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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을 감고 바라봐요. 어느 날 듣는 게 보는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람들은 내가 자신들을 듣고 있다는 걸 몰라요. 자기들끼리 눈빛을 주고받는 걸, 표정을 주고받는 걸, 몸짓을 주고받는 걸. // 들려요, 보여요.”
김숨 작가의 신작 『무지개 눈』(민음사)에 나오는 대목이다. 어린 두 아이를 키우는 전맹 여성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내용을 담은 「오늘 밤 내 아이들은 새장을 찾아 떠날 거예요」에 이 문장이 등장한다. 김숨 작가는 이 짧은 문장으로 시각장애인의 내면, 그 소리의 시야 속으로 독자들이 단숨에 뛰어들도록 만든다. 이상문학상을 비롯해 한국의 주요 문학상을 석권한 우리 시대의 작가다운 김숨의 문체다. 이 연작 단편집은 다섯 명의 시각장애인을 작가가 직접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들의 감각적 경험과 내면을 세밀하게 형상화한 작품들이 실려있다.
표제작 「무지개 눈」은 선천성 저시력 시각장애인 김준협 씨의 인터뷰를 기반으로 쓴 소설이다. 주인공은 일반 중학교를 졸업한 후 특수학교에 진학하며, 그곳에서 네 명의 친구들을 만난다. 소설 속에서 도, 레, 미, 파, 솔로 지칭되는 다섯 중 ‘파’인 화자만이 저시력이고, 나머지는 모두 선천성 전맹이다. 세월이 흘러 학교를 졸업한 후 다섯은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파’는 ‘솔’을 만났고 그를 통해 친구들의 소식을 듣는다. 이 소설 말미에 등장하는 ‘파’의 독백을 통해 작가는 주제를 예리하고 섬세하게 드러낸다.
“내 눈이 계속 멀어 빛조차 볼 수 없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그 소식을 솔에게 전하지 않을 것이다. 눈이 멀어가는 게 부끄러워서는 아니다. 눈이 멀어 가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과 공포, 슬픔을 온전히 이해받을 수 없을 테니까. 눈이 멀어 간다는 게 어떤 건지 솔은 모른다. 눈이 멀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게 어떤 건지 내가 모르듯이.”
다양한 분야에서 고른 성장세
장애와 관련된 내용을 다루는 통칭 ‘장애 관련서’는 다양한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사회과학, 문학, 어린이 등 책의 분야명이야 예전부터 있던 것이지만, 장애 관련서가 모든 분야에서 골고루 나왔고 질적인 면에서도 고르게 발전을 보였다는 점은 2024년 서점가의 특징 중 하나다. 우선 인문학 혹은 사회학, 사회학 에세이 정도로 구분할 수 있는 책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미래에서 날아온 회고록』(앨리스 웡, 오월의봄), 장애여성의 성과 사랑, 섹슈얼리티의 의미를 다룬 『다른 듯 다르지 않은』(임해영, 드루), 장애 공감 지수를 높일 방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는 『오늘도 차별, 그래도 삶』(김효진, 이후), 장애인 선수들의 패럴림픽 이야기를 담은 『올림픽이 끝나면 패럴림픽이 시작됩니다』(김양희, 다정한책), 장애학자가 들려주는 그리스 비극 이야기 『오이디푸스, 장애인 되다』(박정수, 그린비), 철학자가 인지장애를 가진 딸을 보살피며 배운 것을 알려주는 『의존을 배우다』(에바 페더 키테이, 반비),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불신’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불신의 공동체 : 그리고 장애를 생각하다』(연구모임 사회비판과대안, 사월의책), 장애와 비장애 간 평등의 문제를 다룬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김원영, 문학동네) 등등. 이런 책들이 2024년 한 해 동안 쏟아져 나와 ‘장애’에 관한 논점을 우리 사회에 진지하게 던졌다.
이 중에서도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은 차별과 평등에 관한 우리의 논의 수준을 높이는 중요한 저작이다. 변호사이자 작가, 공연창작자 김원영은 무용수가 되는 경험을 하며 마주한 몸과 춤을 통해 차별과 평등을 깊이 들여다본다. “힘이 동등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동등하다고 신념을 가질 때 진정한 평등은 회복된다”면서, 힘이 동등하지 않다는 사고가 바로 지극히 차별적인 것이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지극히 차별적인 능력을 지닌 개인들이 서로의 동등한 힘에 주의를 기울일 때 고유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세계의 일부가 된다”고 말한다. 장애를 주제로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인류문명을 성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은 증명한다.
장애문학은 에세이와 소설(시)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에세이를 좀 더 나누면 장애인 당사자의 경험을 기록한 자전적 에세이와 장애인을 돌보는 가족 에세이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으로 장애 관련서 중 가장 많은 책이 바로 이 분야에서 나온다. 2024년엔 다음과 같은 책들이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으며 독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앤드루 릴런드, 어크로스)는 삶의 감각으로 장애의 세계에 대해 들려주는 장애문학의 수작이라는 평가를 얻었다. 시각장애인 IT 개발자인 서인호의 세계를 향한 도전을 담은 수기 『나는 꿈을 코딩합니다』(서인호, 문학동네), 시청각장애인 박관찬의 삶과 도전을 담은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박관찬, 꿈꿀자유), 뇌성마비장애인 이진행의 자기 성장사를 담고 있는 『장애가 있지만 고개 들고 살아갑니다』(이진행, 미다스북스), 시각장애를 가진 공연예술 창작자가 쓴 배리어프리 에세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 : 예술현장의 배리어프리 리얼타임』(장근영·이성수, 1도씨와 온도들) 등의 책이 장애 당사자 에세이로써 지난 한 해 동안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편, 장애 가족 에세이 중에서 2024년 한국 독자의 관심을 얻었던 책은 다음과 같다. 발달장애 아들과 함께하는 엄마의 소중한 일상을 적은 『해찬이의 하루』(이영미, 부크크), 장애인이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은 『어느 날 갑자기 내 아이가 장애인이 되었습니다』(박현경, 설렘), 장애 부모가 마음 놓고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세상을 만들자는 제안을 담은 『불편하지만 아이 키우는 데 문제없습니다』(백순심, 설렘), 생후 6개월에 원인 불명의 병으로 중증장애가 된 아이가 사춘기 나이가 될 때까지 13년간 계속된 엄마의 간병 기록과 함께 장애아 엄마로서의 삶과 내면의 성장 과정을 감동적으로 담은 『그날은 그렇게 왔다』(고경애, 다반), ‘장애가 불행이라고 생각하는 당신께 엄마, 동생, 의사가 들려주는 조금 특별한 행복 이야기’라는 부제가 눈길을 끄는 따뜻한 에세이 『아름, 다운 증후군』(최은경·박주형·오수영, 꿈꿀자유) 등. 2024년 한 해 동안 출간된 이 책들은 하나같이 장애의 고통과 슬픔만을 묘사하며 공감을 얻는 데서 머물지 않았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며 사회적 인식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촉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어린이의 장애 감수성을 높이려는 책도 눈에 띄었다. 18년 차 특수교사가 편견을 넘어 우정 쌓는 법을 안내하는 내용을 담은 『장애인이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권용덕, 다른)도 높은 완성도로 주목받았고, 『나는 학교를 사랑한 특별한 여행자입니다』(윤형진, 부크크)는 장애를 누구나 쉽고 편안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설로 구성한 기획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사회의 결핍을 드러내고 성찰하는
출판계에서 통용되는 말 중 ‘베스트셀러의 사회학’이라는 말이 있다. 베스트셀러는 그 시대에 차고 넘치는 무언가가 아니라, 결핍을 명징하게 드러낸다는 식의 논리다. 생명보다 경제성이, 정의보다 효율이 우선되는 풍조가 생기면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불편한 편의점』과 같은 따뜻한 소설이 인기를 끄는 것도 현실에서 온기를 찾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독서는 ‘모색’이기도 하다. 있어야 하지만 없는 것들,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 찾으려는 궁리이자 도모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의 장애 관련서가 크게 발전하는 양상이다. 출간되는 책의 종수도 많아졌지만, 질적 측면에서의 도약이 눈에 띈다. 그럼 지금 우리 사회에서 대체 어떤 결핍이 작동하며 장애 관련서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걸까.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혐오가 보편적 기술이 된 ‘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다. 장애인, 노인, 여성,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혐오를 자신들의 정치적 세력 결집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소위 ‘혐오 정치’가 등장한 것과 장애 관련서에 관심이 증폭한 것이 서로 맞물려 있는 듯 보인다. 해를 거듭할수록 진화하고 발전하는 장애 관련서들은 이제 우리 사회 전체를 반성하고 성찰하게 만드는 역할을 담당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숨 『무지개 눈』, 민음사, 2024
김원영 『온전히 평등하고 지극히 차별적인』, 문학동네, 2024
앤드루 릴런드 저, 송섬별 역 『나는 점점 보이지 않습니다』, 어크로스, 2024
박관찬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꿈꿀자유,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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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신
출판평론가.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비평연대 창립인,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부회장,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 서울현대문학관 이사. 연간 7만여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 대국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인은 자국의 출판산업에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다는 점을 언론과 방송 등을 통해 열심히 알리고 있는, 출판계의 대표적인 마이크 중 하나. 최근에는 ‘비평연대’ 활동을 통해 젊은 문화비평가와 서평가 양성에 힘쓰고 있다.
foucault6134@naver.com
∙ 페이스북 seoungsheenkim
사진 제공.민음사, 문학동네, 어크로스, 꿈꿀자유
2025년 3월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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