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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모두페스티벌 포럼 ‘발달장애인 배우의 예술표현에 대한 자기결정권의 과정’

리뷰 ‘나’로부터 출발해서 함께

  • 김소연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3-11-29
  • 조회수723

리뷰

지난 10월 25일 대구에 있는 소극장 함세상에서는 ‘2023 모두페스티벌-모두의 행동, 자립의 꿈’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포럼이 개최되었다. 주제는 ‘발달장애인 배우의 예술표현에 대한 자기결정의 과정’으로 한국파릇하우스 이미경 대표와 이은신 무용수,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 김선 단장과 강민석 단원, (사)장애인지역공동체 연극단 레인보우의 〈바다와 인어이야기 2〉를 연출한 박연희 모두페스티벌 예술감독과 양철우 조연출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각 단체에서 활동하는 장애·비장애 구성원들이 발표를 맡았는데, 패널로 초대된 장애예술가가 발제문 작성부터 발표, 토론까지 직접 참여했다. 이러한 기획은 포럼 주제인 ‘발달장애인 배우의 자기결정권’ 그리고 모두페스티벌의 지향과도 연관된다.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축제 만들기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주최하는 ‘모두페스티벌’은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축제를 지향한다. 2015년 ‘함께사는 장애인 연극제’로 시작해서 2021년 ‘모두의 동행, 모두가 행동, 모두 다 연결’을 주제로 한 ‘모두페스티벌’로 이어졌다. 축제 프로그래밍에서도 연극, 무용, 음악, 춤, 영상 등 장르를 개방하고 장애인 자조모임과 전문예술단체, 장애인예술단체와 비장애인 예술단체 등이 서로 어우러진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올해는 지난여름부터 시민참여 워크숍을 거쳐 개막퍼레이드 〈도롱뇽의 눈물, 나비의 꿈〉으로 축제의 문을 열었다. 또한 (사)장애인지역공동체,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 북구지회, (사)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등 대구지역 장애인단체들이 공동주최로 참여했다.

축제 기간 중 금요일과 토요일 나흘 동안 13편의 공연이 올려진 이번 축제는 아마추어 연극반의 공연도 있었지만 서투름이나 낯섦과는 다른 긴장과 밀도를 보여주었다. 때때로 대사가 유려하게 전개되지 않고 하나의 행동이 다른 행동으로 전환될 때 발생하는 ‘사이’는 어떤 단절의 순간이라기보다는, 전개되고 있는 퍼포먼스가 중첩되면서 또 다른 극적 밀도를 만들어 낸다. 거기에 무대를 흠뻑 빨아들일 것처럼 집중하고 있는 관객도 이 사이를 채운다. 그것은 서투름에 대한 격려와 다르고 숨죽인 정적과도 다르다. 관객들은 마치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하나하나의 행동, 하나하나의 장면에 반응하면서 흥겨운 기운을 무대에 전하고 있었다.

한편 장애·비장애 경계 없이 참여하는 ‘차이사이 서포터즈’도 인상적이었다. 소극장 함세상과 이웃한 예전아트홀을 오가며 관객의 안전한 이동을 도왔다. 하루의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극장 정리까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박연희 예술감독은 장애인 예술 활동이 퍼포머로 무대에 서는 것만이 아니라 공연과 축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연희 예술감독이 연출로 참여한 레인보우의 〈바다와 인어이야기 2〉에는 장애인 배우이기도 한 양철우, 김태영이 각각 조연출과 음향감독을 맡았다. 김태영은 내년 축제에도 스태프로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모두페스티벌이 표방하는 주제가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공연의 스태프, 그리고 축제 운영에도 세심하게 관철되고 있었다.

창작의 과정, 협력과 소통

포럼 역시 마찬가지다. 각 단체에서 비장애 구성원이 단체 활동과 창작과정을 소개하고, 장애 구성원은 자신들의 활동을 발표했다.

한국파릇하우스와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는 전문예술단체다. 파릇하우스는 장애인문화예술교육으로 출발해서 교육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장애·비장애 구성원이 함께 활동한다. 춤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화, 그림 그리기 등 장르 제한 없이 다양한 매체 활동을 하고 있다. 당사자 중심의 선택권과 비장애인과의 통합활동을 강조한다. 이미경 대표는 발달장애인 무용수의 창작 활동에서 라포르 형성의 중요성을 짚었다. 이어서 이은신 무용수는 자신의 활동을 소개했는데, 먼저 “키가 작고 팔과 다리도 짧고 발이 작아서 비틀거리고 넘어질 때도 많습니다.”라고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설명했다. 그러나 파릇하우스에서 활동하며 맞다 틀리다에 매이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함께 무대에 서면서 불필요한 긴장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미경 대표가 말한 라포르 형성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위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서 기분이 좋고,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예쁘게 말하기를 배우게 되어 감사하고, 팀장이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얼쑤는 〈딱 친구 토끼랑 자라〉에서 토끼를 연기했던 강민석 단원이 먼저 발표했다. 얼쑤에서 상쇠, 부쇠, 배우로 활동하는 강민석 단원은 “토끼 강민석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시작했는데, 어떻게 토끼 역에 캐스팅되었냐는 질문에 “제가 귀여워서요.”라며 얼쑤에서의 하루 일과와 연습 과정을 소개했다. 얼쑤 역시 파릇하우스와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의 직장이다. 9시에 출근해서 공원을 산책하면서 운동하고, 사물놀이와 마당극 연습을 한다. 노래, 대사 외우기, 발걸음, 등장과 퇴장, 동작 등을 익힌다. 이어서 김선 단장이 단체 활동을 소개했다. 발달장애 청소년 동아리로 시작한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직업으로서의 예술 활동을 고민하게 되고, 발달장애인전통예술단을 창단했다. 이후 2018년에 얼쑤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단원을 채용한다. 강민석 단원도 이때 예술단에 입사했다. 단원들은 매일 출근해서 활동한다. 〈딱 친구 토끼랑 자라〉는 2018년 첫 공연을 올린 후 단원들의 표현을 찾고 그에 따라 대본을 수정하고 장면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 공연하러 다닐 때면 무대 대소도구, 소품 등을 단원들이 직접 챙긴다. 또 공연과 함께 여행도 즐긴다. 신작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앞선 두 팀이 직업으로서의 예술 활동을 지향하면서 협동조합 등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레인보우는 발달장애 당사자 연극 자조모임으로 시작하여 2015년부터 연극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다. 레인보우 3년 차를 마치면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연극단 조각보로 연극 활동을 이어간다. 이번 발표에서는 이들의 공동창작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1단계에서는 나와 동료의 상호관계성 소통에 중점을 두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기다려 주기를 훈련한다. 2단계에서는 모둠과 상호협력성을 위한 소통에 중점을 둔다. 이 과정에서는 창의적인 자기표현과 자기결정을 훈련한다. 3단계는 내 역할 장면에서 쌍방향 소통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 공동연출 활동을 훈련한다. 이러한 공동창작 과정은 당사자성과 모두의 자발적 참여를 목표로 한다.

한편 레인보우에서는 장애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한 공연 만들기의 여러 역할을 찾는 과정을 둔다. ‘내가 좋아하는 일 찾기’ ‘나의 표현방법 찾기’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소통방법 찾기’ 등을 함께 훈련한다. 〈바다와 인어이야기 2〉는 이러한 공동창작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박연희 연출은 공동창작으로 작품을 만들다 보니 조연출의 역할이 커진다고 말한다. 이어진 양철우 조연출의 발표에서는 공동창작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소개했다. 예를 들어 쌍방향 소통은 자기결정에서 출발하는데, ‘내가 듣는다’ ‘내가 말한다’ ‘내가 생각한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등의 규칙이 있다고 한다. 또 조연출로서 자신의 역할도 소개했다. 의상과 소품 준비, 연습 후 정리하기, 대사를 어려워하는 배우들에게 대본 읽어주기, 호흡 맞추기, 태풍 장면의 동작 만들기 등이었다. 다시 박연희 연출의 발표로 이어졌고, 연극강사들의 연구모임인 ‘차이사이 예술아카데미’와 발달장애인과 함께 만든 『차이사이: 연극 공동창작 워크북 - 우리들이 스스로, 함께 연극 만들기』를 소개했다.

개방과 수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세 단체의 발제 후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탁정아 연출(극단 함께사는세상 장애인연극반 조각보), 강현경 연출((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 북구지회 연극단 다온), 박정민 직무지도원((사)장애인지역공동체 연극단 레인보우)이 지정토론을 맡았다. 지정토론자들은 물론이고 장애 당사자, 장애인 부모 등 청중들도 세 단체의 활동과 발표를 맡은 장애예술가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보니 토론과 질의응답을 오가며 진행되었다. 그중 포럼 주제인 발달장애 배우들의 자기결정권과 연관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당사자 중심의 선택과 장애·비장애 통합활동에서 상충하는 지점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파릇하우스 이미경 대표는 비장애 무용수들보다 장애 무용수들이 더 잘 수용한다고 말한다. 이는 자칫 장애예술가의 자기결정과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상호작용과 상호관계는 수용과 개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더 이해해줄 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장애 무용수들이 더 개방적이고 그래서 수용의 폭도 넓다고 한다. 수용과 개방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때 관계성이 형성되고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다. 자기결정권은 다른 이에게 수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방성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박정민 직무지도원은 얼쑤 강민석 단원에게 공연 활동에서 필요한 도움은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레인보우 단원들을 오랫동안 조력해 온 만큼 장애예술가들이 전문단체로 활동하는 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강민석 단원은 의상을 갈아입을 때나 분장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조력이 필요하지 않은 활동이지만, 공연에서는 빠르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한국파릇하우스와 얼쑤가 직장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구성원의 예술적 자율성과 상충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얼쑤 김선 단장은 예술단체인 만큼 일반적인 회사처럼 업무 수칙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면 너무 일방적인 훈련으로 단체가 운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물론 단원들은 퍼포머로 좀 더 성장하고 싶고 열심히 해서 해외공연을 가거나 더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그래서 성장의 과정으로 훈련을 받아들이지만, 오늘 포럼에 참여하면서 좀 더 창의적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레인보우 양철우 조연출에게 공동창작 과정의 어려움은 없는지, 창작 활동의 즐거움은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양철우 조연출은 대사와 대본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함께 협력해서 수정하다가 완성되었을 때 기분이 매우 좋다고 답했다. 박연희 연출에게는 대본창작은 물론이고 조연출 음향감독 등 스태프에도 장애인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역랑을 어떻게 발견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창작 과정은 자신의 일상에서 출발하는데, 나를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참여자가 있는가 하면, 이번에 음향감독으로 참여한 김태영 씨처럼 다른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도 있다. 대본창작에 참여한 박희태 씨는 이번에 스스로 이야기를 다 짜왔는데,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무대화되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고 그러한 관심을 응원하고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쌓여간 것이라고 말한다.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포럼은 마치 한편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시시때때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청중이 뮤지컬 배우가 꿈이라는 이은신 무용수에게 노래를 청하자 앉은 자리에서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강민석 단원은 소리에 민감한데 천안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내 귀마개를 하고 있었고 포럼이 시작되어 발표할 차례가 왔을 때까지도 긴장 상태였다. 그러나 ‘귀여워서’ 토끼 역에 캐스팅되었다는 그의 말처럼 어느새 긴장을 풀고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했다. 양철우 조연출은 매우 차분하고 세세하게 레인보우의 활동을 소개했다.

포럼이라는 형식이 전문가들의 논의로 진행되게 마련이지만, ‘모두의 행동, 자립의 꿈’이라는 축제의 주제처럼 이번 포럼은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창작 활동을 정리·발표하고 질의응답에 참여하면서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포럼의 주제를 재구성했다. 이 자리는 전문가들의 담론장도 아니었고, 빠르게 성과를 내기 위해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발표회도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은 장애 당사자가 공연과는 또 다른 담론장에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감탄이자 즐거움이었다. 공연이든, 축제이든, 포럼이든 장애 당사자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박연희 예술감독의 판단과 선택이다.

이러한 판단과 선택이 흥미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극단 함께사는세상을 비롯하여 대구의 장애예술 활동 관련 예술가들과 단체들의 꾸준한 활동 덕분이다. 2023 모두페스티벌은 장애인 자조모임 연극반 활동이 차이사이 아카데미로, 공동창작 워크북으로, 그리고 축제로 이어져 왔던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만들어 가는 지역의 장애예술 활동이 흥미롭다.

  •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는 발표자들. 왼쪽부터 강민석, 김선, 이은신, 이미경
  • 길게 놓인 테이블 앞에 발표자들이 앉아 있다. 왼쪽부터 김소연, 박연희, 양철우, 강현경, 탁정아, 박정민

왼쪽부터 김소연 연극평론가(사회), 박연희 연출, 양철우 조연출,
강민석 단원, 김선 대표, 이은신 무용수, 이미경 대표

  • 지구 모양의 공을 든 거대한 인형이 서 있고, 축제 참가자들이 에워싸고 팔을 뻗고 있다.

    개막퍼레이드 〈도롱뇽의 눈물, 나비의 꿈〉

  • 한 배우가 토끼가 그려진 그림을 활짝 펼쳐보이고 있다.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 〈딱 친구랑 자라〉

2023 모두 페스티벌

2023 모두페스티벌 포럼 ‘발달장애인 배우의 예술표현에 대한 자기결정의 과정’

극단 함께하는세상 |2023.10.24.|소극장 함세상

2023 모두페스티벌(10.6.~10.25)의 일환으로 진행된 포럼은 김소연 연극평론가의 진행으로 한국파릇하우스(춤), 극단 함께사는세상(연극),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마당극) 세 단체가 참여해 단체와 활동을 소개했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모두페스티벌은 ‘모두의 행동 - 자립의 꿈’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장애인 당사자, 배우, 시민 관객이 하나 되는 축제를 지향한다.

극단 함께사는세상 홈페이지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좋은 공연을 함께 보기 위해 비평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kdoonga@naver.com
인스타그램 @sweetdream514

사진 제공.극단 함께사는세상

2023년 12월 (48호)

상세내용

리뷰

지난 10월 25일 대구에 있는 소극장 함세상에서는 ‘2023 모두페스티벌-모두의 행동, 자립의 꿈’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포럼이 개최되었다. 주제는 ‘발달장애인 배우의 예술표현에 대한 자기결정의 과정’으로 한국파릇하우스 이미경 대표와 이은신 무용수,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 김선 단장과 강민석 단원, (사)장애인지역공동체 연극단 레인보우의 〈바다와 인어이야기 2〉를 연출한 박연희 모두페스티벌 예술감독과 양철우 조연출이 발제자로 참여했다. 각 단체에서 활동하는 장애·비장애 구성원들이 발표를 맡았는데, 패널로 초대된 장애예술가가 발제문 작성부터 발표, 토론까지 직접 참여했다. 이러한 기획은 포럼 주제인 ‘발달장애인 배우의 자기결정권’ 그리고 모두페스티벌의 지향과도 연관된다.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축제 만들기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주최하는 ‘모두페스티벌’은 장애·비장애 경계 없는 축제를 지향한다. 2015년 ‘함께사는 장애인 연극제’로 시작해서 2021년 ‘모두의 동행, 모두가 행동, 모두 다 연결’을 주제로 한 ‘모두페스티벌’로 이어졌다. 축제 프로그래밍에서도 연극, 무용, 음악, 춤, 영상 등 장르를 개방하고 장애인 자조모임과 전문예술단체, 장애인예술단체와 비장애인 예술단체 등이 서로 어우러진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올해는 지난여름부터 시민참여 워크숍을 거쳐 개막퍼레이드 〈도롱뇽의 눈물, 나비의 꿈〉으로 축제의 문을 열었다. 또한 (사)장애인지역공동체,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 북구지회, (사)대구사람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 함께하는장애인부모회 등 대구지역 장애인단체들이 공동주최로 참여했다.

축제 기간 중 금요일과 토요일 나흘 동안 13편의 공연이 올려진 이번 축제는 아마추어 연극반의 공연도 있었지만 서투름이나 낯섦과는 다른 긴장과 밀도를 보여주었다. 때때로 대사가 유려하게 전개되지 않고 하나의 행동이 다른 행동으로 전환될 때 발생하는 ‘사이’는 어떤 단절의 순간이라기보다는, 전개되고 있는 퍼포먼스가 중첩되면서 또 다른 극적 밀도를 만들어 낸다. 거기에 무대를 흠뻑 빨아들일 것처럼 집중하고 있는 관객도 이 사이를 채운다. 그것은 서투름에 대한 격려와 다르고 숨죽인 정적과도 다르다. 관객들은 마치 함께 공연을 만들어 가는 것처럼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하나하나의 행동, 하나하나의 장면에 반응하면서 흥겨운 기운을 무대에 전하고 있었다.

한편 장애·비장애 경계 없이 참여하는 ‘차이사이 서포터즈’도 인상적이었다. 소극장 함세상과 이웃한 예전아트홀을 오가며 관객의 안전한 이동을 도왔다. 하루의 프로그램이 끝난 후에는 극장 정리까지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일했다. 박연희 예술감독은 장애인 예술 활동이 퍼포머로 무대에 서는 것만이 아니라 공연과 축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연희 예술감독이 연출로 참여한 레인보우의 〈바다와 인어이야기 2〉에는 장애인 배우이기도 한 양철우, 김태영이 각각 조연출과 음향감독을 맡았다. 김태영은 내년 축제에도 스태프로 참여하고 싶다고 한다. 모두페스티벌이 표방하는 주제가 프로그램은 물론이고 공연의 스태프, 그리고 축제 운영에도 세심하게 관철되고 있었다.

창작의 과정, 협력과 소통

포럼 역시 마찬가지다. 각 단체에서 비장애 구성원이 단체 활동과 창작과정을 소개하고, 장애 구성원은 자신들의 활동을 발표했다.

한국파릇하우스와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는 전문예술단체다. 파릇하우스는 장애인문화예술교육으로 출발해서 교육과 창작 활동을 병행하고 있으며 장애·비장애 구성원이 함께 활동한다. 춤을 기반으로 하지만 동화, 그림 그리기 등 장르 제한 없이 다양한 매체 활동을 하고 있다. 당사자 중심의 선택권과 비장애인과의 통합활동을 강조한다. 이미경 대표는 발달장애인 무용수의 창작 활동에서 라포르 형성의 중요성을 짚었다. 이어서 이은신 무용수는 자신의 활동을 소개했는데, 먼저 “키가 작고 팔과 다리도 짧고 발이 작아서 비틀거리고 넘어질 때도 많습니다.”라고 자신의 신체적 조건을 설명했다. 그러나 파릇하우스에서 활동하며 맞다 틀리다에 매이지 않고 동료들과 함께 의견을 나누고 함께 무대에 서면서 불필요한 긴장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이미경 대표가 말한 라포르 형성과 연결되는 이야기다. 장애인식개선 교육을 위해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면 선생님이라고 불러줘서 기분이 좋고, 화장하고 예쁜 옷 입고 예쁘게 말하기를 배우게 되어 감사하고, 팀장이 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얼쑤는 〈딱 친구 토끼랑 자라〉에서 토끼를 연기했던 강민석 단원이 먼저 발표했다. 얼쑤에서 상쇠, 부쇠, 배우로 활동하는 강민석 단원은 “토끼 강민석입니다.”라고 소개하며 시작했는데, 어떻게 토끼 역에 캐스팅되었냐는 질문에 “제가 귀여워서요.”라며 얼쑤에서의 하루 일과와 연습 과정을 소개했다. 얼쑤 역시 파릇하우스와 마찬가지로 구성원들의 직장이다. 9시에 출근해서 공원을 산책하면서 운동하고, 사물놀이와 마당극 연습을 한다. 노래, 대사 외우기, 발걸음, 등장과 퇴장, 동작 등을 익힌다. 이어서 김선 단장이 단체 활동을 소개했다. 발달장애 청소년 동아리로 시작한 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직업으로서의 예술 활동을 고민하게 되고, 발달장애인전통예술단을 창단했다. 이후 2018년에 얼쑤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단원을 채용한다. 강민석 단원도 이때 예술단에 입사했다. 단원들은 매일 출근해서 활동한다. 〈딱 친구 토끼랑 자라〉는 2018년 첫 공연을 올린 후 단원들의 표현을 찾고 그에 따라 대본을 수정하고 장면을 재구성하는 과정을 계속하고 있다. 공연하러 다닐 때면 무대 대소도구, 소품 등을 단원들이 직접 챙긴다. 또 공연과 함께 여행도 즐긴다. 신작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앞선 두 팀이 직업으로서의 예술 활동을 지향하면서 협동조합 등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면, 레인보우는 발달장애 당사자 연극 자조모임으로 시작하여 2015년부터 연극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다. 레인보우 3년 차를 마치면 극단 함께사는세상에서 운영하는 장애인연극단 조각보로 연극 활동을 이어간다. 이번 발표에서는 이들의 공동창작 과정이 자세히 소개되었다. 1단계에서는 나와 동료의 상호관계성 소통에 중점을 두고, 다양성을 인정하고 기다려 주기를 훈련한다. 2단계에서는 모둠과 상호협력성을 위한 소통에 중점을 둔다. 이 과정에서는 창의적인 자기표현과 자기결정을 훈련한다. 3단계는 내 역할 장면에서 쌍방향 소통에 중점을 둔다. 그리고 창조적 상상력, 공동연출 활동을 훈련한다. 이러한 공동창작 과정은 당사자성과 모두의 자발적 참여를 목표로 한다.

한편 레인보우에서는 장애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한 공연 만들기의 여러 역할을 찾는 과정을 둔다. ‘내가 좋아하는 일 찾기’ ‘나의 표현방법 찾기’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한 ‘소통방법 찾기’ 등을 함께 훈련한다. 〈바다와 인어이야기 2〉는 이러한 공동창작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박연희 연출은 공동창작으로 작품을 만들다 보니 조연출의 역할이 커진다고 말한다. 이어진 양철우 조연출의 발표에서는 공동창작 과정을 좀 더 자세히 소개했다. 예를 들어 쌍방향 소통은 자기결정에서 출발하는데, ‘내가 듣는다’ ‘내가 말한다’ ‘내가 생각한다’ ‘내 몸의 주인은 나다’ 등의 규칙이 있다고 한다. 또 조연출로서 자신의 역할도 소개했다. 의상과 소품 준비, 연습 후 정리하기, 대사를 어려워하는 배우들에게 대본 읽어주기, 호흡 맞추기, 태풍 장면의 동작 만들기 등이었다. 다시 박연희 연출의 발표로 이어졌고, 연극강사들의 연구모임인 ‘차이사이 예술아카데미’와 발달장애인과 함께 만든 『차이사이: 연극 공동창작 워크북 - 우리들이 스스로, 함께 연극 만들기』를 소개했다.

개방과 수용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상호작용

세 단체의 발제 후에는 토론이 이어졌다. 탁정아 연출(극단 함께사는세상 장애인연극반 조각보), 강현경 연출((사)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 북구지회 연극단 다온), 박정민 직무지도원((사)장애인지역공동체 연극단 레인보우)이 지정토론을 맡았다. 지정토론자들은 물론이고 장애 당사자, 장애인 부모 등 청중들도 세 단체의 활동과 발표를 맡은 장애예술가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 보니 토론과 질의응답을 오가며 진행되었다. 그중 포럼 주제인 발달장애 배우들의 자기결정권과 연관된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당사자 중심의 선택과 장애·비장애 통합활동에서 상충하는 지점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에 한국파릇하우스 이미경 대표는 비장애 무용수들보다 장애 무용수들이 더 잘 수용한다고 말한다. 이는 자칫 장애예술가의 자기결정과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상호작용과 상호관계는 수용과 개방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비장애인들이 더 이해해줄 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장애 무용수들이 더 개방적이고 그래서 수용의 폭도 넓다고 한다. 수용과 개방이 동시에 이루어졌을 때 관계성이 형성되고 한 팀으로 움직일 수 있다. 자기결정권은 다른 이에게 수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방성 속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박정민 직무지도원은 얼쑤 강민석 단원에게 공연 활동에서 필요한 도움은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레인보우 단원들을 오랫동안 조력해 온 만큼 장애예술가들이 전문단체로 활동하는 데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궁금했던 것이다. 강민석 단원은 의상을 갈아입을 때나 분장할 때 도움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일상생활에서는 조력이 필요하지 않은 활동이지만, 공연에서는 빠르게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편, 한국파릇하우스와 얼쑤가 직장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구성원의 예술적 자율성과 상충하지 않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얼쑤 김선 단장은 예술단체인 만큼 일반적인 회사처럼 업무 수칙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과정을 돌아보면 너무 일방적인 훈련으로 단체가 운영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물론 단원들은 퍼포머로 좀 더 성장하고 싶고 열심히 해서 해외공연을 가거나 더 큰 무대에 서고 싶다는 열망이 있다. 그래서 성장의 과정으로 훈련을 받아들이지만, 오늘 포럼에 참여하면서 좀 더 창의적 계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답했다.

레인보우 양철우 조연출에게 공동창작 과정의 어려움은 없는지, 창작 활동의 즐거움은 무엇인지를 질문했다. 양철우 조연출은 대사와 대본을 정리해 가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함께 협력해서 수정하다가 완성되었을 때 기분이 매우 좋다고 답했다. 박연희 연출에게는 대본창작은 물론이고 조연출 음향감독 등 스태프에도 장애인 구성원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이런 역랑을 어떻게 발견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창작 과정은 자신의 일상에서 출발하는데, 나를 표현하는 것에 흥미를 느끼는 참여자가 있는가 하면, 이번에 음향감독으로 참여한 김태영 씨처럼 다른 분야에 관심 있는 이들도 있다. 대본창작에 참여한 박희태 씨는 이번에 스스로 이야기를 다 짜왔는데, 자신이 만든 이야기가 무대화되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고 그러한 관심을 응원하고 기회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쌓여간 것이라고 말한다.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포럼은 마치 한편의 공연을 보는 것 같았다. 시시때때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한 청중이 뮤지컬 배우가 꿈이라는 이은신 무용수에게 노래를 청하자 앉은 자리에서 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강민석 단원은 소리에 민감한데 천안에서 출발할 때부터 내내 귀마개를 하고 있었고 포럼이 시작되어 발표할 차례가 왔을 때까지도 긴장 상태였다. 그러나 ‘귀여워서’ 토끼 역에 캐스팅되었다는 그의 말처럼 어느새 긴장을 풀고 활발하게 토론에 참여했다. 양철우 조연출은 매우 차분하고 세세하게 레인보우의 활동을 소개했다.

포럼이라는 형식이 전문가들의 논의로 진행되게 마련이지만, ‘모두의 행동, 자립의 꿈’이라는 축제의 주제처럼 이번 포럼은 장애 당사자가 자신의 창작 활동을 정리·발표하고 질의응답에 참여하면서 발달장애인 예술가의 ‘자기결정권’이라는 포럼의 주제를 재구성했다. 이 자리는 전문가들의 담론장도 아니었고, 빠르게 성과를 내기 위해 우수 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발표회도 아니었다. 시시때때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던 것은 장애 당사자가 공연과는 또 다른 담론장에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구체화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감탄이자 즐거움이었다. 공연이든, 축제이든, 포럼이든 장애 당사자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는 박연희 예술감독의 판단과 선택이다.

이러한 판단과 선택이 흥미로운 논의의 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은 극단 함께사는세상을 비롯하여 대구의 장애예술 활동 관련 예술가들과 단체들의 꾸준한 활동 덕분이다. 2023 모두페스티벌은 장애인 자조모임 연극반 활동이 차이사이 아카데미로, 공동창작 워크북으로, 그리고 축제로 이어져 왔던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만들어 가는 지역의 장애예술 활동이 흥미롭다.

  •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있는 발표자들. 왼쪽부터 강민석, 김선, 이은신, 이미경
  • 길게 놓인 테이블 앞에 발표자들이 앉아 있다. 왼쪽부터 김소연, 박연희, 양철우, 강현경, 탁정아, 박정민

왼쪽부터 김소연 연극평론가(사회), 박연희 연출, 양철우 조연출,
강민석 단원, 김선 대표, 이은신 무용수, 이미경 대표

  • 지구 모양의 공을 든 거대한 인형이 서 있고, 축제 참가자들이 에워싸고 팔을 뻗고 있다.

    개막퍼레이드 〈도롱뇽의 눈물, 나비의 꿈〉

  • 한 배우가 토끼가 그려진 그림을 활짝 펼쳐보이고 있다.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 〈딱 친구랑 자라〉

2023 모두 페스티벌

2023 모두페스티벌 포럼 ‘발달장애인 배우의 예술표현에 대한 자기결정의 과정’

극단 함께하는세상 |2023.10.24.|소극장 함세상

2023 모두페스티벌(10.6.~10.25)의 일환으로 진행된 포럼은 김소연 연극평론가의 진행으로 한국파릇하우스(춤), 극단 함께사는세상(연극), 발달장애인전통문화예술단 얼쑤(마당극) 세 단체가 참여해 단체와 활동을 소개했다. 올해로 4회를 맞이하는 모두페스티벌은 ‘모두의 행동 - 자립의 꿈’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장애인 당사자, 배우, 시민 관객이 하나 되는 축제를 지향한다.

극단 함께사는세상 홈페이지

김소연

연극평론가. [문화정책리뷰] 편집장. 좋은 공연을 함께 보기 위해 비평을 쓰고 잡지를 만든다.

kdoonga@naver.com
인스타그램 @sweetdream514

사진 제공.극단 함께사는세상

2023년 12월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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