이가 쓰여 있다. 좌표에 결정적인 순간이 손글씨로 쓰여 있다. 10대 –로 가장 내려감, 늘 혼자 지냄, 동네 아이들이 놀림. 10대 중반 +로 많이 올라감, 삼육재활원 입원, 처음 걷기 시작, 초등학교 월반해서 들어감. 20대 +이지만 조금 내려옴, 어린 동급생한테 무시당함. 20대 중반 아까보다 +로 더 올라감, 고교 졸업, 구족화가협회 가입. 20대 후반 +이지만 내려감, 원하지 않는 학교 입학. 편입시험 불합격. 30대 +이지만 더 내려감, 대학 졸업. 30대 전반 –로 약간 내려감, 교통사고로 1년 입원. 30대 중반 +로 약간 올라감, 회복. 40대 후반 –로 약간 내려감, 혼자 그림 그림, 대학원 불합격, 3년 동안 입시학원 다님. 50대 +로 급격히 높게 올라감, ‘소요의 시간’에서 3년 협업작업, 50대 이후 현재 +로 가장 높이 올라감, 아르코미술관 전시, 창작 레지던시 입주. 그래프 계속 우상향으로 올라감, ※빛나는 60대를 향하여

    김진주 작가의 인생 그래프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지만 스스로 예술가라는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오직 구족화가협회에 제출하기 위해서였다. 고등학교(고등부) 졸업을 앞두고, 바로 대학 진학도 할 수 없었고 장애 때문에 취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고민하고 있던 차에, 지인이 신문에 실린 광고를 알려줘서 구족화가협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그림 그리는 법을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나름 최선을 다해 잡지표지 사진과 풍경 사진을 모사해서 제출했는데 다행히 순조롭게 가입되었다. 나는 구족화가협회 회원이 되어 아직 미숙하지만 화가로 불리는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고 협회는 해마다 단체전을 열어 구족화가협회를 알렸다.

이제 그림을 그리면서 공부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장애도 있는데 학벌도 없는 게 너무 싫었다. 그 전부터 내 꿈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기도 했다. 원래 공부하고 싶은 과목이 있었지만, 혼자 힘으로 도달하기엔 불가능한 일이라 여겨 포기하고 미술대학에 가기로 했다.

미대 관문은 그렇게 넓지는 않았다. 학습 능력이 나쁘지 않아 독학으로 학사학위를 취득하는 독학사 시험에서 1학년 과정도 패스했지만, 미대는 실기를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었고, 제한 시간 내에 석고상 하나 완성하는 게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많은 대학의 문을 열지 못하고 여러 해 만에 겨우 늦깎이 대학생이 되었다. 그러나 들어간 학교가 맘에 들지 않아 방학 때마다 줄곧 편입시험과 입학시험을 치렀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해 다니던 학교에서 졸업을 맞이했다. 한때 친하게 지냈던 대학 동기들은 졸업 후 전혀 그림을 그리지 않았지만, 나는 그 후에도 구족화가협회에 그림을 제출해야 했기에 계속 그려야 했다. 그림을 지속해서 그릴 수 있는 토대가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이었다. 그렇게 쭉 그림을 그렸다. 조용히!

협회에 제출하는 그림은 장식적이었는데, 미술사적인 의미나 이유는 요구되지 않았다. 나는 전공자이면서 상업 화가였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전공자는 사라지고, 유행에도 뒤처진 (단순한) 상업 화가만 남았다. 어쩌다 전시장에 가서 남의 그림을 보고 나면 알 수 없는 괴리감이 느껴졌다. ‘나도 미대 나왔는데, 공부도 못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보이는데 읽히지 않았다. 나는 동굴 속에 홀로 있는 상태였다. 미술 세계와 나의 세상은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미술 세계에 다가가기 위해 상급학교 진학을 목표로 미술학원에 다시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진학도 실패했고, 지나고 보니 미술학원도 다시 다닐 필요는 없었다.

미술과는 가깝지도 않은 채 어떻게 오랫동안 그림을 그렸던 걸까. 지금 골똘히 생각해봐도 나는 처음부터 잘못된 접근법으로 그림을 그려왔던 것 같다. 그동안의 그림은 그려서 보내버리면 끝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림 안에 내 생각, 고민 따위는 없었다. 다만 그림은 예쁜 상품일 뿐이었다. 수년간 상품을 그리는 것만 하다 보니 작업하는 법을 알 수 없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왜 그 사물을 선택했는지, 그 이유가 내게는 없었다. 내 그림에는 내가 없었다. 그냥 그렸으니까. 그렇게 아주 오래 아무런 정보도 교류도 없이 그림을 그려왔다.

그러던 중 서울에서 시각예술 기획을 하던 친구가 부산에 내려가 살게 되어 그 친구를 보러 부산에 몇 번 놀러 갔다. 그리고 그 친구가 기획한 ‘소요의 시간’이라는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내 작업에서도 전환점의 계기가 되었다. 그전까지는 풍경화를 그리든, 야생화를 그리든 단 한 번도 문밖으로 나가지 않은 상태에서 모니터 화면에 의지해 그렸었다. 그러던 내가 팀원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그곳에서 자생하는 식물과 곤충을 직접 관찰하고 생태를 조금씩 알아가며 그것으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 그것이 나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그 후로 3년간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실재하는 조그만 자연을 작업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몇십 년 동안 해오던 색채 작업에서 확장해, 오직 선으로 형태만 나타내는 드로잉 작업을 진행 중이다. 그 식물 혹은 동물이 가진 고유한 모양새를 온전히 보여주기 위함이다.

프로젝트 참여 작업에 이어 그것을 기반으로 마침 혜화동으로 이전한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레지던시 작가로 입주하였고, 가까운 마로니에공원을 산책하며 나무와 풀 등 식물 관찰 작업을 하고 있다. 마로니에공원은 도심 속 작은 공원으로, 많은 사람이 놀러 오거나 문화 체험을 하러 온다. 하지만 아무도 공원 내에 버젓이 자리 잡은 나무들에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어디에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특별할 게 없는 게 나의 관심이 집중된 이유다. 이렇게 요즘에 나는 예쁜 꽃도 그리고, 발에 밟히는 식물도 그린다. 나는 아직도 미술이 쉽지 않다. 예술은 더 낯설다. 그래도 나는 어떤 형태로든 꾸준히 작업해 나갈 것이다.

  • 김진주 작가가 방바닥에 앉아 발가락에 펜을 끼워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앞에 놓인 펜케이스에는 다양한 색의 펜이 들어있다. 책장에는 책이 가득하다.

    발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필자

  • 활짝 피어오르려는 꽃봉오리가 단색 펜으로 그려져 있다.

    김진주, 〈마로니에의 백목련〉, 펜(라이너), 22×30.5cm, 2023

김진주

사물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펜 드로잉 형식으로 그려왔다. 자신과 그의 외연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상황, 진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간다. 어떤 것이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고 믿으며 그것의 정당한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1994년부터 구족화가로 활동해 왔고, 개인사를 주제로 페인팅, 일러스트, 한국화, 펜 드로잉 등 여러 기법을 시도하며 그리는 속도와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중이다.
cipherjm@naver.com

사진 제공.필자

2024년 8월 (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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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3 16:2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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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만의 동굴에서 미술의 세계로 나가는 김진주 작가의 드로잉 세계에 깊이 빠져듭니다.

2024-08-13 11:2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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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몸으로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감동적이네요 일반인들이 느끼지 못하는 예술감성을 독특한 감각으로 표현해내는게 대단하다고 생각되네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기대할게요!!

2024-08-01 10: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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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에서 본 친구분과의 대화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인생 그래프의 오른쪽에 쓰신 '빛나는 60대를 향하여'라는 글처럼, 작가님의 인생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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