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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영 사진작가

인터뷰 납작한 사진 위에 모호하고 풍부한 감각

  • 박지수 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 등록일 2023-08-23
  • 조회수747

인터뷰

종이 위에서든, 또 스크린 위에서든 사진은 언제나 납작한 몸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오로지 표면만 볼 수 있는 시각에만 의존해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의 납작한 평면에는 소리도, 질감도, 냄새도 머물지 못한다. 시야 확보를 위해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 눈은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사진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납작한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우리의 눈은 사진에 더 가까이 갈 수 없고, 우리의 손은 사진에 뻗을 수도 없다.

납작한 사진 위에 점자를 올리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유다영은 우리가 눈에만 의존해 바라보는 사진을 다른 감각으로도 느껴보도록 일깨운다. 더 가까이 오라고, 손을 뻗어 만져보라고. 그 과정은 우리가 사진을 바라볼 때 익숙했던 방식을 거스른다. 사진을 눈으로만 볼 수 있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하도록 타이른다. 각자 결핍된 감각에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모순에서 벗어나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는 감각에 집중하도록 다독인다.

  • 유다영 작가가 정면을 바라보고 팔짱을 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로 벽면에는 일렬로 사진작품이 걸려 있다.

우선 이번 전시 제목 《점자 이미지에서 파생된 타이포 시와 노래》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점자’ ‘이미지’ ‘타이포 시’ ‘노래’. 마치 작품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을 조합한 제목 같다. 각각 무엇을 지시하는지 또는 어떤 의미를 생각하며 제목을 지었나?

이 작업을 처음 시작한 게 2022년 12월쯤이다. 가장 먼저 고려한 매체가 점자였고, 이미지와 점자를 연결 지으려고 했다. 이미지는 시각적이고 점자는 촉각적인데, 이를 좀 더 신체적으로 확장할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5년 정도 수집한 텍스트를 점자로 가공한 ‘타이포 시’를 더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본 장면이나 이미지를 글로 옮겨 적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타이포 시’는 이미지와 연결된 나의 반응이 담긴 텍스트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점자로 번역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류들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청각적인 음악이나 어떤 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서 ‘노래’라는 단어도 덧붙였다. 여러 다양한 감각을 종합적으로 묶어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작품에 사진과 글이 함께 등장할 때가 많고, 이것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순간에 사진을 찍고,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게 되는가?

한 장도 찍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할 정도로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편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모니터로 보면 신기하게도 무슨 암호처럼 다가온다. 무언가 비밀을 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게 보이는 그 암호와 비밀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글을 쓰는 것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내게는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면 사진을 찍을 때 좀 더 선호하거나 관심 깊게 바라보는 대상이 있나?

그 질문을 받으니 ‘애정’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동생이나 친구들처럼 가까이 있는 주변 인물을 주로 촬영했다. 애정을 느끼는 대상들, 거기서 출발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없다면, 그리고 싶었던 것들을 사진으로 간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것을 찍고, 그 이미지를 동생이나 어머니와 공유하고 그것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렇게 이미지를 공유하고 이야기 나눴던 것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고, 어느새 사진은 내게 너무나 특별한 도구이자 동시에 너무나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보통 사진에 글을 더할 때는 의미나 이야기를 좀 더 분명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당신의 작업에서는 오히려 글과 사진이 결합하여 더욱 모호해지는 면이 있다. 사진과 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사진에는 텍스트가 꼭 필요할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텍스트가 없으면 사진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사진에 보이는 것만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십상인 것 같다. 그럴 때 텍스트가 있다면 사진의 이미지를 좀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 붙는 텍스트가 꼭 의미를 분명하게 직접 이야기하거나 설명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만지면서 읽어야 하는 점자가 이미지 위에 결합해 있다. 이 점자를 관객이 만져도 되는지, 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했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점자를 만져도 된다. 시각장애가 있든 없든 이미지 위에 있는 점자를 만지면서 감상하기를 기대했다. 천 위에 프린트한 이미지로 설치한 작품도 관객이 직접 손으로 들춰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그런데 관객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직접 만진다는 것에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음에는 관객이 더욱 적극적으로 만질 수 있도록 안내나 장치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자를 작업에 활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2019년 즈음 회사에 다니면서 만난 동료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사진을 공부했다고 하니, 자기는 사진을 보는 게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사진을 보는 게 언제나 어려웠기에 그 언니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언니는 신체적인 제한 때문에 어려웠던 것이고, 나의 경우에는 작업자로서 사진에서 의미를 읽어내거나 사진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닮은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왜 사진이든 카메라이든 꼭 비시각장애인의 전유물처럼 다뤄져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고, 이를 작업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십 대 시절에 원추각막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이 작업과도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고, 사물도 색 정도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공막 렌즈로 교정시력이 가능해 운전도 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스스로 시각장애인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국내의 장애등급 기준에서는 장애이지만, 병원에서는 장애가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제도권에서 일률적인 기준으로 장애등급을 나누는 것 자체가 개인마다 상황에 안 맞을 때가 있고, 그 기준 자체도 애매한 것 같다. 이러한 생각과 경험들이 아무래도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전시장에서는 사진 이미지, 텍스트, 점자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매체를 결합한 전시를 구상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전시장에 들어오면 장애 유무나 각자가 지닌 신체적 능력과 상관없이 모두 동등하게 나름대로 무언가를 감각하고 경험하기를 원했다. 또한, 사진이라고 해서 꼭 시각적으로만 봐야 할까, 다른 감각으로도 사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해보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우리가 지닌 여러 감각을 스스로 연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창작센터에 입주해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껏 작업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번에 창작센터에 입주하면서 개인 작업실이 처음 생겼고, 그 안에 간이 스튜디오를 마련했더니 촬영 과정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함께 사진을 공부했던 친구 대부분이 이제 작업을 하지 않아서 작업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았는데, 함께 입주해 있는 다른 작가들과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무척 좋다. 게다가 다른 작가들이 내가 몰랐던 작업 방식이나 도구를 알려줘서 배워가는 것도 많다.

지금은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이거나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콰이어트 룸(Quite Room)>(가제)이라는 작업을 준비하면서 리서치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청각과 관련된 작업인데, 일상에서 경험한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소음 차단)’ 기능에서 착안했다. 사람들이 점점 이어폰을 많이 사용하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통해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일종의 ‘자기만의 방’을 추구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청각 상태를 조정한다는 점이 흥미롭고, 이를 청각장애인의 감각이나 경험과 연결해 보고 싶다. 어머니가 오래전부터 한쪽 귀가 안 들려서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다. 이 작업 또한 이번 전시처럼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감각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작업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올해 단체전 2개가 잡혀 있다. 10월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단체전은 서울문화재단의 다른 창작공간들과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가 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그리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한 뒤 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보고전 성격의 단체전도 준비해야 한다. 이 전시는 12월쯤 열릴 것 같다. 작업 목표라면 작업의 주제나 관심사를 좀 더 사회적인 맥락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 사적인 감정을 재료로 작업해왔다. 앞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라든지 사회 안에서의 장애 문제, 동시대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보고 싶다. 작가로서 유행하는 이슈를 따르기보다는 지금 내가 처한 신체적 상황에서 오래 관찰하고 생각한 관심사를 다른 이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

  • 전시장 전경. 하얀 벽면에는 작은 사진작품들이 걸려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 액자 2개가 세워져 있다.
  • 하얀 벽면에 나무 받침대 여러 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그 위에 사진작품이 놓여 있다.
  • 하얀 시폰 커튼이 쳐져 있는 빛이 환한 창가에 강아지가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사진 표면에는 점자가 찍혀 있다.
  • 외국의 어느 도로 옆 표지판. 사진 표면에는 점자가 찍혀 있다.
  • 풀꽃 그림자 같은 느낌이다. 사진 표면 가득 점자가 찍혀 있다.

위 : 전시장 전경 | 아래 : (왼쪽) <White snow and dog>, 2023, C-print, 60×80cm | (중앙) <All did not goaway. What is missing is the mind>, 2022, braille uv printer on canvas, 19.5×29.5cm | (오른쪽) <Accidentally found a very old rotten seed under the bed. It was unknown because it withered away leaving only the shape. No one knows why he died like a seed. It was there>, 2022, braille uv printer on canvas, 19.5×29.5cm

유다영

개인 또는 집단의 관계에서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언어와 감정의 불규칙 속에서 파생된 텍스트를 사진-이미지와의 연결 지점을 찾는 것에 관심을 두고, 이를 퍼포먼스나 설치를 활용하여 매체와 도구를 확장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개인전 《소실의 순간: disappearance: 》(2021), 《점자 이미지에서 파생된 타이포 시와 노래》(2023), 단체전 《International Art Festival》(2022)이 있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13기 입주작가.
dayoungryu93@gmail.com
▸ 홈페이지

박지수

[월간사진], [VON], [포토닷]을 거쳐 현재 [보스토크]까지 줄곧 사진잡지에서 사진과 글을 고르고 다듬는 일을 해오고 있다. [경향신문], [시사IN] 등에 사진 관련 칼럼을 연재했으며, 그동안 사진에 관해 쓴 글을 엮어 개인전 《기억된 사진들 2010-2020》(2020)을 열었다. 사진전 《리플렉타 오브 리플렉타》(2016), 《이민지 개인전: 사이트-래그》(2018)를 기획했고, 《더 스크랩》(2016)의 공동 기획팀에 참여했다.
headspark@naver.com

사진.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naver.com
자료 제공.유다영
장소 협조.팩토리2

2023년 9월 (45호)

상세내용

인터뷰

종이 위에서든, 또 스크린 위에서든 사진은 언제나 납작한 몸으로 눈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오로지 표면만 볼 수 있는 시각에만 의존해 사진을 바라본다. 사진의 납작한 평면에는 소리도, 질감도, 냄새도 머물지 못한다. 시야 확보를 위해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 눈은 끝내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사진을 그저 바라볼 뿐이다. 납작한 이미지가 선명할수록 우리의 눈은 사진에 더 가까이 갈 수 없고, 우리의 손은 사진에 뻗을 수도 없다.

납작한 사진 위에 점자를 올리는 작품을 선보이는 작가 유다영은 우리가 눈에만 의존해 바라보는 사진을 다른 감각으로도 느껴보도록 일깨운다. 더 가까이 오라고, 손을 뻗어 만져보라고. 그 과정은 우리가 사진을 바라볼 때 익숙했던 방식을 거스른다. 사진을 눈으로만 볼 수 있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을 다시 생각하도록 타이른다. 각자 결핍된 감각에 자신의 정체성을 일치시키는 모순에서 벗어나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있는 감각에 집중하도록 다독인다.

  • 유다영 작가가 정면을 바라보고 팔짱을 낀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뒤로 벽면에는 일렬로 사진작품이 걸려 있다.

우선 이번 전시 제목 《점자 이미지에서 파생된 타이포 시와 노래》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점자’ ‘이미지’ ‘타이포 시’ ‘노래’. 마치 작품을 이루는 구성 요소들을 조합한 제목 같다. 각각 무엇을 지시하는지 또는 어떤 의미를 생각하며 제목을 지었나?

이 작업을 처음 시작한 게 2022년 12월쯤이다. 가장 먼저 고려한 매체가 점자였고, 이미지와 점자를 연결 지으려고 했다. 이미지는 시각적이고 점자는 촉각적인데, 이를 좀 더 신체적으로 확장할 방법이 있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5년 정도 수집한 텍스트를 점자로 가공한 ‘타이포 시’를 더하게 되었다. 일상에서 본 장면이나 이미지를 글로 옮겨 적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다. ‘타이포 시’는 이미지와 연결된 나의 반응이 담긴 텍스트라고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는 점자로 번역하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오류들이 포함되어있다. 그리고 청각적인 음악이나 어떤 음에 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어서 ‘노래’라는 단어도 덧붙였다. 여러 다양한 감각을 종합적으로 묶어 어떤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작품에 사진과 글이 함께 등장할 때가 많고, 이것이 작품의 근간을 이루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순간에 사진을 찍고, 어떤 상황에서 글을 쓰게 되는가?

한 장도 찍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할 정도로 끊임없이 사진을 찍는 편이다. 그렇게 매일매일 촬영하고, 그 이미지를 모니터로 보면 신기하게도 무슨 암호처럼 다가온다. 무언가 비밀을 담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내게 보이는 그 암호와 비밀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고민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진을 찍고, 이미지를 바라보면서 글을 쓰는 것은 스스로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내게는 익숙한 방식이다.

그러면 사진을 찍을 때 좀 더 선호하거나 관심 깊게 바라보는 대상이 있나?

그 질문을 받으니 ‘애정’이란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른다. 처음 사진을 시작했을 때 동생이나 친구들처럼 가까이 있는 주변 인물을 주로 촬영했다. 애정을 느끼는 대상들, 거기서 출발했던 것 같다. 사실 처음에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었지만, 스스로 한계를 느꼈다. 내가 원하는 대로 그릴 수 없다면, 그리고 싶었던 것들을 사진으로 간직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간직하고 싶은 것을 찍고, 그 이미지를 동생이나 어머니와 공유하고 그것에 관해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이렇게 이미지를 공유하고 이야기 나눴던 것이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고, 어느새 사진은 내게 너무나 특별한 도구이자 동시에 너무나 일상적인 도구가 되었다.

보통 사진에 글을 더할 때는 의미나 이야기를 좀 더 분명하게 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당신의 작업에서는 오히려 글과 사진이 결합하여 더욱 모호해지는 면이 있다. 사진과 글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사진에는 텍스트가 꼭 필요할 때가 많다고 생각한다. 텍스트가 없으면 사진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사진에 보이는 것만 단순하게 받아들이기 십상인 것 같다. 그럴 때 텍스트가 있다면 사진의 이미지를 좀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에 붙는 텍스트가 꼭 의미를 분명하게 직접 이야기하거나 설명적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손으로 만지면서 읽어야 하는 점자가 이미지 위에 결합해 있다. 이 점자를 관객이 만져도 되는지, 이를 염두에 두고 작품을 제작했는지 궁금하다.

당연히 점자를 만져도 된다. 시각장애가 있든 없든 이미지 위에 있는 점자를 만지면서 감상하기를 기대했다. 천 위에 프린트한 이미지로 설치한 작품도 관객이 직접 손으로 들춰보는 모습을 상상하며 만들었다. 그런데 관객이 전시장에서 작품을 직접 만진다는 것에 조심스러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다음에는 관객이 더욱 적극적으로 만질 수 있도록 안내나 장치를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점자를 작업에 활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2019년 즈음 회사에 다니면서 만난 동료 중에 시각장애인이 있다. 대화를 나누다가 내가 사진을 공부했다고 하니, 자기는 사진을 보는 게 너무 어렵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 역시 사진을 보는 게 언제나 어려웠기에 그 언니의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언니는 신체적인 제한 때문에 어려웠던 것이고, 나의 경우에는 작업자로서 사진에서 의미를 읽어내거나 사진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어려웠던 것이지만, 어쨌든 우리가 닮은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그러면서 왜 사진이든 카메라이든 꼭 비시각장애인의 전유물처럼 다뤄져야 하는지 의문이 생겼고, 이를 작업으로 접근해보기로 했다.

십 대 시절에 원추각막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러한 개인적 배경이 작업과도 연결되는지 궁금하다.

나는 사람의 얼굴을 식별할 수 없고, 사물도 색 정도만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공막 렌즈로 교정시력이 가능해 운전도 할 수 있고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서 스스로 시각장애인이라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게는 좀 애매한 부분이 있다. 국내의 장애등급 기준에서는 장애이지만, 병원에서는 장애가 아니라고 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제도권에서 일률적인 기준으로 장애등급을 나누는 것 자체가 개인마다 상황에 안 맞을 때가 있고, 그 기준 자체도 애매한 것 같다. 이러한 생각과 경험들이 아무래도 작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전시장에서는 사진 이미지, 텍스트, 점자 등 여러 매체를 활용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렇게 여러 매체를 결합한 전시를 구상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단 전시장에 들어오면 장애 유무나 각자가 지닌 신체적 능력과 상관없이 모두 동등하게 나름대로 무언가를 감각하고 경험하기를 원했다. 또한, 사진이라고 해서 꼭 시각적으로만 봐야 할까, 다른 감각으로도 사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해보기를 원했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우리가 지닌 여러 감각을 스스로 연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현재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해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창작센터에 입주해서 생긴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

지금껏 작업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작업을 계속해 왔다. 이번에 창작센터에 입주하면서 개인 작업실이 처음 생겼고, 그 안에 간이 스튜디오를 마련했더니 촬영 과정이 훨씬 수월해졌다. 그리고 대학교에서 함께 사진을 공부했던 친구 대부분이 이제 작업을 하지 않아서 작업에 관해 이야기 나누기가 쉽지 않았는데, 함께 입주해 있는 다른 작가들과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무척 좋다. 게다가 다른 작가들이 내가 몰랐던 작업 방식이나 도구를 알려줘서 배워가는 것도 많다.

지금은 어떤 작업을 진행 중이거나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콰이어트 룸(Quite Room)>(가제)이라는 작업을 준비하면서 리서치를 하고 있다. 이번에는 청각과 관련된 작업인데, 일상에서 경험한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ing, 소음 차단)’ 기능에서 착안했다. 사람들이 점점 이어폰을 많이 사용하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통해 외부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일종의 ‘자기만의 방’을 추구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청각 상태를 조정한다는 점이 흥미롭고, 이를 청각장애인의 감각이나 경험과 연결해 보고 싶다. 어머니가 오래전부터 한쪽 귀가 안 들려서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다. 이 작업 또한 이번 전시처럼 장애 유무와 상관없이 모두가 감각할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이나 작업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

올해 단체전 2개가 잡혀 있다. 10월에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단체전은 서울문화재단의 다른 창작공간들과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가 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이다. 그리고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에 입주한 뒤 작업한 결과물을 선보이는 보고전 성격의 단체전도 준비해야 한다. 이 전시는 12월쯤 열릴 것 같다. 작업 목표라면 작업의 주제나 관심사를 좀 더 사회적인 맥락으로 확장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개인적인 이야기, 사적인 감정을 재료로 작업해왔다. 앞으로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이라든지 사회 안에서의 장애 문제, 동시대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해보고 싶다. 작가로서 유행하는 이슈를 따르기보다는 지금 내가 처한 신체적 상황에서 오래 관찰하고 생각한 관심사를 다른 이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

  • 전시장 전경. 하얀 벽면에는 작은 사진작품들이 걸려 있고, 중앙에는 커다란 나무 액자 2개가 세워져 있다.
  • 하얀 벽면에 나무 받침대 여러 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그 위에 사진작품이 놓여 있다.
  • 하얀 시폰 커튼이 쳐져 있는 빛이 환한 창가에 강아지가 창밖을 바라보며 앉아 있다. 사진 표면에는 점자가 찍혀 있다.
  • 외국의 어느 도로 옆 표지판. 사진 표면에는 점자가 찍혀 있다.
  • 풀꽃 그림자 같은 느낌이다. 사진 표면 가득 점자가 찍혀 있다.

위 : 전시장 전경 | 아래 : (왼쪽) <White snow and dog>, 2023, C-print, 60×80cm | (중앙) <All did not goaway. What is missing is the mind>, 2022, braille uv printer on canvas, 19.5×29.5cm | (오른쪽) <Accidentally found a very old rotten seed under the bed. It was unknown because it withered away leaving only the shape. No one knows why he died like a seed. It was there>, 2022, braille uv printer on canvas, 19.5×29.5cm

유다영

개인 또는 집단의 관계에서 카테고리에 속하지 않는 언어와 감정의 불규칙 속에서 파생된 텍스트를 사진-이미지와의 연결 지점을 찾는 것에 관심을 두고, 이를 퍼포먼스나 설치를 활용하여 매체와 도구를 확장하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개인전 《소실의 순간: disappearance: 》(2021), 《점자 이미지에서 파생된 타이포 시와 노래》(2023), 단체전 《International Art Festival》(2022)이 있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13기 입주작가.
dayoungryu93@gmail.com
▸ 홈페이지

박지수

[월간사진], [VON], [포토닷]을 거쳐 현재 [보스토크]까지 줄곧 사진잡지에서 사진과 글을 고르고 다듬는 일을 해오고 있다. [경향신문], [시사IN] 등에 사진 관련 칼럼을 연재했으며, 그동안 사진에 관해 쓴 글을 엮어 개인전 《기억된 사진들 2010-2020》(2020)을 열었다. 사진전 《리플렉타 오브 리플렉타》(2016), 《이민지 개인전: 사이트-래그》(2018)를 기획했고, 《더 스크랩》(2016)의 공동 기획팀에 참여했다.
headspark@naver.com

사진.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naver.com
자료 제공.유다영
장소 협조.팩토리2

2023년 9월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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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1 19: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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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새로운시각을 알수있었어요

2023-08-24 15: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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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갤러리2에서 해당 전시를 접했습니다. 사색적인 사진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당시의 생각이 다시 생생하게 떠오르는 거 같습니다. 유다영 작가님 인터뷰 잘 읽었습니다.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