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음광장
홍대 앞은 내가 이십 대인 젊은 시절부터 자주 다니던 곳이다. 그곳에 가면 젊음이 넘치는 라이브클럽이 있고 특별한 분위기의 카페가 즐비했으며, 이른바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문화’의 거리라고 불릴 정도로 다양한 모습이 가득하다. 많은 작가와 시인, 그리고 음악가와 예술가가 이 거리에서 삶의 근거지를 만들며 자유롭고 다양한 예술 작업을 해왔다. 언니네이발관, 크라잉넛, 델리스파이스 등 인디밴드의 노래를 찾아가서 들었고, 연인 혹은 친구들과 ‘홍대 앞 먹자골목’에서 ‘걷고싶은거리’까지 다채로운 가게들 사이를 활보하면서 젊음을 뽐냈던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주말에 가족과 함께 나들이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음반 가게에서 좋아하는 뮤지션의 CD를 몇 장 사거나 아트마켓에 들러 예쁜 상품들을 구매하고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점차 이곳의 문화예술 작업이 극도로 상업화되고 과소비를 조장하는 장소로 원성의 대상이 되어 아쉽기도 했다. 끝내는 젠트리피케이션을 상징하는 지역이 되었으나 여전히 젊음의 문화를 상징하는 거리가 바로 홍대 앞이다.
그 홍대 앞에 스물세 살의 청년 ‘마카롱’이 예술가를 향한 꿈을 펼치고 있다. 마카롱은 홍대에서 가까운 성산동에 살고 올해 초부터 ‘발달장애인 문화창작소’에 출근하고 있다. 그는 만화를 잘 그리고, 특히 로봇에 관한 만화를 그릴 때는 작은 나사못 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한다. 마카롱은 그가 마을공동체에서 쓰는 별명인데, 실제로 달콤한 프랑스 간식 마카롱을 좋아한다.
마카롱은 유쾌하고 재미있는 상상력으로 만화를 그리고, 캐릭터의 특징을 꿰차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고, 정교하게 로봇 모형을 만든다. 마카롱은 만화로 이미 동료 예술가들과 전시회까지 했으며, 로봇에 대한 영감이 떠오를 때마다 색종이나 클레이로 모형을 만들곤 한다. 그는 뚜벅이 탐험대 일원으로 홍대 앞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의 집합소 ‘피규어프레소’라는 이름의 매장으로 흔쾌히 안내한다. 홍대 앞 거리에서 멋진 만화 캐릭터와 생생하고 정교한 로봇을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재미있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한다. 동료 예술가들과 연대하여 이른바 ‘모던양파’라는 그림 동아리도 결성했다. 홍대 앞에서 마카롱은 유쾌하고 발칙한 청년 예술가이다.
마카롱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Autism spectrum disorder)가 있다. 미국 정신의학협회는 정신진단 분류 체계 5번째 개정판(DSM-Ⅴ)에서 발달장애를 유형별로 분류하면서 다양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로 명명했다. 의학적인 분류로는 자폐 스펙트럼 증상을 가진 사람을 뜻하지만, 그 범위는 매우 넓어서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가 모호한 경우도 많다. 마카롱의 자폐 스펙트럼 증상은 가끔 혼자만의 상상 세계에 빠져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자폐 스펙트럼은 마카롱을 자신답게 만드는 한 부분이며 그의 예술 세계를 구성하는 재료이기도 하다. 그는 이제 발달장애인 문화창작소에서 누구나 즐겁고 재밌는 삶을 만들 수 있게 도움을 주려고 사람을 만나고 작품활동을 하는 건실한 청년이다.
영국 작가 마크 해던(Mark Haddon)의 소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15세 소년 크리스토퍼가 주인공이다. 크리스토퍼는 머릿속으로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면서 긴장을 해소하고, 빨간색 음식만 먹으며, 누군가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면 울부짖는다.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본다면 이상한 소년이지만, 정작 그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크리스토퍼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해결하며 난생처음 세상에 나아가 타인과 부딪치고, 엄마를 찾기 위해 낯선 런던 거리를 헤맨다. 작가 해던은 빛나는 문체로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크리스토퍼를 현실감 있게 재현하고 있다. 소설에서 장애가 있지만 용감하게 마음을 드러내는 주인공의 내면세계를 지적이고 재치 있는 문체로 풀어냄으로써, 창작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독특한 캐릭터를 창조해 냈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정한 규칙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찾아 용감하게 모험한다. 런던의 복잡한 거리에 선 크리스토퍼의 내면과 홍대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마카롱의 공통점은 세상의 시스템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하는 장애인들의 내면에 솟아나는 용기와 희망 같은 것 아닐까? 크리스토퍼는 허구의 세계에서, 마카롱은 현실에서, 자기만의 모험을 감행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성격은 조금 다르지만, 강박장애가 있는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작품은 관객으로 하여금 사물과 세상을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환상적인 경험을 하게 만든다. 어릴 때 집안의 식탁보에서 본 빨간 꽃무늬가 공간 전체를 덮는 환영을 본 후, 계속해서 꽃, 그물, 점의 형상으로 변형되는 사물들이 자신을 뒤덮는 환각을 경험하게 된다. 오직 그림을 그릴 때만 그 환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박증과 환영으로 인해 자신만의 내면세계를 가진 그녀는 일관되게 물방울무늬를 사용하고 무한 그물 같은 그림을 그리는 등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은 보고 있으면 최면에 빠져들어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만든다. 일반적인 예술의 개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아름다움’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이렇듯 그녀의 예술 세계는 우리에게 색다른 세상을 보게 해준다. 이제 그녀의 내면세계가 만들어낸 예술작품은 명품 핸드백의 무늬로 프린트되거나 패션 상품의 패턴으로 사용되면서 대중들에게 별나지만 친근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청년 마카롱이 홍대 앞에서 활동하면서 만드는 작품에도 그만의 독특한 세계가 스며들어 있다. 홍대 앞이라는 젊은이의 문화를 상징하는 장소에서, 유쾌하고 재밌는 청년 예술가 마카롱이 찬란한 희망을 품고, 어떤 예술적 모험을 하게 될는지 우리 모두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한다.
현근식
장애학을 공부하며 장애와 문화예술에 관한 논문과 글을 쓰고 있다. 십 수년간 장애인 정책 분석 및 모니터링을 해온 경험과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답 없는 질문이 글의 원천이 되고 있다.
open38@naver.com
사진 제공.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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