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2022년 시작한 이음리뷰클럽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멤버들이 창작자, 관계자, 관객으로 참여한 공연, 전시, 행사의 감상과 후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올해 새롭게 모인 다섯 멤버 역시 예술의 미학부터 완성도, 접근성 이슈까지, 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눕니다.
10월의 리뷰▶ 연극 〈이리의 땅〉 | 연극 〈지상의 여자들〉 | 연극 〈정전의 밤〉 |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 | 연극 〈만그루〉 | 전시 《일러, 바치기》 | 무용 〈우리의 지반이 흔들리고 있다면〉 | 뮤지컬 〈숨 쉬는 바닷말〉
장근영
연극 〈이리의 땅〉은 제가 올해 본 공연 중 물리적, 심리적 접근성이 가장 꼼꼼히 준비된 공연 중 하나였습니다. 저는 종각역 5번 출구에서 이동지원 서비스를 받아 극장으로 향했습니다. 극장까지의 이동 그리고 극장에 들어가 객석까지의 이동, 거기에 관극의 접근성, 접근성 담당자분들의 감수성까지,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향하는 문화가 이런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완벽한 배리어프리는 존재하기 힘듭니다. 따라서 저도 극장에 가서 완벽한 배리어프리를 기대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그저 극장이 다양한 이들과 공존하려는 열린 마음을 갖고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연극 〈이리의 땅〉의 배리어프리는 그 마음이 제게 잘 전해졌습니다.
극은 대사 속에 음성해설이 자연스럽게 녹아든 공연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최현비 연출의 공연을 볼 때마다 늘 마음이 두근거립니다. 작년과 올해 보았던 연극 〈노랑의 보색은 검정이다〉 〈99명의 꼬마들과 나눈 대화〉는 음성해설이 극 속에 분명히 있지만, 그 해설이 극 속에서 별도로 존재하는 느낌이 없이 아주 매끄럽게 전달되어 관객이 자연스럽게 극에 몰입할 수 있게 했습니다. 즉, 접근성 개선이 예술적으로 잘 표현되어 제가 비장애인과 별도의 관극을 하는 것이 아닌, 배리어프리가 하나의 예술로 극 속에 녹아들어 있다는 생각이, 최현비 연출의 공연을 볼 때마다 들었습니다.
연극 〈이리의 땅〉은 음성해설이 대사 속에 녹아든 것뿐 아니라 설명하기 힘든 시각적 장면까지 폐쇄형 음성해설로 전달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예매자에게 공연 전 사전음성해설 링크를 보내주어 공연의 무대 변화, 극 중 인물 소개와 배우들의 움직임까지 미리 들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또 공연장에서는 극이 시작되기 전에 사전 안내도 이루어졌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문자통역에 대한 설명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문자통역 화면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화면에 어떻게 문자통역이 진행되는지 잘 몰랐습니다. 저와 다른 감각으로 극을 감상하는 사람들의 접근성 안내를 함께 듣는 시간이 저는 좋았습니다. 다양한 이들의 다양한 관람이 공연장에서 자연스러운 문화처럼 녹아들어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연극 〈이리의 땅〉은 바구니에 담겨 버려진 쌍둥이 로와 렘의 이야기입니다. 이리의 젖을 먹고 자란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그들의 운명을 보여줍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극의 시점이 달라지면서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다양한 이들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듬뿍 담긴 공연이었기에 저는 마냥 즐거웠습니다.
김지수
극단 돌파구의 〈지상의 여자들〉은 한참 웃다가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오래오래 기억나는 공연이다.
누군가 사라진다는 것은 나 또한 사라질 수도 있는 일이지.
수많은 사라짐의 결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딱 1개뿐인 휠체어석이 너무 아쉽다.
한 개 만들었으면 좀 더 만들 수도 있을 텐데.
장근영
연극 〈정전의 밤〉이 전하는 감성이 너무너무 좋았습니다. 88세의 원지영 님이 속삭이는 “오늘도 그 이야기가 계속되는데…”라는 말을 관람객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속삭이며 공연이 시작됩니다. 극장에서 처음 만난 배우, 88세의 원지영 님 목소리, 그리고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가 극 초반 분위기를 정말 확 사로잡았습니다. 이후 관람객들은 눈만 보이는 두건을 쓰고 공연 속으로 함께 들어갔습니다.
“말을 고르고 고르다 삼켜버리고… 이야기 대신 목소리를 내뱉는…”이라는 대사가 기억나는데요. 이 이야기 뒤에 우리는 배우들과 바닥에 앉아 세상 속에서 말 못 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쪽지로 나누었습니다. 공연을 보며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추구하는 관점, 권력 구조 속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는 이들, 그렇게 말 못 하고 무너져 가는 이들의 목소리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먹먹했습니다. 한 시간의 공연이 전하는 감성이 너무너무 좋았어요. 극이 끝난 뒤 공연이 전하는 의미를 제가 글로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엄청 걱정되었습니다. 직접 봐야 그 감성과 의미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연극이라서요.^^
장근영
연극 〈부동산 오브 슈퍼맨〉은 요즘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전세 사기를 소재로 하는 공연입니다. 우주 히어로 슈퍼맨이 지구인으로, 지구에서도 한국에 정착하여 살게 되면서 이것을 방송국 PD가 취재하는 형식으로 공연이 시작됩니다. PD가 주인공 주변을 맴돌며 극의 상황을 내레이션합니다. 내레이션이 공연에서 부분적으로 음성해설 역할을 합니다. 극의 끝부분에 이 PD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져서 좀 아쉽기도 하고 뭔가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지구인이 된 슈퍼맨이 3억 5천만 원 전세 사기를 겪게 되면서 이야기는 전개됩니다. 160분 공연을 통해 우리나라 전세제도의 역사부터 문제점까지 아주 꼼꼼히 전합니다. 전세제도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제도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도의 허점이 정말 많더라고요.
공연을 통해 부동산 등기부등본의 표제부, 갑부, 을부의 세 부분에 들어가는 내용을 비롯하여 다양한 부동산 용어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중 놀라웠던 것은 우리가 전세, 월세, 매매할 때 떼어보는 등기부등본이 법적 효력이 없는 서류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아셨나요? 저는 이것을 공연 보고 처음 알았어요!
“법이 왜 이래요!” 전세 사기를 겪은 슈퍼맨이 극 중 자주 한 대사입니다. 공연을 보고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답답했습니다! 전세제도는 사라지든지 아니면 세입자를 보호할 수 있는 꼼꼼한 법과 제도로 다시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습니다. 자본이 우선시되는 세상. 정치꾼만 존재하는 세상. 법이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 세상. 공연을 보고 나서 가슴이 너무 답답하고 우울했어요.
참! 그리고 주인공이 슈퍼맨인 이유를 생각해 보았는데요. 하나는 우주 히어로도 돈이 최고인 세상, 법이 국민을 지켜주지 않는 세상에서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두 번째는 이 암울한 세상에 슈퍼맨 같은 히어로가 나타났으면 하는 우리들의 바람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승규
〈만그루〉는 제19회 서울창작공간연극축제에 올려진 작품이다. 다양한 공간을 자유롭게 활용하자는 취지에 맞게 문래동에 위치한 공장 시설이 밀집된 장소에서, 그것도 차가 지나다니는 골목에 자리한 어느 자그마한 공간을 공연 장소로 선택한 것이 인상 깊었다. 사진과 같이 건물 안의 공간에 무대를 만들고 그 옆과 앞쪽에 객석을 마련하여 배우들의 움직임과 호흡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만그루〉의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자면 나무 만 그루의 역할을 하는 기적의 식물 ‘만그루’의 꽃을 피우기 위해 정부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쓰고 인적자원에 많은 투자를 한다. 하지만 십수 년이 지나도록 결실을 보지 못하고 연구 지원마저 끊길 위기에 처하게 되는 상황에 이른다. 어느 날 불쑥 나타난 한 여인의 비과학적인 방법에 의해 꽃봉오리가 열리며 함께 있던 연구원들이 서로의 욕심과 갈등 속에서 그 희망은 사라지고 만다. 〈만그루〉는 나날이 심각해져만 가는 기후변화와 그에 따른 환경문제, 인간의 이기심으로 파괴되어 가는 자연환경의 위기를 다룸과 동시에 희망의 메시지를 담았다. 하지만 만그루조차 인간의 욕심에 꺾여지는 씁쓸한 교훈을 담고 있는 것 같았다. 앞으로도 이런 작품들로 환경파괴의 주범인 인류에게 끊임없는 경고할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움이 남았다.
김라현
이번 달 리뷰는 일러스트레이터 키크니의 전시 《일러, 바치기》입니다. 키크니는 인스타에서 재치 있는 언어유희와 가슴 먹먹하게 하는 이야기로 감동을 주는 작가입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에 올라오는 다양한 작품들로 웃음과 눈물을 짓게 하고 있어요. 키크니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 작품들이 모두 독자들의 사연으로 이루어졌다는 점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누군가 “19년 동안 함께 한 강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양쪽 눈이 보이지 않아 무지개다리를 어떻게 건너고 있을지 걱정돼요. 그림으로 그려주세요.”라고 의뢰하면, 에스컬레이터가 된 무지개를 웃으며 건너는 강아지 그림과 함께 “너무 걱정하지 마. 세상 좋아졌어.”라고 멘트를 달아주는 방식입니다. 그림 자체에 예술적 가치가 얼마나 있는지 물으면 망설이겠지만, 많은 이들과 소통하며 마음을 두드리는 재주는 가히 예술적이에요.
기교 없는 단순한 2D 그림으로 내용을 더 돋보이게 하던 그가 꽤 규모 있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전시를 열었습니다. 서울 신사동 신사하우스에서 열린 이번 전시는 평소 자신의 존재를 숨기는 키크니가 사람들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소통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담아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인스타에서 늘 보던 익숙한 카툰을 다양한 설치작품과 포토존으로 표현해 내 웃음과 위로를 주기도 했지만, 늘 재치있는 답글을 달아주는 작가 본인이 지금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자리 잡기까지 느낀 좌절과 성장통까지 담아내어 새롭고 위로받는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전시장이 오래된 빌라를 개조한 곳이라 접근성이 아쉬워서, 키크니 님에게 한 마디 쓸 수 있는 곳에 다음 전시는 모두가 올 수 있는 곳에서 하면 좋겠다고 써 놓고 왔어요. ‘모두의 키크니’가 되길!
김은설
이번 달엔 전시 아닌 공연을 보러 다녔어요. 그중에 ‘차세대 열전 2023!’ 발표작으로 이종현 안무가님이 기획한 퍼포먼스 공연이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2층이라 휠체어가 접근하기 어려워 보였어요. 사전 공연안내 관련 문자나 수어 안내는 없었지만, 공연이 너무 좋았습니다. 공동의 몸이 지닌 취약성, 의존성, 연약함의 감각이 어떤 순간에 촉발될 수 있는지 탐색하는 공연이라고 해요. 저는 이 공연을 보는 내내 복잡하면서도 공감 가고 재미있었어요.
4명의 퍼포머가 참여했는데, 처음에 한두 명씩 나와서 걷다가 바닥에 고꾸라지듯이 눕거나 엎드려 있었어요.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이 나와서 바닥에 있는 신체를 끌거나, 혹은 끌어올리는 식으로 진행했어요. 바닥에 있는 신체(퍼포머)들은 끌림, 끌어올림에 몸을 맡깁니다. 어떨 땐 거꾸로 매달린 채 질질 끌려가기도 했어요. 동물 사체처럼 쌓여서 끌려가는 것 같았고, 가끔은 퍼포머가 힘을 주어 저항하거나 일어서려는 의지를 보여주었습니다.
후반부에 두 명씩 짝을 지어 서로 안은 채 한 사람이 축 늘어지며 의지하면 다른 사람이 안아주면서 일으켜 주고 걸어보고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충격받았어요. 연약함/강함, 무기력함/무기력하지 않음, 기대기/끌려감, 의지 내비치기/곧 풀어지기. 이런 느낌으로 상반된 것을 반복적으로 보여줬는데 이상하게 먹먹하더라고요. 연약하고 불안정한 신체가 애쓰는 것 같아서요. 또 신체를 끌고 가거나 지지대가 되어주는 퍼포머들이 무표정이어서 기계적인 것 같다가 애도하는 것 같고, 초월한 것 같았어요! 서로 반복되는 행동 속에서 수행성이 느껴져서 그런지, 마치 원하든 원치 않든 부단하게 살아가는 느낌이 들어 여운이 긴 공연이었습니다.
김지수
2023 함께 만드는 공감 뮤지컬 〈숨 쉬는 바닷말〉
해조류로 변신한 전동휠체어 사용 배우들의 움직임과 소녀와 엄마와의 호흡이 인상적이었던 공연! 연습의 노고에 비해 공연 기간이 너무 짧아서 몹시 아쉬웠어요.
하지만 곧 재공연될 거라는 확신과 기대가 되는 뮤지컬이었습니다.
김라현
어릴 때부터 꿈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편마비 장애가 있다 보니 몸으로 하는 취미보다 목소리를 내는 합창을 즐겼다. 예술가가 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집회에 진심인 장애계 기자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지원주택에서 탈시설한 분들을 조력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안 즐길 순 있어도 못 즐기는 사람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husisarang@nate.com
김은설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자신의 시각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서 소통한다.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아, 미묘하게 엇갈리는 일상에서 생긴 아주 작고 개인적인 감각과 감정, 기억을 세밀히 탐구하고 있다. 듣는다는 게 무엇이며 자기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의문을 던지면서 드로잉, 설치, 영상매체를 아우르며 작업하고 있다.
odd_dreamer@naver.com
김지수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하고 최근까지 대표를 맡았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auleala@daum.net
이승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배우와 작가로, 또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 중이다. 2016년 연극 〈숲속 작은 집〉으로 처음 무대를 밟았고, 그 외 작품으론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귀를 기울이면〉 등이 있다. 2020년 연극 〈Bein〉을 쓰고 연출했다. 현재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
coca5201@naver.com
장근영
문화예술 속에 수많은 시각적 정보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늘 상상한다. 나의 상상이 일상이 되는 그날을 꿈꾼다.
zzangkku9902@naver.com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