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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성 배우

인터뷰 질문과 확신 사이, 판단을 넘어 선택으로

  • 김슬기 연극 연구자
  • 등록일 2023-02-22
  • 조회수1944

인터뷰

언젠가 장애배우의 연기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느림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성 배우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느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누구를 기준으로 삼은 표현인지를 질문했다. 그의 말을 오래 곱씹으면서 장애배우의 고유성을 읽어내는 관점은 물론,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는 “인물을 나로 표현하는 배우”라고 스스로 수식한다. 내가 인물이 되어보는 게 아니라 인물을 나로 표현하려 하는 것, 그 수식어에는 오랜 시간 그가 고민해왔던 장애배우의 연기론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배우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

1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애인에서 작업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극단 외부의 다양한 창작자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

배우를 꿈꿨던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그만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무언가 표현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재료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배우라는 직업이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배워보고 싶었다. 물론 그때는 주로 텔레비전에서 보던 배우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매체 연기를 많이 보다 보니, 나도 배우를 해보면 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간 창작극과 번역극, 고전과 동시대 연극을 아우르며 매우 많은 인물을 만났다. 각각 다른 인물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이야기의 흐름을 먼저 파악한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를 생각하고, 각 장면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창작극이든 번역극이든 공통으로 그렇게 접근한다. 다만, 번역극의 경우 대사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나?

몇 년을 주기로 바뀌는데 지금은 <인정투쟁; 예술가 편>에서 했던 예술가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 극단 바깥에서 작업하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배우로서 나를 증명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그걸 실행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이미 배우인데, 내가 배우라는 걸 계속 증명해 나가야 하는 과정인 거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 말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공연도 하지 않았나. 극단 애인의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를 비롯해서 <1인 무대>에서 그런 작업을 했고, 지난해에는 예술청에서 1인 플레이어로 무대에 올랐다. 이런 공연을 만들 때는 무엇에 집중하나?

솔직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내가 지금 무슨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은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작업을 거친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상상이 된다. 그러면 그 상상을 토대로 움직여보고 작품을 만드는 편이다.

연기가 왜 좋은가? 쉬지 않고 작업을 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배우 하지성을 넘어 인간 하지성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매체 연기도 해보려고 한다. 내가 가진 온갖 것을 여러 곳에서 펼치고 싶은데, 특히 매체 연기에서는 화면 안에 표정을 담아내야 하지 않나. 다양하고 섬세한 표정 연기가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작품으로 삶을 살아가는 힘이다.

비장애 중심 사회, 서로의 다름을 알아간다는 것

최근에 공연했던 <틴에이지 딕>은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배우 하지성이 읽어낸 리처드는 어떤 인물인가?

리처드는 다른 몸 때문에 사람들에게 혐오를 받는 인물이다. 그렇게 혐오의 세계에 살았던 이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질주해간다. 다른 학생들과 대등하게 자신의 욕망을 과감히 드러내고,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전략을 세워 계획을 실행한다. 나는 이 인물이 모두와 대등하게 맞선다는 것을 중점으로 삼았고,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틴에이지 딕>을 보면서 장애연극에서 다루는 이야기나 인물의 범주가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연극을 통해서 관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우리는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을 보는 시각에 편견을 가지기 쉽다. 그 편견에 가려진 모습이 있고, 나는 그것을 깨고 싶었다. 나도 사랑을 할 수 있고, 선거에 이길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서 이 연극이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던 것 같다.

관객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깊이 공감했던 대사가 있다면?

가장 마지막 장면의 대사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았어. 당신들은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벌써 판단을 내렸지.”

<틴에이지 딕>도 그렇고 <여기, 한때, 가가>, <천만 개의 도시> 등 최근 몇 년 사이 비장애 연극인들과 협업하는 기회가 늘었다. 극단 애인에서의 작업 경험과 어떻게 다른가?

사실 굉장히 달라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무엇보다도 작품에 접근하고 그것을 표현해내기까지의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서로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이 되면 좋겠다.

여전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사이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졌다. 배우 하지성의 생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전에는 작업을 하면서 오로지 인물에만 집중했다. 배우로서 인물을 더 잘 표현해내고 싶은 것에 어떤 강박이 있었던 거다. 나의 표현이 그 인물을 잘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인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의 호흡과 움직임에 확신이 있고, 그렇게 연기를 하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단단해졌다. 한때는 ‘장애연극’, ‘장애배우’가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했고, 나 또한 ‘배우’라고 불리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은 명백히 ‘장애연극’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비장애 연극인들과 협업하다 보니까, 내가 비장애를 중심으로 한 환경에 들어가서 작업하고 있다는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받았다. 그런 과정이 편하지 않았고,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게 됐다. 그럴 때면 나를 믿고 함께하는 비장애 연극인들과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동등한 환경에서 고유성 탐색하기

최근 극단 애인에서 장애배우의 훈련에 관련한 워크숍과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취지에서 하는 활동인가?

장애배우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연기법이 없으니 우리는 비장애인들의 방식을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를 꿈꾸는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취지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방법론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새롭게 시도해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도 지금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현재 나의 표현을 기록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비장애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에 나도 많이 참여해봤지만, 그 시간을 장애배우들이 온전히 함께하기가 어렵다. 장애배우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이 더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

이러한 여러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배우 하지성의 예술 세계가 궁금하다. 배우로서 연기할 때 자신의 고유성을 어떻게 다루는가?

지금은 인물을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몸과 말을 믿고 행동해보려고 한다. 장면의 목적을 파악하고, 나한테 맞게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나?

기본적으로는 장애배우로서 연기에 관한 연구와 역량 강화를 꾸준히 하려고 한다. 극단 외부 작업이 하나 예정되어 있고, 지금은 극단 애인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다. 극단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결국 구성원으로서 나의 미래를 아우르는 연극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최근 나 자신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고, 이 시기가 어떤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고 믿는다.

극단 애인은 배우 하지성에게 어떤 의미인가?

극단 애인은 배우 하지성, 그리고 인간 하지성이 장애를 생각하는 토대가 되었던 곳이다. 극단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20대의 삶이 그대로 묻어 있고, 그것이 공연에 녹아들었다. 변곡점이 많았던 내 삶의 공간이 되어준 곳이다.

배우로서 앞으로 무엇을 더 탐색해보고 싶은가?

꼭 하나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업할 때, 어떻게 하면 그 환경을 동등하게 만들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외부 작업에 많이 참여하면서, 장애배우로서 규율 같은 것을 정하고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조만간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 우리는 이 사회에 함께 살고 있고, 그러니 계속 서로 만나고 협업하는 흐름이 만들어질 거다. 장애연극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 방법은 동정표가 아니다. 선거 운동도 아니다. 선거 체계 자체를 붕괴시키리라

    <틴에이지 딕>(2022)

  • <여기, 한때, 가가>(2022)

하지성

배우. 극단 애인 단원. 2010년 극단 애인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를 시작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 <천만 개의 도시> <여기, 한때, 가가> <틴에이지 딕>, 1인 창작극 <나는 있다> <여기에 있다-배우편>이 있다. 제8회 나눔연극제에서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로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jisungha105@hanmail.net

김슬기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한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일상과 연극, 연극과 사회가 만나는 방식 및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soolsoolgi@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 하지성, 국립극장,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장소 협조.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링크)

2023년 3월 (40호)

상세내용

인터뷰

언젠가 장애배우의 연기에 대한 글을 쓰면서 “느림의 미학”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하지성 배우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느리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이 누구를 기준으로 삼은 표현인지를 질문했다. 그의 말을 오래 곱씹으면서 장애배우의 고유성을 읽어내는 관점은 물론, 그것을 언어로 풀어내는 방식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는 “인물을 나로 표현하는 배우”라고 스스로 수식한다. 내가 인물이 되어보는 게 아니라 인물을 나로 표현하려 하는 것, 그 수식어에는 오랜 시간 그가 고민해왔던 장애배우의 연기론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

배우가 하는 일이 궁금하다

10년 넘게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극단 애인에서 작업을 시작했고, 최근에는 극단 외부의 다양한 창작자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어떻게 연극을 시작하게 되었나?

배우를 꿈꿨던 건 고등학교 때부터다.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그만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다는 욕구가 컸다. 무언가 표현을 하고 싶은데 어떻게 재료를 선택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러던 차에 배우라는 직업이 사람들과 만나면서도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를 배워보고 싶었다. 물론 그때는 주로 텔레비전에서 보던 배우의 이미지를 떠올렸다. 매체 연기를 많이 보다 보니, 나도 배우를 해보면 그 인물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그간 창작극과 번역극, 고전과 동시대 연극을 아우르며 매우 많은 인물을 만났다. 각각 다른 인물에 어떻게 접근하는가?

이야기의 흐름을 먼저 파악한다. 그리고 작품의 주제를 생각하고, 각 장면의 목적을 분명히 한다. 창작극이든 번역극이든 공통으로 그렇게 접근한다. 다만, 번역극의 경우 대사의 의미를 해석하는 데 시간이 좀 더 오래 걸린다.

기억에 남는 인물이 있나?

몇 년을 주기로 바뀌는데 지금은 <인정투쟁; 예술가 편>에서 했던 예술가 역할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요즘 극단 바깥에서 작업하는 기회가 늘어나면서 배우로서 나를 증명해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그걸 실행하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이미 배우인데, 내가 배우라는 걸 계속 증명해 나가야 하는 과정인 거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는 연극 말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공연도 하지 않았나. 극단 애인의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를 비롯해서 <1인 무대>에서 그런 작업을 했고, 지난해에는 예술청에서 1인 플레이어로 무대에 올랐다. 이런 공연을 만들 때는 무엇에 집중하나?

솔직하게 나를 바라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내가 지금 무슨 주제로 이야기하고 싶은지,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써 내려가는 작업을 거친다.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가다 보면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상상이 된다. 그러면 그 상상을 토대로 움직여보고 작품을 만드는 편이다.

연기가 왜 좋은가? 쉬지 않고 작업을 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나?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배우 하지성을 넘어 인간 하지성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매체 연기도 해보려고 한다. 내가 가진 온갖 것을 여러 곳에서 펼치고 싶은데, 특히 매체 연기에서는 화면 안에 표정을 담아내야 하지 않나. 다양하고 섬세한 표정 연기가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무대와 매체를 오가며 작품으로 삶을 살아가는 힘이다.

비장애 중심 사회, 서로의 다름을 알아간다는 것

최근에 공연했던 <틴에이지 딕>은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재창작한 작품이다. 배우 하지성이 읽어낸 리처드는 어떤 인물인가?

리처드는 다른 몸 때문에 사람들에게 혐오를 받는 인물이다. 그렇게 혐오의 세계에 살았던 이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질주해간다. 다른 학생들과 대등하게 자신의 욕망을 과감히 드러내고,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전략을 세워 계획을 실행한다. 나는 이 인물이 모두와 대등하게 맞선다는 것을 중점으로 삼았고, 그걸 표현하고 싶었다.

<틴에이지 딕>을 보면서 장애연극에서 다루는 이야기나 인물의 범주가 확장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연극을 통해서 관객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나?

우리는 비장애 중심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장애인을 보는 시각에 편견을 가지기 쉽다. 그 편견에 가려진 모습이 있고, 나는 그것을 깨고 싶었다. 나도 사랑을 할 수 있고, 선거에 이길 수도 있다. 그렇게 살아가는 인물을 통해서 이 연극이 장애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선을 다시 생각해보게 했던 것 같다.

관객들과 만나는 과정에서 그 의미를 새롭게 발견하거나 깊이 공감했던 대사가 있다면?

가장 마지막 장면의 대사다. “마지막으로 할 일이 남았어. 당신들은 내가 선택하기도 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벌써 판단을 내렸지.”

<틴에이지 딕>도 그렇고 <여기, 한때, 가가>, <천만 개의 도시> 등 최근 몇 년 사이 비장애 연극인들과 협업하는 기회가 늘었다. 극단 애인에서의 작업 경험과 어떻게 다른가?

사실 굉장히 달라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된다. 무엇보다도 작품에 접근하고 그것을 표현해내기까지의 속도가 완전히 다르다. 나는 서로의 속도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해나가는 작업이 되면 좋겠다.

여전히 서로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지만, 그래도 최근 몇 년 사이 장애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양해졌다. 배우 하지성의 생각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전에는 작업을 하면서 오로지 인물에만 집중했다. 배우로서 인물을 더 잘 표현해내고 싶은 것에 어떤 강박이 있었던 거다. 나의 표현이 그 인물을 잘 담아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속상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인물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나의 호흡과 움직임에 확신이 있고, 그렇게 연기를 하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단단해졌다. 한때는 ‘장애연극’, ‘장애배우’가 아니라, 내가 하는 것이 ‘연극’이라고 생각했고, 나 또한 ‘배우’라고 불리길 원했다. 그런데 지금은 명백히 ‘장애연극’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비장애 연극인들과 협업하다 보니까, 내가 비장애를 중심으로 한 환경에 들어가서 작업하고 있다는 느낌을 굉장히 강하게 받았다. 그런 과정이 편하지 않았고,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게 됐다. 그럴 때면 나를 믿고 함께하는 비장애 연극인들과 이런저런 생각을 나누기도 했다.

동등한 환경에서 고유성 탐색하기

최근 극단 애인에서 장애배우의 훈련에 관련한 워크숍과 아카데미를 진행하고 있다. 어떤 취지에서 하는 활동인가?

장애배우들이 시도해볼 수 있는 연기법이 없으니 우리는 비장애인들의 방식을 습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 자체만으로도 불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를 꿈꾸는 장애가 있는 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취지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방법론들을 함께 이야기하고 새롭게 시도해보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도 지금의 모습과는 달라질 것이기 때문에 현재 나의 표현을 기록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비장애 전문가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에 나도 많이 참여해봤지만, 그 시간을 장애배우들이 온전히 함께하기가 어렵다. 장애배우들이 진행하는 워크숍이 더 많이 생겨나면 좋겠다.

이러한 여러 경험을 통해 만들어지고 있는 배우 하지성의 예술 세계가 궁금하다. 배우로서 연기할 때 자신의 고유성을 어떻게 다루는가?

지금은 인물을 생각하는 것보다 나의 몸과 말을 믿고 행동해보려고 한다. 장면의 목적을 파악하고, 나한테 맞게 표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올해는 어떤 계획이 있나?

기본적으로는 장애배우로서 연기에 관한 연구와 역량 강화를 꾸준히 하려고 한다. 극단 외부 작업이 하나 예정되어 있고, 지금은 극단 애인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다. 극단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결국 구성원으로서 나의 미래를 아우르는 연극이 될 것 같다. 그래서 최근 나 자신에 대해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고 있고, 이 시기가 어떤 터닝포인트가 될 거라고 믿는다.

극단 애인은 배우 하지성에게 어떤 의미인가?

극단 애인은 배우 하지성, 그리고 인간 하지성이 장애를 생각하는 토대가 되었던 곳이다. 극단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 20대의 삶이 그대로 묻어 있고, 그것이 공연에 녹아들었다. 변곡점이 많았던 내 삶의 공간이 되어준 곳이다.

배우로서 앞으로 무엇을 더 탐색해보고 싶은가?

꼭 하나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업할 때, 어떻게 하면 그 환경을 동등하게 만들 수 있을지, 구체적인 방안을 만들고 싶다. 앞으로 외부 작업에 많이 참여하면서, 장애배우로서 규율 같은 것을 정하고 알릴 수 있으면 좋겠다. 조만간 이와 관련한 연구를 해보고 싶다. 우리는 이 사회에 함께 살고 있고, 그러니 계속 서로 만나고 협업하는 흐름이 만들어질 거다. 장애연극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부탁드린다.

  • 방법은 동정표가 아니다. 선거 운동도 아니다. 선거 체계 자체를 붕괴시키리라

    <틴에이지 딕>(2022)

  • <여기, 한때, 가가>(2022)

하지성

배우. 극단 애인 단원. 2010년 극단 애인의 창단 공연 <고도를 기다리며>를 시작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인정투쟁; 예술가 편> <천만 개의 도시> <여기, 한때, 가가> <틴에이지 딕>, 1인 창작극 <나는 있다> <여기에 있다-배우편>이 있다. 제8회 나눔연극제에서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로 남자연기상을 받았다.
jisungha105@hanmail.net

김슬기

창작을 위한 읽기와 기록을 위한 쓰기를 한다. 공연예술의 창작과 수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가치에 주목한다. 일상과 연극, 연극과 사회가 만나는 방식 및 예술의 사회적 가치와 예술가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공연 드라마투르그를 비롯해 각종 연구를 병행하고 있다.
soolsoolgi@naver.com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자료 제공. 하지성, 국립극장, 서울문화재단 예술청
장소 협조.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링크)

2023년 3월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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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3 12: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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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성 배우님 백상 연기상 받으신 것 정말 츄카츄카 합니당! ^^

2023-04-17 10: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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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성 배우님! 백상예술대상 연극부분 연기상 후보 축하드립니다. ~ 지금보다 더 빛나고 큰 배우되시길 기도와 응원 보냅니다. ~~ ^^

2023-03-13 18: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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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성 배우님의 극단에서의 열정이 느껴지는 인터뷰였습니다. 장애연극이 무대에서 동등한 환경에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땀을 흘리시는 배우님을 응원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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