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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못한 원고 청탁을 받은 하루

이슈 고유한 시간에 불거지는 문장들

  • 손병걸 시인
  • 등록일 2023-07-26
  • 조회수699

이슈

예술가의 삶은 작업실, 연습실, 무대와 전시장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활동에 영감을 주고 기반이 되는 일상의 루틴은 무엇일까? 창작의 즐거움과 고통 이전에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다양한 삶의 장면을 포착해 보자.

예측 못한 원고 청탁을 받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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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원 받으며 연극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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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고 존중하며 함께 그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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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으면 힘들지 않은 하루

방해금지를 깬 전화벨 소리

마감을 코앞에 둔 시들을 탈고하고 있을 때였다. 손전화기 벨이 울렸다. 그 순간, 몰입했던 생각이 탁, 풀리고 말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가끔 내가 저지르는 실수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나는 손전화기를 방해금지 상태로 해둔다. 시각장애인용 화면낭독프로그램을 쓰기 때문이다. 책을 읽든 작품을 쓰든 한번 흐름이 끊어지면 시각장애인은 그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겠는가? 이미 벨은 울렸고 감정의 몰입은 깨졌다. 게다가 수신에 응하지 않으면 내 손전화기는 오랜 시간 요란하게 울릴 것이다. “그래! 이참에 조금 쉬어가자.” 나는 입속으로 문장을 웅얼거리며 손전화기를 집어 들고 정수기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수신구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궁리’의 ○○○이라고 했다. 나도 짧은 인사를 건네며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받아 한 모금을 단숨에 들이켰다. 인사말 끝에 ‘궁리’인지 되물었고 생각했다. 언제인가 집단토론 형식의 인터뷰를 했던 매체가 분명했다. 통화 중에 독특한 인터뷰 체험을 했던 그 날의 장소와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새삼 반가운 기억 사이로 경쾌한 목소리가 이어졌고, 나는 수신구에 귀를 밀착한 채 물컵을 제자리에 놓은 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때까지였다. 다른 전화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청탁에 응한다는 내 대답을 듣고 이메일 주소를 파악하면 대부분 통화가 끝났다. 그러나 이번 원고 청탁은 조금 달랐다. 이유인즉 ‘장애예술인의 예술적인 하루’라는 가제로 예술가의 일상에서 친밀하게 끼어드는 예술적인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해 보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다 알아들은 척 자연스럽게 응대했고 통화 말미쯤에서 이십여 년 전 일을 떠올렸다.

보호구역을 벗어나

‘장애예술인’ 초청 인터뷰였다. 방송과 언론사는 한마디로 극복기를 강조했다. 작품보다 장애인이 그것도 시각장애인이 그 어려운 신춘문예 등단 시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사실, 원인을 제공한 내 탓도 있다. 등단 전과 초기에는 장애인이 된 이야기가 많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징징거림이 심했다. 변명하자면 문학 치료에 가까운 면이 있다. 그러나 노출증 환자처럼 보였다. 인정한다. 요즘 여러 공모전에서 심사할 때 거친 노출을 자주 만나곤 한다. 부정적 평가가 아니다. 많은 장애인이 문학을 접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해마다 ‘장애문학’ 연구가 늘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니까 ‘장애문학 연구’가 거의 없던 시절에는 장애인이 하는 문학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장애인을 대상 삼은 복지 정책으로 인식했다. 당연히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장애문학’은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울타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장애문학’이라는 명사를 얻기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 튼실한 자리매김은 아니다. 더 절실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예술 활동의 많은 부분이 일상에서의 발견과 영감으로부터 비롯된다는 편집자의 말처럼 장애문학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노숙인 쉼터, 안양교도소, 그리고 오늘 늦은 오후에 수업할 ‘공감지기’(삼산종합사회복지관 글쓰기 동아리)를 통해 나는 일찍이 체험했고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교도소는 자신이 저지른 반성과 몸에 대한 해방적 이미지가 많았고, 노숙인 쉼터 사람들은 원망과 좌절 그리고 실체적 고통이 많았다. 이 사람들이 쓴 글에 대한 예술적 판단은 논외로 하고 ‘일상’이라는 단어와 예술의 접점이 어떤 개연성을 가졌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아, 그나저나 외출할 시간이 다 되었다. 미리 보내온 ‘공감지기’의 작품들을 음성프로그램으로 틀어놓고 나는 샤워를 한다. 시각장애인이 누리는 독서법이기도 하다. 샤워를 마친 뒤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린다. 예전에 비해 불편함이 많이 해소되었다. 어느새 탑승한 택시가 삼산종합사회복지관에 도착했다.

일상에서 파생한 상상과 감정

‘공감지기’ 회원은 중증장애인들이다. 그래서 두세 분은 꼭 참석하지 못한다. 건강이 불안해서이기도 하고 이동 수단이 자유롭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창작열이 대단하다. 끈기도 남다르다. 합평할 때면 치열한 토론이 펼쳐지곤 한다. 관점의 차이도 있다. 정답이 없는 화제도 있다. 의견 충돌이 강한 날도 있다. 토론을 넘어 언성이 높은 날도 있다. 그러나 다음 주에도 그들은 웃으며 만난다. 그리고 다시 목청을 높인다. 합평하는 모습이 매번 다르지 않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열기가 가라앉은 수업 말미에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진 씨’가 나오지 못한 사연을 들었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었단다. 또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렇듯 ‘공감지기’와 내 인연이 벌써, 수년째다.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였다. 그 결과 세 권의 문집을 발간했다. 연말이면 출판기념회를 또 열어야 한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발표한 시를 낭독해야 한다. 발음이 어려운 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는 동안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동안 발간한 ‘공감지기’의 문집들을 생각했다. 시의 소재는 그야말로 다양했다. 가족사, 연애사, 누가 먹고 버린 찌그러진 종이컵과 밥이 없는 밥솥, 계절마다 눈에 들어온 풍경, 종교, 사회, 정치, 과학과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룬 소재가 헤아릴 수 없다. 본디 시는 일상으로부터 파생한 상상력의 기록이다. 갑자기 다가온 사건으로부터 열리는 새로운 감정 세계이다. 오늘처럼 생각지 못한 시간에 ‘궁리’로부터 원고 청탁 전화를 받은 것도, ‘경진 씨’ 아버지에 대한 사건도 미리 알 수 없었다.

나는 내일을 모른다. 내가 가장 불행한 이유이다. 그러나 내일을 모른다는 것이 나를 살게 한다. 매일 같은 날의 복사판 같다. 그러나 아니다. 오늘은 딱 오늘이다. 내일도 어제도 같을 수 없다. 서로 교환도 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이 고유한 시간이다. 내일은 아마 치매에 대한 사유가 깊어질 것 같다. 와중에 방해금지 상태를 켜놓지 않으면 예측하지 못한 전화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어쩌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적 삶이고 내가 시인으로 문장을 꾸릴 수 있는 원동력이다.

  • 사진1. 야외 정원에서 강연을 위한 테이블 앞에 필자가 앉아 바로 앞에서 공연하는 해금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있다.
  • 사진2. 사진1과 같은 공간. 야외 정원에서 필자가 마이크를 잡고 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문학워크숍 초청 강연에 참여한 필자

손병걸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푸른 신호등』(문학마루),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애지), 『통증을 켜다』(삶이 보이는 창),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걷는사람)가 있고, 산문집 『열 개의 눈동자를 가진 어둠의 감시자 손병걸』(솟대문학), 『내 커피의 농도는 30도』(작가마을) 등을 발간했다. 기업체, 교도소, 노숙인 쉼터, 초중고대학교 등에서 수백 회의 강연과 음악 공연을 했고, 여러 언론과 문예지에도 수백 편의 작품(칼럼, 에세이, 평론, 르포)을 발표했다. 여전히 활발한 강연, 공연, 작품발표와 더불어, 사단법인 인천민예총 이사와 사단법인 인천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thsqudrjf@hanmail.net

사진 제공.필자

2023년 8월 (44호)

상세내용

이슈

예술가의 삶은 작업실, 연습실, 무대와 전시장에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예술활동에 영감을 주고 기반이 되는 일상의 루틴은 무엇일까? 창작의 즐거움과 고통 이전에 일상적으로 맞닥뜨리는 다양한 삶의 장면을 포착해 보자.

예측 못한 원고 청탁을 받은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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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지원 받으며 연극하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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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중받고 존중하며 함께 그리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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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잡으면 힘들지 않은 하루

방해금지를 깬 전화벨 소리

마감을 코앞에 둔 시들을 탈고하고 있을 때였다. 손전화기 벨이 울렸다. 그 순간, 몰입했던 생각이 탁, 풀리고 말았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가끔 내가 저지르는 실수다. 글을 쓰거나 책을 읽을 때 나는 손전화기를 방해금지 상태로 해둔다. 시각장애인용 화면낭독프로그램을 쓰기 때문이다. 책을 읽든 작품을 쓰든 한번 흐름이 끊어지면 시각장애인은 그 지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쩌겠는가? 이미 벨은 울렸고 감정의 몰입은 깨졌다. 게다가 수신에 응하지 않으면 내 손전화기는 오랜 시간 요란하게 울릴 것이다. “그래! 이참에 조금 쉬어가자.” 나는 입속으로 문장을 웅얼거리며 손전화기를 집어 들고 정수기 앞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세요?” 수신구에서 경쾌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이내, ‘궁리’의 ○○○이라고 했다. 나도 짧은 인사를 건네며 정수기에서 컵에 물을 받아 한 모금을 단숨에 들이켰다. 인사말 끝에 ‘궁리’인지 되물었고 생각했다. 언제인가 집단토론 형식의 인터뷰를 했던 매체가 분명했다. 통화 중에 독특한 인터뷰 체험을 했던 그 날의 장소와 동참한 사람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새삼 반가운 기억 사이로 경쾌한 목소리가 이어졌고, 나는 수신구에 귀를 밀착한 채 물컵을 제자리에 놓은 뒤 다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때까지였다. 다른 전화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예상은 빗나갔다. 청탁에 응한다는 내 대답을 듣고 이메일 주소를 파악하면 대부분 통화가 끝났다. 그러나 이번 원고 청탁은 조금 달랐다. 이유인즉 ‘장애예술인의 예술적인 하루’라는 가제로 예술가의 일상에서 친밀하게 끼어드는 예술적인 삶을 입체적으로 조망해 보고자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마치 다 알아들은 척 자연스럽게 응대했고 통화 말미쯤에서 이십여 년 전 일을 떠올렸다.

보호구역을 벗어나

‘장애예술인’ 초청 인터뷰였다. 방송과 언론사는 한마디로 극복기를 강조했다. 작품보다 장애인이 그것도 시각장애인이 그 어려운 신춘문예 등단 시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신기했던 모양이다. 사실, 원인을 제공한 내 탓도 있다. 등단 전과 초기에는 장애인이 된 이야기가 많았다. 아니, 정확하게는 징징거림이 심했다. 변명하자면 문학 치료에 가까운 면이 있다. 그러나 노출증 환자처럼 보였다. 인정한다. 요즘 여러 공모전에서 심사할 때 거친 노출을 자주 만나곤 한다. 부정적 평가가 아니다. 많은 장애인이 문학을 접하는 건 환영할 일이다. 해마다 ‘장애문학’ 연구가 늘고 있는 것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니까 ‘장애문학 연구’가 거의 없던 시절에는 장애인이 하는 문학을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장애인을 대상 삼은 복지 정책으로 인식했다. 당연히 인디언 보호구역처럼 ‘장애문학’은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 울타리에서 조금은 벗어나 ‘장애문학’이라는 명사를 얻기에 이르렀다. 물론, 아직 튼실한 자리매김은 아니다. 더 절실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예술 활동의 많은 부분이 일상에서의 발견과 영감으로부터 비롯된다는 편집자의 말처럼 장애문학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노숙인 쉼터, 안양교도소, 그리고 오늘 늦은 오후에 수업할 ‘공감지기’(삼산종합사회복지관 글쓰기 동아리)를 통해 나는 일찍이 체험했고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교도소는 자신이 저지른 반성과 몸에 대한 해방적 이미지가 많았고, 노숙인 쉼터 사람들은 원망과 좌절 그리고 실체적 고통이 많았다. 이 사람들이 쓴 글에 대한 예술적 판단은 논외로 하고 ‘일상’이라는 단어와 예술의 접점이 어떤 개연성을 가졌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아, 그나저나 외출할 시간이 다 되었다. 미리 보내온 ‘공감지기’의 작품들을 음성프로그램으로 틀어놓고 나는 샤워를 한다. 시각장애인이 누리는 독서법이기도 하다. 샤워를 마친 뒤 여유롭게 차 한 잔을 마시며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린다. 예전에 비해 불편함이 많이 해소되었다. 어느새 탑승한 택시가 삼산종합사회복지관에 도착했다.

일상에서 파생한 상상과 감정

‘공감지기’ 회원은 중증장애인들이다. 그래서 두세 분은 꼭 참석하지 못한다. 건강이 불안해서이기도 하고 이동 수단이 자유롭지 못해서이기도 하다. 그러나 창작열이 대단하다. 끈기도 남다르다. 합평할 때면 치열한 토론이 펼쳐지곤 한다. 관점의 차이도 있다. 정답이 없는 화제도 있다. 의견 충돌이 강한 날도 있다. 토론을 넘어 언성이 높은 날도 있다. 그러나 다음 주에도 그들은 웃으며 만난다. 그리고 다시 목청을 높인다. 합평하는 모습이 매번 다르지 않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열기가 가라앉은 수업 말미에 중복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진 씨’가 나오지 못한 사연을 들었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행방불명되었단다. 또 기도가 필요한 시간이다.

이렇듯 ‘공감지기’와 내 인연이 벌써, 수년째다. 희로애락이 켜켜이 쌓였다. 그 결과 세 권의 문집을 발간했다. 연말이면 출판기념회를 또 열어야 한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하고 발표한 시를 낭독해야 한다. 발음이 어려운 분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기다릴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는 동안 우리는 귀를 쫑긋 세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동안 발간한 ‘공감지기’의 문집들을 생각했다. 시의 소재는 그야말로 다양했다. 가족사, 연애사, 누가 먹고 버린 찌그러진 종이컵과 밥이 없는 밥솥, 계절마다 눈에 들어온 풍경, 종교, 사회, 정치, 과학과 우주에 이르기까지 다룬 소재가 헤아릴 수 없다. 본디 시는 일상으로부터 파생한 상상력의 기록이다. 갑자기 다가온 사건으로부터 열리는 새로운 감정 세계이다. 오늘처럼 생각지 못한 시간에 ‘궁리’로부터 원고 청탁 전화를 받은 것도, ‘경진 씨’ 아버지에 대한 사건도 미리 알 수 없었다.

나는 내일을 모른다. 내가 가장 불행한 이유이다. 그러나 내일을 모른다는 것이 나를 살게 한다. 매일 같은 날의 복사판 같다. 그러나 아니다. 오늘은 딱 오늘이다. 내일도 어제도 같을 수 없다. 서로 교환도 될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이 고유한 시간이다. 내일은 아마 치매에 대한 사유가 깊어질 것 같다. 와중에 방해금지 상태를 켜놓지 않으면 예측하지 못한 전화를 받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어쩌랴.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술적 삶이고 내가 시인으로 문장을 꾸릴 수 있는 원동력이다.

  • 사진1. 야외 정원에서 강연을 위한 테이블 앞에 필자가 앉아 바로 앞에서 공연하는 해금연주자의 연주를 듣고 있다.
  • 사진2. 사진1과 같은 공간. 야외 정원에서 필자가 마이크를 잡고 문학 강연을 하고 있다.

문학워크숍 초청 강연에 참여한 필자

손병걸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시집 『푸른 신호등』(문학마루), 『나는 열 개의 눈동자를 가졌다』(애지), 『통증을 켜다』(삶이 보이는 창),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걷는사람)가 있고, 산문집 『열 개의 눈동자를 가진 어둠의 감시자 손병걸』(솟대문학), 『내 커피의 농도는 30도』(작가마을) 등을 발간했다. 기업체, 교도소, 노숙인 쉼터, 초중고대학교 등에서 수백 회의 강연과 음악 공연을 했고, 여러 언론과 문예지에도 수백 편의 작품(칼럼, 에세이, 평론, 르포)을 발표했다. 여전히 활발한 강연, 공연, 작품발표와 더불어, 사단법인 인천민예총 이사와 사단법인 인천작가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thsqudrjf@hanmail.net

사진 제공.필자

2023년 8월 (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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