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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중심 예술노동자 23인 작품전 《2023 聯:연을 잇-다》

리뷰 서로를 허용하고 잇는 창작, 예술노동

  • 김선희 미술치료사
  • 등록일 2023-07-26
  • 조회수807

리뷰

무용과 허용의 경험

“넌 아직도 그림을 그려?”라는 회사원 대학 동기의 말. “이제 회사에 다니고 그런 건 놓으면 안 되겠니?”라는 부모의 말. 한국 사회에서 4년제 대학 교육과정까지 착실히 밟아온 내가 대학 졸업 후에도 그림을 그리는 일은 치열한 경쟁이 어울리는 청년세대가 하기에는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느긋하고 무용한 일로 보였던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짧은 회사생활 이후에 나는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예술단체에서 창작자들이 모여 자기 작업을 이어가는 공동작업실 운영을 담당했다. 어느 날, 고요한 미소를 머금고 작업을 이어가던 한 창작자가 자기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라고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던 그 창작자와 마주 앉아 두 시간 넘도록 창작자들이 사용하는 색연필을 깎았다. 휴지 한 장을 깔고, 그 위에서 커터 칼로 색연필의 나무 한 겹 한 겹을 느리게 깎았다. 촘촘한 결을 만들며 색연필로 곱게 색칠하던 창작자와 느리게 색연필을 깎는 나의 속도가 닮았다고 느꼈다. 두세 시간이 지나도록 ‘너 아직도 색연필 깎아?’라거나 ‘연필깎이를 쓰지 그래?’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속도로 해도 괜찮았다. 나의 하루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이 공동체가 나를 허용하고 품어준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2023 聯:연을 잇-다》 전시에서는 23명의 중증 발달장애 청년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통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예술노동’을 소개한다. 전시에 참여한 예술노동자들의 공동체에서도 내가 경험한 허용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무용을 노동으로 연결하는 일

이번 전시는 ‘경기도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통해 ‘예술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노동자’들의 창작물과 창작과정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여기에서 ‘예술노동’은 언어적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타인과 세상과 단절된 많은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온 발달장애 창작자들의 창작활동 자체, 장애인이기 이전에 자신의 즐거움과 권리를 추구하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삶의 표현 자체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예술노동자’들은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에서 운영하는 공공일자리인 ‘창작스튜디오 틈’에서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들은 이윤 창출 대신 장애인의 권리를 창출하는 주체자이며 공공의 가치를 생산하는 예술노동자임을 전시를 통해 선언한다.

전시는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일부 작품들은 작품캡션에 안내된 QR코드를 통해 NFT 마켓플레이스에 접근할 수 있었고 오프라인 판매와 NFT 판매가 함께 진행되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해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정은혜 작가도 예술노동자 중 한 명이다. 지하 1층에 전시된 작가의 대표 작업 ‘니얼굴’ 연작을 통해 주변인과 세상의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작가와 함께 드라마에 출연한 한지민, 김우빈 배우의 얼굴을 담은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지상 1층부터 3층까지는 예술노동자 22명의 그림을 통해 각자가 몰두하는 관심사는 무엇이고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며 예술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장 1층에는 이 작가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A4용지와 8절 도화지에 그린 그림을 바닥부터 서 있는 관람객의 키를 훌쩍 넘어가는 높이까지 주욱 이어 배치하고, 액자 없이 낱장으로 연속하여 벽에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것은 내게 작가들이 예술노동자로 출근해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일상의 반복과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 강석준 작가의 사라져가는 멸종위기 동물을 선명하게 그리는 ‘일’
  • 김나연 작가의 동그란 눈의 고양이와 강아지를 그리는 ‘일’
  • 김진국 작가의 무수한 선을 그려 흔적으로 표현하는 ‘일’
  • 김혜자현 작가의 도화지 화면을 비정형으로 잘게 쪼개어 그리는 ‘일’
  • 박지연 작가의 커다랗고 둥근 해바라기를 그리는 ‘일’
  • 선나연 작가의 언젠가 만났던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그리는 ‘일’
  • 이찬우 작가의 세상의 논쟁거리에 자신의 유머를 담아 질문을 던지는 ‘일’
  • 피주헌 작가의 자신만의 색감으로 좋아하는 인물을 그리고 일상을 기록하는 ‘일’

이처럼 예술노동자들은 매일매일 자기 일에 몰입한다. 그렇다면 전시를 볼 때 작가들의 ‘몰입’에 조금 더 다가가 보자. 작품의 작업과정과 몰입을 따라가기 위해 상상하는 시간을 들여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이를테면 전시된 김진국 작가의 작업은 주로 오일파스텔과 마카를 사용한 선 긋기, 마스킹 테이프 찢어 붙이기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벽면의 한 공간을 채운 서른다섯 장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살펴본 후, 손 근육의 움직임으로 표현된 흔적 앞에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상상 속의 나는 한 손으로 오일파스텔을 잡고 도화지에 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천천히 손에 힘을 준다. 잠시 힘을 뺐다가 다시 힘을 주어 오일파스텔을 꽉 잡는다. 나는 얼마만큼의 힘을 주어야 할까.

이제 선을 긋기 시작한다. 느리게 그려보기도 하고 빠르게 그려보기도 한다. 선을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 손이 떨리는 순간이 온다. 손이 움직이는 쪽으로 몸의 중심이 따라간다. 몸의 중심은 이동할지라도 손끝에 초점을 맞춘 감각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선을 긋던 방향을 직각으로 틀어 이어 그린다. 반복한다. 선은 그렇게 사각형이 되고 사각형 위로 또 다른 사각형이 겹쳐지며 사각형이 모여 무더기가 된다. 무수한 선과 선의 반복으로 채워진 화면은 매우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표현들로 다가온다. 그렇게 표현 과정을 상상하며 따라가다 보면 나는 작가에게 감각적으로 동화되어 작가가 몰입한 시간에 공감하게 된다.

몰입. 이 그림을 하루 4시간 동안 그리면, 하루 4시간씩 주5일 동안 그리면 몇 장을 그릴 수 있을까? 공공일자리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계산하기 이전에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작가들은 매일 매일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에 충실하다. 전시장에서 작가들의 그림을 같이 그리는 상상을 해보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진실하게 아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자신의 존재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존재로 또다시 선다.

3층 전시실에서는 작가들의 예술노동 활동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작가들이 창작스튜디오 틈에 모여 함께 작업하고, 예술마켓에 처음 참여해보고, 거리행진을 하며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담겨있다. 전시된 평면의 그림만으로는 다 알지 못했던, 이 그림들이 그려지며 쌓이는 동안 권리중심 예술노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작가들 일상의 면면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예술노동’은 취미예술 향유의 관점이나 문화예술 복지 프로그램 참여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삶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적 활동을 하고, 사회가 노동시장에서 배제한 자신과 서로를 잇고 수용하며 품어주는 가치 실현을 세상이 볼 수 있는 예술이라는 언어로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들은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행진하며 함께 외친다. “이것도 노동이다. 예술도 노동이다”라고.

  • 천장부터 바닥까지, 벽면에 사람 그림 가계도가 층을 이뤄 삼각형 모양으로 붙어 있고, 그림 중앙에는 모니터에서 그림을 하나씩 보여준다. 그림 앞에는 그간의 작업물이 쌓여 있다.
  • 벽면의 한 공간을 채운 김진국 작가의 그림. 오일파스텔과 마카를 사용한 선 긋기, 마스킹 테이프 찢어 붙이기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정은혜 작가가 자소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벽면에는 기획의도가 적혀 있다: “지역사회 장애인식 개선 문화예술 캠페인 ‘예술도 노동’ 나 호롤 집에 NO! 여기서 예술로 노동한다!”
  • 전시장 전경. 벽면에 가득 작가들의 그림이 가득 붙어 있고, 그림 중앙에 있는 모니터에서 그림을 하나씩 보여준다.

《2023 聯:연을 잇-다》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엔버갤러리|2023.5.30. ~ 7.2.|엔버갤러리

양평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예술노동자 23인의 작품전. 발달장애인, 온전한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해 무용한 존재가 된 그들이 세상과 연을 이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표현한 전시로,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과 표현을 담아 이야기를 전달한다.

- 전시정보 바로가기

김선희

‘써니의 방’ 운영자. 개인적 상실 경험과 애도 과정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창작자이며, 미술교육과 미술치료를 병행하여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 비영리예술단체 로사이드 운영진으로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공동창작 작업실을 담당했다.
sunnykim220@naver.com
▸블로그 써니의 방
▸인스타그램 @sunnys_roooom

사진 제공.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 필자(썸네일, 상단 왼쪽)

2023년 8월 (44호)

상세내용

리뷰

무용과 허용의 경험

“넌 아직도 그림을 그려?”라는 회사원 대학 동기의 말. “이제 회사에 다니고 그런 건 놓으면 안 되겠니?”라는 부모의 말. 한국 사회에서 4년제 대학 교육과정까지 착실히 밟아온 내가 대학 졸업 후에도 그림을 그리는 일은 치열한 경쟁이 어울리는 청년세대가 하기에는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느긋하고 무용한 일로 보였던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짧은 회사생활 이후에 나는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예술단체에서 창작자들이 모여 자기 작업을 이어가는 공동작업실 운영을 담당했다. 어느 날, 고요한 미소를 머금고 작업을 이어가던 한 창작자가 자기 그림을 가까이에서 보라고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림을 그리던 그 창작자와 마주 앉아 두 시간 넘도록 창작자들이 사용하는 색연필을 깎았다. 휴지 한 장을 깔고, 그 위에서 커터 칼로 색연필의 나무 한 겹 한 겹을 느리게 깎았다. 촘촘한 결을 만들며 색연필로 곱게 색칠하던 창작자와 느리게 색연필을 깎는 나의 속도가 닮았다고 느꼈다. 두세 시간이 지나도록 ‘너 아직도 색연필 깎아?’라거나 ‘연필깎이를 쓰지 그래?’라고 말하는 이는 없었다. 무엇을, 어떻게, 어떤 속도로 해도 괜찮았다. 나의 하루를 내가 선택할 수 있도록 이 공동체가 나를 허용하고 품어준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2023 聯:연을 잇-다》 전시에서는 23명의 중증 발달장애 청년작가들이 창작활동을 통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고 사회에 어떤 가치를 말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예술노동’을 소개한다. 전시에 참여한 예술노동자들의 공동체에서도 내가 경험한 허용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궁금증을 가지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무용을 노동으로 연결하는 일

이번 전시는 ‘경기도 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사업을 통해 ‘예술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예술노동자’들의 창작물과 창작과정을 보여주는 자리이다. 여기에서 ‘예술노동’은 언어적 소통에 어려움이 있어 타인과 세상과 단절된 많은 시간 동안 그림을 그려온 발달장애 창작자들의 창작활동 자체, 장애인이기 이전에 자신의 즐거움과 권리를 추구하는 존재로서 살아가는 삶의 표현 자체이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 ‘예술노동자’들은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에서 운영하는 공공일자리인 ‘창작스튜디오 틈’에서 자신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작가들은 이윤 창출 대신 장애인의 권리를 창출하는 주체자이며 공공의 가치를 생산하는 예술노동자임을 전시를 통해 선언한다.

전시는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이어져 있었다. 일부 작품들은 작품캡션에 안내된 QR코드를 통해 NFT 마켓플레이스에 접근할 수 있었고 오프라인 판매와 NFT 판매가 함께 진행되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출연해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정은혜 작가도 예술노동자 중 한 명이다. 지하 1층에 전시된 작가의 대표 작업 ‘니얼굴’ 연작을 통해 주변인과 세상의 존재를 바라보는 작가의 다정한 시선을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작가와 함께 드라마에 출연한 한지민, 김우빈 배우의 얼굴을 담은 작품도 전시되어 있었다.

지상 1층부터 3층까지는 예술노동자 22명의 그림을 통해 각자가 몰두하는 관심사는 무엇이고 권리중심 공공일자리에서 어떤 그림을 그리며 예술노동을 하고 있는지를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장 1층에는 이 작가들이 일상적으로 많이 사용하는 A4용지와 8절 도화지에 그린 그림을 바닥부터 서 있는 관람객의 키를 훌쩍 넘어가는 높이까지 주욱 이어 배치하고, 액자 없이 낱장으로 연속하여 벽에 붙여놓은 것이 눈에 띄었다. 이것은 내게 작가들이 예술노동자로 출근해서 자기 일을 충실히 해나가는 일상의 반복과 켜켜이 쌓여가는 시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다가왔다.

  • 강석준 작가의 사라져가는 멸종위기 동물을 선명하게 그리는 ‘일’
  • 김나연 작가의 동그란 눈의 고양이와 강아지를 그리는 ‘일’
  • 김진국 작가의 무수한 선을 그려 흔적으로 표현하는 ‘일’
  • 김혜자현 작가의 도화지 화면을 비정형으로 잘게 쪼개어 그리는 ‘일’
  • 박지연 작가의 커다랗고 둥근 해바라기를 그리는 ‘일’
  • 선나연 작가의 언젠가 만났던 사람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고 그리는 ‘일’
  • 이찬우 작가의 세상의 논쟁거리에 자신의 유머를 담아 질문을 던지는 ‘일’
  • 피주헌 작가의 자신만의 색감으로 좋아하는 인물을 그리고 일상을 기록하는 ‘일’

이처럼 예술노동자들은 매일매일 자기 일에 몰입한다. 그렇다면 전시를 볼 때 작가들의 ‘몰입’에 조금 더 다가가 보자. 작품의 작업과정과 몰입을 따라가기 위해 상상하는 시간을 들여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이를테면 전시된 김진국 작가의 작업은 주로 오일파스텔과 마카를 사용한 선 긋기, 마스킹 테이프 찢어 붙이기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는 벽면의 한 공간을 채운 서른다섯 장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살펴본 후, 손 근육의 움직임으로 표현된 흔적 앞에서 상상의 세계로 들어간다. 상상 속의 나는 한 손으로 오일파스텔을 잡고 도화지에 선을 그리기 시작한다. 천천히 손에 힘을 준다. 잠시 힘을 뺐다가 다시 힘을 주어 오일파스텔을 꽉 잡는다. 나는 얼마만큼의 힘을 주어야 할까.

이제 선을 긋기 시작한다. 느리게 그려보기도 하고 빠르게 그려보기도 한다. 선을 그리고 또 그리다 보면 어느 시점에 손이 떨리는 순간이 온다. 손이 움직이는 쪽으로 몸의 중심이 따라간다. 몸의 중심은 이동할지라도 손끝에 초점을 맞춘 감각은 흐트러지지 않는다. 선을 긋던 방향을 직각으로 틀어 이어 그린다. 반복한다. 선은 그렇게 사각형이 되고 사각형 위로 또 다른 사각형이 겹쳐지며 사각형이 모여 무더기가 된다. 무수한 선과 선의 반복으로 채워진 화면은 매우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표현들로 다가온다. 그렇게 표현 과정을 상상하며 따라가다 보면 나는 작가에게 감각적으로 동화되어 작가가 몰입한 시간에 공감하게 된다.

몰입. 이 그림을 하루 4시간 동안 그리면, 하루 4시간씩 주5일 동안 그리면 몇 장을 그릴 수 있을까? 공공일자리에서 어떠한 결과가 나올지 계산하기 이전에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작가들은 매일 매일을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에 충실하다. 전시장에서 작가들의 그림을 같이 그리는 상상을 해보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진실하게 아는 사람들을 마주한다. 자신의 존재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존재로 또다시 선다.

3층 전시실에서는 작가들의 예술노동 활동을 담은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작가들이 창작스튜디오 틈에 모여 함께 작업하고, 예술마켓에 처음 참여해보고, 거리행진을 하며 권리를 위해 목소리를 내는 모습이 담겨있다. 전시된 평면의 그림만으로는 다 알지 못했던, 이 그림들이 그려지며 쌓이는 동안 권리중심 예술노동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작가들 일상의 면면을 잘 보여준다.

이들의 ‘예술노동’은 취미예술 향유의 관점이나 문화예술 복지 프로그램 참여 차원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들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삶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주체적 활동을 하고, 사회가 노동시장에서 배제한 자신과 서로를 잇고 수용하며 품어주는 가치 실현을 세상이 볼 수 있는 예술이라는 언어로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들은 노래하고, 그림 그리고, 행진하며 함께 외친다. “이것도 노동이다. 예술도 노동이다”라고.

  • 천장부터 바닥까지, 벽면에 사람 그림 가계도가 층을 이뤄 삼각형 모양으로 붙어 있고, 그림 중앙에는 모니터에서 그림을 하나씩 보여준다. 그림 앞에는 그간의 작업물이 쌓여 있다.
  • 벽면의 한 공간을 채운 김진국 작가의 그림. 오일파스텔과 마카를 사용한 선 긋기, 마스킹 테이프 찢어 붙이기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
  • 정은혜 작가가 자소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벽면에는 기획의도가 적혀 있다: “지역사회 장애인식 개선 문화예술 캠페인 ‘예술도 노동’ 나 호롤 집에 NO! 여기서 예술로 노동한다!”
  • 전시장 전경. 벽면에 가득 작가들의 그림이 가득 붙어 있고, 그림 중앙에 있는 모니터에서 그림을 하나씩 보여준다.

《2023 聯:연을 잇-다》

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엔버갤러리|2023.5.30. ~ 7.2.|엔버갤러리

양평권리중심 중증장애인맞춤형 공공일자리 예술노동자 23인의 작품전. 발달장애인, 온전한 존재로서 인정받지 못해 무용한 존재가 된 그들이 세상과 연을 이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표현한 전시로,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시각과 표현을 담아 이야기를 전달한다.

- 전시정보 바로가기

김선희

‘써니의 방’ 운영자. 개인적 상실 경험과 애도 과정을 그림으로 기록하는 창작자이며, 미술교육과 미술치료를 병행하여 정서적 지지가 필요한 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린다. 비영리예술단체 로사이드 운영진으로 발달장애인, 정신장애인 창작자들과 함께하는 공동창작 작업실을 담당했다.
sunnykim220@naver.com
▸블로그 써니의 방
▸인스타그램 @sunnys_roooom

사진 제공.경기장애인부모연대 양평지부, 필자(썸네일, 상단 왼쪽)

2023년 8월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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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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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3 11: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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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노동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되네요. 우리사회의 노동계의 안타까운 현실을 예술로 승화하는 활동에 적극 공감합니다. 삶이 노동이며 삶이 예술임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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