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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주 작가×창파 아트디렉터

이슈 비비고 기대고 힘을 합치면 열리는, 다른 세계

  • 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 등록일 2023-08-23
  • 조회수1237

이슈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다른 세계를 일깨우는 예술가 친구는 어떻게 만나게 될까?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예술과 삶을 나누는 관계는 어떻게 이뤄질까? 예술활동에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이자 친구 간에 일어나는 창작의 ‘케미’와 갈등,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진주 작가×창파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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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람 배우×전박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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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배우×조화영 배우

뜨거운 햇살을 뚫고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시원하게 쏟아졌다. 찜통 같은 무더위에 야외 촬영을 하느라 볼이 붉어지고 땀이 흐르는데도 두 사람은 다정하게 서로의 매무새를 살피고 즐겁게 웃었다. 대학 선후배로 만나 청춘의 뜨거운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봤고, 지금은 작가와 아트디렉터 동료로서 함께 작업해나가는 사이. 서로를 향한 배려와 감탄, 존경이 넘쳤던 그날의 대화를 공개한다.

  • 김진주 작가와 창파 아트디렉터가 초록이 우거진 공원에서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왼쪽부터 김진주 작가, 창파 아트디렉터

두 분은 어떻게 친구가 되셨나? 혹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나 별명이 있나?

창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작가님이라고 하지만 보통은 언니라고 부른다. 내가 대학교 4학년 복학을 했는데, 3학년 후배였던 언니와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같이 술 마시고 기숙사 통금 시간에 맞춰서 산을 하나 넘어가느라 구르기도 했다. 언니 어머니께서 종각역 근처에서 잠깐 복권방을 하셨는데, 술 마시러 가기 전에 들러서 인사드리면 항상 용돈을 쥐여주셨다. 너무 철없던 때였다. (웃음) 훗날 나는 기획 쪽으로, 언니도 꾸준히 작업하며 각자 바쁘게 지냈다. 그런데 장애‧비장애 예술의 경계, 이런 말을 생각하기도 전에 언니와 나의 활동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왜 우리는 그동안 함께 작업할 기회가 없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부산으로 이주하고 2018년 실험실C를 만들면서 뭔가 같이 해보자고 했고,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김진주 내가 스물여덟에 대학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도 늦게 들어가서 그때부터 나이 차이가 났다. 초등학교 때는 애들이 철이 없어서 언니 대접을 안 해줬는데, 대학교 가니까 정말 예쁜 동급생들이 언니라며 잘 대해줬다. 너무 행복한 대학 생활이었다.

창파 그때도 언니는 구족화가였고, 장학금을 받고 있었다. 주변에 친구도 정말 많았다. 나는 그중 하나였다.

김진주 아니다. 내가 창파 선배를 만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멋있다고 느꼈고 아우라가 있었다. 같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내 예술가 친구’를 소개한다면?

창파 작가님이 요새 관심을 두고 그리는 식물처럼, 작가님 역시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강인하게 자라는 잡초 같은 힘, 저력을 가진 사람이다. 언니가 작업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속도다. 밤새워 그려도 남들보다 느리니까 두세 배로 더 열심히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속도가 느리다기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 속 나무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무척 다르게 흘러가지 않는가. 자기만의 속도로 매우 단단한 작업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부분 작가들은 작업을 할 때 외부에서 누군가가 지켜봐 주고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게 매우 큰 동력이 되는데, 김진주 작가님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스스로 계속하는, 엉덩이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다. 바닷가에 사는 염생식물은 짠 것을 견뎌내면서 식물 생애를 이어가는데, 언니도 이 염생식물처럼, 어떻게 보면 제약일 수도 있고 한계일 수도 있는 것들을 가지고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끌어 온 것을 깊이 존경한다.

김진주 너무 이상적인 말씀이다. (웃음) 내게 창파샘은 그야말로 정말 멋진 분이다. 노력을 정말 많이 한다. 몸이 약한 편인데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끊임없이 일을 하는데, 그 결과 또한 굉장히 완벽하다.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이 바로 전문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랑 친해져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 아주 완벽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2018년에 실험실C의 초대로 ‘소요의 시간’에 참여한 후로 김진주 작가님의 작업에 변화가 있었나?

김진주 정말 많이 변했다. 한국구족화가협회 회원으로 20년 넘게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미대를 나왔지만, 사실 작가로서 이렇다 할 만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전시를 보러 가면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 ‘다른 작가들은 이렇게 작업을 하는구나. 근데 나는 뭐지?’ 스스로 작가가 아닌 것 같다고 느꼈고, 가끔 전시를 해도 이게 전시할 작품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실험실C ‘소요의 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런 게 진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도와주신 분이 지금 내 옆에 있다. 물론 구족화가협회 작업도 계속한다. 그러니까 이중적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창파 작가님의 기존 작업에도 식물이 많이 등장했었다. 그때는 사진이나 책을 참고해서 작업했던 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지역 리서치도 하고 숲도 관찰했다. 그러다가 드로잉 도감처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얘기했고, 이 작업들이 시작됐다. 사실 그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랐었다. 다른 작가들이 리서치를 세 번 하면 언니는 따로 한 번 더 부산에 내려와서 저희랑 걷고 관찰하고 숲 이야기도 듣고 돌아와서 우리 집에서 밤새워 습작도 하고 노트에 정리했다. 그러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그냥 간단히 숲에서 전시하고 도록 만들고 끝내려고 했는데, 드로잉이 한 권의 에세이처럼 나왔다. 글씨도 직접 예쁘게 잘 썼다. 너무 소중해서 책으로 만들었다. 이게 첫해다. 근데 그때 참여했던 작가들도 다들 너무 좋아하며 내년에도 해보자고 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3년을 연속으로 하게 됐다. 그러면서 식물과 해양 생물까지, 드로잉 도감을 세 권 만들었다. 그림들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서울과 부산은 거리가 있으니까 자주 만나기는 어려울 것도 같다. 서로 자주 연락하는 편인가? 함께한 여러 시간과 사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창파 서울에서 살았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냥 만났던 것 같다. 내가 부산으로 옮기고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언니가 부산으로 내려오면 가끔 우리 집에서 지냈는데, 작년 겨울에 아르코미술관 전시 준비를 하느라 언니 집에서 일주일 정도 신세를 졌다. 그때 조금 다르게 본 게 있었다. 언니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처음으로 지켜봤다. 물병을 어떻게 들고 그릇을 어떻게 꺼내고.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언니가 갖고 있는 속도가 참 다르구나, 엄청 오래 만났는데도 이런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함께 작업하니까 알게 되는구나, 그랬다.

김진주 내가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 안 하는데, 워낙 친하고 또 같이 작업하다 보니까 정말 자주 연락을 한다. 모르는 걸 물으면 대답도 잘해준다. 자주 만나다 보니까 서로 취향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무 오래 친구로 지내서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옛날에는 같이 술도 참 잘 마셨는데, 지금은 체력이 안 따라준다.

  • 미소 지으며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는 창파 아트디렉터와 김진주 작가 클로즈업 사진
  • 미소 지으며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는 창파 아트디렉터와 김진주 작가 클로즈업 사진
  • 미소 지으며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는 창파 아트디렉터와 김진주 작가 클로즈업 사진
  • 미소 지으며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는 창파 아트디렉터와 김진주 작가 클로즈업 사진

서로가 서로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김진주 내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 작업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래 그림을 그렸지만, 전혀 다른 정보 없이 그야말로 동굴 속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것도 많이 가르쳐주고 정보도 나눠준다. 주로 내가 질문을 많이 한다.

창파 나 역시 작가님께 영향을 엄청 많이 받는다. 언니가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뛰어나서 보이지 않게 변화하는 것들도 잘 알아챈다. 언니가 보는 세계가 내 기획에 새로운 틈을 열어주는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언니가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표현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뭐라고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감각적으로 딱 찾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그런 부분들이 같이 할 다음 작업을 계속 떠오르게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다정한 두 분도 싸운 적이 있는가? 싸우지 않더라도 불편하거나 어색한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김진주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의견이 안 맞거나 다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친구가 먼저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굉장히 나태하고 게을렀다. 그걸 그냥 흘려서 얘기했는데, 창파샘이 딱 알아채고 혼꾸멍이 났다.

창파 “지금 뭐 그린다고 했었는데 오늘은 어디까지 하셨어요?” (웃음) 둘이 성격이 비슷하고 친구로서는 별로 부딪침이 없었다. 작업할 때 내가 언니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대부분 수용해 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이 풀었던 것 같다. 작가로서 언니의 세계를 이해하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은 언니랑 얘기하다가 거의 밤을 새웠는데, 그러고 나서 대상포진에 걸렸다. 진짜 치열하게 오래 얘기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균형감이 생겼다. 사실 지금도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기획자와 작가의 관계가 이렇게 끈끈한 예가 좀 드물지 않은가?

창파 그렇다. 미술계 사이클이 엄청나게 빨리 돌아간다. 전시도 단기간에 기획되고 단기간에 소멸해 버린다. 그렇게 만나면 사실 친구가 되기 어렵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작업을 선호하고, 진주 작가님 말고도 오래 만난 작가가 여럿 있다. 그런데도 진주 작가님은 나에게 무척 특별한 사람이고 이렇게 같이 걸어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신뢰도 있다. 언니가 내 기획에 참여하여 기대 이상의, 너무 아쉬워서 책까지 만들고 싶을 정도의 결과물을 내놨고, 점점 더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자랑스럽다.

장애예술 현장에서 협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일로 만난 사이로 끝나기가 십상이다. 솔직히 일로 만나는 게 나쁜 건 아니고 모두와 친구가 될 필요도 없지만,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동료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도 한다. 진짜 동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창파언젠가 언니가 다른 예술가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고 얘기했었다. 불과 한 5~6년 전인데, 요새는 장애‧비장애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정말 많아졌다. 처음에 실험실C에 초대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협업도 이루어지고 더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저 역시 정말 기뻤다. 그런데 사실 그런 기회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자기 내면에서 요구가 있었을 거다.

김진주 아무래도 작업을 오래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걸 놓는 순간 모든 게 다 사라진다. 일단 가진 것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동료도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적인 친밀함도 있어야 한다. 사실 나는 의심도 경계도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쓸데없이 잘 웃다 보니 사람들이 내 웃음에 다 속는다. (웃음)

창파 이 질문을 받고 그동안 만난 작가들과 얼마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런데 그냥 일 친구도 괜찮은 거 같다. 나는 무언가를 도모하고 판을 까는 사람이니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계속 같이할 일을 만들어 가는 게 일 친구로 계속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한편,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이 만나는 것에는 예술적인 협업도 매우 중요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들이 있지 않나. 나와 진주 작가님은 친구였기에 가능했지만, 공적인 곳에서 시도할 때는 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두 세계가 만나게끔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창파 12월 초 대학로 마로니에 갤러리에서 김진주 작가 개인전을 할 예정이다. 이 작업은 작년 겨울부터 준비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하면서 오랜만에 대학로를 둘러봤는데, 마로니에 공원에 이렇게 다양한 나무가 있다는 게 새롭게 보였다. 언니랑 이걸 그려보면 좋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잘 돼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나무들을 같이 관찰하고 지금 열심히 작업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김진주 공식적으로 두 번째 개인전이다. 첫 개인전은 2021년에 부산에서 했다. 기대보다는 부담이 많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속도에서 많이 밀리니까 제대로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하고 걱정이 너무 많다. 어쨌든 내가 그림을 완성해야 전시를 할 수 있는데 혹시라도 안 될까 두렵다. 요즘에는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 매일 나와서 작업을 하는데, 밤샘 작업은 못 하게 돼 있어서 너무 아쉽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밤새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쉬움과 촉박함, 조급함이 너무 크다. 그림이 마무리되면 그때는 아마 조금 설렐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어색한 질문을 드리겠다.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서로에게 기대와 다짐의 말씀을 해 달라.

김진주 나에게 창파 아트디렉터는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 능력자’다. 뭘 해도 완벽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나는 안다. 근데 그것은 사람들한테 보이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창파샘에게 바라는 것은 없고, 나의 다짐은 열심히 하겠다는 거다.

창파 아니다. 나도 마음속에서 항상 요행을 바라고 있다. (웃음) 나도 화답을 해야겠다. 나에게 김진주 작가는 ‘비빌 언덕’이다. 예술적인 영감으로도, 예술적인 동료로서도, 항상 기대거나 비비거나 서로가 힘을 합쳐서 할 수 있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을 갖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이 나에게는 제일 감사하다. 사실 너무 힘들게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개인전이 확정된 후부터 타임테이블을 짜고 내가 계속 악역을 맡았다. “이때까지는 끝내야 해. 그래야 우리가 할 수 있어!” 그런데 그 사이사이 레지던시 활동도 있고 구족화가협회 활동도 해야 하니까 너무 바쁘다. 요새 건강도 안 좋아져서 걱정이 많다. 언니가 가진 시간적인 한계와 작업의 방향, 그것을 조금 더 잘 펼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게 내 역할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잘해야 한다. 아까 우리가 오랜만에 예술가의집 뒤편 정원을 걸으면서 벌써 내년 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나무를 했으니, 내년에는 풀을 해보자고 하시더라. 매번 계절마다 달라지는 풀을 그려보고 싶다면서 나한테 숙제를 주셨다. 이런 식으로 티키타카가 되는 것 같다. 내년에 또 할 일이 생겼네.

  • 섬세한 펜 드로잉으로 그린 개잎갈나무
  • 섬세한 펜 드로잉으로 그린 청줄하늘소
  • 김진주 작가와 창파 아트디렉터가 산딸나무 그림 양쪽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주 개인전, 《구봉산 그리고 수정산》, 2021, 창의가게(실험실C 기획)

김진주

사물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펜 드로잉 형식으로 그려왔다. 자신과 그의 외연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상황, 진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간다. 어떤 것이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고 믿으며 그것의 정당한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1994년부터 구족화가로 활동해 왔고, 개인사를 주제로 페인팅, 일러스트, 한국화, 펜드로잉 등 여러 기법을 시도하며 그리는 속도와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중이다.
cipherjm@naver.com

창파(김혜경)

실험실 씨 아트디렉터, 예술노동자이자 독립기획자. 장소와 자연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일을 즐긴다. 대표 기획작으로 <부유의 시간>(2021), <소요의 시간>(2019, 2020), <골목의 기억 도시의 상상>(2016, 2017, 2018), 청년-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비 메이커즈>(2017), <롤링1942>(2015) 등이다. 2016년부터 부산에 거주하며 한 장소에서 일정 기간 리서치하고 예술프로젝트로 발표해왔다. 2018년에는 문화예술기획팀 '실험실 씨'를 박미라(포레스트 큐레이터)와 만들고, 생활사·구술사· 식물문화사를 토대로 사라져가는 주변 이야기를 찾아 생활에 밀착한 리서치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며 로컬 큐레이팅을 실천 중이다.
labc.changpa@gmail.com

진행·정리. 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archive0721@gmail.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naver.com
자료 사진 제공. 김진주 작가, 창파 아트디렉터

2023년 9월 (45호)

상세내용

이슈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다른 세계를 일깨우는 예술가 친구는 어떻게 만나게 될까?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예술과 삶을 나누는 관계는 어떻게 이뤄질까? 예술활동에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이자 친구 간에 일어나는 창작의 ‘케미’와 갈등,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진주 작가×창파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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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람 배우×전박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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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배우×조화영 배우

뜨거운 햇살을 뚫고 까르르 까르르 웃음이 시원하게 쏟아졌다. 찜통 같은 무더위에 야외 촬영을 하느라 볼이 붉어지고 땀이 흐르는데도 두 사람은 다정하게 서로의 매무새를 살피고 즐겁게 웃었다. 대학 선후배로 만나 청춘의 뜨거운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의 성장을 지켜봤고, 지금은 작가와 아트디렉터 동료로서 함께 작업해나가는 사이. 서로를 향한 배려와 감탄, 존경이 넘쳤던 그날의 대화를 공개한다.

  • 김진주 작가와 창파 아트디렉터가 초록이 우거진 공원에서 서로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

왼쪽부터 김진주 작가, 창파 아트디렉터

두 분은 어떻게 친구가 되셨나? 혹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나 별명이 있나?

창파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작가님이라고 하지만 보통은 언니라고 부른다. 내가 대학교 4학년 복학을 했는데, 3학년 후배였던 언니와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많이 친해졌다. 같이 술 마시고 기숙사 통금 시간에 맞춰서 산을 하나 넘어가느라 구르기도 했다. 언니 어머니께서 종각역 근처에서 잠깐 복권방을 하셨는데, 술 마시러 가기 전에 들러서 인사드리면 항상 용돈을 쥐여주셨다. 너무 철없던 때였다. (웃음) 훗날 나는 기획 쪽으로, 언니도 꾸준히 작업하며 각자 바쁘게 지냈다. 그런데 장애‧비장애 예술의 경계, 이런 말을 생각하기도 전에 언니와 나의 활동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왜 우리는 그동안 함께 작업할 기회가 없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가 부산으로 이주하고 2018년 실험실C를 만들면서 뭔가 같이 해보자고 했고, 지금까지 함께 작업하고 있다.

김진주 내가 스물여덟에 대학에 입학했다. 초등학교도 늦게 들어가서 그때부터 나이 차이가 났다. 초등학교 때는 애들이 철이 없어서 언니 대접을 안 해줬는데, 대학교 가니까 정말 예쁜 동급생들이 언니라며 잘 대해줬다. 너무 행복한 대학 생활이었다.

창파 그때도 언니는 구족화가였고, 장학금을 받고 있었다. 주변에 친구도 정말 많았다. 나는 그중 하나였다.

김진주 아니다. 내가 창파 선배를 만나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멀리서 봤을 때부터 멋있다고 느꼈고 아우라가 있었다. 같은 기숙사에 들어가서 정말 다행이었다.

다른 이들에게 ‘내 예술가 친구’를 소개한다면?

창파 작가님이 요새 관심을 두고 그리는 식물처럼, 작가님 역시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강인하게 자라는 잡초 같은 힘, 저력을 가진 사람이다. 언니가 작업할 때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 속도다. 밤새워 그려도 남들보다 느리니까 두세 배로 더 열심히 한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속도가 느리다기보다 천천히 단단하게 자기 세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 속 나무들의 시간은 인간의 시간과는 무척 다르게 흘러가지 않는가. 자기만의 속도로 매우 단단한 작업을 만들어 가고 있다. 대부분 작가들은 작업을 할 때 외부에서 누군가가 지켜봐 주고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게 매우 큰 동력이 되는데, 김진주 작가님은 지켜보는 사람이 없어도 자기 스스로 계속하는, 엉덩이의 힘으로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다. 바닷가에 사는 염생식물은 짠 것을 견뎌내면서 식물 생애를 이어가는데, 언니도 이 염생식물처럼, 어떻게 보면 제약일 수도 있고 한계일 수도 있는 것들을 가지고도 오랫동안 지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이끌어 온 것을 깊이 존경한다.

김진주 너무 이상적인 말씀이다. (웃음) 내게 창파샘은 그야말로 정말 멋진 분이다. 노력을 정말 많이 한다. 몸이 약한 편인데도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서 끊임없이 일을 하는데, 그 결과 또한 굉장히 완벽하다. 볼 때마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다. ‘이런 사람이 바로 전문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랑 친해져서 너무 다행이고 고맙다. 아주 완벽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2018년에 실험실C의 초대로 ‘소요의 시간’에 참여한 후로 김진주 작가님의 작업에 변화가 있었나?

김진주 정말 많이 변했다. 한국구족화가협회 회원으로 20년 넘게 꾸준히 그림을 그렸고 미대를 나왔지만, 사실 작가로서 이렇다 할 만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다른 전시를 보러 가면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 ‘다른 작가들은 이렇게 작업을 하는구나. 근데 나는 뭐지?’ 스스로 작가가 아닌 것 같다고 느꼈고, 가끔 전시를 해도 이게 전시할 작품이 되나 싶었다. 그런데 실험실C ‘소요의 시간’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이런 게 진짜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도와주신 분이 지금 내 옆에 있다. 물론 구족화가협회 작업도 계속한다. 그러니까 이중적인 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다.

창파 작가님의 기존 작업에도 식물이 많이 등장했었다. 그때는 사진이나 책을 참고해서 작업했던 걸로 알고 있다. 우리는 다른 작가들과 함께 지역 리서치도 하고 숲도 관찰했다. 그러다가 드로잉 도감처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얘기했고, 이 작업들이 시작됐다. 사실 그때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랐었다. 다른 작가들이 리서치를 세 번 하면 언니는 따로 한 번 더 부산에 내려와서 저희랑 걷고 관찰하고 숲 이야기도 듣고 돌아와서 우리 집에서 밤새워 습작도 하고 노트에 정리했다. 그러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 그림을 그렸다. 처음에는 그냥 간단히 숲에서 전시하고 도록 만들고 끝내려고 했는데, 드로잉이 한 권의 에세이처럼 나왔다. 글씨도 직접 예쁘게 잘 썼다. 너무 소중해서 책으로 만들었다. 이게 첫해다. 근데 그때 참여했던 작가들도 다들 너무 좋아하며 내년에도 해보자고 했다. 한 번 더, 또 한 번 더, 3년을 연속으로 하게 됐다. 그러면서 식물과 해양 생물까지, 드로잉 도감을 세 권 만들었다. 그림들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

서울과 부산은 거리가 있으니까 자주 만나기는 어려울 것도 같다. 서로 자주 연락하는 편인가? 함께한 여러 시간과 사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 달라.

창파 서울에서 살았을 때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그냥 만났던 것 같다. 내가 부산으로 옮기고 프로젝트를 같이 하면서 언니가 부산으로 내려오면 가끔 우리 집에서 지냈는데, 작년 겨울에 아르코미술관 전시 준비를 하느라 언니 집에서 일주일 정도 신세를 졌다. 그때 조금 다르게 본 게 있었다. 언니가 어떻게 생활하는지를 처음으로 지켜봤다. 물병을 어떻게 들고 그릇을 어떻게 꺼내고. 그동안 내가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언니가 갖고 있는 속도가 참 다르구나, 엄청 오래 만났는데도 이런 모습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함께 작업하니까 알게 되는구나, 그랬다.

김진주 내가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 안 하는데, 워낙 친하고 또 같이 작업하다 보니까 정말 자주 연락을 한다. 모르는 걸 물으면 대답도 잘해준다. 자주 만나다 보니까 서로 취향이 아주 비슷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너무 오래 친구로 지내서 사실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옛날에는 같이 술도 참 잘 마셨는데, 지금은 체력이 안 따라준다.

  • 미소 지으며 진지하게 이야기 나누는 창파 아트디렉터와 김진주 작가 클로즈업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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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김진주 내가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 작업 세계를 구축할 수 있게 해주었다. 오래 그림을 그렸지만, 전혀 다른 정보 없이 그야말로 동굴 속에서 혼자 작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르는 것도 많이 가르쳐주고 정보도 나눠준다. 주로 내가 질문을 많이 한다.

창파 나 역시 작가님께 영향을 엄청 많이 받는다. 언니가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뛰어나서 보이지 않게 변화하는 것들도 잘 알아챈다. 언니가 보는 세계가 내 기획에 새로운 틈을 열어주는 것 같다. 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것을 언니가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표현하는 것을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뭐라고 얘기하지 않았는데도 감각적으로 딱 찾아가는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그런 부분들이 같이 할 다음 작업을 계속 떠오르게 하는 것 같다.

이렇게 다정한 두 분도 싸운 적이 있는가? 싸우지 않더라도 불편하거나 어색한 순간이 있지 않았을까?

김진주 서로 감정이 상하거나 의견이 안 맞거나 다툰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친구가 먼저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굉장히 나태하고 게을렀다. 그걸 그냥 흘려서 얘기했는데, 창파샘이 딱 알아채고 혼꾸멍이 났다.

창파 “지금 뭐 그린다고 했었는데 오늘은 어디까지 하셨어요?” (웃음) 둘이 성격이 비슷하고 친구로서는 별로 부딪침이 없었다. 작업할 때 내가 언니에게 요구하는 것들은 대부분 수용해 주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이 풀었던 것 같다. 작가로서 언니의 세계를 이해하기까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한 번은 언니랑 얘기하다가 거의 밤을 새웠는데, 그러고 나서 대상포진에 걸렸다. 진짜 치열하게 오래 얘기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균형감이 생겼다. 사실 지금도 계속 알아가는 중이다.

기획자와 작가의 관계가 이렇게 끈끈한 예가 좀 드물지 않은가?

창파 그렇다. 미술계 사이클이 엄청나게 빨리 돌아간다. 전시도 단기간에 기획되고 단기간에 소멸해 버린다. 그렇게 만나면 사실 친구가 되기 어렵다. 물론 나는 개인적으로 호흡이 긴 작업을 선호하고, 진주 작가님 말고도 오래 만난 작가가 여럿 있다. 그런데도 진주 작가님은 나에게 무척 특별한 사람이고 이렇게 같이 걸어갈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리고 작가에 대한 신뢰도 있다. 언니가 내 기획에 참여하여 기대 이상의, 너무 아쉬워서 책까지 만들고 싶을 정도의 결과물을 내놨고, 점점 더 자기 세계를 구축해 가면서 발전해 나가는 것이 자랑스럽다.

장애예술 현장에서 협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지만, 일로 만난 사이로 끝나기가 십상이다. 솔직히 일로 만나는 게 나쁜 건 아니고 모두와 친구가 될 필요도 없지만, 서로의 성장을 응원하는 동료가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 생기기도 한다. 진짜 동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창파언젠가 언니가 다른 예술가들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다고 얘기했었다. 불과 한 5~6년 전인데, 요새는 장애‧비장애 경계를 허물려는 시도가 정말 많아졌다. 처음에 실험실C에 초대하면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협업도 이루어지고 더 확장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저 역시 정말 기뻤다. 그런데 사실 그런 기회가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자기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랫동안 자기 내면에서 요구가 있었을 거다.

김진주 아무래도 작업을 오래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걸 놓는 순간 모든 게 다 사라진다. 일단 가진 것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동료도 생기는 것 같다. 그리고 인간적인 친밀함도 있어야 한다. 사실 나는 의심도 경계도 많은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 쓸데없이 잘 웃다 보니 사람들이 내 웃음에 다 속는다. (웃음)

창파 이 질문을 받고 그동안 만난 작가들과 얼마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런데 그냥 일 친구도 괜찮은 거 같다. 나는 무언가를 도모하고 판을 까는 사람이니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기도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과 계속 같이할 일을 만들어 가는 게 일 친구로 계속 같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지 않을까. 한편,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이 만나는 것에는 예술적인 협업도 매우 중요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세계들이 있지 않나. 나와 진주 작가님은 친구였기에 가능했지만, 공적인 곳에서 시도할 때는 더 적극적이고 장기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두 세계가 만나게끔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창파 12월 초 대학로 마로니에 갤러리에서 김진주 작가 개인전을 할 예정이다. 이 작업은 작년 겨울부터 준비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하면서 오랜만에 대학로를 둘러봤는데, 마로니에 공원에 이렇게 다양한 나무가 있다는 게 새롭게 보였다. 언니랑 이걸 그려보면 좋겠다고 얘기했었는데, 잘 돼서 마로니에 공원에 있는 나무들을 같이 관찰하고 지금 열심히 작업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김진주 공식적으로 두 번째 개인전이다. 첫 개인전은 2021년에 부산에서 했다. 기대보다는 부담이 많다.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내가 속도에서 많이 밀리니까 제대로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머릿속이 굉장히 복잡하고 걱정이 너무 많다. 어쨌든 내가 그림을 완성해야 전시를 할 수 있는데 혹시라도 안 될까 두렵다. 요즘에는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 매일 나와서 작업을 하는데, 밤샘 작업은 못 하게 돼 있어서 너무 아쉽다. 일주일에 한두 번만 밤새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아쉬움과 촉박함, 조급함이 너무 크다. 그림이 마무리되면 그때는 아마 조금 설렐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어색한 질문을 드리겠다.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 서로에게 기대와 다짐의 말씀을 해 달라.

김진주 나에게 창파 아트디렉터는 ‘보이지 않게 노력하는 능력자’다. 뭘 해도 완벽하다. 그렇게 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나는 안다. 근데 그것은 사람들한테 보이지 않고, 모든 사람이 다 그렇게 노력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창파샘에게 바라는 것은 없고, 나의 다짐은 열심히 하겠다는 거다.

창파 아니다. 나도 마음속에서 항상 요행을 바라고 있다. (웃음) 나도 화답을 해야겠다. 나에게 김진주 작가는 ‘비빌 언덕’이다. 예술적인 영감으로도, 예술적인 동료로서도, 항상 기대거나 비비거나 서로가 힘을 합쳐서 할 수 있는, 내가 갖고 있지 못한 부분을 갖고 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씀이 나에게는 제일 감사하다. 사실 너무 힘들게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개인전이 확정된 후부터 타임테이블을 짜고 내가 계속 악역을 맡았다. “이때까지는 끝내야 해. 그래야 우리가 할 수 있어!” 그런데 그 사이사이 레지던시 활동도 있고 구족화가협회 활동도 해야 하니까 너무 바쁘다. 요새 건강도 안 좋아져서 걱정이 많다. 언니가 가진 시간적인 한계와 작업의 방향, 그것을 조금 더 잘 펼칠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하는 게 내 역할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잘해야 한다. 아까 우리가 오랜만에 예술가의집 뒤편 정원을 걸으면서 벌써 내년 계획을 세웠다. 올해는 나무를 했으니, 내년에는 풀을 해보자고 하시더라. 매번 계절마다 달라지는 풀을 그려보고 싶다면서 나한테 숙제를 주셨다. 이런 식으로 티키타카가 되는 것 같다. 내년에 또 할 일이 생겼네.

  • 섬세한 펜 드로잉으로 그린 개잎갈나무
  • 섬세한 펜 드로잉으로 그린 청줄하늘소
  • 김진주 작가와 창파 아트디렉터가 산딸나무 그림 양쪽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진주 개인전, 《구봉산 그리고 수정산》, 2021, 창의가게(실험실C 기획)

김진주

사물의 본질과 근원에 대한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펜 드로잉 형식으로 그려왔다. 자신과 그의 외연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 상황, 진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간다. 어떤 것이든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가 있다고 믿으며 그것의 정당한 위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스스로를 표현한다. 1994년부터 구족화가로 활동해 왔고, 개인사를 주제로 페인팅, 일러스트, 한국화, 펜드로잉 등 여러 기법을 시도하며 그리는 속도와 매체의 한계를 극복하는 중이다.
cipherjm@naver.com

창파(김혜경)

실험실 씨 아트디렉터, 예술노동자이자 독립기획자. 장소와 자연을 관찰하고 들여다보는 일을 즐긴다. 대표 기획작으로 <부유의 시간>(2021), <소요의 시간>(2019, 2020), <골목의 기억 도시의 상상>(2016, 2017, 2018), 청년-장인 메이커즈 매칭 프로젝트 <비 메이커즈>(2017), <롤링1942>(2015) 등이다. 2016년부터 부산에 거주하며 한 장소에서 일정 기간 리서치하고 예술프로젝트로 발표해왔다. 2018년에는 문화예술기획팀 '실험실 씨'를 박미라(포레스트 큐레이터)와 만들고, 생활사·구술사· 식물문화사를 토대로 사라져가는 주변 이야기를 찾아 생활에 밀착한 리서치 예술 콘텐츠를 기획하며 로컬 큐레이팅을 실천 중이다.
labc.changpa@gmail.com

진행·정리. 남은정 프로젝트 궁리 기획자 archive0721@gmail.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naver.com
자료 사진 제공. 김진주 작가, 창파 아트디렉터

2023년 9월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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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30 16: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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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이란게 너무나도 소중하지요^~^

2023-08-28 08: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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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 깊은 대화 속에서 긴 세월 동안 진득하게 서로를 살피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깊어지는 세계로 연결되고 확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2023-08-25 14: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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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전시회에 꼭 가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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