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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시선 느리게 글을 씁니다① 하지성 단상

  • 최숙하 소설가 지망생
  • 등록일 2026-09-09
  • 조회수 29

모두의시선

“스탠드 마이크가 좀 낮게 있었으면 하는데, 너무 높군요.”

3년 전, 제59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연극부문 연기상을 받은 하지성 배우가 꺼낸 첫마디였다. 뇌성마비 장애가 있는 그가 턱시도를 입은 채 전동휠체어를 타고 무대 위로 올라오는 모습에 심장이 뛰었다. 그의 유쾌하고 감동적인 소감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수상 소감을 2분 안에 끝내야 하는데, 제 장애를 이용해서 3분만 더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장애인 예술인들 사이에서 당당하고 밝게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내가 갖지 못한 열정이 보였다. 나라면 저 자리에서 어땠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모르긴 몰라도 무대 위에서 울었겠지. 애초에 무대에서 연기하겠다는 용기를 내지 못했겠지.’ 하지성 배우의 수상 소감은 예전처럼 열심히 글을 쓰고 글로 나를 드러내고 싶게 만들었다.

그 당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극단에서 활동할 기회가 생겨 작가로 입단했다. 대본을 수정하는 건 재미있었지만, 내 장애와 성격상 많은 사람과 모여 연습하는 게 싫고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결국 원고만 수정하다가 극단을 나왔다. 신춘문예로 등단하려고 소설 쓰기에 집중하기 위해 극단을 나온 거라고 쓰고 싶지만, 사실 극단 활동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연기’가 하고 싶어질까 봐 나온 거였다. 무대와 카메라가 내 꿈이었던 걸까. 중학부 1학년 방송반에서 활동할 때부터 마이크만 보면 부들부들 떨고 글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연기라니….

나는 2018년 3월부터 장애인 야학에서 소설가에게 글쓰기를 배우고 있었으니, 하지성 배우의 수상 소감을 들었을 때가 햇수로 6년 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글쓰기를 배우면서부터 신춘문예 당선 후 소설가가 된 나를 상상했다.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내가 쓴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고 카페 같은 곳에서 존경하는 소설가들과 사회현상에 관해 인터뷰하고 싶었다.

한편으로 글쓰기를 배우며 행복했지만 내가 싫어질 때가 있다. 야학 방학 동안 단편소설 초고를 쓰고 페이스북 친구인 작가들의 소설도 읽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이렇게 미루는 버릇은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얼른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도 버리지 못했다. 나에게도 이유는 있었다.

그나마 자유로운 왼손으로 한 자 한 자 천천히 글자를 쓰는 게 어려웠다. 빈 화면에 글씨가 채워지기는 하는데 머릿속의 이야기가 속 시원히 나오지 않는 게 답답했다. 느릿느릿. 장애가 원망스럽진 않았지만, 어떨 때는 짜증 나고 머리 아팠다. 문장을 간결하게 쓰지 못하니 늘어졌고, 의미 전달은 되는데 읽다가 멈춰야 했다. 뒷심이 부족해서 흐지부지 끝낼 때도 많았다. 내 글이 재미없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글쓰기 공모전에서 상을 탄 기억보다 떨어진 기억이 많고, 글을 고치는 게 어렵다.

비장애인도 소설가가 되려면 열심히 글을 쓰고 몇 년씩 작품을 준비한다. 그렇게 해도 신문사 신춘문예에 당선되거나 출판사 신인문학상을 받아 소설가로 등단하기란 정말 어려운데….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고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그들이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고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을 마주칠 기회도 많지 않아 글 소재로 삼을 게 별로 없다고 여겼다. 그들과 경쟁한다는 게 두렵고 내 욕심 같았다. 이런 상상을 하는 게 바보처럼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글을 잘 쓰고 싶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삶을 시작해서일까. 아니면 삐뚤어진 마음 때문이었나.

이전까지는 예술세계에서 장애인은 단지 주변인이라고 생각했다. 장애인이 쓴 시와 소설은 장애인 관련 문예지나 언론매체에서만 다룬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성 배우의 수상식 모습을 보며, 이제는 장애인의 문학과 예술도 ‘주변’이 아닌 중심으로 나오고, ‘가장자리’에서 함께 어울려 많은 사람이 보고 느꼈으면 좋겠다. 하지성 배우의 등장은, 소심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나에게, 내가 원하던 세상은 이런 큰 세상이라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서로를 알고 생각하고 느끼고 이해하는 세상이 빨리 올까.

  • 책 표지 사진. 상단에 “글을 쓰는 힘” “최숙하 문집”이라고 쓰여 있다. 아래 일러스트에는 휠체어에 앉아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쓰는 사람이 있고, 위로 세 권의 책이 공중에 펼쳐져 있다. 하단에는 “함께배움 장애인 야학”이라고 쓰여 있다.

    필자가 직접 편집한 야학 개인 문집

  • 연노란색 줄노트, 노란 오리 패턴이 그려진 표지의 스프링 노트, 구름 자수가 놓인 아이보리색 필통이 나무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필자의 작업노트

최숙하

최숙하

1991년생, 만으로 35세의 장애여성이다.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장애인 재택근무 사원으로 일하며 어릴 적 꿈을 잊고 지내다가 장애인 야학에서 2018년 3월부터 시작한 글쓰기 수업에 오랫동안 참여하고 있다. 소설가 선생님에게 글쓰기와 합평 수업을 들으며 두려움도 있었지만, 언젠가 글이 장애를 대신해 나만의 언어가 된다고 믿게 되었다.
sookha8975@naver.com

사진 제공.필자

2026년 9월 (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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