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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0set 프로젝트 〈작은 갑옷을 입은 기사와 왕국 없는 왕 그리고 뿌리 없는 나무의 모험〉 내 몸 둘 바를 알아가려면

  • 장기영 공연예술평론가
  • 등록일 2026-02-11
  • 조회수 85

리뷰

아찔했던 감각부터 밝히며 시작해야겠다. 나는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소외되었다고 느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소외감이 지속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엄살부터 피우며 시작하는 이유는 ‘소외’라는 상태의 자명함과, 그것에 대응하는 방식에서 자명한 것은 없다는 사실부터 말하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이 소외‘감’에 집중하게 될 때 놓칠 것이 무엇인지도 함께 말하고 싶어서이다.

게임 형식으로 구성된 공연 〈작은 갑옷을 입은 기사와 왕국 없는 왕 그리고 뿌리 없는 나무의 모험〉(이하 〈모험〉)은 한국수어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공연의 제목은 공연을 이끌어가는 세 캐릭터를 그대로 지칭한 것이다. 작은 갑옷을 입은 기사(이하 기사), 왕국 없는 왕(이하 왕), 뿌리 없는 나무(이하 나무)는 각각 정가은, 이상일, 송요셉을 지칭한다. 이들은 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이하 소보사)라는 농정체성과 농문화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주1) 세 청년의 이야기는 한 편의 서사로 조립되는 대신 각각의 이야기로서 한 게임의 세계관 내에서 연결된 채로 위치하며 관객에게 제공되었다.

눈치껏 존재하기

관객은 게임의 유저처럼 먼저 캐릭터를 선택한다. 소보사 건물 1층에 자리한 3개의 방에는 나무, 왕, 기사의 사진과 그들이 이곳에서 지냈던 흔적이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익살스러운 미소에 이끌려 나무를 택했다. 이 선택은 앞으로 내가 마주할 공연의 내용을 다른 선택을 한 이들과는 다른 것으로 만든다.

나무를 선택한 이들끼리 나무의 방에 모여 나무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나무의’ 이야기였다. 자신의 성격, 이곳 소보사에서의 생활, 앞으로의 과제 등 나무에 관한 이야기를 나무의 편한 언어인 한국수어로 말해주었다. 이 글 서두에서 말한 아찔한 감각은 여기서부터 발생하였다. “모든 게임은 수어로 진행됩니다”라는 자막에 이어 재생된 나무의 이야기 영상에는 어떤 자막도 음성해설도 붙지 않았다. 나는 이제부터 ‘눈치껏 존재해야겠구나’ 짐작했다. 이렇듯 공연 초반에 나무의 이야기는 음성해설이나 자막이 없는 채로 요셉의 수어 설명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낱말 카드, 소제목 자막 등으로 전해졌다. 한국수어 사용자가 아닌 나는 사실상 ‘대충 알아들은 척하며’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 나갔다. 모르는 채로 의미를 때려 맞추거나, 알아들은 것 같은 이들을 눈치 보며 따라 하는 식이었다. 이 눈치가 중요한 이유는 게임 중간중간에 관객에게 주어지는 몇몇 미션 때문이다. 나무가 수어로 지시한 대로 몇 가지 아이템을 찾거나, 혹은 그의 이야기 속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수어 표현을 따라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

나는 내용을 유추해 갔다. ‘아마도’의 연속이었다. 무엇도 확정할 수 있지 않았다. 이야기를 확정할 수 없으니 내가 파악한 것을 확신 있게 말할 수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기억한 내용을 수어로 표현하는 것, 혹은 수어 동작을 기억했다고 해도 그것을 손과 팔의 위치, 모양새, 움직임 등 평소 써보지 않은 동작과 표정으로, 그 움직임의 요소들을 고려하며 내가 기억한 표현을 따라 몸소 해내는 것은 순탄치 않았다. 무언가를 제대로 알 수도, 기억할 수도, 말할 수도 없는데 주어지는 미션들을 수행해야 한다는 사실이 퍽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또한, 나무와 스태프들은 친절하게도 관객을 위해 수어 영상을 수차례 반복해서 보여주거나 같은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해 주었는데, 이때 ‘이제는 알겠어?’라고 묻는 듯한 그들의 눈빛에 확신 있게 긍정할 수 없었던 그 순간은 내 지난 대화의 실패들을 떠올리게 하여 다소 괴롭기도 했다.

크립 스페이스와 소외감

기실 내가 이 공연에서 느낀 소외감과 당혹감은 2시간 남짓한 러닝타임 중 5~10분 정도로 아주 짧게 느꼈던 감정이었다. 그러나 이 감정을 내가 ‘강렬히’ 느꼈다는 점은 조금 더 살펴봐야 할 부분이다. 이 공연, 정확히는 이 게임이(주2) 수어로 진행된다는 사실이 내게 소외감을 불러일으켰다는 말은 곧 이 게임에서 ‘나의’ 언어 환경과 역사는 배제된 것이겠구나, 하는 염려가 작동했다는 말이다.

s.e. 스미스(주3)는 앨리스 셰퍼드와 로렐 로슨이 공동 안무로 참여한 작품 〈하강(Descent)〉의 공연 공간을 이렇게 묘사한다. 무대에는 “휠체어를 탄 무용수들이 등장”할 뿐 아니라, 객석에는 “좌석 등받이에는 지팡이들이 걸려 있고 안전등 불빛에 의족들이 빛나고 있었”고, “아랫줄에 앉은 한 시각장애 맹인 여성은 작은 무대 모형을 든 채 음성해설에 따라 손가락으로 무대를 따라가고 있”었다고. 그는 이곳을 “비장애인의 요구에 맞추거나 그들의 편의를 고려해 설계되지 않”은 “우리의 공간”이라고 칭한다.

“우리의 공간에 초대된 것이 그(비장애인 관객-인용자 주)에게는 분명히 불편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접근성에 따라 나뉜 세계의 이편에, 지금까지 누린 접근성 없이 서 보는 것 그리고 장애인들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는 것 말이다. (중략) 이 세계에서 자신들에게 개방되지 않은 몇 안 되는 공간을 발견했을 때 그들이 터뜨리는 분노가 외려 이런 공간들의 필요성을 정확히 강조한다.”

장애를 가진 이들이 무대에도 객석에도 적잖은 이곳에서 모종의 소속감을 느끼며, 이곳에 함께 자리한 장애 당사자들을 잠시나마 공동체로 느끼는 경험을 한 것이다. 그가 지칭하는 이 공연의 시공간은 “자신의 존재를 설명하거나 정당화할 필요 없이 당위성과 공동체적 소속감을 느끼는 공간들”로 정체화되며, 그는 여기서 “크립 스페이스(crip space)”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소보사라는 장소, 더구나 내가 2025년 12월 26일 이 공연의 러닝타임 동안만 경험한 이곳을 ‘크립 스페이스’로 일대일 대응시키며 적용해 보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그날의 소보사를 ‘접근성의 역전’이 일어난 곳으로 감각했다는 점, 즉 그간 ‘접근성’이란 것이 장애 당사자들이 공간 정치에 깃든 정상성 규범을 지적하기 위하여 사용되는 개념이라고만 믿어왔던 감각이 역전됨을 해설하기 위해 s.e. 스미스의 크립 스페이스 표현을 차용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는 공간 정치적 측면에서 크립 스페이스가 지닌 함의를 강조한다. 크립 스페이스에서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우리”가 된다. 즉 이곳에서 ‘비장애’라는 특성은 여기서 작동하는 공간 정치 혹은 정동이 장애를 중심으로 재편됨에 따라 도드라진 특성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곳 즉 농정체성을 중심으로 하는 소보사의 공간에서, 소보사 멤버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한국수어로 게임이 펼쳐지는 이 시공간에 적합한 몸(게임 수행자)으로 존재하기 위하여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에, 나는 접근성을 필요로 하는 위치가 되었다. 이 역전이 미러링으로만 의미화된다면 교조적인 주제밖에 생산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곳이 크립 스페이스의 역설, 즉 “우리가 서로를 위해 개척해 낸 이 세계의 구석 자리에 누군가는 소속감을 갖지만, 모두가 환영받는다고 느끼지는 않는다”는 것,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의 경험을 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못한 채 우리 자신을 포용하려는 열정으로 다른 사람을 소외시키기도 한다”는 것까지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했다.

소외‘감’과 소속‘감’은 내가 그 공간에서 무엇을 느끼기로 작정했는지에 따라 끝없이 자가 증식할 것이다. 이 게임에서 당혹감보다 재미를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 공간에 모인 이들의 공통적 특성(한국수어가 친숙한 이들. 관객은 주로 농인 혹은 농인을 가족으로 둔 이들로 보였다)에서 소외되었다는 점을 고정된 사실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0set 프로젝트가 이 사실을 ‘게임’으로 재배치하기 때문이다.

게임처럼, 혹은 게임으로써

〈모험〉은 세계관과 역할 세팅을 게임이라는 매체에서 차용하고, 게임의 내러티브를 한국수어로 이끌어 가면서, 동시에 문자언어(텍스트)와 이미지 등을 게임 오브젝트로 사용하는 공연이었다. 가령, 방 안에서 요셉이 한국수어로 설명한 아이템을 보물찾기하듯이 찾는 일, 자신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은유인 ‘뿌리 없는 나무’의 이미지가 그려진 6장의 카드를 요셉이 말하는 순서에 맞춰 배치하는 일, 요셉이 처했던 상황에서 느꼈을 감정을 한국수어로 전달받은 후 이에 적합한 단어와 이미지가 새겨진 카드를 고르는 일 등이다.

전술했다시피 이 과정에서 나는 지난 대화의 실패들을 떠올리며 아찔함을 느꼈다. 그러나 점차 이 공연에 자리하면서 재미를 느껴갔다. 화자의 말을 유추하는 과정이 위와 같이 ‘게임처럼’ 구성됐기 때문이다. 공연 초반엔 쉬운 수어 단어조차 등 돌리면 바로 잊어버려 쉽게 낙심했지만, 공연 도중에는 알아가려던 혹은 알았다고 여기는 이 과정이 ‘흥미롭게’ 배치되고 있음을 느껴갔다. 대목표의 성취만이 즐거운 것이라면 게임은 하는 내내 괴로운 것일 테다. 성취 과정이 조바심 나지 않고 중간의 소목표 달성을 감지할 수 있어야 즐길 수 있게 된다.

돌아보면, 한국수어 비사용자인 내가 나무의 말을 아예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다. 요셉은 표정과 몸짓, 그리고 청자에게 제 말을 전하려는 의지가 풍부한 화자였다. 또한 그는 청자를 눈치껏 살피며 한 번 더 설명이 필요해 보이는 같은 말을 반복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그의 표정과 몸짓을 열심히 읽어가며 내 나름의 맥락을 구성했고, 그에 따라 의미를 유추했다. 그리고 그 유추한 의미로써 다음 기표들의 기의도 연쇄적으로 유추해 갔다. 연쇄된 유추는 기실 정확도는 떨어지는 것일 테다. 다만 이 게임을 통해 대화 과정에서 즐거움이 발현되는 데에 중요한 것은 ‘맞혔음/틀렸음’이 아니라 ‘그와 내가 맞춰나가고 있는 것 같음→더 맞춰가고 싶음’의 메커니즘에 초점화되어야 하는구나 싶어졌다.(주4)

몰라도 괜찮았다. 수어를 못해도 괜찮았다. 소외되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내 몸을 이곳에서 소외된 몸으로 번역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나의 몸 둘 바는 이렇게 겹겹의 ‘괜찮음’ 속에서 모르지 않는 것이 되어간다. 어림짐작하며 미션을 수행해도 괜찮았고, 그러다가 틀려도 괜찮았고, 그러다가 우연히 정답이 얻어걸리면 그것은 그것대로 만족스러웠다. 물론 한국수어를 잘한다면 미션이 더 수월했을 테고, 게임이 진행되던 그 즉시 의미를 파악하기 쉬웠겠지만, 한국수어 사용 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나 미션을 수행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이곳에는 수어만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림과 텍스트, 중요한 안내들은 자막을 통해, 그리고 여차하면 이 게임 진행에 관해 물어볼 청인 스태프들이 계속 옆에 있었다. 또한 〈모험〉이 시작될 때 주요한 수어 표현(기사, 나무, 왕, 모험, 이야기, 중심, 책임, 선 긋다, 맞추다 등)은 이미 안내자가 여러 번 반복하며 알려주기도 했다.

크립 스페이스에 대한 s.e. 스미스의 단상이 여기서 도움 되는 이유는 ‘모두를 환영한다’는 언표 속에 절대 가려지지 않을 ‘모두가 환영받는다고 느껴지지는 않을 수 있다’는 실재를 기어코 떠올리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 환영(歡迎)의 환영(幻影)에서 벗어나는 게 필요하다. 이곳에서 우리가 서로를 전이시켜야 할 감각은 ‘이곳에선 누구도 소외시키지 않을 수 있다’라는 확신이 아니라, ‘이곳에서 소외감을 느낄지라도’ 그 소외감에서 다시 주권을 찾게 할 감각, 곧 내 몸이 그 몸대로 있어도 괜찮다는 감각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곳에서 소외감이 잠시 일었음을 부인하거나 망각하지는 않으려 노력했다. 동시에 그 소외감의 돌기들을 무디게 만드는 장치들이 공존했음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게임의 결말은 세 그룹으로 나뉘어 게임에 참여하던 이들이, 각 팀에서 부족한 퍼즐 한 조각을 찾기 위해 다 같이 1층에 모여 세 퍼포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듣는 일이었다. 조각난 영상들이 연이어 상영되었고, 음성해설과 자막이 덧붙었다. 그리고 세 퍼포머가 서로의 유일한 동급생이 되어 함께 쌓아왔던 ‘관계’를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사실, 이때 비로소 ‘뿌리 없는 나무’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의미는 이렇게 뒤늦게 도착했다. 뒤늦게 도착해도 괜찮은 것이었다. 한편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정확하게 요셉의 말을 알지는 못해도 그의 말과 표정, 그리고 그것을 알아듣고 있던 이들의 반응, 게임(이자 공연)의 소도구들이 주는 힌트 등을 따라가고 있었다. 이 말인즉슨 결말에야 알게 된 듯한 이 내용이 실은 ‘구면’인 것처럼 반가웠다는 말이다. 무엇보다 요셉의 말을 따라가고 있는 것 같았던 그 불확실한 시간이 퍽 즐거웠다는 인지야말로, 비로소 도착했다. 여흥이었다.

  • ‘기사’의 방을 구현한 장면. 왼쪽 벽에는 검을 든 기사의 그림이 크게 걸려 있고, 오른쪽에서는 출연자가 팔을 들어 몸짓으로 표현하며 테이블과 의자, 침대 등 소품이 놓인 공간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작은 갑옷을 입은 기사’의 방의 가은

  • 방의 흰색 커튼을 배경으로 관객 앞에서 나뭇잎과 풀로 장식한 의상을 입은 요셉이 나무처럼 두 팔을 위로 들고 두 눈을 감은 채 사색에 잠긴 표정이다.

    ‘뿌리 없는 나무’의 이야기(사진. 강동형)

  • 방 한쪽에 정가은, 이상일, 송요셉을 그린 퍼즐 그림카드가 놓인 세 개의 이젤이 있다. 스크린에는 ‘요셉’의 모습과 자막 영상이 나오고, 관객이 앉아서 보고 있다.

    요셉의 이야기 영상을 지켜보는 관객

  • 왕 역의 상일이 방바닥에 놓인 자기 모습의 퍼즐 그림카드의 마지막 장을 놓고 있고, 관객이 그 주변으로 모여 바라보고 있다.

    퍼즐 그림카드를 놓으며 이야기하는 상일(사진. 강동형)

주1.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에 대한 소개, 농정체성 및 농문화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다음의 글을 참고하길 권한다. 김주희·노지원, 「정체성을 발견하고 드러내는 통로」, [웹진이음] 43호, 2023.6.28.
주2.이 공연에는 한국수어 비사용자들을 위한 장치가 많이 배치되어 있었다. 실제로 공연 시작 무렵 스태프들은 나에게 구어로 공연 진행에 대하여 설명해주었고, 공연 후반부에 다시 재생되는 나무, 기사, 왕의 수어 영상들에는 음성해설과 자막이 붙기도 했다. 즉 ‘이 공연’은 한국수어 사용자만을 중심에 두는 공연이라고 볼 수는 없다.
주3.s.e. 스미스는 빌리사 톰슨, 앨리스 웡과 함께 장애인 기자와 작가를 찾을 수 있는 온라인 데이터베이스 디스에이블드라이터스닷컴을 공동 창립했고, 미국 캘리포니아를 기반으로 기자와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으로 『페미니스트 유토피아』(휴머니스트, 2017), 『급진적으로 존재하기』(가망서사, 2023), 『Body Language』(2022), 『Disability Intimacy』(2024) 등이 있다. 이 원고의 ‘크립 스페이스’와 관련한 인용은 대개 『급진적으로 존재하기』 중 s.e. 스미스가 쓴 「크립 스페이스의 아름다움」(404~407쪽)에서 인용한 것이다.
주4.여기서 ‘화자, 청자, 기표’ 등은 ‘말의 사용자, 수용자, 의미의 외적 표상 체계’의 은유로 사용되고 있다.
작은 갑옷을 입은 기사와 왕국 없는 왕 그리고 뿌리 없는 나무의 모험

작은 갑옷을 입은 기사와 왕국 없는 왕 그리고 뿌리 없는 나무의 모험

0set 프로젝트|2025.12.26.~12.29.|소리를보여주는사람들

세 캐릭터의 모험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탈출 게임. 기사는 왜 작은 갑옷을 벗지 않을까? 왕은 왜 왕국을 잃어버렸을까? 뿌리 없는 나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게임은 세 캐릭터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모험이자 정가은, 이상일, 송요셉 세 사람의 성장, 변화, 고민을 만나는 자리이다. 세 사람의 정체성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 소보사에서 세 사람의 언어인 수어로 모험을 떠난다.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장기영

장기영

현재 재현 역학 및 인식에 대하여 연구하고 있으며,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에서 작문과 토론 과목을 가르친다. 최근에는 장애공연예술에 대한 고민을 토대로 국내외 공연작품 리뷰를 엮은 책 『보란듯한 몸, 초과되는 말들: 배리어컨셔스 공연』(책공장이안재, 2023)을 썼다.
kalce7@naver.com

사진 제공.0set 프로젝트

2026년 2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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