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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상화 《탐라는 하모니 Harmony》

리뷰 우리들의 깊고 푸른 그림 수업

  • 신상화 문화예술교육가
  • 등록일 2023-02-22
  • 조회수624

리뷰

  • 제주도의 하늘과 돌담, 꽃과 나무들이 그려진 다양하고 아담한 크기의 수십 개 캔버스가 벽에 걸려 있다.

우리, 그림은 처음이에요

복지기관 예술강사 7년 차. 2022년도에는 제주도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성인 장애인 미술 교실’이라는 타이틀로 10여 명의 참여자와 함께 미술 활동을 진행했다. 35주 동안 결과물에 치중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삶을 표현하고 풀어내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는 미술 활동이 시작되었다.

7년째 수업을 이끌고 있지만, 참여자를 만나는 첫날에는 늘 설렘과 부끄러움이 동반된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쌀쌀한 어느 봄날, 우리는 커다란 강당에서 긴 책상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강사와 보조강사, 기관 담당자, 참여자 모두 초면인 탓에 넓은 공간은 썰렁했고 어색함이 넘쳐났다. 준비해온 수십 장의 A4용지를 나눠주며 청했다. “이름과 나이를 적어볼까요? 나이는 마음의 나이로 적어주세요” 참여자들은 뚝딱 적어냈다. “이번에는 이름 옆에 좋아하는 것도 그려보세요” 몇십 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더라?’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우리들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조금 좁은 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빈틈이 없는 공간이 주는 결속력이 있다. 옆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앞사람의 표정 주름도 살필 수 있는 그 거리에서는 ‘나’보다는 ‘우리’라는 단어가 잘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참여자 대부분 그림이 처음이라고 해서 덧칠하기 쉬운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하였고, 제주의 삶을 그린 이중섭 화가와 이왈종 화가의 그림을 주제로 삼아 자신만의 감성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채색 순서를 정해주긴 했지만, 그림을 처음 접한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탄생했다.

나의 삶, 나의 바다

우리는 이중섭 화가의 <나뭇잎을 따려는 여자>와 <나뭇잎을 따주는 남자>의 여자와 남자가 돼보기로 했다. 자연의 일부인 나를 표현하는 것이니 옷을 절대 그리지 말자는 규칙에 몇몇 참여자는 수줍어했다. 한 참여자는 여인을 그렸고 제목을 <환희>라고 지었다. 나는 짓궂게도 “환희가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고, 그는 “저에게도 환희의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더는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희로애락이 모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복지관에 그림을 그리러 오기 전에 단톡방에서 그림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화가의 작품 <키스> 모사에 도전해보기로 하고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키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공지했다. 잔뜩 기대했으나 막상 수업 때는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부터인데, 완성된 그림 속 여인의 표정을 보니 말로는 부족한 깊은 감정의 표현이 있었다. “뿅 갔네!”라며 모두 크게 웃었다.

클림트의 <키스>를 따라 그리는 중에 다음에는 그의 다른 작품인 <헬레나의 초상>을 같이 감상하고 자화상을 그려보자며 일부러 말을 흘렸다. 흰색과 크림색이 섞여서 순수하고 안정적이며 평온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헬레나의 초상>은 구성이나 채색도 매우 단순하게 보이기에 참여자들은 “오, 좋아요~”라며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핸드폰 카메라 앱을 사용해서 날씬하고 예쁘게 시술(?)하여 셀카를 찍는데,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참 예뻤다. 한 차례 미화된 사진을 캔버스에 옮기면서 더 예쁘게 그려보자고 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가자며 즐겁게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는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머리핀도 꽂고, 한 번도 길러보지 못한 머리카락은 모카커피 색으로 염색하고 아름답게 늘어뜨렸다. 레이스가 달린 옷도 입고 진주 귀걸이도 했다. 청일점인 이민철 씨는 특유의 박력 있는 붓질로 남성미 넘치는 너무나 멋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서로 다른 이의 자화상이 더 멋있게 나왔다고 칭찬하면서도 저마다 시선은 자신의 그림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는 모습을 그리려다 보니 바다가 계속 등장했다. 포구를 그리니 남쪽 바다가 넘실대고, 제주도의 유명한 조랑말 등대는 북쪽 바다에 있으니 말이다. 유채꽃밭을 그려보자 하니 바다 위 우뚝 솟은 산방산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해녀는 깊고 푸른 바다를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와 깊고 푸른 바닷속이 왠지 우리의 삶 같아서 울컥했다. 바라보기에 멋지지만 다가가기 힘든 바다….

여러분, 전시 한번 할까요?

35회차의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이렇게 열정 넘치는 팀은 처음이에요. 여러분, 갤러리에서 전시 한번 할까요?”라고 물었다. 모두 좋아하셨다. “그럼요. 선생님이 하자고 하면 하는 거죠~”라고 화답하시는데 속으로는 조금 겁이 났다. ‘혼자서 전시기획이라니…. 이제 진짜 고생하겠다’와 ‘어떻게든 되겠지’가 교차하며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달려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작은 갤러리를 연말에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대관해놓아 장소의 문제는 없었지만, 비용 마련, 홍보, 설치, 오프닝까지 혼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꽤 컸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남다르고 뜨거운 열정이 에너지가 되어 나를 움직였다. 작품도 최대한 걸어보자며 150여 점을 촬영하고 편집했다. 이틀 밤을 새워 직접 디자인한 브로슈어의 인쇄 주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쾌감이 대단했다. 제일 걱정되었던 설치는 복지관 미술 교실 담당 선생님이 늦은 밤까지 헌신적으로 도와주셔서 해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두 명의 참여자에게 전시 속의 전시 콘셉트로 개인전 부스를 만들어 드렸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복지관에 나오지 않아도 창작활동을 지속할 만하고 현재 10점 이상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뽑았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색채감각을 지닌 윤석경 씨는 제주의 돌담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석경 씨의 돌담은 볼을 비빌 수 있을 것처럼 따듯하다. 독창적인 화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민철 씨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그림 그리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체력 소모가 클 텐데, 참 잘 그린다.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장애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첫 전시회를 여는 것은 매우 어렵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예전에 나도 그랬기에 이번 전시가 참여자들께 원동력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탐라는 하모니

나는 전시회를 영화 상영에 비유하곤 한다.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면 대중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즐기고 비평한다. 하지만 미술 전시회는 여전히 관심 집단에 한정 지어 특별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왜 전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미술 전시회는 시각적 표현을 통해 영화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고, 특히 함께 모여 연말에 여는 전시는 즐거운 파티다. 특별한 전시 《탐라는 하모니》는 장소도 특별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자리한 옛 고구마 공장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갤러리 감저‘에서 진행되었다. 감저는 제주말로 고구마를 뜻한다. 오프닝에서 따듯한 차와 달콤한 디저트로 여유를 즐기니 마음으로 행복이 느껴졌다.

학교, 복지관, 평생교육시설 할 것 없이 12월에서 3월 초에는 문화예술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산을 편성하고 한 해 계획을 세우는 시기여서 그럴 테지만, 그래서 특히 장애인들은 이 시기가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복지관 밖으로 나가 멋진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미술 교실 참여자에게는 그 특별하고 뜨거웠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마음속에 따듯한 여운이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다시 봄이 되면 그들의 열정의 온도를 조금씩 올려보고 싶다.

  • 미술교실 참여자로, 중년 여성 두 명이 각자 물감과 싸인펜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미술 교실 참여자들

  • 미술교실 참여자들의 자화상 네 점.

    참여자들의 자화상

탐라는 하모니 Harmony

신상화 | 2022.12.14. ~ 12.30. | 갤러리 감저

제주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 창작자 14명이 제주의 자연과 연결된 일상 및 추억을 23개의 이야기에 담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2022년 3월부터 약 10개월간 신상화 예술강사가 진행한 ‘성인 장애인 미술 교실’에서 창작한 150여 점의 그림을 모은 특별기획전이다.

▸ 전시정보(링크)
▸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홈페이지(링크)

신상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다가 마흔 즈음에 사람의 본질에 눈을 뜨게 되었다. 공예가이자 문화예술교육가로서 장애인 미술 분야에서 항해하고 있다. 사공이 아닌 노(櫓)가 되어.
lumber0612@naver.com

사진 제공. 필자

2023년 3월 (40호)

상세내용

리뷰

  • 제주도의 하늘과 돌담, 꽃과 나무들이 그려진 다양하고 아담한 크기의 수십 개 캔버스가 벽에 걸려 있다.

우리, 그림은 처음이에요

복지기관 예술강사 7년 차. 2022년도에는 제주도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성인 장애인 미술 교실’이라는 타이틀로 10여 명의 참여자와 함께 미술 활동을 진행했다. 35주 동안 결과물에 치중하지 않고 자신의 일상과 삶을 표현하고 풀어내는 의미 있는 경험을 함께 만들어가는 미술 활동이 시작되었다.

7년째 수업을 이끌고 있지만, 참여자를 만나는 첫날에는 늘 설렘과 부끄러움이 동반된다. 아직 코로나가 끝나지 않은 쌀쌀한 어느 봄날, 우리는 커다란 강당에서 긴 책상을 하나씩 차지하고 앉았다. 강사와 보조강사, 기관 담당자, 참여자 모두 초면인 탓에 넓은 공간은 썰렁했고 어색함이 넘쳐났다. 준비해온 수십 장의 A4용지를 나눠주며 청했다. “이름과 나이를 적어볼까요? 나이는 마음의 나이로 적어주세요” 참여자들은 뚝딱 적어냈다. “이번에는 이름 옆에 좋아하는 것도 그려보세요” 몇십 초 동안 정적이 흘렀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더라?’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지며 난감해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우리들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조금 좁은 방으로 장소를 옮겼다. 빈틈이 없는 공간이 주는 결속력이 있다. 옆 사람의 체온을 느끼고 앞사람의 표정 주름도 살필 수 있는 그 거리에서는 ‘나’보다는 ‘우리’라는 단어가 잘 떠올려지기 때문이다. 참여자 대부분 그림이 처음이라고 해서 덧칠하기 쉬운 아크릴 물감을 주로 사용하였고, 제주의 삶을 그린 이중섭 화가와 이왈종 화가의 그림을 주제로 삼아 자신만의 감성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채색 순서를 정해주긴 했지만, 그림을 처음 접한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탄생했다.

나의 삶, 나의 바다

우리는 이중섭 화가의 <나뭇잎을 따려는 여자>와 <나뭇잎을 따주는 남자>의 여자와 남자가 돼보기로 했다. 자연의 일부인 나를 표현하는 것이니 옷을 절대 그리지 말자는 규칙에 몇몇 참여자는 수줍어했다. 한 참여자는 여인을 그렸고 제목을 <환희>라고 지었다. 나는 짓궂게도 “환희가 무슨 뜻이죠?”라고 물었고, 그는 “저에게도 환희의 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라고 답했다. 더는 대화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희로애락이 모두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복지관에 그림을 그리러 오기 전에 단톡방에서 그림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구스타프 클림트 화가의 작품 <키스> 모사에 도전해보기로 하고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키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겠다고 공지했다. 잔뜩 기대했으나 막상 수업 때는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어색한 웃음만 지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다음부터인데, 완성된 그림 속 여인의 표정을 보니 말로는 부족한 깊은 감정의 표현이 있었다. “뿅 갔네!”라며 모두 크게 웃었다.

클림트의 <키스>를 따라 그리는 중에 다음에는 그의 다른 작품인 <헬레나의 초상>을 같이 감상하고 자화상을 그려보자며 일부러 말을 흘렸다. 흰색과 크림색이 섞여서 순수하고 안정적이며 평온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헬레나의 초상>은 구성이나 채색도 매우 단순하게 보이기에 참여자들은 “오, 좋아요~”라며 긍정의 반응을 보였다. 핸드폰 카메라 앱을 사용해서 날씬하고 예쁘게 시술(?)하여 셀카를 찍는데, 마스크를 벗은 모습이 참 예뻤다. 한 차례 미화된 사진을 캔버스에 옮기면서 더 예쁘게 그려보자고 했다. 이번 기회에 아예 아름다웠던 시절로 돌아가자며 즐겁게 자화상을 그렸다. 그림 속에서는 평소에 해보지 못했던 머리핀도 꽂고, 한 번도 길러보지 못한 머리카락은 모카커피 색으로 염색하고 아름답게 늘어뜨렸다. 레이스가 달린 옷도 입고 진주 귀걸이도 했다. 청일점인 이민철 씨는 특유의 박력 있는 붓질로 남성미 넘치는 너무나 멋있는 모습을 그려냈다. 서로 다른 이의 자화상이 더 멋있게 나왔다고 칭찬하면서도 저마다 시선은 자신의 그림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사는 모습을 그리려다 보니 바다가 계속 등장했다. 포구를 그리니 남쪽 바다가 넘실대고, 제주도의 유명한 조랑말 등대는 북쪽 바다에 있으니 말이다. 유채꽃밭을 그려보자 하니 바다 위 우뚝 솟은 산방산이 묵직하게 자리 잡고 해녀는 깊고 푸른 바다를 가르며 헤엄치고 있었다. 일렁이는 파도와 깊고 푸른 바닷속이 왠지 우리의 삶 같아서 울컥했다. 바라보기에 멋지지만 다가가기 힘든 바다….

여러분, 전시 한번 할까요?

35회차의 프로그램이 끝나갈 무렵, “이렇게 열정 넘치는 팀은 처음이에요. 여러분, 갤러리에서 전시 한번 할까요?”라고 물었다. 모두 좋아하셨다. “그럼요. 선생님이 하자고 하면 하는 거죠~”라고 화답하시는데 속으로는 조금 겁이 났다. ‘혼자서 전시기획이라니…. 이제 진짜 고생하겠다’와 ‘어떻게든 되겠지’가 교차하며 마음이 무거워졌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지키기 위해 달려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작은 갤러리를 연말에 사용할 수 있도록 미리 대관해놓아 장소의 문제는 없었지만, 비용 마련, 홍보, 설치, 오프닝까지 혼자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꽤 컸다. 하지만 참여자들의 남다르고 뜨거운 열정이 에너지가 되어 나를 움직였다. 작품도 최대한 걸어보자며 150여 점을 촬영하고 편집했다. 이틀 밤을 새워 직접 디자인한 브로슈어의 인쇄 주문 버튼을 누르는 순간 쾌감이 대단했다. 제일 걱정되었던 설치는 복지관 미술 교실 담당 선생님이 늦은 밤까지 헌신적으로 도와주셔서 해낼 수 있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두 명의 참여자에게 전시 속의 전시 콘셉트로 개인전 부스를 만들어 드렸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복지관에 나오지 않아도 창작활동을 지속할 만하고 현재 10점 이상의 작품을 가지고 있는 분으로 뽑았다. 깔끔하고 현대적인 색채감각을 지닌 윤석경 씨는 제주의 돌담을 그리는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석경 씨의 돌담은 볼을 비빌 수 있을 것처럼 따듯하다. 독창적인 화법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민철 씨는 뇌성마비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그림 그리는 일이 상상 이상으로 체력 소모가 클 텐데, 참 잘 그린다. 그는 그림 그리는 일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장애 유무를 떠나 누구에게나 첫 전시회를 여는 것은 매우 어렵고 엄두가 나지 않는 일이다. 예전에 나도 그랬기에 이번 전시가 참여자들께 원동력이 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탐라는 하모니

나는 전시회를 영화 상영에 비유하곤 한다. 영화를 만들고 상영하면 대중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즐기고 비평한다. 하지만 미술 전시회는 여전히 관심 집단에 한정 지어 특별한 것으로 치부하면서 ‘왜 전시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우리에게 미술 전시회는 시각적 표현을 통해 영화처럼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고, 특히 함께 모여 연말에 여는 전시는 즐거운 파티다. 특별한 전시 《탐라는 하모니》는 장소도 특별했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에 자리한 옛 고구마 공장의 정취가 그대로 남아 있는 ’갤러리 감저‘에서 진행되었다. 감저는 제주말로 고구마를 뜻한다. 오프닝에서 따듯한 차와 달콤한 디저트로 여유를 즐기니 마음으로 행복이 느껴졌다.

학교, 복지관, 평생교육시설 할 것 없이 12월에서 3월 초에는 문화예술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예산을 편성하고 한 해 계획을 세우는 시기여서 그럴 테지만, 그래서 특히 장애인들은 이 시기가 몸도 춥고 마음도 춥다. 복지관 밖으로 나가 멋진 갤러리에서 전시를 연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미술 교실 참여자에게는 그 특별하고 뜨거웠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마음속에 따듯한 여운이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다시 봄이 되면 그들의 열정의 온도를 조금씩 올려보고 싶다.

  • 미술교실 참여자로, 중년 여성 두 명이 각자 물감과 싸인펜으로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미술 교실 참여자들

  • 미술교실 참여자들의 자화상 네 점.

    참여자들의 자화상

탐라는 하모니 Harmony

신상화 | 2022.12.14. ~ 12.30. | 갤러리 감저

제주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을 이용하는 장애인 창작자 14명이 제주의 자연과 연결된 일상 및 추억을 23개의 이야기에 담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냈다. 2022년 3월부터 약 10개월간 신상화 예술강사가 진행한 ‘성인 장애인 미술 교실’에서 창작한 150여 점의 그림을 모은 특별기획전이다.

▸ 전시정보(링크)
▸ 탐라장애인종합복지관 홈페이지(링크)

신상화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찾아 헤매다가 마흔 즈음에 사람의 본질에 눈을 뜨게 되었다. 공예가이자 문화예술교육가로서 장애인 미술 분야에서 항해하고 있다. 사공이 아닌 노(櫓)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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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필자

2023년 3월 (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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