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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이음

백우람 배우×전박찬 배우

이슈 경쟁하고 고민하며 함께 가야 할, 뜨거운 여정

  • 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 등록일 2023-08-23
  • 조회수1367

이슈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다른 세계를 일깨우는 예술가 친구는 어떻게 만나게 될까?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예술과 삶을 나누는 관계는 어떻게 이뤄질까? 예술활동에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이자 친구 간에 일어나는 창작의 ‘케미’와 갈등,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진주 작가×창파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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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람 배우×전박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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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배우×조화영 배우

백우람 배우는 <침묵의 오육초; 시를 그리다>를, 전박찬 배우는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두 배우 모두 빼곡한 연습 일정 때문에 인터뷰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각자 연습을 마치고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아트홀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할 때는 역시나 배우답게 멋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한다. 서로의 스타일이 부럽다면서도 기죽지 않는다. 이들의 대화는 인터뷰 마치고 술 한잔하자는 약속으로 시작되었고, 공연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 등 긴 수다로 이어졌다.

  • 백우람, 전박찬 배우가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시소를 탄 것처럼 마주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백우람 배우, 전박찬 배우

공연 연습을 하고 와서 피곤할 법도 한데, 활기차 보여서 다행이다. 두 분은 얼마 만에 만난 건가?

백우람 오랜만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7월에 전박찬 배우가 출연한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퇴장하는 등장> 공연을 보러 가서 인사 나눴었다. 간신히 마지막 날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전박찬 그날 무척 반가웠다. 작년 12월 말 선돌극장에서 백우람 배우가 직접 큐레이팅해서 만든 <벙커>를 봤고, 올해 극단 애인에서 공연한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_선택>은 표를 구하기 힘들어서 못봤다. 극단의 다른 분들이 보고 왔다고 자랑하길래 좀 억울했다.

백우람 나는 요즘 1인극을 준비 중이다. <침묵의 오육초; 시를 그리다>라는 작품을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이음아트홀에서 공연하는데,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못하고 있다.

전박찬 이 시즌에 엄청 많은 공연이 경쟁적으로 올라간다. 나도 8월 26일부터 9월 3일까지 구자혜 작·연출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을 공연하니, 이번에도 백우람 배우의 공연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일하다 보면 서로 일정이 딱 겹치는 경우가 많다. 작업이 많아 좋다고 해야 하나, 경쟁작이 늘었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친해진 계기도 듣고 싶다.

백우람 2021년 극단 애인의 <1인 무대> 공연으로 처음 만났다. 강보람, 강희철, 어선미, 하지성, 그리고 나. 5명의 배우가 각자 과거와 오늘의 ‘나’를 자전적으로 이야기한 공연이다. 전박찬 배우가 그 공연의 음성해설을 해줬다.

전박찬 맞다. 여기 이음아트홀에서 했다. 사실 나는 백우람 배우를 <1인 무대> 포스터로 먼저 만났다. 이음아트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이 멋있는 배우는 누구지? 공연 보러 와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사진이 엄청 잘 나왔잖나. (웃음) 그런데 그 작품의 음성해설을 제안받은 거다. 그때는 코로나가 너무 심각한 상황이어서 결국 관객과 만나는 공연은 하지 못했다. 원래 음성해설자는 연습을 충분히 봐야 하는데, 마스크를 쓰더라도 너무 위험한 상황이어서 몇 번 볼 수가 없었다. 리허설을 영상으로 보았고, 구자혜 작가가 써준 음성해설 대본으로 공연 실황을 찍어서 영상화하는 것으로 전환해 진행했다. 그래서 아쉬운 첫 만남이었다. 관객을 못 만나니까 음성해설도 좀 더 잘하고 싶었고. 꼭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백우람 관객 없이 공연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전박찬 배우 덕분에 많은 힘을 받았고 잘 해냈던 것 같다.

전박찬 그때 <1인 무대>를 객석에서 본 관객은 없지만, 나는 어떻게 보면 관객의 관점이니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나도 그때 작업자로서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았다. 백우람 배우가 워낙 몸을 잘 쓰는 배우여서, 내 몸에 대해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우람 너무 좋게만 봐주는 거 아닌가.

전박찬 좋았던 것을 좋았다고 말하는 건데. 우리는 서로 칭찬하고 쑥스러워하는 사이다. (웃음) 나는 배우가 되기 전에 조명 스태프를 했다. 처음 조명작업을 하러 간 것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가 문화일보홀에서 공연했을 때였다. 조명 셋업 날부터 공연 때까지 극장에 계속 같이 있었다. 지금이야 장애인식개선 교육 같은 것을 받을 기회도 있고 책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무관심할 때였는데,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장애예술가들을 만나게 된 거다. 그러면서 계속 고민이 있었다. 언제까지 장애인 비장애인 나눠서 공연해야 하지? 이렇게 나눠서 하는 게 맞나? 잘 몰라서, 서로 불편한 게 있어서 안 하는 건가? 그래서 다른 팀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시간이 20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무대에 같이 서고 서로 작업에서 영감받고 협업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백우람 요즘 들어 그런 협업의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대학교 때 졸업작품으로 <콤플렉스>라는 제목으로 나의 누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을 발견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극단 애인 활동 외에 외부 작업할 때 어려운 점이, 그 사람들은 나를 처음 보고 판단하는 거잖나. 자기 기준에 맞춰 한 번 이렇게 해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이런 말이 나올 때면…. 내가 말할 때 조금 답답해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무대에 섰던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작업할 때는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충분히 그 시간을 견디고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에너지를 썼을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전박찬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백우람 배우는 ‘비둘기’ 역할을 맡았는데, ‘세 명의 우는 비둘기’ 장면을 할 때 백우람 배우의 대사가 정말 많았다. 연습실에서는 그런 얘기도 있었다. 백우람 배우가 말이 빠르지는 않으니까, 대사량이 다른 배우들과 같으면 혼자 주인공 되는 것 아니냐. (웃음) 나는 다음 장면에 등장하기 위해 우는 비둘기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무대 윙에서 보고 있었는데, 셋이 우는 모습이 너무 웃기고 슬펐다. 그 모습에서 희열이 느껴졌는데, 백우람 배우가 얘기하는 희열이었던 것 같다.

서로를 어떤 예술가라고 생각하는가?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하다.

백우람 전박찬 배우는 되게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성실한 것도 진짜고. 그런데 내가 보는 전박찬 배우는 되게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배우로서 욕심이 많은 사람.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연습 때 다들 ‘B’가 주인공이라고 하지 않았나. 사실 힘든 역할이어서 함부로 나서지 못했는데, 그때 형이 스스로 ‘B’ 역할을 하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욕심이 많구나, 생각했다. 아는 배우에서 형으로 넘어가는 친밀감을 느꼈던 순간은, 얘기해도 되나 싶은데, 사실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친해졌던 것 같다. 웹진[이음]에서 이번 인터뷰를 제안하면서 극단 애인 말고 외부 작업에서 만난 예술가 친구를 추천해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때 전박찬 배우를 떠올렸다. 편하기도 했고, 형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전박찬 인정한다. 욕심이 있었다. (웃음) ‘B’를 하고 싶었지만 처음 작업해 보는 배우들도 있어서 날름 하겠다고 못 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백우람 배우가 정확하게 나를 꿰뚫어 본 거다. 작년에 <로드킬 인 더 씨어터>가 백상예술대상 연극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에 함께 참석했던 때가 기억난다. 수상은 못했는데, 끝나고 둘이 좋은 데서 맛있는 짬뽕 먹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오늘은 한 명은 객석에 앉아 있고 한 명은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상을 기다리며 대기석에 있었지만, 나중에 함께 턱시도 입고 레드카펫 밟자고. 어떻게 보면 서로 경쟁자이고 서로 네가 상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진심으로는 둘이 같이 받았으면 좋겠다. 이 뜨거운 예술가랑 좋은 작업도 하고 싶지만, 좋은 자리에 같이 가고 싶다.

백우람 그때도 있었잖나. 갑자기 술 한잔하자고 이태원에서 만난 날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그때 많이 친해졌던 것 같다.

전박찬 백우람 배우는 워낙 잘 마시고, 나는 조금 덜 잘 마신다. (웃음)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코로나 시국이라 술을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때 엄청 즐거웠다. 오늘도 끝나고 한잔하자고 했다.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서로의 작업 중에서 ‘원픽’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백우람 전박찬 배우의 작업 중에서 원픽을 꼽는다면 단언컨대 올해 7월 공연한 <퇴장하는 등장>이다. 혼자 세대와 젠더를 오가며 모든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현실에서는 배제되고 짓눌린 존재들인데, 무대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라고 한다. 자연스러움이란 뭘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다. 형의 연기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특히, 공연 중간쯤에 큰 문이 열리면서 등장하고 또 퇴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전박찬 그 작업의 피드백을 많이 받지 못했다. 퀴어의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은 공연이었기 때문에 다들 이야기하기 어려워했다. 공연 중간에 성 소수자와 장애 당사자, 두 소수자가 교차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다음에 금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너희가 성 소수자, 장애인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틀렸어”라고 얘기한다. 내게도 힘든 장면이었는데 이렇게 얘기해주니 고맙다.
나에게 백우람 배우의 원픽은 단언컨대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우는 비둘기’ 장면이다. 자기 스스로 발화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진폭이 객석에까지 가 닿았다. 함께 작업하면서 이런 힘을 받고 나아갈 수 있었다. 처음 만났던 <1인 무대>의 경우는 정말 강렬하고 나에게 자극이 되었지만, 음성해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벙커> 공연 때는 아쉬움이 있었다. 작업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백우람 배우가 직접 지원서 내고 기획하는 작업이어서 내가 어떤 역할로든 함께하고 싶었는데, 시점을 놓쳐버린 거다. 그래서 아쉽고 미안했다. 사실 원픽이어서 <로드킬 인 더 씨어터> 하나를 꼽았지만, 내가 앞으로 보게 될 공연이 나의 새로운 원픽이 되지 않을까.

만약 상대에게 주고 싶은, 또는 받고 싶은 능력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주로 어떤 것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백우람 나는 나로 충분하다! 농담이고. (웃음) 전박찬 배우에게 받고 싶은 능력은 배려심이다. 진심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전박찬 부끄럽다. 나는 백우람 배우의 몸이라고 그럴까 했는데. (웃음) 사실 백우람 배우의 사유를 갖고 오고 싶다. 백우람 배우는 직접 무대에 공연을 올린다. 사실 지원이 충분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작업 환경일 텐데, 이 배우는 왜 스스로 기획하고 작업을 할까.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때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데서 자기 사유로 발화하거나 움직이면서 동료들에게 자극이 되는 순간순간이 있었다. 모두가 고사하는 역할을 자기가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백우람’이라는 배우가 관객에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정확히 사유하고 있었다. 사실 몸도 부럽다. 생각하는 것들이 몸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되게 칼 같다.
예술적인 영감은 결국 동료들에게서 오는 것 같다. 내가 잘나서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로드킬 당한 동물들에 관한 얘기인데, 내가 당사자도 아니고 내 사유만으로는 밀어붙이기 너무 힘들었다. 동료들이 함께 제시하고 그것을 같이 밀고 나가 결국 만들어지는 것 같다. 동료 배우들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 연기가 바뀌기도 하고 내 연기를 더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 같다.

백우람 나도 비슷하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고, 사람을 좋아하니까 같이 하려고 하고. 그런데 나는 사실 혼자가 편하다. 공연이야말로 혼자 할 수 없는데도, 같이 있으면 배려한다면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나. 혼자 있으면 안 해도 되니까 편하다. 그런데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신기하게. 늘 하는 이야기인데, 그런 면에서 나는 내가 배우라는 것에 감사한다. 산으로 치면 히말라야 정도로 감사하다. (웃음)

전박찬 나도 혼자가 편하다. 우린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 혼자가 편한데, 일은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니. (웃음) 사실 요즘은 가끔 배우라는 직업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가혹해서 지치는 것 같고, 가끔 안 하고 싶다. 근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으니까 계속하고 있는 거다. 얘기할 필요가 없어져서 안 했으면 좋겠다. 당사자성이 부각되는 작품을 할 때면, 어쩌면 객석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고단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작품 중에는 막 행복한 역할로 나오는 건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어떤 이슈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관객에게 나의 사유로 밀어붙이는 얘기들을 하니까 고민스럽다. 요즘 들어 나의 그릇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백우람 배우에게 받고 싶은 게 ‘사유’라고 했던 것 같다.

예술 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기가 쉽지 않다. 서로에게 예술가 친구, 동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백우람 열린 마음? 나는 무대에 서고 싶지만, 접근성이 안 되면 못한다. 어떻게 접근하지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박찬 사실 한 작업이 끝나고 나서 다시 다른 작업으로 만나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백우람 배우와 <1인 무대>로 만난 이후 운 좋게 함께 한 무대에 섰지만, 다음 기회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서로 공연도 보러 가고 따로 만났던 거다. 극단 애인에서 접근성에 관한 워크숍이 있었는데, 무턱대고 그냥 참여했다. 그때 왜 거기에 갔나 생각해 보니, 함께 작업하고 관심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진짜 동료가 되려면 서로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근데, 우리 좀 더 친해지려면 여행이라도 한번 가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에게 24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할까?

백우람 방-콕! (웃음) 진짜 방콕은 멀어서 못 간다.

전박찬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다른 친구랑 속초에 갔을 때도 우리 둘이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우람 좋다. 우리 진짜 여행 한번 가자. 함께 속초 가자. 속초 가서 방-콕! (웃음)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한 단어로 담아본다면? 기대와 당부의 말씀도 해달라.

백우람 나에게 전박찬 배우는 그냥 ‘형’이다. 내겐 친형이 없다. 어렸을 때 괴롭힘을 많이 당했는데, 그때 형이 있었다면 괴롭히는 사람들을 혼내주었을 거다. 그런 든든함이 있다. 지금도 충분히 멋있다. 앞으로도 기대한다. 진짜.

전박찬 백우람 배우는 ‘뜨거움’이다. 뜨거운 에너지가 있다. 사람들에게 꼭 무대에 선 백우람 배우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람이 뜨거운 걸 직접 봐야 하니까. 당부라면, 그냥 건강했으면 좋겠다. 건강해야 또 만나서 작업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결국 나 멋있어 보이려고 작업하는 건 아니니까, 더 많은 사람 앞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사유를 꼭 함께 말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무대에 백우람 배우가 앉아 있다. 팔과 다리에는 “움직이지 마” “똑바로 서” 등의 글씨가 쓰여 있다.

    극단 애인 <1인 무대> 중 백우람 <침묵의 5, 6초>

  • 백우람 배우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다.

    백우람 배우, <로드킬 인 더 씨어터>

  • 전박찬 배우가 양팔을 옆으로 붙이고 꼿꼿이 서서 말한다. 자막: “주변 경관을 위하여 투명하게 설치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래? 추상적인 말을 말하고 싶어요.”

    전박찬 배우,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백우람

극단 애인 배우. 대구예술대학교에서 사진영상을 전공했다. 극단 애인 창단공연 <함께 부르는 노래>(2009)로 데뷔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전쟁터산책> <인정투쟁> <1인 무대>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벙커> <댄스 네이션>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_선택>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2013년 밀양공연예술제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로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baekghol@naver.com

전박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2009년 연극 <매일 만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사랑했었다>로 데뷔했다. 공동창작집단 코끼리만보 멤버로 <말들의 무덤> <맨 끝줄 소년> 등에 출연했고,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7번국도>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등에 출연했다.
jeonbakchan@gmail.com

진행·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기획자 suna.choe@gmail.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naver.com
자료 사진 제공. 극단 애인(<1인 무대>), 국립극단(<로드킬 인 더 씨어터>)

2023년 9월 (45호)

상세내용

이슈

서로에게 예술적 영감을 주고 다른 세계를 일깨우는 예술가 친구는 어떻게 만나게 될까? 일로 만난 사이를 넘어 예술과 삶을 나누는 관계는 어떻게 이뤄질까? 예술활동에 영향을 주고받는 동료이자 친구 간에 일어나는 창작의 ‘케미’와 갈등,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진주 작가×창파 아트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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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람 배우×전박찬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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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미 배우×조화영 배우

백우람 배우는 <침묵의 오육초; 시를 그리다>를, 전박찬 배우는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두 배우 모두 빼곡한 연습 일정 때문에 인터뷰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간신히 각자 연습을 마치고 대학로 이음센터 이음아트홀에서 만나기로 했다.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할 때는 역시나 배우답게 멋있으면서도 자연스러운 포즈를 취한다. 서로의 스타일이 부럽다면서도 기죽지 않는다. 이들의 대화는 인터뷰 마치고 술 한잔하자는 약속으로 시작되었고, 공연 이야기와 소소한 일상 등 긴 수다로 이어졌다.

  • 백우람, 전박찬 배우가 등받이 없는 긴 의자에 시소를 탄 것처럼 마주 앉아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왼쪽부터 백우람 배우, 전박찬 배우

공연 연습을 하고 와서 피곤할 법도 한데, 활기차 보여서 다행이다. 두 분은 얼마 만에 만난 건가?

백우람 오랜만이다. 생각해 보면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지만. 지난 7월에 전박찬 배우가 출연한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퇴장하는 등장> 공연을 보러 가서 인사 나눴었다. 간신히 마지막 날 표를 구할 수 있었다.

전박찬 그날 무척 반가웠다. 작년 12월 말 선돌극장에서 백우람 배우가 직접 큐레이팅해서 만든 <벙커>를 봤고, 올해 극단 애인에서 공연한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_선택>은 표를 구하기 힘들어서 못봤다. 극단의 다른 분들이 보고 왔다고 자랑하길래 좀 억울했다.

백우람 나는 요즘 1인극을 준비 중이다. <침묵의 오육초; 시를 그리다>라는 작품을 8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이음아트홀에서 공연하는데,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하지는 못하고 있다.

전박찬 이 시즌에 엄청 많은 공연이 경쟁적으로 올라간다. 나도 8월 26일부터 9월 3일까지 구자혜 작·연출 <그로토프스키 트레이닝>을 공연하니, 이번에도 백우람 배우의 공연을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일하다 보면 서로 일정이 딱 겹치는 경우가 많다. 작업이 많아 좋다고 해야 하나, 경쟁작이 늘었다고 해야 하나.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 친해진 계기도 듣고 싶다.

백우람 2021년 극단 애인의 <1인 무대> 공연으로 처음 만났다. 강보람, 강희철, 어선미, 하지성, 그리고 나. 5명의 배우가 각자 과거와 오늘의 ‘나’를 자전적으로 이야기한 공연이다. 전박찬 배우가 그 공연의 음성해설을 해줬다.

전박찬 맞다. 여기 이음아트홀에서 했다. 사실 나는 백우람 배우를 <1인 무대> 포스터로 먼저 만났다. 이음아트홀 앞을 지나가고 있는데, 이 멋있는 배우는 누구지? 공연 보러 와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사진이 엄청 잘 나왔잖나. (웃음) 그런데 그 작품의 음성해설을 제안받은 거다. 그때는 코로나가 너무 심각한 상황이어서 결국 관객과 만나는 공연은 하지 못했다. 원래 음성해설자는 연습을 충분히 봐야 하는데, 마스크를 쓰더라도 너무 위험한 상황이어서 몇 번 볼 수가 없었다. 리허설을 영상으로 보았고, 구자혜 작가가 써준 음성해설 대본으로 공연 실황을 찍어서 영상화하는 것으로 전환해 진행했다. 그래서 아쉬운 첫 만남이었다. 관객을 못 만나니까 음성해설도 좀 더 잘하고 싶었고. 꼭 다시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백우람 관객 없이 공연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전박찬 배우 덕분에 많은 힘을 받았고 잘 해냈던 것 같다.

전박찬 그때 <1인 무대>를 객석에서 본 관객은 없지만, 나는 어떻게 보면 관객의 관점이니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나도 그때 작업자로서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았다. 백우람 배우가 워낙 몸을 잘 쓰는 배우여서, 내 몸에 대해 고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우람 너무 좋게만 봐주는 거 아닌가.

전박찬 좋았던 것을 좋았다고 말하는 건데. 우리는 서로 칭찬하고 쑥스러워하는 사이다. (웃음) 나는 배우가 되기 전에 조명 스태프를 했다. 처음 조명작업을 하러 간 것이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가 문화일보홀에서 공연했을 때였다. 조명 셋업 날부터 공연 때까지 극장에 계속 같이 있었다. 지금이야 장애인식개선 교육 같은 것을 받을 기회도 있고 책도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무관심할 때였는데,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장애예술가들을 만나게 된 거다. 그러면서 계속 고민이 있었다. 언제까지 장애인 비장애인 나눠서 공연해야 하지? 이렇게 나눠서 하는 게 맞나? 잘 몰라서, 서로 불편한 게 있어서 안 하는 건가? 그래서 다른 팀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보기도 했고,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시간이 20대 때부터 자연스럽게 있었다. 그때는 이렇게 무대에 같이 서고 서로 작업에서 영감받고 협업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길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백우람 요즘 들어 그런 협업의 기회가 많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대학교 때 졸업작품으로 <콤플렉스>라는 제목으로 나의 누드 사진을 찍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몸을 발견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 또한 하나의 과정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기보다는 나에게 집중하며 살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극단 애인 활동 외에 외부 작업할 때 어려운 점이, 그 사람들은 나를 처음 보고 판단하는 거잖나. 자기 기준에 맞춰 한 번 이렇게 해보세요, 저렇게 해보세요, 이런 말이 나올 때면…. 내가 말할 때 조금 답답해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우리가 함께 무대에 섰던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작업할 때는 그러지 않아서 좋았다. 나는 충분히 그 시간을 견디고 그 한마디를 하기 위해 에너지를 썼을 때 느끼는 희열이 있다.

전박찬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백우람 배우는 ‘비둘기’ 역할을 맡았는데, ‘세 명의 우는 비둘기’ 장면을 할 때 백우람 배우의 대사가 정말 많았다. 연습실에서는 그런 얘기도 있었다. 백우람 배우가 말이 빠르지는 않으니까, 대사량이 다른 배우들과 같으면 혼자 주인공 되는 것 아니냐. (웃음) 나는 다음 장면에 등장하기 위해 우는 비둘기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무대 윙에서 보고 있었는데, 셋이 우는 모습이 너무 웃기고 슬펐다. 그 모습에서 희열이 느껴졌는데, 백우람 배우가 얘기하는 희열이었던 것 같다.

서로를 어떤 예술가라고 생각하는가?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하다.

백우람 전박찬 배우는 되게 착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성실한 것도 진짜고. 그런데 내가 보는 전박찬 배우는 되게 욕심이 많은 것 같다. 배우로서 욕심이 많은 사람. <로드킬 인 더 씨어터> 연습 때 다들 ‘B’가 주인공이라고 하지 않았나. 사실 힘든 역할이어서 함부로 나서지 못했는데, 그때 형이 스스로 ‘B’ 역할을 하고 싶다는 거다. 그래서 욕심이 많구나, 생각했다. 아는 배우에서 형으로 넘어가는 친밀감을 느꼈던 순간은, 얘기해도 되나 싶은데, 사실 함께 담배를 피우면서 일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 시간이 쌓이다 보니 친해졌던 것 같다. 웹진[이음]에서 이번 인터뷰를 제안하면서 극단 애인 말고 외부 작업에서 만난 예술가 친구를 추천해주면 좋겠다고 했는데, 그때 전박찬 배우를 떠올렸다. 편하기도 했고, 형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

전박찬 인정한다. 욕심이 있었다. (웃음) ‘B’를 하고 싶었지만 처음 작업해 보는 배우들도 있어서 날름 하겠다고 못 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백우람 배우가 정확하게 나를 꿰뚫어 본 거다. 작년에 <로드킬 인 더 씨어터>가 백상예술대상 연극상 후보에 올라 시상식에 함께 참석했던 때가 기억난다. 수상은 못했는데, 끝나고 둘이 좋은 데서 맛있는 짬뽕 먹으면서 그런 얘기를 했었다. 오늘은 한 명은 객석에 앉아 있고 한 명은 받을지 안 받을지 모르는 상을 기다리며 대기석에 있었지만, 나중에 함께 턱시도 입고 레드카펫 밟자고. 어떻게 보면 서로 경쟁자이고 서로 네가 상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하지만, 진심으로는 둘이 같이 받았으면 좋겠다. 이 뜨거운 예술가랑 좋은 작업도 하고 싶지만, 좋은 자리에 같이 가고 싶다.

백우람 그때도 있었잖나. 갑자기 술 한잔하자고 이태원에서 만난 날 술을 엄청 많이 마셨다. 그때 많이 친해졌던 것 같다.

전박찬 백우람 배우는 워낙 잘 마시고, 나는 조금 덜 잘 마신다. (웃음)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코로나 시국이라 술을 마실 기회가 거의 없었다. 그때 엄청 즐거웠다. 오늘도 끝나고 한잔하자고 했다.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 다양한 표정의 클로즈업 사진(백우람 배우 2컷, 전박찬 배우 2컷)

서로의 작업 중에서 ‘원픽’을 꼽는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백우람 전박찬 배우의 작업 중에서 원픽을 꼽는다면 단언컨대 올해 7월 공연한 <퇴장하는 등장>이다. 혼자 세대와 젠더를 오가며 모든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현실에서는 배제되고 짓눌린 존재들인데, 무대에서는 자연스러움을 연기하라고 한다. 자연스러움이란 뭘까 질문을 던지는 작품은 나에게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줬다. 형의 연기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특히, 공연 중간쯤에 큰 문이 열리면서 등장하고 또 퇴장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전박찬 그 작업의 피드백을 많이 받지 못했다. 퀴어의 죽음에 대한 사유를 담은 공연이었기 때문에 다들 이야기하기 어려워했다. 공연 중간에 성 소수자와 장애 당사자, 두 소수자가 교차하는 순간이 있었다. 그다음에 금고 문을 열고 들어가서, “너희가 성 소수자, 장애인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틀렸어”라고 얘기한다. 내게도 힘든 장면이었는데 이렇게 얘기해주니 고맙다.
나에게 백우람 배우의 원픽은 단언컨대 <로드킬 인 더 씨어터>에서 ‘우는 비둘기’ 장면이다. 자기 스스로 발화했을 때 느껴지는 그런 진폭이 객석에까지 가 닿았다. 함께 작업하면서 이런 힘을 받고 나아갈 수 있었다. 처음 만났던 <1인 무대>의 경우는 정말 강렬하고 나에게 자극이 되었지만, 음성해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벙커> 공연 때는 아쉬움이 있었다. 작업에 대한 아쉬움은 아니다. 백우람 배우가 직접 지원서 내고 기획하는 작업이어서 내가 어떤 역할로든 함께하고 싶었는데, 시점을 놓쳐버린 거다. 그래서 아쉽고 미안했다. 사실 원픽이어서 <로드킬 인 더 씨어터> 하나를 꼽았지만, 내가 앞으로 보게 될 공연이 나의 새로운 원픽이 되지 않을까.

만약 상대에게 주고 싶은, 또는 받고 싶은 능력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 주로 어떤 것에서 예술적인 영감을 얻는지 궁금하다.

백우람 나는 나로 충분하다! 농담이고. (웃음) 전박찬 배우에게 받고 싶은 능력은 배려심이다. 진심으로 생명을 존중하고 배려한다.

전박찬 부끄럽다. 나는 백우람 배우의 몸이라고 그럴까 했는데. (웃음) 사실 백우람 배우의 사유를 갖고 오고 싶다. 백우람 배우는 직접 무대에 공연을 올린다. 사실 지원이 충분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작업 환경일 텐데, 이 배우는 왜 스스로 기획하고 작업을 할까.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때도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데서 자기 사유로 발화하거나 움직이면서 동료들에게 자극이 되는 순간순간이 있었다. 모두가 고사하는 역할을 자기가 하겠다고 얘기했을 때, ‘백우람’이라는 배우가 관객에게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지를 정확히 사유하고 있었다. 사실 몸도 부럽다. 생각하는 것들이 몸에서 드러난다. 그리고 되게 칼 같다.
예술적인 영감은 결국 동료들에게서 오는 것 같다. 내가 잘나서 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로드킬 인 더 씨어터>는 로드킬 당한 동물들에 관한 얘기인데, 내가 당사자도 아니고 내 사유만으로는 밀어붙이기 너무 힘들었다. 동료들이 함께 제시하고 그것을 같이 밀고 나가 결국 만들어지는 것 같다. 동료 배우들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 연기가 바뀌기도 하고 내 연기를 더 확고하게 구축하는 것 같다.

백우람 나도 비슷하다.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영감을 얻고, 사람을 좋아하니까 같이 하려고 하고. 그런데 나는 사실 혼자가 편하다. 공연이야말로 혼자 할 수 없는데도, 같이 있으면 배려한다면서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나. 혼자 있으면 안 해도 되니까 편하다. 그런데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건 아니다. 신기하게. 늘 하는 이야기인데, 그런 면에서 나는 내가 배우라는 것에 감사한다. 산으로 치면 히말라야 정도로 감사하다. (웃음)

전박찬 나도 혼자가 편하다. 우린 직업을 잘못 선택했다. 혼자가 편한데, 일은 누군가와 함께해야 하니. (웃음) 사실 요즘은 가끔 배우라는 직업이 가혹하다고 생각한다. 가혹해서 지치는 것 같고, 가끔 안 하고 싶다. 근데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으니까 계속하고 있는 거다. 얘기할 필요가 없어져서 안 했으면 좋겠다. 당사자성이 부각되는 작품을 할 때면, 어쩌면 객석 어딘가에 있을 누군가에게 고단한 이야기가 되기도 한다. 우리 작품 중에는 막 행복한 역할로 나오는 건 없는 것 같다. 대부분 어떤 이슈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고 관객에게 나의 사유로 밀어붙이는 얘기들을 하니까 고민스럽다. 요즘 들어 나의 그릇이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백우람 배우에게 받고 싶은 게 ‘사유’라고 했던 것 같다.

예술 현장에서 만나 친구가 되고 동료가 되기가 쉽지 않다. 서로에게 예술가 친구, 동료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백우람 열린 마음? 나는 무대에 서고 싶지만, 접근성이 안 되면 못한다. 어떻게 접근하지를 돌아보면, 누군가의 희생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박찬 사실 한 작업이 끝나고 나서 다시 다른 작업으로 만나 연결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백우람 배우와 <1인 무대>로 만난 이후 운 좋게 함께 한 무대에 섰지만, 다음 기회가 없어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서로 공연도 보러 가고 따로 만났던 거다. 극단 애인에서 접근성에 관한 워크숍이 있었는데, 무턱대고 그냥 참여했다. 그때 왜 거기에 갔나 생각해 보니, 함께 작업하고 관심 두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내가 말을 하지 않더라도 같이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진짜 동료가 되려면 서로가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근데, 우리 좀 더 친해지려면 여행이라도 한번 가야 하지 않을까. 만약 우리에게 24시간이 있다면 무엇을 할까?

백우람 방-콕! (웃음) 진짜 방콕은 멀어서 못 간다.

전박찬 나는 바다를 좋아한다. 다른 친구랑 속초에 갔을 때도 우리 둘이 함께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백우람 좋다. 우리 진짜 여행 한번 가자. 함께 속초 가자. 속초 가서 방-콕! (웃음)

두 분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지 한 단어로 담아본다면? 기대와 당부의 말씀도 해달라.

백우람 나에게 전박찬 배우는 그냥 ‘형’이다. 내겐 친형이 없다. 어렸을 때 괴롭힘을 많이 당했는데, 그때 형이 있었다면 괴롭히는 사람들을 혼내주었을 거다. 그런 든든함이 있다. 지금도 충분히 멋있다. 앞으로도 기대한다. 진짜.

전박찬 백우람 배우는 ‘뜨거움’이다. 뜨거운 에너지가 있다. 사람들에게 꼭 무대에 선 백우람 배우를 보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람이 뜨거운 걸 직접 봐야 하니까. 당부라면, 그냥 건강했으면 좋겠다. 건강해야 또 만나서 작업할 수 있으니까. 우리가 결국 나 멋있어 보이려고 작업하는 건 아니니까, 더 많은 사람 앞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사유를 꼭 함께 말할 기회가 있기를 기대해 본다.

  • 무대에 백우람 배우가 앉아 있다. 팔과 다리에는 “움직이지 마” “똑바로 서” 등의 글씨가 쓰여 있다.

    극단 애인 <1인 무대> 중 백우람 <침묵의 5, 6초>

  • 백우람 배우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서 있다.

    백우람 배우, <로드킬 인 더 씨어터>

  • 전박찬 배우가 양팔을 옆으로 붙이고 꼿꼿이 서서 말한다. 자막: “주변 경관을 위하여 투명하게 설치되었다고 들었어요. 그래? 추상적인 말을 말하고 싶어요.”

    전박찬 배우,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백우람

극단 애인 배우. 대구예술대학교에서 사진영상을 전공했다. 극단 애인 창단공연 <함께 부르는 노래>(2009)로 데뷔했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전쟁터산책> <인정투쟁> <1인 무대>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벙커> <댄스 네이션>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_선택>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했다. 2013년 밀양공연예술제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로 남자연기상을 수상했다.
baekghol@naver.com

전박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2009년 연극 <매일 만나기에는 우리는 너무나 사랑했었다>로 데뷔했다. 공동창작집단 코끼리만보 멤버로 <말들의 무덤> <맨 끝줄 소년> 등에 출연했고, 여기는 당연히, 극장의 <7번국도> <우리는 농담이(아니)야> <로드킬 인 더 씨어터> 등에 출연했다.
jeonbakchan@gmail.com

진행·정리. 최순화 프로젝트 기획자 suna.choe@gmail.com
사진. 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naver.com
자료 사진 제공. 극단 애인(<1인 무대>), 국립극단(<로드킬 인 더 씨어터>)

2023년 9월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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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8-28 08: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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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무대에서 진중한 모습만 보다가 서로 칭찬하며 쑥쓰러워하고 툭툭 던지는 말 속에서 꾸러기같은 모습이 떠오르네요. 두 분의 공연을 동시에 볼 수 있는 행운도 즐겁습니다.

2023-08-25 14: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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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람 배우님, 전박찬 배우님 공연 기대돼요! 경쟁작이 많아지는 이 시즌이 관객에겐 행복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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