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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예술창작 현장과 수어통역① 비트와 박자를 전달하는, 나는야 무대 위 그림자

  • 임동초 수어통역사
  • 등록일 2024-12-11
  • 조회수 64

이음광장

2008년 내가 손으로 대화하는 세상에 들어갈 당시, 사회에서는 10명 남짓의 학생들이 흰 장갑을 끼고 수어 노래를 하면 지역 ‘로타리클럽’ 회장님이 찬조금을 쥐여주었다. 사회가 따뜻해지는 착한 일이라면서 나에게 착하다고 말했다. 그때에는 따뜻함이 곧 ‘수어’라는 생각이 만연했다.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수어 노래를 통해 세상에 따뜻함을 알리는 것이 수어통역사가 된 지금 나의 시작점이었다. 수어 노래를 통해서 시작한 한 명의 수어통역사가 이야기하는 ‘콘서트 수어통역’에 대해서 들어보지 않겠는가?

열아홉 살에 수어통역사로서 일을 시작했고, 1년쯤 지난 2014년 10월 무렵 우리 지역에서 열리는 한 행사에 당대 최고의 아이돌이라 불렸던 ‘AOA’가 공연하러 왔다. 그때 나는 막내 수어통역사였고 직장 상사의 지시에 따라 무대에 올랐다. 현란한 비트와 박자 속에서 AOA 설현만이 낼 수 있는 섹시미를 신장 186cm에 몸무게 80kg 남자의 손으로, 얼굴로, 몸짓으로 전달해야 했다. 노래 수어통역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그 시절, 그저 나의 2008년 그 어디쯤의 기억으로 흘러나오는 가사 말을 전달했다. 그렇게 나의 몸짓은 세간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아 장애인복지를 실천한 사람으로 조명받았다. 이후에도 별다른 생각 없이 노래 수어통역을 이어갔고,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치면서 나의 노래 통역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 듯했다.

2022년 문화예술계에서 ‘배리어프리’ ‘접근성’이 화두가 되어 많은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1년 후 2023년 ‘잉크(INK) 콘서트’에서 섭외 연락이 왔다. 유튜브 실시간 중계에 수어통역 존을 5:5 화면분할로 하겠다며 수어통역을 해달라는 거다. 난 고사했다. 잉크 콘서트는 인천시의 케이팝 대표 축제 중 하나였기에 자신이 없었다. 코로나 이후 멈춰버린 내 노래 통역과 그동안 학업으로 인하여 문화예술 통역을 많이 하지 않았던 터라 부담감이 앞섰다. 하지만 대행사에서는 나의 레퍼런스 영상을 봤다며 간곡히 부탁해 왔다. 통역까지 남은 기간은 3주 남짓. 당시 나는 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고 편입생 신분이라 한 학기에 22학점에서 25학점을 수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민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다음날 하겠다고 결정했다. 이유는 하나. 하지 않으면 후회가 남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내가 맡은 그룹과 곡이 정해지고 오프닝 무대 수어통역을 맡게 되었다. 오프닝 곡은 걸그룹 ‘뉴진스’의 〈슈퍼샤이〉. 당시 각종 차트에서 1위를 하고, 댄스 챌린지가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올라오던 때였다. 나는 낮에는 수업을 듣고 밤부터 새벽까지 연습실에서 보냈고, 댄스학원 원장님한테 부탁드려 포인트 안무를 배웠다.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나는 수어통역을 요청받았다. 통역의 이론을 기반으로 하자면 노래 가사 말을 한국 수어로 전달하는 것이 나의 역할일 것이다. 하지만 콘서트는 노래를 듣고 신나게 즐기러 오는 곳이다. 그럼 내가 목각인형처럼 가만히 서서 가사만 전달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통역일까? 그렇다고 춤추면서 노래 수어를 한다면 이건 예술인가, 통역인가?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통역사로서 치열한 고민의 나날을 보내며 3주 동안 하루에 두세 시간 자면서 모든 일정을 소화했다. 하루 연습을 위해 최소 네다섯 시간을 확보해야만 무대에서 실수 없이 통역을 마무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공연일이 오고 말았다. 내가 주인공은 아니지만, 농인 관객에 대한 매너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 강남에 있는 숍에서 헤어·메이크업을 받았다.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본다면, 5:5 화면분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카메라 테스트가 끝나고 오프닝이 시작되었다. 나는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비트와 박자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손과 얼굴의 조합을 통해서 수어라는 언어를 생성했다. 두 번째 무대인 ‘싸이커스’의 〈쿵〉을 통역하는데 안경이 날아갔다. 안경이 날아가기 전까지는 의식이 있었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안경이 날아가는 순간, 그간의 연습을 믿고 쪼개지는 비트 위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3분 남짓의 시간이 끝났다.

누군가 물어본다. 그건 수어통역이 아니라 수어 공연 아니냐고. 하지만 나는 공연이든 통역이든 노래가 신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면 되었다고 답했다. 내가 느끼는 것, 그리고 다수가 느끼는 감정을 다 같이 느끼도록 하는 것이 콘서트 통역의 핵심임을 스스로 알게 된 순간이었다.

  • 유튜브 영상 화면은 5:5로 이분할해서 왼쪽에는 싸이커스가 화려한 무대를 배경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고, 오른쪽에는 임동초 수어통역사가 온몸으로 열창하는 모습으로 노래 수어통역을 하고 있다. 자막에는 ‘Let’s go, now or never Let’s go, now or never 더 높게 날아‘라고 쓰여 있다.

‘제14회 INK 콘서트’ 수어통역 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이미지 출처 : 유튜브 채널 ‘여행은 인천이지’

임동초

수어통역사. 지방 수어통역센터에서 일하면서 연극과 콘서트 등 다양한 무대에서 수어 통역을 통해 문화예술을 전달해왔다. 이 경험을 통해 문화예술과 장애예술인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주요 참여작으로 연극 〈당신을 초대합니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제자리에서 정지한 상태로 180도 회전하기〉 〈어느마을〉, 뮤지컬 〈합체〉 〈푸른 나비의 숲〉, 콘서트 〈함께, INK 콘서트〉 등이 있다.
dlehan1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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