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나는 25년째 시각예술 창작모임 ‘선사랑드로잉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애·비장애를 넘어 시각예술 작가들이 함께하는, 내가 애정하는 창작 작업 모임이다. 근래 10여 년은 평면 캔버스에 그린다는 개념을 넘어서 선과 색, 언어와 몸짓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다름’을 미적 감각으로 새롭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며 다양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요즘은 ‘우리 몸 크로키’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예술 실험을 펼치고 있다. 이 시도는 “다양한 장애, 생김새가 모두 다른 우리 몸을 그 자체로 바라보고 창작의 원천으로 이해하려는 생각과 움직임을 다룬다”라는 기획의 글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휠체어에서 상하 이동용 리프트를 타고 바닥으로 옮겨 앉는다. 늘 휠체어에 단정히 앉아 있는 모습에 익숙한 작업 동료들에게조차 생경한 모습일 것이다. 타인에게 바닥에 앉은 모습을 보이는 게 의외로 용기가 필요했던 세월이 있었다. 꽤 길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면서 마치 바다에 풍덩 뛰어든 느낌이랄까. 누구의 몸도 사회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기준에 맞출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그 자체로 인정하는 예술의 공간. 거기엔 옳고 그름도, 정상과 비정상도 없다. 생김새가 모두 다른 우리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그 자체를 창작의 원천으로 존중하는 데서 출발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모여 서로의 몸을 바라보고, 그림을 통해 ‘움직임’과 ‘선’의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낸다.
본격적인 드로잉 작업 시작 전 서로의 몸을 느끼는 시간. 움직일 수 있는 신체를 활용하여 몸을 푼다. 한 팔로 너울너울 상하좌우 움직이는 몸짓. 그림 그리는 발로 음악 선율에 맞춰 리듬을 탄다. 조용한 긴장 속에 창작은 시작된다. 참여작가 중 구족화가가 발로 물감을 쏟아내어 물감 범벅이 되는 순간, 그의 움직임은 그대로 선과 면이 되어 격정적 감정이 된다. 그녀는 말한다. “여행하는 기분”이라고. 작업에 함께하는 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몸의 중심을 잡는 노력과 흔들림 모두가 몸짓-춤이고 표현의 일부가 된다. 내게,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창작 활동을 넘어선 신체적 해방의 경험이다.
온몸으로 풀어헤친 자유분방한 이미지들은 정말 아름답고 강렬하다. 몸 전체로 그림을 그리고, 서로 다른 움직임과 신체가 어우러지는 모습은 그 자체로 예술이자 자유의 선언처럼 느껴진다. 나는 장애가 있는 몸으로 살아가며, 종종 사회에서 장애를 바라보는 고정된 시선에 스스로를 묶어 억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림이 된 몸, 몸이 된 선 속에서 나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법을 다시 배우고 있다. 우리는 각자의 몸이 허용하는 상태에 따라 움직이고, 움직임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은 다시 우리의 감각과 감정을 흔들어 깨운다.
“손과 발, 온몸이 곧 붓이다.” 각자의 신체가 도구가 되는 순간, 우리는 표현의 본질과 마주한다. 불편한 이 몸이 ‘멋진 선’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깨닫는다. 움직임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라, 나만의 감각이고, 표현이며, 언어라는 것을. 내 몸의 미세한 떨림, 중심을 잡기 위한 긴장, 그 모든 몸짓이 캔버스 위에서 생명력 있는 선으로 피어난다. 그 선은 고정된 틀과 기준을 부수며, 새로운 나로 이끈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나의 불편한 몸이 그림이 되는 순간, 나는 내 몸을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점이다. 성치 않은 팔의 움직임은 제약이 아닌 표현이 되고, 그림은 감옥이 아닌 해방의 문이 된다. 오랜 연륜에 의해 적응된 이유도 있겠지만 ‘우리 몸 크로키’를 통해 나는 ‘장애의 몸’이라는 억압된 의식에서 조금씩 탈출하고 있다. “취약함이 많은 나의 이 몸도 움직이고 있고, 표현하고 있고, 살아 있다.” 그 순간, 내 그림도 바뀌기 시작한다. 나는 어느새 움직임과 이미지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한다. 그 순간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탈출이다. 이러한 경험은 내 회화 작업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최근 작업은 색·면과 기하학적 구성을 바탕으로 몸의 감각과 사회적 감각의 충돌과 조화를 시각화하고 있다. 이 작업은 단순한 조형 실험이 아닌, 몸을 통한 정체성과 해방의 시각적 언어들이다. 나는 이 언어를 통해, 나를 규정짓던 억압된 구조와 인식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장애예술이란 결국 ‘다른 몸’이 가진 감각과 존재 방식을 새로운 형식과 언어로 풀어내는 작업이다. 나에게 예술은 단지 ‘그리는 일’이 아니라, ‘다시 살아내는 일’이며, 몸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해방의 서사다. 선사랑드로잉회에서, 그리고 나의 회화 안에서, 나는 그리 각성한 몸으로 다시 그리고 있다. 그리하여 나는 또다시 캔버스 앞에 머문다. 이 세계의 단단한 경계를 녹이는 작업, 그것이 나에게 그림이라는 길이다.
활동 전 서로의 몸을 느끼는 시간
각자의 몸이 도구가 되어 그리기

문은주
미술작가. 선사랑드로잉회, (사)한국장애인미술협회, (사)대한민국휠체어합창단, (사)한국미술협회 회원. 다수의 개인전과 그룹전에 참여했다. 복지관 문화학교 미술강사로 활동했고, KBS 제3라디오 ‘함께하는 세상 만들기_문은주 화가가 들려주는 그림이야기’ 코너를 진행하기도 했다. 경기도 지체장애인협회 사회적 장애인식개선교육 강사로 유치원, 초중고에서 강의하고 있다. 평소 즐기는 음악감상의 확장으로 합창단 활동도 하며 정기공연, 해외공연 등에 참여하고 있다. 40대까지는 주로 개인 작업에 몰입하였고, 40대 중반 이후부터 사회와 장애계와의 연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함께하고 있다.
mgloria@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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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필자
2025년 8월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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