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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장애’는, 책 속에서 이야기의 중심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이 키워드는 문학이 사회를 다시 읽기 위해 선택한 출입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25년 한국의 장애문학과 장애 관련 출판은 바로 이런 변화의 지점에 서 있다. 장애를 일방적으로 ‘이해해야 할 대상’이나 ‘감동의 서사’ 따위로 설명하던 언어는 힘을 잃었다. 대신 장애를 통해 우리가 어떤 관계 맺음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 어떤 제도와 감각의 질서가 일상을 규정하고 있는지를 묻는 책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장애문학의 단순한 양적 확대라기보다, 장애를 바라보는 문학적 시선 자체가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다시 말해 장애는 더 이상 설명의 대상이 아니라, 사회를 해석하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었고, 문학은 그 기준점을 통해 개인의 경험을 넘어 구조와 환경,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감각의 문제를 깊이 사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문학 분야에서 이러한 변화는 특히 뚜렷하다. 『나의 어린 어둠』(조승리, 다산책방)과 『우는 나와 우는 우는』(하은빈, 동녘)은 장애를 서사의 중심 사건으로 전면화하지 않는다. 이 책들에서 장애는 인물의 비극적 조건이나 서사의 전환점으로 소비되지 않으며, 오히려 인물이 세계를 인식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장애는 드러내기 위한 주제가 아니라, 이미 작동하고 있는 감각의 조건으로 존재한다. 『진우의 거울』(김인규, 푸른칠판)과 『그 존재만으로』(우석영, 종이와빵) 역시 장애를 설명하거나 교훈화하지 않는다. 이 책들은 장애를 마주한 이후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시선의 변화를 조심스럽게 따라가며, ‘장애를 가진 사람’을 넘어 ‘장애 이후의 세계’를 사유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장애문학은 특정 정체성의 문학이라기보다, 세계를 읽는 하나의 방법론에 가까워진다.
2025년 장애 관련서의 중심축은 단연 에세이와 기록물이다. 『나의 특별한 형제』(장한샘, 타래), 『불편하지만 웃으며 살아갑니다』(백순심, 설렘), 『나는 느린 세계를 가르치는 교사입니다』(류지현, 미다스북스), 『눈부시지 않아도 빛나는』(안승준, 도서출판 지금)은 장애를 둘러싼 삶의 장면들을 감동이나 희생의 언어 같은 것으로 포장하지 않는다. 대신 노동, 교육, 가족, 제도라는 구체적인 장면을 통해 장애가 개인의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이 책들에서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선의의 배려’가 아니라, 우리의 제도와 사회적 환경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배제해 왔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봅시다』(신순규, 판미동), 『나는 여전히 분홍색 원피스를 꿈꿔요』(박세아, 미다스북스), 『혼자서는 몰랐던 일들』(정은경, 나녹), 『나는 멜버른의 케어러』(루아나, 메멘토)는 장애와 젠더, 이주, 돌봄의 문제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를 보여주며 경험의 층위를 확장한다. 특히 『리더의 탄생』(박성환 외, 지식과감성#)과 『김선, 길을 내며 길을 걷다』(김선, (주)책글사람)는 장애를 보호와 시혜의 대상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노동과 리더십, 사회적 책임의 주체로 재위치시키는 시도를 분명히 드러낸다. 이 흐름은 장애 관련 출판이 ‘이야기 전달’을 넘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동·청소년·그림책 문학 분야의 변화 역시 주목할 만하다. 『어느 날 문어가 되어 버린 내 친구』(표지율, 한울림스페셜), 『장애를 왜 이해해야 할까요?』(백정연, 어크로스주니어), 『점순이 졸업식』(김연희, 파란자전거), 『월요일의 윤슬』(서재경, 소소한소통), 『보라 초록』(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2025 장애인권 동화책) 등이 있다. 이 책들은 장애를 특별한 사건이나 예외적인 상황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장애는 이미 존재하는 세계의 일부이며, 아이들은 그 세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는다. 설명과 교훈 대신 경험과 장면을 앞세우는 이 방식은, 장애 감수성이 더 이상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일상적 감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흐름은 장애를 주제로 한 사회학 도서들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장애학의 시선』(김도현, 오월의봄)에서 저자는 ‘손상은 손상일 뿐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손상은 장애가 된다’라는 장애학의 기본 관점을 확인하며, 장애를 관계·제도·정치의 문제로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만든다. 장애해방운동, 노동, 기후위기까지 시야를 넓히며 ‘연립과 공생’의 사회를 사유하도록 제안한다. 『언젠가 전혀 이렇지 않을 것이다』(김효진 외 15인, 사슴뿔)는 장애여성의 다양한 삶의 양상을 통해 다중 차별을 가시화한다. 문제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이며, 적응이 아니라 저항이 존엄의 방식임을 이 책은 분명히 하고 있다.
해외 장애문학의 흐름 또한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2025년 해외 장애문학은 장애를 감동의 서사에서 분리해 욕망과 권력, 돌봄과 윤리의 문제로 다루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다. 장애 당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번역과 비평의 중심부로 진입하며, 장애문학은 더 이상 주변 장르가 아니라 세계문학의 한 흐름으로 읽히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의 경우 극우적 국가정책이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학교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검열과 유통 제한 등의 문제가 장애문학까지도 새로운 정치적 긴장 속에 놓이게 했다. 이는 장애문학이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니라, 접근성과 공공성의 문제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앞으로의 장애문학은 ‘착한 이야기’나 쓰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이다. 장애를 통해 사회의 구조를 드러내고, 관계의 방식을 재설계하며, 감각과 언어를 다시 조직하는 문학의 실천 의지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오늘날 장애문학은 특정 집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세계를 선택할 것인지에 관한 질문으로 계속 확장하고 있다.
조승리, 『나의 어린 어둠』, 다산책방, 2025
김인규, 『진우의 거울』, 푸른칠판, 2025
백순심, 『불편하지만 웃으며 살아갑니다』, 설렘, 2025
서재경 『월요일의 윤슬』, 소소한소통, 2025

김성신
출판평론가.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비평연대 창립인, 한국문화콘텐츠비평협회 부회장, 출판도시문화재단 이사, 서울현대문학관 이사. 연간 7만여 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많은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 대국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인은 자국의 출판산업에 자부심을 가져 마땅하다는 점을 언론과 방송 등을 통해 열심히 알리고 있는, 출판계의 대표적인 마이크 중 하나. 최근에는 ‘비평연대’ 활동을 통해 젊은 문화비평가와 서평가 양성에 힘쓰고 있다.
foucault613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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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다산책방, 푸른칠판, 슬로디미디어, 소소한소통
2026년 2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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