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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우랜드 발레 〈OH! 타이거〉

리뷰 ‘사이’에서 일어나는 미묘하고도 과감한 모험

  • 황하영 아동청소년극 창작·연구자
  • 등록일 2023-08-23
  • 조회수483

리뷰

2019년 9월 노르웨이의 남쪽 도시 크리스티안산드에서 아시테지 아티스틱 개더링(ASSITEJ Artistic Gathering)이 열렸다. 나는 거기에서 처음으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온 바로우랜드 발레의 무용극 〈OH! 타이거〉(원제: Playful Tiger)를 보았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어린이·청소년 관객 8명과 그 보호자들이 관람하는 공연을 축제 참가자로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서울의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운 좋게도 두 번째로 〈OH! 타이거〉를 보았다. 공연의 특성과 맥락을 고려할 때, 나는 두 차례 모두 관객이라기보다는, 무용수와 관객 사이에 일어나는 공연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아 지켜보는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틀어 가장 강렬하게 남은 인상은 ‘사이’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근원적인, 연극적 모험이다.

관객과 무용수 ‘사이’

금속막대와 줄로 새장처럼 짜인 정교한 틀의 무대 세트에 스테인리스 양동이가 가득 매달려 있다. 아직 관객을 맞이하기 전, 빈 극장에서 세 명의 무용수는 무대 세트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움직인다. 천천히, 미세하게, 공간 전체를 인식하며 움직이는 그들의 몸은 그곳의 사물, 공간, 사람 모두를 향해 열려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관객이 들어오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마치 고유한 톤과 리듬으로 관객을 초대하듯이 계속된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다.

관객과 무용수가 한 공간에 있다.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계속한다. 사물, 공간, 사람 모두를 향해 열려있는 그들의 몸은 오늘 처음 만나는 눈앞의 상대를 향해 호기심을 갖는다.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상대방의 미세한 움직임을 눈치채면 그것을 따라 해본다. 한 번 더 따라 한다. 그리고 따라 하지 않는다. 순간 무용수가 느끼는 충동에 따라 달리 움직여 보기도 한다. 그 가운데 관객이 자세를 바꾸거나 소리를 내면, 그것이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또 그것을 따라 해본다. 관객과 무용수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생겨난다. 서로를 인식하는 사이. 그 사이에서 이번에는 무엇이 일어날까 기다리는 찰나의 긴장과 기대가 부푼다.

무용수는 관객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잃지는 않는다. 스스로 움직임의 형태와 리듬을 발전시켜 나간다. 상대방의 호흡을, 소리를, 움직임을 섬세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따라 하는 것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다시 상대를 향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가 만들어 낸 움직임을 상대에게 건네기도 한다. 마치 상대가 그것을 같이 느끼고 호흡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미묘하고 섬세하게 무용수는 관객과 관계를 쌓아 나가고, 함께 놀이를 만들어 나간다.

차츰 무용수와 관객은 서로의 몸을 접촉하고, 기대어 보고, 들어올리기도 하며, 함께 달리기도 할 만큼 가깝게 만나고 어우러진다. 무용수와 관객 사이의 놀이는 그렇게 발전된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즉흥적으로, 유연하게, 때로는 예기치 않은 모험의 순간을 일으키며 계속된다. 〈OH! 타이거〉는 관객을 만날 때까지 알 수 없는 공연이다. 마음 졸일 만큼의 위험에 과감하게 도전하며 관객과 함께 즉흥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매 공연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다름과 호기심 ‘사이’

〈OH! 타이거〉는 신경다양성을 지닌 어린이·청소년 관객과 보호자들을 위한 공연이다. 바로우랜드 발레는 비장애 어린이·청소년 관객을 위한 〈타이거〉(원제: Tiger Tale)라는 작품을 먼저 만들었고,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어린이·청소년 관객을 위해 새롭게 〈OH! 타이거〉를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 엄격한 일상의 틀에 갇혀 살아가는 가족에게 어느 날 호랑이가 찾아오면서 경직된 집안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이야기이다. 안무가 나타샤 길모어를 비롯한 창작진은 장애인 관객을 위한 공연 및 미술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엘리 그리피스와 협업했다. 리서치 과정에서 특수학교 레지던시를 통해 학생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경험을 쌓았고, 그중에는 미리 제작된 무대 세트를 강당에 설치해 학생들과 함께 움직여 보는 워크숍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창작진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관객들이 고유한 감각적 관점으로 세계를 경험한다는 데 주목하고, 이 고유함을 창작의 중요한 영감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용수들이 관객을 향해 열어두는 감각이다. 몸의 상태가 상대방이 내는 작은 소리나 움직임도 놓치지 않을 만큼 깨어있다. 상대와 주위에 몸의 감각이 열려있는 만큼이나, 자신과 상대의 ‘다름’에 대한 인식도 열려있다. 다르기 때문에 미지의, 그렇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는 만남에 대해 무용수들이 갖는 태도는 닫음이 아니라 열림이고,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그런데 다가가고 싶고, 알고 싶고, 놀이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표현하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충분히 시간과 공간을 주면서도, 넌지시 자신이 상대를 느끼고 관심을 두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드러낸다. 그리고 상대가 주는 것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지도 않고, 자신이 주는 것으로 상대를 가득 채우려고도 하지 않는, 서로의 ‘사이’에서 주고받는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서서히 끊임없이 움직인다. 서로의 ‘다름’ 앞에서 드러내는 무심해 보일 정도로 섬세하고 사려 깊은 호기심이다. 〈OH! 타이거〉의 연극적 모험은 이런 바탕 위에서 일어난다. 상호작용이 무르익어가는 동안, 무용수와 관객 모두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의 차원을 여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과감하게 위험에 도전하면서.

감각과 드라마 ‘사이’

바닥에는 무용수가 조심스럽게 꺼낸 귤들이 굴러다니고, 오렌지 향기를 내뿜는 오렌지색 슈트로 갈아입은 무용수가 무대와 객석을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매달린 양동이들이 도르래처럼 오르락내리락하다 그 안에 들어있던 오렌지색 탁구공들을 쏟아낸다. 〈OH! 타이거〉에는 감각적 재료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후각, 촉각, 시각, 청각의 재료들이 음악, 조명 등과 어우러져 겹겹의 감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귤을 잡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껍질을 까서 먹어보기도 한다. 무용수의 호흡과 함께 생성되는 공연의 리듬도 감각적 풍경의 한 층위를 이룬다.

이야기는 〈타이거〉에 비해 간결해 보일 수는 있으나 단순하지는 않다. 감각적 풍경이 여러 층위로 쌓여서 만드는 복합성이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OH! 타이거〉의 관객이 어떻게 이야기를 경험할까 상상해본다. 무용수의 역동적인 움직임, 공연의 호흡과 리듬, 색깔의 등장과 확산, 음악의 비트와 느낌, 조명의 톤과 분위기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어떤 정서적 여정이 생겨나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그들의 고유한 감각적 관점에서는 엘리 그리피스가 말하듯이 오히려 더욱 풍성한 ‘감정의 팔레트’를 누리고, 겹겹의 감각적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다채로운 감정의 톤과 변화의 드라마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OH! 타이거〉가 결코 단순한 이야기일 수 없는 이유이다.

***

바로우랜드 발레의 〈OH! 타이거〉가 미묘하고도 과감하게 감행하는 모험을 통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란 무용수와 관객 중 어느 한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쪽이 과하게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일 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세계, 서로가 서로에게 주의 깊게 관심을 기울일 때 일어나는 세계이다. 서로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고 상호작용을 진전시켜 나아갈 때,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이 공연의 진정한 동력이 된다. 〈OH! 타이거〉는 무대와 관객 사이 상호적 경험의 추구라는 공연의 근원을 깊이 느끼고 감탄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서로의 ‘다름’ 앞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무용수들, 그리고 관객들이 있다.

  • 무대 한가운데에 금속막대와 줄로 짠 정사각형 프레임의 무대세트가 놓여있고, 세 명의 무용수가 움직임을 하고 있다. 세트 천장의 줄에는 많은 수의 양동이가 매달려 있고 조명에 반사되어 빛난다.
  • 정사각형 프레임의 무대세트 안에서 세 명의 무용수가 의자를 이용해서 움직임을 하고 있다. 바닥 여기저기에 귤이 있다.

〈OH! 타이거〉

바로우랜드 발레|2023.7.21.|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스코틀랜드 현대무용단인 바로우랜드 발레단이 전하는 오렌지 빛깔 메시지. 호랑이가 엄격한 가정집에 방문해 그들의 세계를 뒤집어 놓는다. 가족 관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가 흥겨운 춤, 라이브 음악과 어우러진다. 신경다양성을 가진 어린이·청소년이 감각적 참여를 통해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이머시브 공연 작품이다. 2023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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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우랜드 발레 홈페이지

황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극 전공 교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일깨워주는 ‘인간’에 대한 질문에 관심이 많고, 그들과 연극을 통해 만나는 작업을 공부하고 실천한다. [Youth and Performance], [연극포럼] 등에 연극놀이, 장소특정적 공연, 청소년극과 번역 등에 관한 논문을 다수 기고했다.
hyhwang@karts.ac.kr

사진 제공.아시테지 코리아(ⓒ아시테지코리아_Fotobee)

2023년 9월 (45호)

상세내용

리뷰

2019년 9월 노르웨이의 남쪽 도시 크리스티안산드에서 아시테지 아티스틱 개더링(ASSITEJ Artistic Gathering)이 열렸다. 나는 거기에서 처음으로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온 바로우랜드 발레의 무용극 〈OH! 타이거〉(원제: Playful Tiger)를 보았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어린이·청소년 관객 8명과 그 보호자들이 관람하는 공연을 축제 참가자로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올해 서울의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운 좋게도 두 번째로 〈OH! 타이거〉를 보았다. 공연의 특성과 맥락을 고려할 때, 나는 두 차례 모두 관객이라기보다는, 무용수와 관객 사이에 일어나는 공연을, 최대한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아 지켜보는 위치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그리고 이 경험을 통틀어 가장 강렬하게 남은 인상은 ‘사이’에서 일어나는, 너무나 근원적인, 연극적 모험이다.

관객과 무용수 ‘사이’

금속막대와 줄로 새장처럼 짜인 정교한 틀의 무대 세트에 스테인리스 양동이가 가득 매달려 있다. 아직 관객을 맞이하기 전, 빈 극장에서 세 명의 무용수는 무대 세트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움직인다. 천천히, 미세하게, 공간 전체를 인식하며 움직이는 그들의 몸은 그곳의 사물, 공간, 사람 모두를 향해 열려있다. 이들의 움직임은 관객이 들어오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마치 고유한 톤과 리듬으로 관객을 초대하듯이 계속된다. 공연은 이미 시작되었다.

관객과 무용수가 한 공간에 있다. 무용수들은 움직임을 계속한다. 사물, 공간, 사람 모두를 향해 열려있는 그들의 몸은 오늘 처음 만나는 눈앞의 상대를 향해 호기심을 갖는다. 주의를 기울인다. 그리고 상대방의 미세한 움직임을 눈치채면 그것을 따라 해본다. 한 번 더 따라 한다. 그리고 따라 하지 않는다. 순간 무용수가 느끼는 충동에 따라 달리 움직여 보기도 한다. 그 가운데 관객이 자세를 바꾸거나 소리를 내면, 그것이 아무리 미세하더라도 또 그것을 따라 해본다. 관객과 무용수 사이에 미묘한 긴장이 생겨난다. 서로를 인식하는 사이. 그 사이에서 이번에는 무엇이 일어날까 기다리는 찰나의 긴장과 기대가 부푼다.

무용수는 관객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잃지는 않는다. 스스로 움직임의 형태와 리듬을 발전시켜 나간다. 상대방의 호흡을, 소리를, 움직임을 섬세하게 느끼고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따라 하는 것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다시 상대를 향한다. 그리고 때로는 자기가 만들어 낸 움직임을 상대에게 건네기도 한다. 마치 상대가 그것을 같이 느끼고 호흡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그렇게 미묘하고 섬세하게 무용수는 관객과 관계를 쌓아 나가고, 함께 놀이를 만들어 나간다.

차츰 무용수와 관객은 서로의 몸을 접촉하고, 기대어 보고, 들어올리기도 하며, 함께 달리기도 할 만큼 가깝게 만나고 어우러진다. 무용수와 관객 사이의 놀이는 그렇게 발전된다. 공연이 끝날 때까지, 즉흥적으로, 유연하게, 때로는 예기치 않은 모험의 순간을 일으키며 계속된다. 〈OH! 타이거〉는 관객을 만날 때까지 알 수 없는 공연이다. 마음 졸일 만큼의 위험에 과감하게 도전하며 관객과 함께 즉흥적인 순간을 만들어 내는 방식으로 매 공연이 새롭게 만들어진다.

다름과 호기심 ‘사이’

〈OH! 타이거〉는 신경다양성을 지닌 어린이·청소년 관객과 보호자들을 위한 공연이다. 바로우랜드 발레는 비장애 어린이·청소년 관객을 위한 〈타이거〉(원제: Tiger Tale)라는 작품을 먼저 만들었고,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어린이·청소년 관객을 위해 새롭게 〈OH! 타이거〉를 만들었다. 두 작품 모두 엄격한 일상의 틀에 갇혀 살아가는 가족에게 어느 날 호랑이가 찾아오면서 경직된 집안의 질서를 흐트러뜨리는 이야기이다. 안무가 나타샤 길모어를 비롯한 창작진은 장애인 관객을 위한 공연 및 미술 작업을 꾸준히 이어온 엘리 그리피스와 협업했다. 리서치 과정에서 특수학교 레지던시를 통해 학생들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경험을 쌓았고, 그중에는 미리 제작된 무대 세트를 강당에 설치해 학생들과 함께 움직여 보는 워크숍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창작진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관객들이 고유한 감각적 관점으로 세계를 경험한다는 데 주목하고, 이 고유함을 창작의 중요한 영감으로 삼는다.

무엇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무용수들이 관객을 향해 열어두는 감각이다. 몸의 상태가 상대방이 내는 작은 소리나 움직임도 놓치지 않을 만큼 깨어있다. 상대와 주위에 몸의 감각이 열려있는 만큼이나, 자신과 상대의 ‘다름’에 대한 인식도 열려있다. 다르기 때문에 미지의, 그렇기 때문에 위험할 수도 있는 만남에 대해 무용수들이 갖는 태도는 닫음이 아니라 열림이고,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이다. 그런데 다가가고 싶고, 알고 싶고, 놀이하고 싶은 마음을 애써 표현하지는 않는다. 상대에게 충분히 시간과 공간을 주면서도, 넌지시 자신이 상대를 느끼고 관심을 두고 있다는 신호를 준다. 호기심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드러낸다. 그리고 상대가 주는 것으로 자신을 가득 채우지도 않고, 자신이 주는 것으로 상대를 가득 채우려고도 하지 않는, 서로의 ‘사이’에서 주고받는 가운데 발생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 서서히 끊임없이 움직인다. 서로의 ‘다름’ 앞에서 드러내는 무심해 보일 정도로 섬세하고 사려 깊은 호기심이다. 〈OH! 타이거〉의 연극적 모험은 이런 바탕 위에서 일어난다. 상호작용이 무르익어가는 동안, 무용수와 관객 모두에게 전혀 새로운 경험의 차원을 여는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다. 과감하게 위험에 도전하면서.

감각과 드라마 ‘사이’

바닥에는 무용수가 조심스럽게 꺼낸 귤들이 굴러다니고, 오렌지 향기를 내뿜는 오렌지색 슈트로 갈아입은 무용수가 무대와 객석을 종횡무진 가로지른다. 매달린 양동이들이 도르래처럼 오르락내리락하다 그 안에 들어있던 오렌지색 탁구공들을 쏟아낸다. 〈OH! 타이거〉에는 감각적 재료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후각, 촉각, 시각, 청각의 재료들이 음악, 조명 등과 어우러져 겹겹의 감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관객은 귤을 잡아 만져보고, 냄새를 맡고, 껍질을 까서 먹어보기도 한다. 무용수의 호흡과 함께 생성되는 공연의 리듬도 감각적 풍경의 한 층위를 이룬다.

이야기는 〈타이거〉에 비해 간결해 보일 수는 있으나 단순하지는 않다. 감각적 풍경이 여러 층위로 쌓여서 만드는 복합성이 이야기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OH! 타이거〉의 관객이 어떻게 이야기를 경험할까 상상해본다. 무용수의 역동적인 움직임, 공연의 호흡과 리듬, 색깔의 등장과 확산, 음악의 비트와 느낌, 조명의 톤과 분위기 등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함으로써, 어떤 정서적 여정이 생겨나는 것을 상상하게 된다. 그들의 고유한 감각적 관점에서는 엘리 그리피스가 말하듯이 오히려 더욱 풍성한 ‘감정의 팔레트’를 누리고, 겹겹의 감각적 풍경이 펼쳐지는 가운데 다채로운 감정의 톤과 변화의 드라마를 경험할 수 있으리라 상상해본다. 〈OH! 타이거〉가 결코 단순한 이야기일 수 없는 이유이다.

***

바로우랜드 발레의 〈OH! 타이거〉가 미묘하고도 과감하게 감행하는 모험을 통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세계란 무용수와 관객 중 어느 한쪽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쪽이 과하게 능동적이거나 수동적일 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세계, 서로가 서로에게 주의 깊게 관심을 기울일 때 일어나는 세계이다. 서로가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열어두고 상호작용을 진전시켜 나아갈 때,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무엇’이 공연의 진정한 동력이 된다. 〈OH! 타이거〉는 무대와 관객 사이 상호적 경험의 추구라는 공연의 근원을 깊이 느끼고 감탄하게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서로의 ‘다름’ 앞에서 두려움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서로에게 다가가는 무용수들, 그리고 관객들이 있다.

  • 무대 한가운데에 금속막대와 줄로 짠 정사각형 프레임의 무대세트가 놓여있고, 세 명의 무용수가 움직임을 하고 있다. 세트 천장의 줄에는 많은 수의 양동이가 매달려 있고 조명에 반사되어 빛난다.
  • 정사각형 프레임의 무대세트 안에서 세 명의 무용수가 의자를 이용해서 움직임을 하고 있다. 바닥 여기저기에 귤이 있다.

〈OH! 타이거〉

바로우랜드 발레|2023.7.21.|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스코틀랜드 현대무용단인 바로우랜드 발레단이 전하는 오렌지 빛깔 메시지. 호랑이가 엄격한 가정집에 방문해 그들의 세계를 뒤집어 놓는다. 가족 관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이야기가 흥겨운 춤, 라이브 음악과 어우러진다. 신경다양성을 가진 어린이·청소년이 감각적 참여를 통해 양방향으로 소통하는 이머시브 공연 작품이다. 2023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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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아동청소년극 전공 교수. 어린이와 청소년이 일깨워주는 ‘인간’에 대한 질문에 관심이 많고, 그들과 연극을 통해 만나는 작업을 공부하고 실천한다. [Youth and Performance], [연극포럼] 등에 연극놀이, 장소특정적 공연, 청소년극과 번역 등에 관한 논문을 다수 기고했다.
hyhwang@karts.ac.kr

사진 제공.아시테지 코리아(ⓒ아시테지코리아_Fotobee)

2023년 9월 (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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