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2022년 시작한 이음리뷰클럽은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멤버들이 창작자, 관계자, 관객으로 참여한 공연, 전시, 행사의 감상과 후기를 나누는 모임입니다. 올해 새롭게 모인 다섯 멤버 역시 예술의 미학부터 완성도, 접근성 이슈까지, 장애 당사자의 관점에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눕니다.
12월의 리뷰▶ 무용 〈먼 미래 무용〉 | 다원 〈어둠 속에, 풍경〉 | 연극 〈일 +일+일=삶〉 | 연극 〈2023 이즈백 줄탁동시〉 | 무용 〈묵향〉 |
장근영
〈먼 미래 무용〉은 무용공연이지만 무대에 무용수가 없어요. 소리로만 무용을 전하는 공연입니다. “빠아암” 소리가 나면 관객들은 눈을 감습니다. “띠리링” 소리가 나면 관객들은 눈을 뜹니다. 그 과정 간에 배우의 목소리로 움직임이 해설됩니다. 오른쪽 발가락과 발등 사이에 돌부리가 닿아 넘어지는 순간, 사람의 움직임. 두 발로 바닥에서 폴짝폴짝 뛰는 사람의 움직임. 발을 번갈아 가며 하나, 둘, 꼬이며 풀리는 듯한 사람의 움직임. 사람의 해부학적 움직임과 지구의 중력, 공기의 움직임, 그리고 움직이는 사람의 심리상태가 해설에 녹아들어 있었어요.
공연 중간에 이 움직임에 관한 배우 세 사람의 감상이 녹음으로 들리는데요. 하나의 움직임을 보고 각기 다르게 느끼는 대화가 재미있었습니다.
저는 무용을 볼 때, 각 움직임에 각기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근데 오늘 공연에서 한 배우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보여지는 그 움직임 자체에서 선명한 감각을 느낀다고요. 무용에서 각 움직임의 의미를 찾기보다 그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느낀다는 점이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시각적인 무용을 청각적으로 전달하고자 한 시도가 너무 좋았던 공연이었습니다.
이승규
쇼케이스 〈어둠 속에, 풍경〉을 관람하기 위해 모두예술극장에 다녀왔다. 전시를 관람한 후 이어지는 공연을 보았는데, 기존의 공연과는 많이 다르게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작품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확실히 다양한 느낌의 공연이 많은 것 같다.
전시에는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이 담긴 영상과 결과물들이 있었는데, 묵자와 점자가 분리되어 각각 다른 내용을 담고 있어서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을 짝으로 하여 함께 관람할 수 있게끔 하였다. 하지만 나는 시각장애가 있음에도 점자를 제대로 읽을 수 없어서 나와 짝이 된 분에게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리고 다른 공간에는 각기 재밌는 이름을 가진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참여자들이 석고에 모양을 뜬 것이라고 했다.(사진1) 작품에 대한 설명은 참여자가 직접 해주었다. 관객과의 거리를 두지 않은 신선함이 바로 전해졌다. 그리고 한쪽 벽에 있는 그림 위에는 하얀 판과 헤드폰이 걸려 있었는데 판의 특정 부위를 눌렀을 때 소리가 난다고 했다.(사진2) 어떤 소리가 날까 궁금하여 마구 눌러보았다.
전시 관람 후엔 공연이 이어졌는데 연출가가 진행하였다. 바닥에는 동그란 방석들이 놓여 있었는데 바닥에 누워도 되고 편한 자세로 관람하라고 했다. 나는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눕지는 못했으나 몇몇 관객은 편안한 자세로 누웠다. 그리고 중간에 왜 누워도 된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는데 명상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 중에 누워서 명상이라니, 당황스러우면서도 그 안에서의 편안함이 기분 좋게 다가왔다. 공연은 다양한 방식의 퍼포먼스로 이루어졌다. 퍼포머들은 연출가와 다른 진행자의 소리에 따라 3면이 둘러쳐진 커다란 종이 위에 다양한 굵기의 분필이나 물감이 묻은 붓 따위로 그림을 그려냈는데 저마다의 소리를 지니고 있어 재미있었다.(사진3) 그 과정이 끝난 후 퍼포머들은 소리에 맞춰 움직임을 시작하였는데 객석을 오가기도 하며 자유롭게 공간을 사용하였다. 시각장애인 관객들이 관람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내용이어서 왜 어둠 속 풍경이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지금은 다양성과 자율성이 도드라지고 관객과의 거리를 좁힌 공연이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장애를 아우를 수 있는 작품들이 나타나는 것도 주목할 부분이다. 앞으로도 신선한 작품이 많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장근영
〈일+일+일=삶〉은 작가‧배우‧활동가인 홍성훈 님,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활동지원사 세 분의 이야기였어요. 사실 제 주변 시각장애인 동료 중에는 활동지원사와 마찰이 있어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좀 있거든요. 그래서 장애인 이용자와 활동지원사가 함께 이야기한다는 것이 괜찮을까? 공연 보기 전부터 묘하게 궁금하고 떨리더라고요.
자립생활센터 2층부터 4층에 홍성훈 님, 세 명의 활동지원사분, 그리고 홍성훈 님의 어머니, 자립생활센터에서 같이 일하는 동료의 인터뷰가 담겨 있었어요. 인터뷰가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활동지원사분들의 인터뷰가 흥미로웠어요. 활동지원사가 되기 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어떻게 활동지원사가 되셨는지, 활동지원사로 일하면서 생겨난 자신만의 노하우 등 그 이야기들이 좋았어요.
공연은 전체적으로 1부와 2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는 공간에 설치된 전시물, 인터뷰를 이어폰으로 들었고, 2부에서는 2층 공간에서 홍성훈 님과 활동지원사분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들었어요. 그들이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조금 안 맞는 부분은 맞춰가면서 하루하루 일상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좋았습니다. 활동지원사분들이 성훈 님의 주체적 생각과 행동을 존중하는 모습, 세상 속에서 성훈 님이 겪는 장벽을 공감해 주는 모습이 특히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그동안 갖고 있던 생각도 조금은 되돌아보았던 것 같아요.
김지수
고전과 현실의 조화와 배우들의 고유성이 살아있는 연기.
그리고 무대를 즐기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재밌고 의미 있는 공연.
2023년의 마지막 공연을 7년 만에 이즈백한 〈줄탁동시〉로 즐길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김라현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국립무용단의 〈묵향〉을 관람했습니다. 10년 전 결혼식을 준비하며 한복 자료를 찾다가 이 작품을 알게 되었는데, 처음 〈묵향〉의 웹자보를 봤을 때는 한복 전시회 홍보자료인 줄 알았어요. 정구호 디자이너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만큼 한복의 미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국내 대표적인 전통무용공연입니다. 국립무용단의 설명에 따르면 ‘사군자를 무대 위에 형상화하여 세상의 오탁에 물들지 않은 선비의 도와 인품을 함축적이고 고아한 아름다움으로 표현했다’라고 하는데 그 표현이 너무 적확하죠. 서무와 종무를 포함, 각 장에서 매란국죽을 표현해내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따라 고운 빛깔의 한복이 나부낍니다. 그 모습은 아름답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해요.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그걸 기대하고 간 거였는데 막상 공연을 보는 제 마음이 이날따라 어려웠습니다. 음성해설이 없기도 했지만, 있었다 해도 한복의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낄 수 없는 분들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이상하지요. 발레를 볼 땐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곱디고운 한복 자락을 보고 있자니 서글픈 마음이 들더라고요.
흔히들 장애는 사회적 환경 때문에 생겨난다고 하지요. 장벽을 없앨수록 장애를 가진 이들의 불편함은 줄고 누릴 수 있는 게 더 많아지니, 그 말에 십분 동의합니다. 그래도 아주 어릴 때부터 장애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이 적지 않았어요. 친구들처럼 리코더를 불고 싶은데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 때문에 매번 열외였고, 스케이트를 시원스레 타보고 싶은데 오른발로는 균형을 잡을 수 없어 한 발짝 떼지도 못하고 넘어지기 일쑤였습니다. 뭐 이제는 적응하고 잘살고 있지만 때때로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독이기도 해요.
‘이루지 못하는 꿈’은 비단 장애를 가진 이들만 가진 건 아닙니다. 가령 그 옛날 대부분의 백성은 〈묵향〉 속 비단 한복이나 양반의 문화를 자신이 누릴 수 있다는 생각은 못 했을 거예요. 출산을 원하지만 아이를 갖기 어려운 분들도 살면서 내내 쓰라린 가슴을 품고 살 거고요. 그래도 그런 사연들을 헤아릴 수 있게 되어 좋습니다.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고 새로운 꿈을 찾으며 함께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새해에는 우리 같이 행복해져요!
김라현
어릴 때부터 꿈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편마비 장애가 있다 보니 몸으로 하는 취미보다 목소리를 내는 합창을 즐겼다. 예술가가 될 줄 알았는데,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집회에 진심인 장애계 기자가 되어 있었고 지금은 지원주택에서 탈시설한 분들을 조력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안 즐길 순 있어도 못 즐기는 사람은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husisarang@nate.com
김은설
보청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귀로 듣는 것보다 자신의 시각과 다른 감각으로 세상을 관찰하면서 소통한다. 보편적이면서 보편적이지 않아, 미묘하게 엇갈리는 일상에서 생긴 아주 작고 개인적인 감각과 감정, 기억을 세밀히 탐구하고 있다. 듣는다는 게 무엇이며 자기 존재의 의미와 본질에 의문을 던지면서 드로잉, 설치, 영상매체를 아우르며 작업하고 있다.
odd_dreamer@naver.com
김지수
연출, 작가, 배우이자 장애인 연극교육, 인권교육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03년부터 연극을 시작했고, 2007년 극단 애인을 창단하고 최근까지 대표를 맡았다. 단편영화 시나리오 〈러브MT〉 〈으랏차차〉, 장편 희곡 〈대바늘 코바늘〉 〈알록달록 한땀한땀〉 〈기억이란 사랑보다〉 등을 썼다. 〈고도를 기다리며〉 〈장애, 제3의 언어로 말하다〉 〈한달이〉 등의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auleala@daum.net
이승규
사회복지학을 전공했으며 지금은 배우와 작가로, 또 장애인식개선 강사로 활동 중이다. 2016년 연극 〈숲속 작은 집〉으로 처음 무대를 밟았고, 그 외 작품으론 〈옥상 위를 부탁해〉 〈언제나 맑음〉 〈귀를 기울이면〉 등이 있다. 2020년 연극 〈Bein〉을 쓰고 연출했다. 현재 장애인문화예술극회 휠의 부단장을 맡고 있다.
coca5201@naver.com
장근영
문화예술 속에 수많은 시각적 정보를 즐기는 다양한 방법에 대해 늘 상상한다. 나의 상상이 일상이 되는 그날을 꿈꾼다.
zzangkku9902@naver.com
사진 및 캡션 제공.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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