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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모니아>를 통해 살펴본 장애‧비장애 무용수 협업

트렌드 몸, 다른 몸, 다르지만 같은 몸을 탐구하기

  • 송영원 언유주얼 심프톰즈 무용수
  • 등록일 2023-07-26
  • 조회수592

트렌드

2022년 2월 <하모니아(Harmonia)>라는 작품이 독일 브레멘극장에서 초연됐다. 내가 속해 있는 브레멘극장 상주 무용단인 언유주얼 심프톰즈(Unusual Symptoms)와 헝가리 출신 안무가 에이드리안 호드(Adrienn Hód)의 두 번째 협업이기도 한 <하모니아>는 언유주얼 심프톰즈뿐만 아니라 나의 첫 장애·비장애 무용수 협업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2022년 9월 탄츠메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여러 인종과 국적으로 이루어진 언유주얼 심프톰즈와 쿠바, 벨기에, 영국, 독일 등에서 모인 장애 무용수들이 2개월 넘는 시간 동안 만들어 낸 하모니였다.

언유주얼 심프톰즈는 한 시즌에 세 작품을 만드는데, 그중 한 작품은 브레멘극장 상주 안무가인 사미르 아키카(Samir Akika)가 만들고, 다른 두 작품은 외부에서 초대한 게스트 안무가의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게스트 안무가의 경우 대개 뮤지션부터 무대 디자이너, 드라마트루기, 어시스턴트까지 팀을 꾸려서 오고, 10~12주 정도의 연습 기간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나는 2018년 8월 무용단에 입단한 이래 쭉 반복해서 경험해왔던 패턴이다 보니, 매번 다른 안무가의 안무 방식이나 스타일, 객원 무용수들과의 새로운 역동성에 적응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해나가는 것에 익숙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하모니아>는 지금까지 해 온 작업과는 또 다르게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걱정과 두려움 속 첫 만남

극장 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연습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휠체어 또는 보행을 보조하는 기구들을 메인 연습이 진행되는 4층 연습실까지 가져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극장 곳곳에 목재로 된 경사로와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해야 했다. 이 공간에서는 다양한 공연 연습뿐만 아니라 작은 행사도 이루어졌었고, 몇 년 전부터는 때때로 공연 전에 관객에게 제공되는 무용작품 해설(Physical Prologue)도 진행되곤 했다. 그래서 이 공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올 방법이 없고, 또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장애인 무용수들과 협업해본 경험이 없는 비장애인만으로 구성된 무용단이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이 작업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안무가 에이드리안 호드, 그녀의 어시스턴트 차바 몰나(Csaba Molnár), 드라마트루기 아르민 사보 세켈리(Ármin Szabó-Székely), 그리고 언유주얼 심프톰즈의 공동 예술감독 알렉산드라 모랄레스(Alexandra Morales), 그레고 룽에(Gregor Runge)는 함께 장애·비장애 그룹 작업에 경험이 있는 감독과 정기적인 미팅을 가지면서 교육을 받고 조언도 구하면서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무용수들에게도 필요하면 워크숍이나 도움이 될 만한 다큐멘터리를 추천하고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들이 꽤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늘 해왔던 다른 작업이나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하나의 새 작업일 뿐인데 왜 이렇게 준비 과정도 길고, 말도 많고, 걱정도 많은지. 작품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사기가 꺾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시도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시작 전까지 가능하면 최대한 먼 거리를 유지하며 대단한 준비 없이 그렇게 연습 첫날을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하모니아>는 팬데믹 이후 무용수들 간에 거리두기 없이 진행된 첫 작업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특별했다. 무용수들 모두 접촉하고 제한을 두지 않는 것에 동의한 후 첫 연습이 시작됐다.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눈을 감고 파트너와의 거리와 촉감, 서로의 몸에 관한 탐구라는 주제로 긴 즉흥을 했다. 팬데믹의 여파로 작업이 1년가량 연기되면서 길어졌던 기다림, 아직 어색한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긴장감, 기대감, 반가움, 호기심 같은 감정이 감은 눈 대신 촉감으로, 떨리는 호흡과 부드러운 리드로 이어져 이제 막 만난 사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와 내 파트너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있던 다른 무용수들 역시 하나로 연결돼서 호흡하고 공존하는 것을 느끼면서 비로소 준비 과정에서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안도할 수 있었다.

움직이고 시도하며 찾아가기

11주 정도의 작업 동안 많은 과제가 있었는데,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과제에서 안무가는 의도적으로 늘 장애·비장애 무용수가 짝을 짓도록 했다. 장애인 무용수 6명, 비장애인 무용수 5명으로 작지 않은 규모였고 객원 무용수들끼리도 전혀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며 더욱 안전한 공간을 함께 만드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안무가는 꽤 심플한 과제로 한두 시간씩 긴 즉흥을 하곤 했는데, 오랜 시간 단순한 과제와 몸에만 집중해서 움직이고 시도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뭔가 결과물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좀 더 솔직하고 신선한 움직임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 작품 주제의 첫 시작점이 ‘다른 몸’이었던 만큼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몸, 다른 몸, 다르지만 같은 몸, 같지만 다른 몸에 집중해 움직임을 탐구하고 함께 움직임을 찾아가는 과정은 상상 그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다리에 감각이 없는 동료가 춤을 출 때 하는 상상, 소아마비가 있는 동료가 겪는 근육의 수축과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 등 내가 알지 못했던 몸이 가질 수 있는 어려움이나 특징을 동료들을 통해 배웠다. 내 몸의 중심이 내가 느끼는 중심이 아니라면? 내 머리가 70kg이라면? 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3배 더 길고 굵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걷고 움직일까? 팔이 없이 나는 어떻게 물병을 들어 올리고 바닥에서 일어날까? 내가 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움직임들이 가진 논리가 달라진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퀄리티를 찾아 나가는 방식은 작업 내내 무수한 영감을 주었다.

구분이 사라지고 선명해질 때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장애가 있는 무용수들이 움직이면서 전달하는 무수한 메시지와 감정, 그들이 무대에 서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주는 의미 같은 것들이 그대로 녹아내린 춤을 매 순간 진심으로 대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과연 비장애인의 몸으로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사회에서 매일 편안하게 살아가는 내가 추는 춤은 과연 이 작업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나의 역할을 찾는 데 어려움을 주었다. 작품 진행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몸, 각자의 몸이 가진 다양한 능력과 어려움을 활용하고 또 거기에서 영감받아 작품을 만들어가는 연습 방식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 사이에도 꽤 컸던 장애·비장애 구분이 사라지고 10명의 다른 몸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자신감을 되찾고 작품에 더 큰 흥미를 느끼며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연습을 진행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당연하게 느껴졌던 연습 중간중간 갖는 15분의 휴식, 여유롭게 느껴졌던 60분의 점심시간은 누군가에겐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기도 하고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 5일, 매일매일 8시간씩의 육체노동이 익숙하지 않은 동료들을 배려해 일찍 마치는 날들도 때때로 있었고, 멤버들의 컨디션을 고려해 연습 중 특정 파트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방법도 터득해 가면서 연습 기간이 하루라도 짧아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굴었던 지난날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하모니아>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대하는 내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전에는 기교적인 면에서 댄서로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퀄리티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면, 지금은 작품에서 내 역할에 대해 질문하고 내가 가장 잘 서포트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지, 작품의 의미나 흥미로운 점이 뭘까 계속 질문해가면서 나 스스로 작품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접근 방식이 생겼다. 춤으로 장애 예술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장애예술 작업을 하면서,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을 때 과연 내가 하는 예술이 해결할 수 있는 어려움은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며 경험했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애예술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 또는 이슈를 연습실과 무대로 가져와서 무지함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춤으로 전달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

  • 무대에서 장애·비장애 무용수가 짝을 지어 마주보고 서서 접촉 즉흥을 하고 있다.
  • 장애·비장애 무용수가 무대를 가로질러 한 줄로 서서 자유롭게 각자의 움직임을 하고 있다.

<하모니아> 공연 장면
Ⓒ요르그 란츠베르그(Jörg Landsberg)

송영원

무용수, 독일 브레멘극장 언유주얼 심프톰즈 단원(Theater Bremen, Unusual Symptoms)
contact.youngwonsong@gmail.com

사진 제공.언유주얼 심프톰즈

2023년 8월 (44호)

상세내용

트렌드

2022년 2월 <하모니아(Harmonia)>라는 작품이 독일 브레멘극장에서 초연됐다. 내가 속해 있는 브레멘극장 상주 무용단인 언유주얼 심프톰즈(Unusual Symptoms)와 헝가리 출신 안무가 에이드리안 호드(Adrienn Hód)의 두 번째 협업이기도 한 <하모니아>는 언유주얼 심프톰즈뿐만 아니라 나의 첫 장애·비장애 무용수 협업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은 2022년 9월 탄츠메세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여러 인종과 국적으로 이루어진 언유주얼 심프톰즈와 쿠바, 벨기에, 영국, 독일 등에서 모인 장애 무용수들이 2개월 넘는 시간 동안 만들어 낸 하모니였다.

언유주얼 심프톰즈는 한 시즌에 세 작품을 만드는데, 그중 한 작품은 브레멘극장 상주 안무가인 사미르 아키카(Samir Akika)가 만들고, 다른 두 작품은 외부에서 초대한 게스트 안무가의 작업으로 이루어진다. 게스트 안무가의 경우 대개 뮤지션부터 무대 디자이너, 드라마트루기, 어시스턴트까지 팀을 꾸려서 오고, 10~12주 정도의 연습 기간을 거쳐 작품을 완성한다. 나는 2018년 8월 무용단에 입단한 이래 쭉 반복해서 경험해왔던 패턴이다 보니, 매번 다른 안무가의 안무 방식이나 스타일, 객원 무용수들과의 새로운 역동성에 적응하고 새로운 환경에서 작업해나가는 것에 익숙하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하모니아>는 지금까지 해 온 작업과는 또 다르게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걱정과 두려움 속 첫 만남

극장 관계자들은 가장 먼저 연습을 준비하는 단계에서 휠체어 또는 보행을 보조하는 기구들을 메인 연습이 진행되는 4층 연습실까지 가져갈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극장 곳곳에 목재로 된 경사로와 휠체어 리프트를 설치해야 했다. 이 공간에서는 다양한 공연 연습뿐만 아니라 작은 행사도 이루어졌었고, 몇 년 전부터는 때때로 공연 전에 관객에게 제공되는 무용작품 해설(Physical Prologue)도 진행되곤 했다. 그래서 이 공간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사람이 올 방법이 없고, 또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준비되지 않은 곳에서, 장애인 무용수들과 협업해본 경험이 없는 비장애인만으로 구성된 무용단이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이 작업이 두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안무가 에이드리안 호드, 그녀의 어시스턴트 차바 몰나(Csaba Molnár), 드라마트루기 아르민 사보 세켈리(Ármin Szabó-Székely), 그리고 언유주얼 심프톰즈의 공동 예술감독 알렉산드라 모랄레스(Alexandra Morales), 그레고 룽에(Gregor Runge)는 함께 장애·비장애 그룹 작업에 경험이 있는 감독과 정기적인 미팅을 가지면서 교육을 받고 조언도 구하면서 나름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물론 무용수들에게도 필요하면 워크숍이나 도움이 될 만한 다큐멘터리를 추천하고 제공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과정들이 꽤 유난스럽게 느껴졌다. 어쩌면 늘 해왔던 다른 작업이나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하나의 새 작업일 뿐인데 왜 이렇게 준비 과정도 길고, 말도 많고, 걱정도 많은지. 작품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염려로 사기가 꺾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고, 시도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과 사회적인 주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다. 그래서 시작 전까지 가능하면 최대한 먼 거리를 유지하며 대단한 준비 없이 그렇게 연습 첫날을 맞이하기로 결심했다.

<하모니아>는 팬데믹 이후 무용수들 간에 거리두기 없이 진행된 첫 작업이기도 해서 여러모로 특별했다. 무용수들 모두 접촉하고 제한을 두지 않는 것에 동의한 후 첫 연습이 시작됐다. 우리는 두 명씩 짝을 지어 눈을 감고 파트너와의 거리와 촉감, 서로의 몸에 관한 탐구라는 주제로 긴 즉흥을 했다. 팬데믹의 여파로 작업이 1년가량 연기되면서 길어졌던 기다림, 아직 어색한 서로에게서 느껴지는 어떤 긴장감, 기대감, 반가움, 호기심 같은 감정이 감은 눈 대신 촉감으로, 떨리는 호흡과 부드러운 리드로 이어져 이제 막 만난 사이라는 사실이 믿기 어려울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나와 내 파트너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 있던 다른 무용수들 역시 하나로 연결돼서 호흡하고 공존하는 것을 느끼면서 비로소 준비 과정에서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안도할 수 있었다.

움직이고 시도하며 찾아가기

11주 정도의 작업 동안 많은 과제가 있었는데, 파트너를 필요로 하는 과제에서 안무가는 의도적으로 늘 장애·비장애 무용수가 짝을 짓도록 했다. 장애인 무용수 6명, 비장애인 무용수 5명으로 작지 않은 규모였고 객원 무용수들끼리도 전혀 모르는 사이였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며 더욱 안전한 공간을 함께 만드는 것에 포커스를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안무가는 꽤 심플한 과제로 한두 시간씩 긴 즉흥을 하곤 했는데, 오랜 시간 단순한 과제와 몸에만 집중해서 움직이고 시도하고 관찰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뭔가 결과물을 생산해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나 좀 더 솔직하고 신선한 움직임을 끌어낼 수 있었다.

이 작품 주제의 첫 시작점이 ‘다른 몸’이었던 만큼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몸, 다른 몸, 다르지만 같은 몸, 같지만 다른 몸에 집중해 움직임을 탐구하고 함께 움직임을 찾아가는 과정은 상상 그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다리에 감각이 없는 동료가 춤을 출 때 하는 상상, 소아마비가 있는 동료가 겪는 근육의 수축과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 등 내가 알지 못했던 몸이 가질 수 있는 어려움이나 특징을 동료들을 통해 배웠다. 내 몸의 중심이 내가 느끼는 중심이 아니라면? 내 머리가 70kg이라면? 내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3배 더 길고 굵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걷고 움직일까? 팔이 없이 나는 어떻게 물병을 들어 올리고 바닥에서 일어날까? 내가 매일매일 반복하는 일상의 움직임들이 가진 논리가 달라진다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동료들과 함께 새로운 퀄리티를 찾아 나가는 방식은 작업 내내 무수한 영감을 주었다.

구분이 사라지고 선명해질 때

물론 어려움도 있었다. 장애가 있는 무용수들이 움직이면서 전달하는 무수한 메시지와 감정, 그들이 무대에 서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주는 의미 같은 것들이 그대로 녹아내린 춤을 매 순간 진심으로 대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과연 비장애인의 몸으로 비장애인에게 맞춰진 사회에서 매일 편안하게 살아가는 내가 추는 춤은 과연 이 작업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고, 나의 역할을 찾는 데 어려움을 주었다. 작품 진행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다양한 몸, 각자의 몸이 가진 다양한 능력과 어려움을 활용하고 또 거기에서 영감받아 작품을 만들어가는 연습 방식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 사이에도 꽤 컸던 장애·비장애 구분이 사라지고 10명의 다른 몸이 매우 선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할 때, 나는 비로소 자신감을 되찾고 작품에 더 큰 흥미를 느끼며 작업에 임할 수 있었다.

연습을 진행하는 방식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에 있었다. 당연하게 느껴졌던 연습 중간중간 갖는 15분의 휴식, 여유롭게 느껴졌던 60분의 점심시간은 누군가에겐 터무니없이 짧은 시간이기도 하고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주 5일, 매일매일 8시간씩의 육체노동이 익숙하지 않은 동료들을 배려해 일찍 마치는 날들도 때때로 있었고, 멤버들의 컨디션을 고려해 연습 중 특정 파트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는 방법도 터득해 가면서 연습 기간이 하루라도 짧아지면 큰일 나는 것처럼 굴었던 지난날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하모니아> 작업을 하면서 작품을 대하는 내 방식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그전에는 기교적인 면에서 댄서로서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퀄리티를 전달하는 게 가장 중요했다면, 지금은 작품에서 내 역할에 대해 질문하고 내가 가장 잘 서포트 할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일지, 작품의 의미나 흥미로운 점이 뭘까 계속 질문해가면서 나 스스로 작품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접근 방식이 생겼다. 춤으로 장애 예술에 대한 편견을 허물고 우리에게 여전히 생소한 장애예술 작업을 하면서, 팬데믹으로 전 세계가 고통받을 때 과연 내가 하는 예술이 해결할 수 있는 어려움은 어떤 게 있을까 고민하며 경험했던 갈증이 조금이나마 해소됐다.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장애예술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소외된 집단 또는 이슈를 연습실과 무대로 가져와서 무지함에서 비롯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투명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또 춤으로 전달하는 무용수가 되고 싶다.

  • 무대에서 장애·비장애 무용수가 짝을 지어 마주보고 서서 접촉 즉흥을 하고 있다.
  • 장애·비장애 무용수가 무대를 가로질러 한 줄로 서서 자유롭게 각자의 움직임을 하고 있다.

<하모니아> 공연 장면
Ⓒ요르그 란츠베르그(Jörg Landsberg)

송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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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언유주얼 심프톰즈

2023년 8월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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