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리뷰 국립극장 24-25 기획공연 〈몬스터 콜스〉 건네고 건네어지는 몸과 말의 세계

  • 손옥주 공연학자
  • 등록일 2024-12-26
  • 조회수 101

리뷰

페트릭 네스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연극 〈몬스터 콜스〉가 2024년 12월 5일부터 8일까지 나흘간 국립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소설과 영화로 이미 관객과 폭넓게 만나온 작품이기에 공연이 구축해 내는 시공간, 그리고 배우의 몸을 매개로 발현되는 라이브니스(Liveness, 현존성)를 속성으로 하는 연극의 문법 안에서는 어떻게 새로이 해석될 수 있을지 자연스레 궁금증이 일었다. 부모의 이혼, 학교에서의 소외, 그리고 엄마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13세 소년의 일상 속 격랑의 시간에 잠입해 있는 모순들 속에서 주인공 코너 오말리가 겪는 슬픔이란 원작 속 표현 그대로 “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이자 “죔쇠처럼 몸을 붙들고 살아있는 근육처럼 단단히 죄어가는”(『몬스터 콜스』, 웅진주니어, 2012, 253쪽) 견디기 힘든 좌절의 굴레와도 같았다. 그런 점에서 삶의 종결, 관계의 끝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기꺼이 반복되는 악몽을 견뎌내고자 했던 사춘기 소년의 몸과 말의 세계가 이번 연극을 통해 어떻게 발화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자못 중요하게 다가왔다.

연극 〈몬스터 콜스〉의 연출과 관련해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는다면 무엇보다 등장인물의 다원화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공연에는 총 7명의 배우(김도완, 김원영, 민유경, 이성수, 지혜연, 홍준기, 황은후)가 출연하는데, 이들 각자는 특정한 한 인물의 역할을 맡는 것이 아니라 총 7장으로 구성된 전체 공연 구조 안에서 서술자와 코너, 그리고 몬스터 역할을 번갈아 가며 수행한다. 말하자면 각각의 장마다 모든 배우가 주인공 코너와 코너의 내면이라고도 할 수 있을 몬스터, 그리고 대본상의 지문이나 전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방백을 전달하는 서술자 역할을 서로 달리하며 등장한다. 이 같은 특징은 코너라는 한 인물의 내면에 깃든 극한의 다양성과 그 상충하는 지점을 무대 위의 배우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던 연출 의도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이번 공연의 배우들은 10대부터 노년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름과 동시에, 신체적으로는 장애와 비장애 상태 모두를 포괄하는 특징을 보였다.

한편, 주인공 코너가 일상에서 겪게 되는 모순과 충돌을 서로 다른 신체, 서로 다른 성별, 서로 다른 나이로 대표되는 7명의 배우를 통해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디바이징 디렉터(Devising Director)’라는 새로운 창작 조력자의 필요성 또한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 흔히 희곡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 공동창작 방식에 ‘디바이징 씨어터(Devising Theatr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번 〈몬스터 콜스〉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원작을 각색한 대본이 창작의 전제이면서 동시에 원작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배우들 몸의 궤적이 창작 실천의 밑거름을 이루고 있었기에, 이 같은 궤적을 그러모아 코너의 삶이 들려주는 이야기 위에 얹을 수 있는 일종의 방법론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연에 디바이징 디렉터로 참여한 황혜란 배우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배우 7명의 몸이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해 내는 도구, 매개가 아니라 각자가 가진 고유성이 잘 드러날 수 있게 돕는 것”과 “각자의 고유성이 잘 드러나게 하는 기술들을 탐색해 나가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고 언급한 부분(〈몬스터 콜스〉 프로그램북, 15쪽)이야말로 이번 공연의 창작적 특징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약 135분간 주인공 코너의 몸과 말의 세계가 쉼 없이 이어지는 동안 엄마는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할 정도로 쇠약해져만 갔고, 엄마를 완전히 보내지도 완전히 붙잡지도 못한 채 매일 밤 찾아오는 악몽 속 몬스터와 마주해야만 했던 코너는 결국 엄마를 꽉 붙잡음으로써, 엄마를 보내기 싫다는 생각을 말로 내뱉음으로써, 그렇게 마음의 진실을 행동함으로써, 비로소 엄마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서사의 전개는 7명의 배우와 이들의 곁에서 분리된 몸이자 동일한 자아로 함께 연기를 펼친 5명의 수어통역사에게서 발현되던 지극히 고유한 몸과 말의 세계, 즉 동작 이전의 몸짓과 대사 이전의 호흡을 무너뜨리지 않은 채 예민하게, 그러나 따뜻하게 이루어졌다. 공연의 안팎을 매개하던 몸들의 이야기는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던 ‘12시 07분’이라는 시간의 의미와 더불어 끝이 났다. 그러나 나무로 형상화된 몬스터의 함의가 그러하듯이, 마지막 장면의 구심점이 되어준 소녀 배우 민유경의 현존이 그러하듯이, 이야기의 끝에 이르러 비로소 초록빛 삶이 다시금 시작될 것임을 우리는 안다.

  • 휠체어를 탄 코너 역할의 배우와 옆에 선 수어통역사가 대사를 읊고, 바닥에 비스듬하게 앉은 두 명의 배우가 그를 바라보고 있다. 벽면에는 무수한 가지를 뻗은 커다란 나무가 흑백으로 영사되고 있다. 자막에 “시월 어느 깊은 밤, 나는 잠에서 깼습니다. 요즘 매일 같이 끔찍한 꿈에 시달리고 있거든요.”라고 쓰여 있다.
  • 무대 전체는 푸르스름한 조명이 비치고, 바닥에는 하얀 커버의 베개가 가득 놓여 있다. 한쪽에서 휠체어를 탄 배우가 있다. 벽면에는 12 07이라는 숫자가 크게 영사되고 있고, 자막에는 “(서술자1) 12시 7분”이라고 쓰여 있다.
LINK 포스터

몬스터 콜스

국립극장|2024.12.5.~12.8.|국립극장 달오름극장

영국 대표 청소년 소설 작가 시본 도우드가 구상하고 패트릭 네스가 집필한 『몬스터 콜스』를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깊이 있는 각색, 다양한 연기 형식, 감각적인 무대 언어로 무대화했다. 집과 학교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로 고통받던 10대 소년 코너는 10월 어느 깊은 밤, 12시 7분에 찾아온 몬스터를 통해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국내 초연작으로 삶과 죽음, 흑과 백, 선과 악 같은 인간이 정의하는 것의 알 수 없는 경계, 그 사이 어딘가에서 네 번째 이야기로 향하는 코너의 발걸음을 조명한다. 각색 박지선, 연출 민새롬, 디바이징 디렉터 황혜란, 배우 김원영 김도완 민유경 이성수 지혜연 홍준기 황은후, 수어통역 김홍남 이수현 정지은 정지현 조유나 출연.

∙ 공연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손옥주

공연학자.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연극학, 무용학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공연학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무대 위 사건으로서의 공연에 내재하는 움직임의 양상들을 탐구해왔다. 연구 방법으로는 학술연구와 현장연구를 병행 중이며, 연구대상으로는 우리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미학적 징후들을 예민하게 포착해내는 다양한 공연예술 장르를 포괄한다.
okjuson@gmail.com

사진 제공.국립극장

2025년 1월 (60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