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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벽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되는 창작

이슈 감각의 차이는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 김은설·김지영(백구) 
  • 등록일 2022-11-23
  • 조회수1181

이슈

김은설과 김지영(백구)은 2021년부터 릴랙스드 퍼포먼스 <므브프- 진동하는 몸, 촉각적인 순간, 교차하는 주파수>(이하 <므브프>)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2년에는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으로 진동과 신체, 사물, 공간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소리를 감각한다’에 관한 끝없는 대화

백구은설 씨와 같이 걷거나 버스를 탔던 일들이 기억에 남아요. 은설 씨가 소리 혹은 진동이 느껴지면 그 소리가 무엇인지 저에게 묻고 저는 그 소리에 대해서 말하죠. 소리의 정체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소리의 질감에 대해, 소리의 모양에 대해 말하기도 해요. 그러면 은설 씨는 자신에겐 그 소리가 어떤 모양과 질감으로 느껴졌고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하나의 소리로 모양과 질감, 이미지, 기억으로 뻗어나가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리 혹은 진동을 감각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은설서로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감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좀 더 거리를 좁힐 수 있었어요. 백구 씨와 대화하면서 듣는 방식에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서로 발견했어요. 저는 청각장애 당사자로서 선택권 없다고 생각해왔었는데요. 백구 씨는 소리가 항상 들려서 안 듣는 선택을 할 수 없지만, 저는 보청기를 온오프 할 수 있고 듣기 싫으면 눈을 감아도 돼요. 눈을 떠야만 소리를 볼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소리의 듣기, 안 듣기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거죠.

백구맞아요. 소리가 들리는 상태가 자연스러운 사람과 들리지 않는 상태가 자연스러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러움’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람마다 자연스러움의 상태가 다를 수 있다는 것, 듣는다, 듣지 못한다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사이에 수많은 결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어요.

은설소리를 들을 때 귀로는 보조적으로 듣고 주로 시각, 촉각, 후각으로 소리를 느끼는 편이에요. 막연하게 ‘다른 사람도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어요. 백구 씨와 대화하면서, 감각을 공유하면서 다른 방식으로도 시도해보고 공통된 감각이 함께 만들어짐을 느낄 수 있었어요.

백구장애인만이 장벽(배리어)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은설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비장애인인 저의 장벽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소리를 듣지, 본다거나 촉각적으로 느끼지는 못했거든요. 은설 씨가 “이 진동 느껴져요?”라고 물어볼 때도 저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의 장벽을 확인하는 과정들이 재밌었고, 둘의 만남에서 발견한 차이와 질문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넓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리를 보는 사람과 만지는 사람, 듣는 사람 등이 같이 ‘소리를 감각한다’면 어떤 모양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므브프>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은설<므브프>에서 감각을 비교하는 것보다 다양한 듣기 방식을 알고 싶었어요. 저는 보청기로 듣는 소리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기계를 통해 들리는 소리와 맨귀로 듣는 소리가 차이가 있고, 더구나 프로그램화된 기계로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에요. 보청기를 빼면 소리가 사라지니까 보청기를 꼈을 때와 안 꼈을 때 몸의 감각이 아주 달라요. 보청기를 끼고 있으면 소리가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귓속에만 보청기의 진동과 소리가 맴돌고 소리의 방향과 크기가 멋대로 바뀌어요. 보청기를 빼면 소리가 없지만, 굉장히 날카롭고 다듬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몸속까지 들어와서 뛰노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나는 보청기를 쓰냐 안 쓰냐에 따라 소리 차이가 이렇게 큰데 청인이든 농인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소리를 감각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감각의 장벽 앞에서, 마주보기

백구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말소리를 수어로 글자로 옮기는 2차 번역이 아니라 감각의 확장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극장 공간에서 누군가 말을 하고 그 말이 벽면에 문자로 하나씩 써지고 써진 말이 수어로 보여지는 것과, 참여자들이 집중하고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이 이물감 없이 뒤섞이길 바랐어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또 다른 감각의 표현이며 같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설특히 참여자들이 진동에 집중하기 위해 소리를 차단해주는 귀마개를 사용했을 때, 말소리가 조금 들리겠지만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참여자 대부분이 수어를 할 줄 모르니 벽에 떠 있는 문자통역 화면을 바라봐야만 했는데요. 그때 다 같이 들리지 않는 경험을 했죠. 청각이 배제되어 정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자통역만 바라봐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고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백구저희가 호스트로서 공연의 문을 열지만, 참여자들과 수평적 공간에서 저마다의 위치와 영역을 가지고 같이 실험하고 표현해보면서 공연을 같이 이끌어 간다는 것이 <므브프>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저희가 가진 궁금증과 질문의 외연을 넓혀주는 건 참여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은설백구 씨가 이번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 때 수어 표현을 활용한 시각 언어로 이름짓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저 또한 청각 언어보다 시각 언어로 소통하는 게 편해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어요. 참여자들이 이 활동을 흥미로워할지는 반신반의했는데, 생각보다 시각 언어로 소통하기를 좋아했어요. 굳이 말소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움직임 언어를 사용하니까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언어가 명확하게 느껴지고 서로 간의 거리감이 좁혀진 느낌이 들었어요. 말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고 심플하게 소통하니 편안한 분위기가 되어가는 걸 느꼈어요.

백구<므브프>가 저와 은설 씨의 차이에서 시작되었다면 올해는 다른 협업자들과 질문의 범위를 넓히고 싶었어요. 작년 <므브프>에서 소리 혹은 진동을 감각하는 차이가 어디까지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지 참여자들을 통해 가능성을 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밍과는 진동을 탐구하는 신체에 관해, 다이애나밴드와는 진동과 관계하는 사물, 공간에 관한 질문들을 키워나가는 중이에요. 진동과 소리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진동이라는 두 주제 안에 다양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은설백구 씨와 둘이서 공놀이하듯이 대화를 주고받다가 올해는 움직임에 능숙한 사람(무밍), 소리를 다루는 데 친숙한 사람(다이애나밴드)과 함께하면서 느낀 것은, 소리, 진동에 대한 관점이 다양하고 하나의 관점이라도 폭이 넓고 깊을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소리를 막연하게 미지의 세계로 여겼기 때문에 서로 질문을 하다 보면 궁금증이 해결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질문이 더 생기더라고요. 백구 씨의 말대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있는데요. 동시에 저의 장애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엔 장애로 인한 저의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의문이 많았는데, 그 의문이 점점 줄어들면서 저의 ‘장애물’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12월 17, 18일 공연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어쩌면 저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감각의 장벽을 꺼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텐데요. 장벽이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장벽을 낮춰볼 수도 있고, 혹은 서로 꺼내놓고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 퍼포먼스 <므브프>의 일부. 어두운 무대 위,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린 열댓명의 사람들이 원 모양으로 서 있고, 아- 소리를 내면서 발생하는 몸의 진동을 느껴보고 있다. 벽 한편에는 문자통역이 보인다.

    릴랙스드 퍼포먼스
    <므브프- 진동하는 몸, 촉각적인 순간, 교차하는 주파수>(2021) 사진. 은혜

  •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 참여자가, 양쪽 귀에 감싸듯 손을 댄 채 자신이 느낀 진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옆에는 수어통역사가 그 말을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2022)
    사진. 이규환

김은설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자신의 시각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서 소통한다.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아, 미묘하게 엇갈리는 일상에서 생긴 아주 작고 개인적인 감각과 감정, 기억을 세밀히 탐구하고 있다. 듣는다는 게 무엇이며 자기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의문을 던지면서 드로잉, 설치, 영상매체를 아우르며 작업하고 있다.
odd_dreamer@naver.com

김지영(백구)

연결되는 만큼 거리 둘 수 있는, 지치지 않고 함께 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미술작가이자 노동자이다. 중심보다 주변부를 좋아하고 미끄러짐으로써 넓어지려 노력한다.
whitenightkim@gmail.com
므브프 인스타그램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필자

2022년 12월 (37호)

상세내용

이슈

김은설과 김지영(백구)은 2021년부터 릴랙스드 퍼포먼스 <므브프- 진동하는 몸, 촉각적인 순간, 교차하는 주파수>(이하 <므브프>)를 진행하고 있으며, 2022년에는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으로 진동과 신체, 사물, 공간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소리를 감각한다’에 관한 끝없는 대화

백구은설 씨와 같이 걷거나 버스를 탔던 일들이 기억에 남아요. 은설 씨가 소리 혹은 진동이 느껴지면 그 소리가 무엇인지 저에게 묻고 저는 그 소리에 대해서 말하죠. 소리의 정체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소리의 질감에 대해, 소리의 모양에 대해 말하기도 해요. 그러면 은설 씨는 자신에겐 그 소리가 어떤 모양과 질감으로 느껴졌고 어떤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고 이야기를 해요. 하나의 소리로 모양과 질감, 이미지, 기억으로 뻗어나가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즐거웠어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소리 혹은 진동을 감각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은설서로 질문을 하면서 어떻게 감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좀 더 거리를 좁힐 수 있었어요. 백구 씨와 대화하면서 듣는 방식에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서로 발견했어요. 저는 청각장애 당사자로서 선택권 없다고 생각해왔었는데요. 백구 씨는 소리가 항상 들려서 안 듣는 선택을 할 수 없지만, 저는 보청기를 온오프 할 수 있고 듣기 싫으면 눈을 감아도 돼요. 눈을 떠야만 소리를 볼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제가 소리의 듣기, 안 듣기를 선택할 수 있었던 거죠.

백구맞아요. 소리가 들리는 상태가 자연스러운 사람과 들리지 않는 상태가 자연스러운 사람과의 만남에서 ‘자연스러움’에 대해 질문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사람마다 자연스러움의 상태가 다를 수 있다는 것, 듣는다, 듣지 못한다 두 가지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사이에 수많은 결이 있다는 것을 몸으로 이해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소리를 귀로만 듣는 것이 아니라, 보기도 하고 만지기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었어요.

은설소리를 들을 때 귀로는 보조적으로 듣고 주로 시각, 촉각, 후각으로 소리를 느끼는 편이에요. 막연하게 ‘다른 사람도 청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소리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어요. 백구 씨와 대화하면서, 감각을 공유하면서 다른 방식으로도 시도해보고 공통된 감각이 함께 만들어짐을 느낄 수 있었어요.

백구장애인만이 장벽(배리어)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은설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비장애인인 저의 장벽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는 소리를 듣지, 본다거나 촉각적으로 느끼지는 못했거든요. 은설 씨가 “이 진동 느껴져요?”라고 물어볼 때도 저는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서로의 장벽을 확인하는 과정들이 재밌었고, 둘의 만남에서 발견한 차이와 질문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넓혀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리를 보는 사람과 만지는 사람, 듣는 사람 등이 같이 ‘소리를 감각한다’면 어떤 모양으로 어디까지 뻗어나갈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므브프>를 시작하게 되었어요.

은설<므브프>에서 감각을 비교하는 것보다 다양한 듣기 방식을 알고 싶었어요. 저는 보청기로 듣는 소리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기계를 통해 들리는 소리와 맨귀로 듣는 소리가 차이가 있고, 더구나 프로그램화된 기계로 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이에요. 보청기를 빼면 소리가 사라지니까 보청기를 꼈을 때와 안 꼈을 때 몸의 감각이 아주 달라요. 보청기를 끼고 있으면 소리가 몸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귓속에만 보청기의 진동과 소리가 맴돌고 소리의 방향과 크기가 멋대로 바뀌어요. 보청기를 빼면 소리가 없지만, 굉장히 날카롭고 다듬어지지 않는 무언가가 몸속까지 들어와서 뛰노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나는 보청기를 쓰냐 안 쓰냐에 따라 소리 차이가 이렇게 큰데 청인이든 농인이든 상관없이 사람들이 어떻게 소리를 감각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감각의 장벽 앞에서, 마주보기

백구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말소리를 수어로 글자로 옮기는 2차 번역이 아니라 감각의 확장을 보여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극장 공간에서 누군가 말을 하고 그 말이 벽면에 문자로 하나씩 써지고 써진 말이 수어로 보여지는 것과, 참여자들이 집중하고 움직이고 표현하는 것이 이물감 없이 뒤섞이길 바랐어요.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또 다른 감각의 표현이며 같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은설특히 참여자들이 진동에 집중하기 위해 소리를 차단해주는 귀마개를 사용했을 때, 말소리가 조금 들리겠지만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참여자 대부분이 수어를 할 줄 모르니 벽에 떠 있는 문자통역 화면을 바라봐야만 했는데요. 그때 다 같이 들리지 않는 경험을 했죠. 청각이 배제되어 정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문자통역만 바라봐야 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고 함께 공유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백구저희가 호스트로서 공연의 문을 열지만, 참여자들과 수평적 공간에서 저마다의 위치와 영역을 가지고 같이 실험하고 표현해보면서 공연을 같이 이끌어 간다는 것이 <므브프>의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저희가 가진 궁금증과 질문의 외연을 넓혀주는 건 참여자들이라고 생각해요.

은설백구 씨가 이번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 때 수어 표현을 활용한 시각 언어로 이름짓기를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저 또한 청각 언어보다 시각 언어로 소통하는 게 편해 좋은 제안이라고 생각했어요. 참여자들이 이 활동을 흥미로워할지는 반신반의했는데, 생각보다 시각 언어로 소통하기를 좋아했어요. 굳이 말소리를 사용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움직임 언어를 사용하니까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언어가 명확하게 느껴지고 서로 간의 거리감이 좁혀진 느낌이 들었어요. 말을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고 심플하게 소통하니 편안한 분위기가 되어가는 걸 느꼈어요.

백구<므브프>가 저와 은설 씨의 차이에서 시작되었다면 올해는 다른 협업자들과 질문의 범위를 넓히고 싶었어요. 작년 <므브프>에서 소리 혹은 진동을 감각하는 차이가 어디까지 가지를 뻗어나갈 수 있는지 참여자들을 통해 가능성을 봤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무밍과는 진동을 탐구하는 신체에 관해, 다이애나밴드와는 진동과 관계하는 사물, 공간에 관한 질문들을 키워나가는 중이에요. 진동과 소리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진동이라는 두 주제 안에 다양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었어요.

은설백구 씨와 둘이서 공놀이하듯이 대화를 주고받다가 올해는 움직임에 능숙한 사람(무밍), 소리를 다루는 데 친숙한 사람(다이애나밴드)과 함께하면서 느낀 것은, 소리, 진동에 대한 관점이 다양하고 하나의 관점이라도 폭이 넓고 깊을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소리를 막연하게 미지의 세계로 여겼기 때문에 서로 질문을 하다 보면 궁금증이 해결될 것 같았는데, 오히려 질문이 더 생기더라고요. 백구 씨의 말대로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질문을 하고 있는데요. 동시에 저의 장애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처음엔 장애로 인한 저의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의문이 많았는데, 그 의문이 점점 줄어들면서 저의 ‘장애물’이 낮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12월 17, 18일 공연에 사람들을 초대하면, 어쩌면 저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감각의 장벽을 꺼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텐데요. 장벽이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장벽을 낮춰볼 수도 있고, 혹은 서로 꺼내놓고 이야기 나누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아요.

  • 퍼포먼스 <므브프>의 일부. 어두운 무대 위, 앞사람 어깨에 손을 올린 열댓명의 사람들이 원 모양으로 서 있고, 아- 소리를 내면서 발생하는 몸의 진동을 느껴보고 있다. 벽 한편에는 문자통역이 보인다.

    릴랙스드 퍼포먼스
    <므브프- 진동하는 몸, 촉각적인 순간, 교차하는 주파수>(2021) 사진. 은혜

  •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 참여자가, 양쪽 귀에 감싸듯 손을 댄 채 자신이 느낀 진동에 대해 말하고 있다. 옆에는 수어통역사가 그 말을 수어로 표현하고 있다.

    ‘진동하는 신체되기’ 워크숍(2022)
    사진. 이규환

김은설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자신의 시각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서 소통한다.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아, 미묘하게 엇갈리는 일상에서 생긴 아주 작고 개인적인 감각과 감정, 기억을 세밀히 탐구하고 있다. 듣는다는 게 무엇이며 자기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의문을 던지면서 드로잉, 설치, 영상매체를 아우르며 작업하고 있다.
odd_dreamer@naver.com

김지영(백구)

연결되는 만큼 거리 둘 수 있는, 지치지 않고 함께 하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는 미술작가이자 노동자이다. 중심보다 주변부를 좋아하고 미끄러짐으로써 넓어지려 노력한다.
whitenightkim@gmail.com
므브프 인스타그램 바로가기(링크)

사진 제공. 필자

2022년 12월 (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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