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타래처럼 풀어낸 기억들이
하나의 형상으로 피어납니다.
방울방울 맺힌 마음들이
색색으로 물듭니다.
순백의 세계,
그 위에 형형한 가능성을 그려가는 곳.
소화누리 틈새미술관입니다.
모두 함께 모여 작업하는 날.
작가들이 설레는 표정으로 속속 도착합니다.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개인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함께 모여 작업합니다.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외부에서 오시는 강사님과 함께하는 날입니다.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되자
작가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집니다.
미리 구상한대로 작업하는 작가도 있지만
손이 가는대로 표현하는 작가도 있죠
모두 내가 하고 싶은 말,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은 마음을 쏟아내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지근 여기에 계신 작가님들은
특별한 능력이 있는 분들이에요
시각적으로 자기 내면을 그려내고 표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분들인데
그림을 통해서 행복한 시간을 스스로 찾아간다는 거예요
그림을 그리면서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갖게 돼요
나는 다양하고 화려한 색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눈코입이 크고 속눈썹이 길고
풍성한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를 그리는 것을 특히 좋아합니다.
내가 그리는 사람들은 모두 개성이 뚜렷해서
자세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나도 있습니다.
나는 김리사진입니다.
나는 색종이나 과자봉지 같은 것들을 잘라
모자이크 작업을 합니다.
뾰족한 세모를 이어붙여
영성체처럼 동그란 모양을 만듭니다.
나는 윤미애입니다.
어디선가 고운 바람이 불어와
싱그러운 풀내음을 전해줍니다.
나는 향기에 젖어 그림을 그립니다.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켜켜이 덧바르며
기억 속 풍경을 쌓아갑니다.
그림이 곧 나이고 내가 곧 그림입니다.
나는 김혜영입니다.
볼펜을 뱅글뱅글 돌리면서 낙서를 하다가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나는 반복적인 패턴을 통해
살면서 만난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그립니다.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 슬픈 얼굴, 눈맞춤
서로 다른 표정은 서로 다른 마음입니다.
나는 나정숙입니다.
-우리는 실은 하나의 작품이잖아요
-그렇죠
-하나의 자부심이 생기더라고요
외부 강사님의 수업이 끝난 후에는
자조 모임을 진행합니다.
전시 계획이나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하기도 하고,
틈새미술관의 운영 방법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기도 하죠.
우리는 이 시간을 통해
모두가 틈새미술관의 주체임을 확인하고
하나의 공동체라는 소속감을 키웁니다.
2018년 개관한 틈새미술관은 성인여성정신장애인을 위한
정신요양시설 소화누리에서 운영하는
아르 브뤼(Art Bruit) 미술관입니다.
아르 브뤼는 가공되지 않은 순수한 예술이라는 의미인데요.
틈새미술관에서는 정신장애 작가들을 발굴해
아르 브뤼 창작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소화누리가 정신요양시설이고 100여 분이 계시는데
어느 날 옷장 속에 본인이 그림을 그렸다고 이렇게 보여주는데
옷장 속에 있기에는 너무 아깝다
그분들이 작품 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저희가 지원해주는 사업을 하면서
틈새미술관을 그때 만들었어요
미술관은 본래 소화누리 거주인들의
직업재활 작업공간으로 사용했던 곳을
리모델링 해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이곳이 지역주민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누구나 안전하게 1층 미술관에 들어올 수 있도록
입구에는 완만한 경사로를 설치했습니다.
미술관 안에는 테이블과 의자, 커피 머신까지 비치해서
관람자들이 편안하고 여유롭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했죠.
저한테는 진짜 꿈 같은 곳이죠
여기는 진짜...
(그림을)그리면 너무 행복하고 또 뿌듯하고
제가 멋진 그림을 또 그리고 있더라고요
작가들하고 같이 이렇게 활동을 하니까 정말 감사하죠
하루 종일 잠만 잤는데 (아침) 일찍 6시 되면 일어나요
(작업)할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해요
작업에만 몰두해야 되니까
그렇지 않으면 삐뚤어지게 나오든가
구멍이 난다든가 (하니까)
애를 써요
미술을 함으로써 정신적 스트레스나
외로움을 좀 달래주는 것 같고요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이곳에 와서
외로움을 좀 달래고 가는 것 같습니다.
혹시 미래 세대에 누가 알아준다면
이름이나 남기고 싶습니다.
소화누리 틈새미술관은
더 많은 사람들과 편견 없이 소통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
장애 때문에 소외되고 고립된 이야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기에서) 삶을 되찾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참 많이 있으시거든요
내가 힘들거나 외롭거나 지치거나
기쁠 때조차도
이 공간 자체를 정말 편안하게
꾸준히 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다보면) 이분들의 각자의 삶이
더욱 더 건강한 삶이 되지 않을까
우리는 벽과 벽 사이
우리만의 이 소중한 틈새에서 행복한 꿈을 그립니다.
배제와 차별이 없는 세상
스스로 일해서 내 힘으로 살아가는 일상
그리고 진정 행복해지고 싶은 우리 모두의 마음을 그립니다.
우리는 순수한 예술가 입니다.
우리는 거짓없는 마음을 그립니다.
우리는 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합니다.
우리는 소화누리 틈새미술관입니다.
현장탐방은 장애 예술단체의 창작활동이 이루어지는 다양한 공간과 활동 사례를 발굴하여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 현장탐방: 예술해볼라GO 시즌2 소화누리 틈새미술관 기사가 궁금하시다면 웹진이음에서 확인하세요. [기사 바로가기](링크)
영상. 박유미 미술작가 gomako198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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