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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예술주간 강연: 캐리 샌달 ‘장애예술 미학의 명명과 주장’

리뷰 거대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예술창작의 원천적 감각

  • 문승현 작가
  • 등록일 2023-11-29
  • 조회수251

리뷰

미학이라는 용어의 일반적인 정의를 따른다면 인간 이성의 영역과 구별되는 감성의 영역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철학의 한 분파라 말할 것이다. 그것은 미와 추를 구분하는 인간의 능력을 고양하는 목적을 가지고 이름 붙여졌기에 다분히 계몽주의적인 용어다. 예술이라는 말 또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의미로나 유럽 문화권의 의미로나 일반교양과 기술에서 비롯된 말임을 상기해 볼 때, 예술을 정의하기 위한 주장들은 아직 진행 중이며, 그것이 아름다운 무엇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예술이 다른 무엇일 수 있다는 논의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그것이 현재성을 얻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이다. 자크 데리다의 저작 『해체』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창작자들은 무대 위의 각각 개별자를 해방시킴으로써 존재를 부여한다. 이전에는 예술행위자의 지위를 부여할 수 없던 존재들은 이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행위자의 역할을 맡는다.

강연자 캐리 샌달이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는 예술단체 컨소시엄 ‘Bodies of Work(BOW)’가 처음 구체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은 이미 거대 ‘예술의 종말’이 진행되고 있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주류 담론이 붕괴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양극화, 기후위기, 네오파시즘의 대두 등으로 촉발되는 위기에 기성 담론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지켜봤던 것이다.

나는 “장애예술이 아웃사이더에 속하며, 비주류로서 예술의 다양성과 발전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캐리 샌달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덧붙인다면, 예술사에서 발전적 변화를 이끈 것은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것은 포스트모던 이후로 탈중심화가 가속화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동시대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비평이 아웃사이더를 어떤 맥락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와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강연의 몇몇 주제들은 미학적으로 예술사 속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미니멀리즘에서 개념예술로 발전하는 과정은 예술의 규칙성·합리성을 파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것이 장애예술의 범주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어떤 다른 의미로 해석할 것인가는 의도와 장애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안무와 연출의 절대적 규칙은 비장애 예술가들에게도 낡은 공식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장애예술이 “규범과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캐리 샌달 교수의 말은 장애의 존재 조건을 인정하는 것임과 동시에 존재 조건으로부터 발생하는 창의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캐리 샌달 교수가 말하는 ‘재현적 딜레마’도 사회적 비평의 견지에서 본다면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방식 차이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캐리 샌달 교수는 재현적 딜레마가 “장애가 현존함으로써 고유하게 생겨나거나 복잡화되는 까다롭고 혼란스러운 역설적인 이슈들을 설명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장애의 경험을 표현하는 연극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면 관객은 장애가 실재로서 현존하고 있음을 본다. 배우와 관객에게 장애는 현존하지만, 연극이라는 예술작품 자체는 가상의 상황을 재현한다. 장애예술 작품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하여 그 안에 반드시 장애가 현존해야 하느냐는 문제, 관객과 배우라는 관계 외에 장애와 비장애 또는 장애와 장애라고 하는 서로 다른 존재 조건들의 사회적 관계가 작품의 소통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할 수도 있다.

장애인을 하나의 범주로 또는 집단으로 사회계층으로 묶어 판단할 수 없듯이, 장애예술 또한 하나의 범주로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장애라고 하는 존재 조건들이 처한 상황과 관계에 의해 설명되고 판단되며 느껴지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언어여야 한다.

현대 미학의 핵심적 논의 중 하나는, 무엇이 예술을 예술답게 하며, 그것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이고,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즉, 다양한 장애 정체성과 존재 조건들이 예술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며 몸과 감각의 이슈뿐만 아니라 장애 조건이라는 존재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의 영역으로 예술 언어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접근성 이슈, 건축과 환경에 관한 이슈들이 장애예술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예술은 단지 장애인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아웃사이더로서 주류사회의 경직성을 해체하며 끝없이 지성에 경종을 울리는 존재여야 한다. 캐리 샌달 교수의 강연 주제는 장애예술 미학이 거대 담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주체의 특수성이 예술창작의 원천적 감각임을 일깨운다.

  • 리사 부파노가 양팔과 양다리에 긴 의족을 끼워 네 개의 다리처럼 바닥을 짚고 있다.

    〈나무 심장에게 한 번의 호흡은 바다〉 리사 부파노 Lisa Bufano(ⓒJeremy Alliger)

  • 프리다 칼로의 작품 〈두 명의 프리다〉를 재현했다. 두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다. 심장은 붉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손을 서로 맞잡고 있다.

    〈두 명의 프리다〉 마리암 파레 Mariam Paré, 레베카 토레스 Reveca Torres (ⓒTara Ahern)

위 두 작품은 Bodies of Work와 예술지원단체 3Arts가 공동 주최한 레지던시 내 협력 예술가의 작업으로 강연에서 소개되었다.

  • 강연하는 캐리 샌달 교수(왼쪽)와 모더레이터 김원영 작가

  • 강연장 전경

장애예술 매니페스트

모두예술주간 강연 : 캐리 샌달 ‘장애예술 미학의 명명과 주장’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11.9. | 모두예술극장

장애인의 신체·정신·감각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급진적인 타자성을 주장하는 장애예술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장애예술의 정의를 논하고, 장애인 예술가들과 동료들이 문화예술의 주류 규범에 ‘순응’하려는 기대에서 벗어나 장애의 경험을 온전히 탐구할 때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강연이다.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 장애 및 인간 발달학과 교수인 캐리 샌달은 2009년 장애예술과 문화를 연구·지원·창작하며 장애의 경험을 탐구하는 연구실 UIC의 장애예술, 문화 및 인문학 프로그램(PDACH)을 설립했다. 장애의 경험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품 개발을 지원하는 단체들의 컨소시엄인 시카고의 ‘Bodies of Work(BOW)’ 공동 디렉터이다. 주로 공연과 영화 내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와 교차하는 장애 정체성과 관련한 연구와 창작 활동을 한다. 저서로 『소란스러운 몸 : 장애와 퍼포먼스』(공동편집)가 있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Code of the Freaks〉를 공동제작했다.

모두예술주간 강연 정보

문승현

1999년 수원에서 회화작가로 데뷔했다. 어릴 때 뇌성마비장애를 가졌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시를 쓸 줄 안다. 현재 장애인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림을 천직으로 안다.

shmoon75@gmail.com

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년 12월 (48호)

상세내용

리뷰

미학이라는 용어의 일반적인 정의를 따른다면 인간 이성의 영역과 구별되는 감성의 영역을 연구하고 해석하는 철학의 한 분파라 말할 것이다. 그것은 미와 추를 구분하는 인간의 능력을 고양하는 목적을 가지고 이름 붙여졌기에 다분히 계몽주의적인 용어다. 예술이라는 말 또한  동아시아 문화권의 의미로나 유럽 문화권의 의미로나 일반교양과 기술에서 비롯된 말임을 상기해 볼 때, 예술을 정의하기 위한 주장들은 아직 진행 중이며, 그것이 아름다운 무엇을 뜻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예술이 다른 무엇일 수 있다는 논의는 꾸준히 제기되어 왔으나, 그것이 현재성을 얻은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이다. 자크 데리다의 저작 『해체』로 대표되는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창작자들은 무대 위의 각각 개별자를 해방시킴으로써 존재를 부여한다. 이전에는 예술행위자의 지위를 부여할 수 없던 존재들은 이제 나름의 방식으로 예술행위자의 역할을 맡는다.

강연자 캐리 샌달이 공동 디렉터를 맡고 있는 예술단체 컨소시엄 ‘Bodies of Work(BOW)’가 처음 구체화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은 이미 거대 ‘예술의 종말’이 진행되고 있었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미 주류 담론이 붕괴하는 과정을 목격했다. 양극화, 기후위기, 네오파시즘의 대두 등으로 촉발되는 위기에 기성 담론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지켜봤던 것이다.

나는 “장애예술이 아웃사이더에 속하며, 비주류로서 예술의 다양성과 발전적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는 캐리 샌달 교수의 말에 동의한다.  덧붙인다면, 예술사에서 발전적 변화를 이끈 것은 언제나 아웃사이더였다는 사실은 역설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것은 포스트모던 이후로 탈중심화가 가속화되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동시대적 다양성을 중시하는 비평이 아웃사이더를 어떤 맥락으로 바라보고 있는가와도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사실 강연의 몇몇 주제들은 미학적으로 예술사 속에서 일반화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미니멀리즘에서 개념예술로 발전하는 과정은 예술의 규칙성·합리성을 파괴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것이 장애예술의 범주에서 일어난다고 해서 어떤 다른 의미로 해석할 것인가는 의도와 장애 조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안무와 연출의 절대적 규칙은 비장애 예술가들에게도 낡은 공식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장애예술이 “규범과 정해진 답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캐리 샌달 교수의 말은 장애의 존재 조건을 인정하는 것임과 동시에 존재 조건으로부터 발생하는 창의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캐리 샌달 교수가 말하는 ‘재현적 딜레마’도 사회적 비평의 견지에서 본다면 사회 구성원 간의 소통방식 차이에 대한 이해와 연결되어 있다. 캐리 샌달 교수는 재현적 딜레마가 “장애가 현존함으로써 고유하게 생겨나거나 복잡화되는 까다롭고 혼란스러운 역설적인 이슈들을 설명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장애의 경험을 표현하는 연극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장애인 배우가 연기하면 관객은 장애가 실재로서 현존하고 있음을 본다. 배우와 관객에게 장애는 현존하지만, 연극이라는 예술작품 자체는 가상의 상황을 재현한다. 장애예술 작품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하여 그 안에 반드시 장애가 현존해야 하느냐는 문제, 관객과 배우라는 관계 외에 장애와 비장애 또는 장애와 장애라고 하는 서로 다른 존재 조건들의 사회적 관계가 작품의 소통방식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가를 설명해야 할 수도 있다.

장애인을 하나의 범주로 또는 집단으로 사회계층으로 묶어 판단할 수 없듯이, 장애예술 또한 하나의 범주로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장애라고 하는 존재 조건들이 처한 상황과 관계에 의해 설명되고 판단되며 느껴지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언어여야 한다.

현대 미학의 핵심적 논의 중 하나는, 무엇이 예술을 예술답게 하며, 그것이 존재하는 곳은 어디이고, 예술이 존재하는 방식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이다. 즉, 다양한 장애 정체성과 존재 조건들이 예술 언어를 풍부하게 만들며 몸과 감각의 이슈뿐만 아니라 장애 조건이라는 존재를 둘러싼 공간과 시간의 영역으로 예술 언어를 확장하는 것이다. 그 가운데 접근성 이슈, 건축과 환경에 관한 이슈들이 장애예술의 언어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장애예술은 단지 장애인을 위한 예술이 아니다. 아웃사이더로서 주류사회의 경직성을 해체하며 끝없이 지성에 경종을 울리는 존재여야 한다. 캐리 샌달 교수의 강연 주제는 장애예술 미학이 거대 담론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거대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주체의 특수성이 예술창작의 원천적 감각임을 일깨운다.

  • 리사 부파노가 양팔과 양다리에 긴 의족을 끼워 네 개의 다리처럼 바닥을 짚고 있다.

    〈나무 심장에게 한 번의 호흡은 바다〉 리사 부파노 Lisa Bufano(ⓒJeremy Alliger)

  • 프리다 칼로의 작품 〈두 명의 프리다〉를 재현했다. 두 여성이 의자에 앉아 있다. 심장은 붉은 선으로 연결되어 있고, 한 손을 서로 맞잡고 있다.

    〈두 명의 프리다〉 마리암 파레 Mariam Paré, 레베카 토레스 Reveca Torres (ⓒTara Ahern)

위 두 작품은 Bodies of Work와 예술지원단체 3Arts가 공동 주최한 레지던시 내 협력 예술가의 작업으로 강연에서 소개되었다.

  • 강연하는 캐리 샌달 교수(왼쪽)와 모더레이터 김원영 작가

  • 강연장 전경

장애예술 매니페스트

모두예술주간 강연 : 캐리 샌달 ‘장애예술 미학의 명명과 주장’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11.9. | 모두예술극장

장애인의 신체·정신·감각의 특수성을 바탕으로 급진적인 타자성을 주장하는 장애예술 공연에 대해 이야기하며 장애예술의 정의를 논하고, 장애인 예술가들과 동료들이 문화예술의 주류 규범에 ‘순응’하려는 기대에서 벗어나 장애의 경험을 온전히 탐구할 때 무엇이 가능한지 보여주는 강연이다.
시카고 일리노이 대학교 장애 및 인간 발달학과 교수인 캐리 샌달은 2009년 장애예술과 문화를 연구·지원·창작하며 장애의 경험을 탐구하는 연구실 UIC의 장애예술, 문화 및 인문학 프로그램(PDACH)을 설립했다. 장애의 경험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품 개발을 지원하는 단체들의 컨소시엄인 시카고의 ‘Bodies of Work(BOW)’ 공동 디렉터이다. 주로 공연과 영화 내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와 교차하는 장애 정체성과 관련한 연구와 창작 활동을 한다. 저서로 『소란스러운 몸 : 장애와 퍼포먼스』(공동편집)가 있다.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Code of the Freaks〉를 공동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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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승현

1999년 수원에서 회화작가로 데뷔했다. 어릴 때 뇌성마비장애를 가졌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시를 쓸 줄 안다. 현재 장애인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림을 천직으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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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023년 12월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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