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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음광장 예술가의 여행 레시피④ “저는 그 선 밖으로 여행해 보려 해요”

  • 박경인 피플퍼스트 서울센터 활동가
  • 등록일 2024-09-11
  • 조회수 92

이음광장

안녕하세요. 저는 박경인입니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피플퍼스트는 저와 같은 발달장애인이 자기 목소리를 내는 곳이에요. 우리도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고 사회에 외치는 활동을 합니다. 우리 사회는 발달장애인을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비발달장애인의 목소리만 가득한 세상에서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구나 생각할 때가 많았어요. 이제는 피플퍼스트가 있어서 저도 이 사회의 한 사람으로 목소리를 내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피플퍼스트는 정말 일이 많아요. 그런데 제가 바쁘다고 말하면 의심의 눈초리로 보는 사람들이 많아요. 발달장애인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되물을 때도 있어요. 함께 일하는 비장애인이 모든 일을 다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해요. 발달장애인이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만들어야 하니까 바빠요. 피플퍼스트가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발달장애인이 주체가 되는 권리운동은 우리 사회에 없었거든요. 우리는 먼저 우리의 삶을 자세히 돌아봐야 해요. 우리가 겪었던 일들이 우리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걸 깨닫고, 그걸 우리의 말로 표현해야 하거든요. 예전에는 몰랐던 감정이 올라와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어요. 그리고 우리를 차별하는 세상과 싸우기 위해 기자회견을 하거나 집회에 나가요. 여러 사람을 만나서 발달장애인의 권리에 대해 교육도 하고요. 각종 서류와 교육자료를 만드느라 하루가 꽉 차요. 그러면서 동료들과 싸우기도 하고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사과도 해요. 저는 시설에서 태어나 23살까지 살았어요. 시설에서도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지냈지만,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어요. 갈등하고 화해하는 법을 배우기 전에 사회복지사들이 다 정리해버리거든요. 저는 피플퍼스트에 와서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성장해 가고 있어요.

저는 일을 하다가 지치면 3개월에 한 번씩 제주도로 휴가를 떠납니다. 여행을 가고 싶어지면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해서 비행기 표를 삽니다. 그런 다음 혼자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로 가요. 버스를 타고 어느 공간에 내리면 데리러 와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렇게 혼자 비행기를 탈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저에게 여행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비행기표와 기차표를 끊는 것부터 난관입니다. 설명이 어렵고 복잡하거든요. 그리고 장소를 찾아가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처음엔 친구랑 같이 제주도를 다니면서 제주도에 대해 알아갔고, ‘아, 이제 혼자서 와 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서 혼자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제주도를 좋아하게 된 건 ‘삼달다방’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피플퍼스트에서 워크숍으로 삼달다방에 처음 갔었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편안한 공간으로 느껴졌어요. 우선 삼달리의 자연이 너무 좋아요.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가득해요. 정말 반짝반짝 빛나요. 별똥별이 내리는 걸 본 적이 있습니다. 신비로웠어요. 사계절마다 느낌이 달라요. 봄에는 벚꽃터널이 정말 예쁘고, 여름에는 바닷물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겨울에는 눈 내리는 모습이 참 예뻐요. 도시에서는 삶이 빨라서 정신이 없고 차도 많고 사람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많아서 복잡해요. 자연을 보면 복잡한 머리와 코가 차분해지고 정리가 돼요(제가 비염도 있거든요). 특히 저는 삼달다방 근처에 있는 물썹카페에서 바다랑 소를 보면서 수제 요거트를 먹으면 기분이 매우 좋아져요.

삼달다방은 ‘무심’과 ‘오케이’가 활동가들을 위해 만들었어요. 제가 가면 무심과 오케이 두 사람과 강아지 두 마리가 반겨줘요. 한 마리는 ‘삼도’고 한 마리는 ‘한라’입니다. 삼도랑 저는 조금 특별한 사이에요. 삼도는 유기견이었는데, 어느 날 삼달다방에 찾아와 머물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여기 와서 새끼를 낳았어요. 삼도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산책하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길 찾는 걸 잘 못해서 혼자 다니는 게 두려웠어요. 그래서 늘 사람들이랑 다녔는데, 삼달다방에 있던 어느 날, 혼자 산책을 가보고 싶었어요. 별을 보고 싶었거든요. 막상 혼자 가려니 무서워서 삼도를 데리고 갔어요. 삼도는 이 동네를 잘 알아요. 어둑해지기 전에 삼달다방을 나갔는데 중간에 주위가 깜깜해졌어요. 당황해서 길을 잃었어요. 너무 무서웠어요. 오케이한테 길을 잃었다고 전화를 했어요. 오케이와 만날 때까지 삼도가 내 곁을 지켜줬어요. 그 뒤로는 삼달다방에 가면 아침마다 사람들과 함께 삼도를 데리고 산책을 나가요.

삼달다방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는 곳이에요. 넓어서 집 같은 느낌이 들고, 내가 놀고 싶을 때 놀고 혼자 있고 싶을 때는 혼자 있을 수 있어요. 거기 가면 일부러 약속을 잡지 않아도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어요. 밥을 함께 만들어 먹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게 좋아요. 멀리 놀러 나가지 않고 삼달다방에만 있어도 여행을 충분히 하는 느낌이에요.

저는 7년 전에 시설을 나와 자립해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시설에서 살 때도 여행을 많이 갔어요. 해외여행도 여러 번 갔고요. 근데 그때는 여행 가서 이곳저곳 구경해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제 일정이나 뜻을 고려하지 않고 시설에서 정해준 대로 따라가야만 했거든요. 가서도 저보다 어린 동생들을 챙겨야 했어요. 그래서 좀 힘들었습니다.

자립하고 나서는 자유로운 여행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게 됐습니다. 사회에 나와서 만난 친구들과 처음 간 여행은 전주 한옥마을이었습니다. 한복 입고 친구들이랑 사진도 찍었는데, 저랑 비슷한 또래들과 여행간 게 처음이었습니다. 시설에서는 늘 나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은 사람, 선생님이나 봉사자와 함께 다녀야 했거든요. 또래 친구들과 함께 간 여행에서는 긴장도 하지 않고 마음 편하게 놀다 왔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삼달다방에 자주 갈 거예요. 올해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바다 수영을 해봤어요. 포구에서 깊은 바다로 뛰어내렸어요. 처음엔 무서웠는데, 막상 해보니 별거 아니었어요. 실은 너무 해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선생님들이 바다는 위험하다고 말렸어요. 늘 여기까지만 가라는 말을 듣고 살았어요. 그래서 저는 그 선 밖으로 여행해 보려 해요. 앞으로 바다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도전해 볼 거예요. 응원해 주세요.

  • 나무와 돌무더기 쌓인 밭이 있는 시골길에 필자와 한 동료가 백구 삼도와 함께 걷고 있다.

    삼도와 함께하는 동네산책

  • 필자가 배의 난간 쪽에 앉아 한 손을 들어 ‘브이’를 그리고 있다. 옆으로 구름 낀 하늘과 잔잔하게 물결이 이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배 타고 바다 즐기기

  • ‘무심’은 큰 통에 담긴 무를 살피고, 필자는 그 옆에서 커다란 무를 양손으로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삼달다방’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앞마당에서 ‘무심’은 테이블 위에 쌓아놓은 무를 썰고, 필자와 다른 두 사람은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삼달다방의 김장

[알아두면 좋은 정보]

삼달다방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여행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이자 문화공간이다. 설계할 때부터 문턱을 없애고, 휠체어 사용자의 시선에 높이를 맞추는 등 공간 곳곳에 장애인의 편의를 고려했다. 북토크, 상영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가 종종 열린다.

박경인

피플퍼스트서울센터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탈시설 활동을 주로 담당한다. 여행을 좋아하고 노는 것을 좋아하고 보드게임 루미큐브를 좋아한다.

사진 제공.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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