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수학에서 두 집합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는 개념인 ‘함수’의 ‘함(函)’은 상자라는 뜻이다. 상자에 어떤 값을 넣으면, 상자를 통과하면서 다른 값이 나온다. 그런 요술 상자가 함수다. 함수는 숫자를 넣는 상자일 뿐만 아니라, 어떤 현상과 그에 따른 결과를 발생시키는 현실의 다양한 분야에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창작의 과정은 어떨까? 어떤 사물이나 존재가 창작자라는 상자를 통과하는 과정을 ‘창작’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물질세계에 있는 유형·무형의 모든 개별적인 존재가 그것을 감각하는 주체를 통과하며 내면에서 창조되어 만들어진 결과가 창작물이다. 같은 X값을 입력해도 어떤 상자를 통과하는지에 따라 다른 Y값이 나오듯, 창작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창작물도 모두 다르다. 김동호 작가의 개인전을 통해 바라본 ‘김동호’라는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지 들여다보고, 그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지 두드려보게 된 일을 적어본다.
막 전시장에 들어서려는데, 여러 사람이 우르르 전시장에서 쏟아져 나와 함께 어디론가 가려는 모양새였다. 알고 보니 전시와 함께 열린 김태협 작가(김동호 작가의 멘토)가 진행하는 워크숍이었고, 전시장 옆 홍제천 산책이 그 시작이었다. 무리의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 했을 뿐인데, 어느새 나도 같이 걷고 있었다. 홍제천은 머리 위로는 내부순환로가 지나고 옆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늘어서 있어 사방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모습이었는데, 막상 산책길에 들어서니 늦가을의 풍경이 눈에 가득 들어왔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에 오후의 햇살이 쏟아져 눈이 부셨다.
워크숍은 홍제천을 산책하며, 마음에 드는 무언가 또는 눈에 들어오는 무언가를 사진 찍은 후, 전시장으로 돌아가 자신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방금의 산책을 평면에 풀어보는 방식이었다. 참여자들은 발달장애 청소년이 대부분이었다. 김태협 작가는 앞서 걷다가도 얼굴을 가릴 만큼 넓적한 낙엽을 주워 참여자들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늦은 오후의 빛, 소리 없이 흐르는 물, 멀리 보이는 구름, 개천에서 노는 물고기를 쳐다보며 참여자의 시선을 유도했다. 누군가 당시의 이 무리를 멀리서 바라봤다면, 아마도 성큼 걷다가 돌아서고 멈추는 모습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건가 생각했을 것이다.
이 산책의 목적은 걸으면서 감각하기 위한 것이었다. 흔히 만날 수 있는 일상의 풍경 속에서 감각하기 위해 걷는 무리에서 김동호 작가를 발견했다.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라갔다. 작가가 적극적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마치 감각이라는 채집 그물을 펼쳐, 걸리는 것들을 카메라 네모 틀에 찰칵찰칵 낚아채는 것 같았다. 그는 팔딱대는 감각의 그물을 안고 전시장으로 향했다. 워크숍이 이어지며 진행되는 것을 힐끔거리며, 나는 드디어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전시장은 아담한 공간이었는데, 전시 포스터에 있는 작품과 메인 작품들도 있었지만, 유독 한 시리즈 작품에 자꾸만 눈이 갔다. 〈작은 풍경〉이라는 제목의 작품 십여 점이 병렬로 나란히 기역 자의 벽면에 걸려있었다. 파란색과 검은색이 공통으로 들어가 무언가 같은 것을 그린 것 같았는데, 언뜻 보아서는 알 수 없었다. 전시장 문에서 가까운 오른쪽부터 하나씩 하나씩 따라갔다. 한쪽 벽면이 끝나고 연결된 다른 벽면으로 이어질 즈음에 작품 모두가 자동차의 어느 한 부분을 나눠서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하나같이 분할 비율과 그림 구도가 다르게 변화했다. 자동차 바퀴의 4분의 1만 있거나 자동차의 후미 부분만 따로 떼어 그려져 있었다. 자동차 바퀴 부분에는 검은색과 흰색으로 그린 작은 타원 같기도 하고 세모 같기도 한 무언가가 그려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동차 밑에 들어가 있는 고양이였다. 낯설었고, 그만큼 재밌었다. 〈작은 풍경〉은 김동호 작가가 매일 오가는 동네 골목길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작가의 일상을 궁금해하던 멘토는 작가의 휴대전화 사진첩을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 안에는 자동차와 고양이들을 연속적, 반복적으로 찍은 사진이 수천 장 있었다. 자동차 바퀴의 휠, 후미등, 차체의 곡선 등 자동차 전체를 부분으로 쪼개어 다양한 구도에서 찍었다.
김동호 작가는 어릴 적에 자동차를, 특히 바퀴를 좋아해 빙글빙글 돌아가는 모습을 바라보기 좋아했고, 자동차의 차체 아래의 모습이 궁금했는지 주차된 자동차 밑으로 기어가 누워있기도 했다. 성인이 된 작가는 이제 다른 방법으로 자신이 집착하고 탐구하는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꺼내 보고 있었다. 그는 일상 중에 동네를 지나다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자기의 감각에 집중하고 몰입했다. 잠시 자동차나 고양이 곁에 머물며 내면에서 일어난 어떤 것이 그로 하여금 카메라를 꺼내 기록하게 했다. 자신이 어릴 때부터 수없이 탐닉한 바퀴 옆에 고양이 한 마리가 꼬리를 늘어뜨리고 타이어에 기대어 쉬고 있다. 자동차 옆에 있는 고양이. 그에게 자동차가 아름다움이라면, 고양이는 무얼까?
작가가 채집한 사진들은 작가 내면의 감정이며, 작가가 감각하는 주제들이다. 창작자의 삶 속에서의 일상성이라는 요소가 무언가로 표현될 때, 자연스러운 동시에 독창적이다. 멘토는 자동차 밑에 들어가 있어 그림자로 어둡게 표현한 ‘작은 풍경’ 속 고양이가 김동호 작가 자신이 아닐지 짐작한다. 어릴 적 작가가 들어갔던 자동차 밑에 이제는 작가의 작품 속 고양이가 들어가 있다. 작품은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 사진첩에 있던 순서대로 구성되어 있었다. 관람객과 함께한 홍제천 산책 역시 김동호 작가가 일상에서 감각한 기억의 기록으로, 사진 속 장면을 평면으로 연결하는 과정과 닿아있었고, 왜 이러한 워크숍이 여기 전시장에서 진행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김동호 작가의 〈작은 풍경〉은 그에게서 미끄러져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아 감각으로 기록한 그의 이야기다. 전시회의 제목에서처럼 고양이와 자동차로 읽히는 일상성이 김동호라는 감각의 상자를 지나면서, ‘흥얼흥얼’과 ‘춤을 추지’라는 다른 언어를 낳았다. 이제 그의 작품을 바라보는 당신의 감각 상자에 ‘흥얼흥얼’과 ‘춤을 추지’라는 언어를 넣어보자. 무엇이 나올까?
고양이는 흥얼흥얼 자동차는 춤을 추지
김동호|2024.11.13.~11.23.|10의 n승
일상에서 만나는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가는 김동호 작가의 개인전. 동물, 자동차, 풍경 같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친숙한 소재와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소통한다. 발달장애 미술가 육성사업 ‘우리 시각’에 선정되어 창작한 작품 전시로 김태협 작가가 멘토로 참여했다. 전시는 작가와의 대화, 워크숍이 함께 진행되었다.
∙ 전시정보 :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이희원
문화예술교육사
장애와 예술에 대해 말하고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
hiwoni12@gmail.com
인스타그램 @jhjs
사진 제공.김동호
2024년 12월 (59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
비밀번호
작성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
자동차의 부분 부분을 쪼개어 그린 그림을 보니...항상 가까이 다가가 사물을 보는 저희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항상 저렇게 가까이서 보면 어떤게 보일까 궁금했는데...어렴풋이나마 아이의 시선을 보게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