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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부산현대미술관 배리어프리 국제 기획전 《열 개의 눈》 경계와 장벽을 넘어서는, 다정하고 위트 있는 실험

  • 김경화 설치미술가
  • 등록일 2025-07-23
  • 조회수 167

리뷰

나 역시 미술작가이지만 미술관 기획전시를 관람하는 일이 때론 부담스럽기도 하다. 오가는 시간 투자, 기획 의도와 작품을 해독하기 위해 온 신경을 모아야 하는 피곤함과 함께, 전시장을 둘러보는 동안의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 관람을 위해서도 개관 시간에 맞춰 전시장에 도착해 카페부터 들러 카페인을 급히 보충하며 몸과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미술관 로비에 놓인 파란색의 긴 나무 의자 두 개와 그 위에 큼직하게 손으로 쓴 듯한 문장이 눈에 확 들어온다. “만약 전시 관람을 천천히 하고 싶으시면 잠시 이 의자에 앉아 있다 가세요^^” 옆 의자엔 “‘쉬고 싶다’라고 생각만 하지 마. 여기야, 바로 여기!” ‘아,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마치 내 마음을 읽은 듯한 그 말에 슬며시 위로받으며, 작품 아닌 듯 놓인 의자에 앉아 다른 작품들을 쓱 둘러본다. 이 의자는 피네건 샤논과 라움콘이 협업하여 만든 설치작품 〈우리 여기서 환영받는 거 맞죠, 아닌가요?〉이다. 작가들은 다양한 사람들이 방문하는 미술관에 쉬어가는 공간이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으로 의자를 놓음으로써 딱딱한 전시 환경을 다정하고 위트 있게 바꾸고 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무장애 전시 《열 개의 눈》은 미술관의 접근성 강화를 위한 프로젝트형 국제 기획전이다. 형식적인 배리어프리(Barrier-free)를 넘어 실질적인 접근성(Accessibility)을 실험하기 위해 2024년 사전 프로젝트로 진행된 《미술관 밖 프로젝트 #1-6 열 개의 눈》은 장애·비장애 커뮤니티와 6개의 예술 프로젝트의 내용과 과정을 관외에서 소개하는 전시였다면, 이번 《열 개의 눈》은 접근성 강화를 위한 실험의 결과로 구성된 본전시인 셈이다. 웹툰, 퍼포먼스, 사운드아트, 사회적 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 7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전시에 참여한 국내외 20명의 작가는 장애·비장애, 국적, 나이, 성별 등 다양한 정체성을 기반으로 그동안 미술관이 고려하지 않은 관객, 제공하지 않은 경험에 대해 인식했다. 이는 접근성을 단순한 물리적 편의를 넘어서 ‘몸들의 고유한 경험’ 안에서 상황과 조건에 따른 신체 감각의 변화와 이에 관한 탐구를 기반으로 접근해야 함을 강조한다. 관람객은 전시장에 부착된 안내문과 QR코드를 통해 전시해설을 접할 수 있는데, (더 쉬운) 수어해설과 함께 (더 쉬운) 음성해설과 음성해설 대본 「풀어쓴 작품 음성해설집」으로도 제공하여 접근성에 신경을 더 기울인 듯하다. 이러한 다양한 해설 방식은 앞으로 다른 전시에서도 마땅히 적용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해 사전 워크숍에서 엄정순 작가는 ‘보다’라는 감각의 재정의를 위한 시도로 〈멋진 불편한 안경 만들기〉를 진행하며 참가자들의 다양한 시야 스펙트럼을 연결 짓는 실험을 했다. 이번 본전시에는 ‘보다’라는 행위에 담긴 내면적 요소를 탐구한 회화 초상 시리즈 〈당신의 눈동자를 위하여〉를 소개한다. 특히 관객참여형 작품 〈당신의 눈동자를 보는 망원경〉은 외부를 적극적으로 바라보는 도구인 망원경이 오히려 자신의 내부로 향하면서 만나게 되는 시선의 역전과 스펙트럼을 제시한다. 홍보미 작가는 사전 워크숍으로 부산맹학교 미술반 저시력 학생 일곱 명을 미술관으로 안내하는 수업을 세 달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작가는 학생들이 사물을 가까이 그리고 천천히 바라보는, 또는 흐릿하게 인식하는 방식이 미술의 회화적 표현과 닮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1층 로비에 설치된 〈멀지만 가까운, 가깝지만 먼〉은 영상과 드로잉 인쇄물로 구성된 작품으로, 함께한 학생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과 교감이 곳곳에 스며있다.

부산현대미술관은 2024년, 찾아가는 워크숍 형식으로 조영주 작가의 〈살핌 운동〉을 운영하였고, 이번 전시에서는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서로의 손과 등을 맞대고 조용히 서로를 살피는 커플 체조를 통해 돌봄에 담긴 상호 의존성을 신체로 경험하게 하는 작품이다. 여성의 신체와 삶을 주제로 설치, 사진, 비디오, 퍼포먼스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작업해 온 작가는 자신의 출산과 육아의 경험에서 출발하여 돌봄을 통한 치유를 사회적 메시지로 확산시키고 있다. 김덕희 작가의 〈하얀 목소리〉 또한 사전 워크숍으로 부산 시민들의 손을 직접 캐스팅하여 완성한 조각작품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크고 작은 손 조각들에 살포시 자기 손을 올리면 뜻밖에 부드럽고 따스한 온기가 전달된다. 작가는 고통과 소외의 시대에서도 여전히 지켜가는 혹은 지켜가야 할 내면의 온기와 위로를 관객에게 건넨다.

서하늬 작가와 엄예슬 작가로 구성된 ‘SEOM:(섬:)’의 〈감각을 따라 걷기〉는 지름 약 5미터의 링 모양 구조물로, 중앙이 높고 양 끝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형태의 공간형 사운드 설치 작업이다. 구조물의 표면은 천, 실, 털, 유리, 석고 등 다양한 색과 모양의 촉각 재료가 덮여 있고, 가만히 귀 기울이면 낯설지 않은 자연의 소리가 들린다. 사전 워크숍에서 시민과 을숙도에 있는 미술관 주변을 걸으며 채집한 바람 소리, 강물 소리, 동식물의 소리다. 작품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손으로, 눈으로, 귀로 미술관 주변 낙동강 하구의 자연을 감각해 본다.

김은설 작가의 설치작품 〈잔상 덩어리〉는 물풀을 손에 발라 떼었다가 붙이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생긴 거미줄처럼 연약한 실을 조심스럽게 감싼 여러 개의 조형물이다. 청각장애가 있는 작가는 어린 시절 부모님의 입 모양을 따라 몸으로 소리를 학습했다고 한다. 소리를 청각이 아닌 피부로, 눈으로 감각해 온 작가는 촉각으로 경험한 소리의 세계를 시각 조형물로 재현하고 있다. 흔히 소리의 목적은 의미의 전달이며, 그러한 측면에서 소리를 해독해 내려고 한다. 그러나 모든 소리가 명확하고 또렷한 것은 아니다. 모호한 소리와 진동, 떨림 등 소리의 본질은 다양하다. 소리를 시각적인 잔상 덩어리로 바꾼 김은설 작가의 미세한 감각 세계를 찬찬히 음미해 본다.

전시장에는 〈진정한 사랑은 결국 당신을 찾을 것이다〉라는 제목의 커플 등신대 조각상이 서 있다. 개의 머리를 한 여성과 여성의 머리를 한 개는 한 손을 서로 살포시 맞대고 있다.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없는 혹은 뒤섞인 모습이다. 작가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는 기존의 난청에 더해 2010년부터는 시력을 완전히 잃게 된다. 시각장애인이 된 이후 장애인으로서 겪은 차별과 제약, 자신의 안내견이자 삶의 동반자인 ‘런던’과의 깊은 유대감을 그림이나 조각으로 다양하고 자유롭게 표현하며 취약한 존재가 아닌 초월적 존재로 재현하고 있다.

카르멘 파파리아 작가의 영상작품 두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확성기가 된 하얀 지팡이〉 영상 속 인물은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확성기를 꼭 쥔 채 거리를 걸으며 외친다. “저는 시각장애인이에요. 저는 앞이 안 보입니다.” “혹시 제가 여러분에게 부딪히지 않도록, 비켜주시기 바랍니다.” 시각장애가 있는 작가는 보행 도구인 흰지팡이 대신 확성기를 들고 자신의 존재를 사회에 알리며, 장애인 역시 자유롭게 거리를 다닐 권리가 있음을 영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작품 〈이동수단〉에도 작가가 등장한다. 이번엔 악단과 함께다. 알록달록 자유로운 의상을 입고 악기를 든 연주자들은 카르멘의 눈이 되어 길을 안내한다. 연주에 귀 기울이면 도로 방지턱도 거뜬히 알아챌 수 있다. 확성기를 들고 잔뜩 긴장하며 걷던 카르멘은 이제 악단 행렬과 사람들을 따라 편안하고 자유롭게 걸어간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공동체임을 별다른 설명 없이도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손가락은 손이자 세상을 읽는 눈이다. 《열 개의 눈》은 손가락 열 개를 두 눈에 비유하여 우리가 가진 서로의 다양한 감각을 존중하며 서로에게 귀 기울일 때 새로운 감각의 확장이 가능함을 제안한다. 전시를 보며 장애를 불편함이나 부족함으로 보는, 혹은 극복하거나 이겨내야만 하는 것으로 보는 우리의 편견, 시각 중심으로 모든 것이 설계된 현대사회의 시스템이 오히려 특정한 감각 외에 나머지를 소거해 가고 있음을 서서히 눈치채게 된다.

접근성이란 신체 상태나 건축 환경에서의 장애물을 없애는 방법 외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주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고 보장받는 것이리라. 사회적 약자도 편안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향유할 수 있는 예술 접근성부터, 장애나 여성, 나이 듦을 약한 몸이라 규정짓는 편견을 넘어, 있는 그대로의 몸으로 인정하고 또 다른 능력으로 볼 수 있을 때, 능동과 주체의 위치와 관점에서 모든 경계를 넘어설 때, 접근성이라는 말조차 무색해지게 될 때, 그것을 이루게 될 것이다. 어쩌면 우리에게 전시 《열 개의 눈》은 그 시작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진정한 사랑은 결국 당신을 찾을 것이다.”

  • 어두운 전시장 안, 천장에 매달린 커다란 원형의 파란 설치물이 중심에 있으며, 바닥에는 작은 조형물이 놓인 콘크리트 받침대들이 원형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김덕희, 〈밤의 노래〉, 파라핀 왁스, 염료, 지름 360cm, 2025. 부산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 전시장 중앙에 설치된 긴 망원경을 통해 다채로운 색채의 내부 구조가 보이며, 뒤쪽 벽면에는 추상적인 얼굴 형태의 그림들이 나란히 걸려 있다.

    엄정순, 〈당신의 눈동자를 보는 망원경〉, 금속, 금속 파이프, 유리, 3D 프린팅, 200×200×100cm, 2025. 부산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 개의 머리를 한 여성과 여성의 머리를 한 개는 한 손을 서로 살포시 맞대고 있는 하얀 조각상이 서 있다.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 〈진정한 사랑은 결국 당신을 찾을 것이다〉, 혼응지, 스티로폼, 나무, 알루미늄 관, 합성수지, 아크릴릭 광택제, 158.8×116.8×96.5cm, 2021. 작가소장

  • 가운데가 뚫린 도넛형 구조물 가장자리에 푸른색과 노란색의 부드러운 섬유 재질 장식이 둘러져 있으며, 바닥에는 점자와 유도블록 형태의 무늬가 새겨져 있다.

    SEOM, 〈감각을 따라 걷기〉, 천, 실, 아크릴, 사운드 모듈, 스피커, 550×55×75cm, 2025. 작가소장, 부산현대미술관 제작 지원

열 개의 눈

열 개의 눈

부산현대미술관 | 2025.5.3.~9.7. | 부산현대미술관

《열 개의 눈》은 미술관의 접근성을 강화하는 프로젝트의 최종 단계로 선보이는 국제 기획전이다. 전시에는 다분야 국내외 작가 20명이 참여해 70여 점의 공감각적 작품을 선보인다. 전시는 손가락 열 개를 두 눈에 비유하는 전시 제목처럼, 우리의 감각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신체 조건과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탐구하며 감각의 위계를 해체하고,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감각적·존재적 가능성을 탐색하는 장으로 꾸려진다. 김덕희, 김은설, 엄정순, 조영주, 홍보미, SEOM:(엄예슬, 서하늬), 김채린, 라움콘(송지은, Q레이터), 라일라, 정연두, 미션잇, 다이앤 보르사토, 라파엘 드 그루트, 로버트 모리스, 에밀리 루이스 고시오, 카르멘 파파리아, 피네건 샤논, 해미 클레멘세비츠 등이 참여했다.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부산현대미술관 홈페이지

김경화

김경화

도시에서 버려지거나 방치된 재료를 주로 사용하여 노동의 가치와 제도적 불평등에 대한 질문을 담은 설치미술을 하고 있다. 2025 오월미술제 《생물민주주의》, 2025 제주4.3미술제 《타오른 바람, 이어든 빛》, 2024 부산비엔날레 《어둠에서 보기》,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기념전 《비원》(2024), 《이것은 부산이 아니다: 전술적 실천》(부산현대미술관 2024), 2021 바다미술제 《인간과 비인간 아상블라주》, 2018 광주비엔날레 《상상된 경계들》 등 다수의 기획전시에 참여했다.
tina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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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부산현대미술관

2025년 7월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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