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체, 글꼴, 글자꼴, 글씨는 모두 글자의 모양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글자 모양을 네모난 박스에 넣어서, 컴퓨터나 모바일 등 전자장치를 통해 출력해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것을 ‘폰트’(정확하게는 폰트 파일)라고 한다. 이 글에서는 글자꼴(글자 모양)과 폰트(글자꼴이 담긴 파일)를 구분해서 쓰려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많은 폰트가 제작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도구인데 기업, 지역자치단체, 많은 기관 등에서 고유의 폰트를 제작하고 있다. 과거에는 폰트 회사에서 잘 만든 폰트를 사용하는 게 일반적이었다면, 2000년 이후부터는 기업/브랜드의 이미지를 통일하는 역할로 폰트를 활용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금융권을 중심으로 이런 흐름이 시작되었다. 기업과 계열사의 보증 관계(?)가 중요하다 보니, 여러 계열사들이 하나의 패밀리로 묶여 보이는 게 전략적으로 기업 이미지에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다양한 홍보물에 통일된 폰트를 사용함으로써 일관된 기업/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결론적으로 폰트는 기업/브랜드 디자인에서 ‘에셋(도구)’의 역할이었다.
브랜딩 도구에서 함께하는 경험으로
그러다 2007년 서울시에서 배포한 폰트 서울남산체, 서울한강체 등 서울서체는 폰트의 다른 줄기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서울시를 대표하는 글자꼴을 디자인하고 폰트로 배포했다는 데 의미를 두지만,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편석훈 전 윤디자인그룹 회장의 의도는 약간 달랐다. “시민 1천만 명이 주인인 서울시, 그 1천만 명이 스스로 도시를 브랜딩하는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당시에도 서울시를 대표하는 시각물은 로고부터 캐릭터, 색상까지 이미 존재했다. 그러나 그런 요소들은 모두 브랜드를 디자인하는 에셋의 역할이고, 디자인 전문가들이 산출한 홍보물을 일방적으로 ‘보는’ 경험만을 제공했다. 반면에 폰트는 ‘보는’ 경험을 넘어 누구나 배포된 폰트를 컴퓨터에 설치하면 ‘써보는’ 경험을 하게 된다. 즉, 서울시를 대표하는 글자꼴을 디자인하고 배포하면, 누구나 서울시 폰트를 사용하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도시를 브랜딩할 수 있다. 이러한 의도는 정확하게 적중했다.
현재 서울시와 연관된 수많은 기관은 로고 타입이나 홍보물에 서울시 폰트를 사용하면서, 서울시의 유관기관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서로 기관은 다른데, 만들어지는 홍보물은 모두 서울시와 연관된 형태가 되고 있다. 나아가 동네 가게 간판도 서울시 폰트로 제작하면서 도시의 가게가 되고 있다. 전문가들이 아닌, 시민이 스스로 도시를 브랜딩하고 있고, 이런 액션에 폰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폰트를 글자꼴을 담은 파일이 아닌, ‘스스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디지털 굿즈’로 바라본다. 폰트라는 디지털 굿즈는 발신자만의 일방 소통이 아닌, 누구라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발신자가 되는 강력한 이야기꾼이다. 또한 폰트는 공기와 같다. 지금 곧 세상에 폰트가 사라진다고 상상해보자. 친구에게 카톡을 보낼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다. 이메일은 물론이고 검색까지, 세상에서 모든 소통이 중단된다. 그래서 폰트는 공기와도 같다. 당연한 존재, 없으면 절대 안 되는 존재. 이런 폰트의 속성이 오늘날 지역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폰트는 고유의 목소리를 내는 매체이다. 한 폰트를 같이 사용한다는 건 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시너지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시민에게 전달하고 그들과 함께하기 위해 폰트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지역사회의 폰트 ‘이름’에 흥미를 느낀다. 의지로 투쟁해야 할 땐 ‘투쟁체’를, 정직하고 진솔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할 땐 ‘또박체’를, 그리고 다채로운 사람들과 티키타카 해야 할 땐 ‘티키타카체’를 사용해야 할 것 같다. 이처럼 지역사회에서 폰트는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한 정체성을 담는 기업 폰트와는 완전히 다르다. 지역사회 폰트는 자신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문자로 만들고, 폰트로 제작·배포함으로써 다 함께 목소리를 내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디자인을 위한 디자인을 넘어 고유의 정체성을 담기 위해 프로젝트에 더욱 집중하게 되고, 글자꼴을 디자인할 때 몰입감이 더욱 높은 것 같다.
모두의 글씨, 모두의 목소리
엉뚱상상이 티키타카 폰트를 처음 기획하게 된 배경은 약간 다르다. 어느 날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으로부터 ‘크리에이터를 위한 디자인 교육’ 진행을 의뢰받았다. 우리는 교육하는 것을 넘어, 예비 크리에이터들이 직접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폰트를 만들어야 한다고 이야기 나눴다. 그리고 우리가 만든 폰트는 일방 소통이 아닌, 누구나 사용하면서 또 다른 울림을 만들길 기대했다. 이전에는 사람들의 손글씨 원도를 폰트로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우리는 ‘모두의 글씨’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괴발개발이면 어때?’ 프로그램 참여자 모두의 글씨 자소를 한땀한땀 분리해서, 컴퓨터에서 타이핑하면 자소가 출력되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즉, 전문가가 디자인한 폰트도 아니고 특정 인물의 대표 폰트도 아닌, 모두의 폰트로 모두의 창작활동이 되는 것을 그렸다.
티키타카 폰트를 제작할 때, 참여자 모두가 설렘의 연속이었다. 글자꼴 디자인 전문가는 아니지만, 자신이 창작한 글자꼴이 폰트로 제작되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과 설렘이 있었다. 물론, 글자꼴 원도를 스캔한 후 디지털 파일로 만드는 작업은 오랜 시간이 필요했지만, 기다림의 시간은 더욱 기대감을 올려줬다. ‘정말로 내가 그린 글자꼴이 폰트로 나올 수 있을까?, ‘누군가가 쓴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작업해야지’ 교육의 시간이 아닌, 함께 만들어 가는 시간은 자긍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다른 디자인 산출물과 다르게 폰트는 생활 곳곳에서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한다. 단지 홍보 매체를 만드는 순간만이 아니라, 우리가 만든 폰트를 길거리나 방송에서 누군가가 활용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는 참여자들과 함께 더욱 프로젝트에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는 다채로운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발신자 중심의 일방 소통이 더 많다. 지역사회에서 폰트를 만드는 이유는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을 넘어, 누구나 사용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같이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목소리를 내기 위함이다.
최치영
편집디자인 회사 안그라픽스(2021~2017)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했고, 타이포그래피에 빠져서 한글폰트 회사 윤디자인(2017~2021)에 합류했다. 지금은 남다른 글자 문화를 만들기 위해 엉뚱상상(2021~현재)에 합류해 활동 중이다. 엉뚱상상은 기업과 브랜드의 메시지를 만들고, 메시지의 증폭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다. 대표 프로젝트로 ‘노브랜드 3.0 리뉴얼’, ‘CJ올리브영, 올영세일 리뉴얼’, ‘이마트24, 아임e 패키지 디자인 리뉴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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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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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손글씨보다 폰트를 더 많이 접하게 되는데, 글을 쓸 때 어떤 폰트가 좋을지 골랐던 것이 어떤 것을 전달하고 싶었던 건지 좀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또박체에서는 말이 들리는 것 같아요. 폰트 설치해서 써보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