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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 〈똥 싸러 가는 길〉 그렇게 그렇게 화장실에 도착했더랍니다

  • 조은호 작가
  • 등록일 2026-02-11
  • 조회수 56

리뷰

개그콘서트처럼 미리 짜인 대본으로 코미디를 하던 시대가 저물고 유튜브에서 자주 보이는 하이퍼리얼리즘이나 메타 코미디가 대세다. 관객을 작정하고 웃기고 싶다면 연극 또한 이 흐름에서 벗어나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연극이라는 형식의 특성상 대본이 없거나 대본이 없는 것처럼 연출하는 방식이 현실적으로 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이 한계는 돌파될 수 있을까?

〈똥 싸러 가는 길〉은 현대적 방식의 코미디와 연극적 연출의 경계에 절묘하게 서 있다. 작품의 전개는 단순하다. 무대가 열리면 능청스러운 장애인 네 명이 마이크 쟁탈전을 벌이며 (한마디도 안 하고 연주만 하는 서운한 악사 한 명까지 어우러져) 아웅다웅 각자의 이야기를 하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극 전체는 관객에게 한 편의 세련된 코미디로 다가온다.

“힘들어 죽겠네, XX”을 연발하며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도 끝까지 할 말은 다 하는 세영의 화법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똥 이야기에 웃지 않기가 힘들다. 스탠딩 코미디(이 연극에서는 이 방식을 ‘언더스탠딩 코미디’로 명명했다)의 형식을 빌려 무대에 선 네 명의 장애인 배우는 가상의 배역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낸다. 짧은 회상 장면을 제외하면 계산된 코미디는 없다. 이들은 공연 내내 자전적 이야기를 관객에게 털어놓으며 말을 걸거나 즉흥적인 리액션을 한다.

‘급똥의 습격’류 사연은 흔히 접하는 개그 소재이지만, 장애인들이 털어놓는 똥 이야기는 한결 더 역동적이고 강력한 기승전결 구조를 갖췄다. ‘마침내 화장실에 도착했습니다’라는 말에 안도하자마자, ‘닦는 일이 또 문제였습니다’로 이어지는 반전도 있다. 이 연극의 홍보문구 중 장애인들이 화장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용사들의 똥 싸러 가는 모험 서사시’로 표현한 건 과장이 아니다.

예를 들어 일주의 사례에서 그가 겪는 ‘자율신경과반사증’은 극의 핵심 서스펜스로 기능한다. 똥이 차오를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닭살이 돋는 일주만의 과반사 신호는 마치 시한폭탄의 타이머처럼 작동한다. 짝사랑하는 미용사 누나 앞에서 이 신호가 터졌을 때, 그는 비극적인 절규 대신 “머리가 깨질 것 같다”라는 엉뚱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하려다 결국 소파를 노랗게 물들인다. 이 처절하면서도 황당한 실패담은 관객에게 낯선 장애의 감각을 학습시키는 대신 긴박한 상황에 함께 뛰어들게 만든다. 정보로서의 장애가 아니라 감각으로서의 장애를 공유하는 순간, 관객은 비로소 그들의 모험에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그들의 기억은 각자의 나이와 성별, 성격과 맞물려 시각, 청각, 후각이 동반된 주관적이고 감각적인 에피소드로 회상되어, 장애인이라는 명칭 아래 뭉뚱그려졌던 미시적 삶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이를 통해 과거 기억에 관한 도식적인 기술을 넘어 관객의 마음과 맞닿을 수 있는 공감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이 연극은 배가 당기도록 웃기면서 내 얘기같이 아프다. 〈똥 싸러 가는 길〉은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마비된 감각을 가장 원초적인 소재인 ‘똥’으로 살려낸다. 무대에서 내내 빚어내는 개그감은 장애예술을 접하며 부딪칠 수 있는 ‘웃어도 될까?’의 장벽을 끝끝내 무너트린다. 교훈적인 메시지 발신에 적극적이거나 논쟁하려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누군가 슬쩍 꺼낸 이야기에 나도 한마디 보태고 싶어질 뿐이다. 장애인이 일상에서 배변과 관련해 겪은 어려움을 곱씹어 사회구조적 문제와 연결 지을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는 수시로 튀어나오는 ‘똥!’ 소리에 무장해제가 먼저다.

배우들은 자신의 일상을 적절히 조직하여 풀어내는 것만으로 무대 위에서 한 명의 코미디언으로 완전하게 군림한다. 동시에 ‘무엇을’에 머물기보다는 ‘어떻게’로 전진한다. 이 연극은 ‘수동적이고 선량한 약자’라는 프레임을 거칠게 걷어찬다. 세영은 지하철 노약자석에서 자신을 위협하는 노인에게 복지카드를 내밀며 맞서고, 자신을 무시하는 비장애인의 싸대기를 시원하게 갈기고 싶다는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XX새끼! 너 오늘 죽었다!”라고 외치며 무대 밖으로 뛰어나가는 그의 욕설과 욱하는 성격은 도덕적 결함이 아니라, 억압적인 환경 속에서 자기를 지켜온 인간적인 방어기제이자 코미디의 활력소로 작용한다.

〈똥 싸러 가는 길〉은 자학을 넘어선 자부심(Self-respect)의 코미디로만 끝나지 않는다. 네 사람의 농담은 공개되고 정돈된 정보에서는 확인하기 어려운 장애인의 일상을 더욱 선명하게 안내하는 가이드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장애를 대하는 우리 현실에 관한 질문으로 모인다. 그러니까, 화장실은 어디에 있는가?

이 연극의 성취를 좀 더 온전히 설명하려면 스탠딩 코미디라는 영리한 전략으로 또다시 장애예술의 지평을 넓힌 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이 극단은 〈요즘 유행하는 옷〉에서 장애인 패션쇼를 상상하더니, 〈이 동네 개판 5분 전〉에서 중증장애인들을 좀비로 분장시켜 무대에 던져놓는 발랄한 시도로 객석을 흔들었다. 한편으로 매년 열리는 〈란, 태수야〉를 통해 4년째 장애인 열사의 기억을 끈질기게 붙잡아 두는 중이기도 하다.

〈똥 싸러 가는 길〉은 장애인들의 유언을 수집하는 프로젝트가 발전해 세상에 나왔다. 이 극단은 비장애인들이 주인공인 게 당연했던 기존의 형식 안에 장애인들을 부지런히 편입시키고 있다. 지축을 흔들 필요 없이 프리즘의 각도를 바꾸기만 해도 새로움이 탄생한다는 사실은 이들의 시도를 통해 명확히 입증되는 중이다.

  • 어두운 무대에서 흰색 드레스를 입고 긴 머리를 내려뜨린 박세영 배우가 이야기하고 있다. 뒤편 스크린 오브제에는 그래픽적으로 표현된 출연자의 얼굴이 투사되고 있고 “욱하는 女자”라고 쓰여 있다.
  • 무대에서 휠체어를 탄 배우가 두 팔을 크게 들어 올리며 절규하고 있다. 배우는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라고 쓰인 주황색 슬로건 가리개를 몸에 두르고 있다. 뒤편 스크린 오브제가 무지갯빛으로 프로젝션되고 있다.
  • 어두운 무대에서 핀조명 아래 휠체어를 탄 임일주 배우가 정면을 향해 앉아 있다. 뒷면 영상 자막 겸 오브제에는 “너 똥 싼 거 같아”라는 문장 세 개가 쓰여 있다.
  • 어두운 무대에서 두 명이 나란히 앉아 있다. 흰머리의 배우는 손에 든 마이크를 입 가까이 대고 두 눈을 감고 노래 부르고, 옆에서 악사가 기타를 치며 배우를 바라보고 있다.
똥 싸러 가는 길

똥 싸러 가는 길

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2025.12.18.~12.19.|이음아트홀

연출이 스탠딩코미디를 하자고 하는데 기분 나빠서 안 하겠다고 했어. 난 일어날 수도 없는데 무슨 스탠딩코미디? 그 대신 언더스탠딩코미디 하겠다고 했어. 누구나 먹어야 살고 먹으면 싸야 하는데 똥 싸는 게 왜 그렇게 힘들까? 아니 똥 싸러 가는 길이 왜 그렇게 험난할까? 산 넘고 물 건너 괴물을 물리치는 건 화장실 턱을 넘거나 장애인 화장실을 찾는 것에 비하면 쉬운 일이다. 과장이 심하다고? 들어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각기 다른 장애가 있는 용사들의 똥 싸러 가는 모험 서사시가 펼쳐진다.
연출 진준엽, 출연 김종환·박성준·박세영·임일주, 악사 주영호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조은호

조은호

작가. 오래전 극단 맥놀이를 열어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연극을 만들었다. 인생의 우회로를 거쳐 최근 다시 연극의 문을 두드리는 중이다. 〈모던이펙트〉, 〈사도〉, 〈바보에게는 존경을〉 등을 썼다.
neru815@naver.com

사진 제공.창작공동체 무적의무지개

2026년 2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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