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SNS와 유튜브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던 중 국악방송의 기획 시리즈인 〈나는 예술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해당 프로그램은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애예술인의 삶을 조명한다. 그중에서도 국악(판소리, 민요, 해금 등)을 전공하고 예술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들의 에피소드를 골라 보았다. 그러나 해당 시리즈를 시청하며 여러 가지 의문과 당황스러움이 몰려왔다. 우선 ‘(장애)예술인’보다 ‘장애(예술)인’을 더 조명하였기에 진정 2025년에 제작된 프로그램이 맞는지 의심되었다. 또한 장애예술에 대한 관점을 확장한다기보다는 고정관념을 공고히 할 수밖에 없는 콘셉트였기 때문에 더욱이 당황스러웠다. 관련 보도자료를 살펴보면 “‘장애인은 할 수 없다’라는 사회적 편견과 고정관념을 허물”(주1)고자 하는 의도로 제작되었음이 확인되며, 이는 비장애중심주의와 능력주의를 경계하고자 하는 태도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프로그램의 실제 내용은 기획 의도와는 상충했다.
비장애를 열망하기: 장애=능력 없음, 비장애=능력 있음?
〈나는 예술가〉 시리즈의 서사구조는 다음과 같다. 어떤 장애(질병)를 지닌 인물인지를 설명하고, 이러한 손상을 지니고 있음에도 비장애인들과 나란히 무대에 서며 각고의 노력으로 장애를 뛰어넘는(?) 예술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결말에 다다른다. 이러한 획일적인 스토리 구조가 계속해서 반복된다. 장애예술 콘텐츠임에도 불구하고 능력주의와 비장애중심주의를 반복 재생산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리고 곁에서 지지해 주는 양육자가 함께 등장하며 이 정도로 성장해 줘서 고맙다는 “‘장애극복’ 내지 ‘성장 스토리’ 서사는 장애인이 주체가 된 언어가 아니라 (…) 장애인을 타자화하는 언어”(주2)이다.
해당 프로그램 기저에 깔린 능력주의는 비장애중심주의를 더 강화한다. 특히 음악 분야의 장애예술인을 조명할 때 특정 손상(장애)을 강조하며 신체적 한계(장애)를 극복하여 비장애인과 비슷한 혹은 더 뛰어난 수준의 연주 실력을 조명한다. 이때 이들은 ‘장애예술가’가 아니라 ‘장애인예술가’(주3)로 전락한다. 이들의 노력을 부정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서사는 다음과 같은 문제를 발생시킨다. 장애인예술가가 도달해야 할 목표가 비장애인(people without disabiltiy)(주4)예술가임을 염두에 두고 있기에 ‘장애=능력 없음, 비장애=능력 있음’의 등식을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한다. 이와 같은 능력주의가 철폐되지 않는다면 장애차별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장애, 그 자체를 인정할 수는 없을까?
나는 특정 질병과 평생 함께해야 하는 산정특례 대상자로 분류된다. 나의 질병에는 완치라는 개념이 존재하긴 하지만 언제 다시 재발할지 모르는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기에 ‘치유될 거야’라는 말은 무책임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 질병과 어떻게 더 잘 공존할지 고민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경험에 빗대어 보았을 때 질병 혹은 장애(손상)를 극복하라는 말은 누군가에겐 폭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그래서인지 양하은 해금 연주자의 인터뷰가 인상적으로 와닿았다. “장애를 이겨내는 건 아닌 거 같고 (…) 한 몸처럼 장애와 더불어 산다는 게 더 맞는 거 같고 (…)”라며 장애에 관한 본인의 관점을 뚜렷이 밝혔다.
그렇다. 장애는 비극적 손실이 아니다. 그렇다면 장애예술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 장애예술은 변형된 신체를 기반으로 자신만의 지식과 관점을 찾아내야 한다.(주5) 그것이 비장애예술과 차별화되는 지점이 아닐까. 또한 비장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관습과 존재들을 존중하는 태도 그 자체를 관객에게 새로운 경험과 기억으로 인식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신체의 완벽함만을 추구하고 통제하려는 환상을 깨부수는 예술적 실천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는 한계를 뛰어넘는 예술이 아니라 ‘한계 그 자체가 예술’로 승화되는 장애예술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주2.전지영, “장애예술과 장애인예술의 개념 논의: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활동을 중심으로”, 『한국예술연구』, 한국예술연구소, 2021, 제32호, 200쪽.
주3.장애예술과 장애인예술의 개념은 구분된다. “장애인의 활동을 의미맥락으로 하는 장애인예술과 달리, 장애예술은 장애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성찰적 시선을 담은 예술로서의 의미맥락을 갖는 것”이다. 전지영, 위의 글, 197쪽.
주4.김도현, “비장애중심주의와 능력주의”, 『장애학의 시선: 누구도 뒤에 남겨지지 않는 세계를 향한 비전』, 오월의봄, 2025, 103쪽.
주5.수전 웰던, “차이로서의 장애”, 『거부당한 몸: 장애와 질병에 대한 여성주의 철학』, 그린비, 2013, 165쪽.

서수빈
우리 삶 속에서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들을 늘 의심하고 질문하며 살아간다. 전통예술(국악)을 공부하며 사회 속 다양한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술적 실천에 주목하고, 소수자 담론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공허한 선언을 외치기보다는 침묵하게 된 목소리들에 주목하며 이들과 함께 망명하는 비평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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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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