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장우 작가는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서 형이 운영하는 카페까지 산책하고, 그곳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신 뒤 집으로 돌아와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여행이나 전시와 같은 특별한 일정이 있지 않은 한 하루에 8시간씩 그림을 그린다. 마치 직장인이 출근하듯이 정해진 시간 동안 그림을 그리는 루틴은 이장우 작가가 2017년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린 첫 개인전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이후 7년 동안 12회의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었던 동력이었을 것이다.
지금 이장우 작가는 강릉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개인전 ≪그날의 분위기≫(2023.7.4.~9.17.) 이후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이장우 작가의 그림은 자신이 직접 보고 경험한 풍경을 바탕으로 하기에, 무엇보다도 새로운 공간과 시간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다수의 개인전과 단체전 등에 참여하면서 많은 시간을 전시 준비에 할애하다 보니 그에게 중요한 작업 소스들이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작가의 가장 큰 지원자인 어머니의 권유로 잠시 전시를 멈추고 작업의 영감을 얻기 위해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지난 1년간 국내뿐만 아니라 유럽을 중심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온 이장우 작가는 여행 당시의 기억과 사진을 기반으로 다시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박미연최근에 여행을 많이 하셨는데, 어디 다녀오셨어요?
이장우남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다녀왔어요.
박미연유럽의 아름다운 나라들을 중심으로 다녔네요. 어느 곳이 가장 마음에 들었나요?
이장우북유럽이요. 피요르드도 잘 봤고, 항구도 봤어요. 피요르드는 두 점이나 그렸어요.
박미연요즘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이장우북유럽 항구 도시 노르웨이의 베르겐을 그리고 있어요.
박미연베르겐이라는 항구 도시를 집중해서 그리는 이유가 있나요?
이장우이제 어려워도 그릴 수 있어요.
박미연예전에는 어떤 점이 어려웠어요?
이장우사진을 똑바로 잘 봐야 하고, 눈에서도 봐야 하고, 마음으로 잘 크리에이션을 해야 해요.
지난 7년간 봐왔던 이장우 작가의 그림은 캔버스 안에서 형태와 색이 강렬하게 꿈틀거리면서 역동성과 자유로움이 느껴졌지만, 어렵거나 고통스럽게 그린 것 같지는 않았다. 무슨 의미일까.
박미연여행지에서 직접 사진을 찍잖아요. 많은 사진 중에서 그림으로 그릴 사진들은 어떻게 고르세요?
이장우컴퓨터에 옮긴 사진을 한 장씩 자세히 봐요. 그리고 여행했을 때를 생각하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골라서 그리고 있어요.
이장우 작가는 여행 다닐 때면 항상 카메라를 메고 어디에서든 사진을 찍는다.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그의 컴퓨터에는 수천 장의 사진이 저장된다. 그는 틈틈이 이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서 원하는 구도로 자르고 편집한다. 이렇게 편집한 사진은 다시 작가의 손을 거쳐 그림으로 완성된다. 다른 사람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사진을 고르고 어떻게 편집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이장우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까지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과정을 밟아왔던 셈이다. 눈으로 본 것을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려왔던 이장우 작가는 이제 조금은 창작의 어려움에서 벗어난 마음이 느껴진다.
박미연작가님 그림에는 다양한 색이 들어가는데, 가장 좋아하는 색이 뭔가요?
이장우저는 브라운이 좋아요. 주황색도 좋고요.
사전에 전달한 질문마다 하고 싶은 말을 준비해 온 A4 용지를 보니 “하늘색이 좋아요”라고 되어 있는데, 즉석에서 대답이 달라진다. 인터뷰 장소인 카페까지 걸어오면서 아니면 카페에 걸려있는 자신의 그림들을 보면서 준비한 답이 아닌 다른 답을 했다고 짐작해 본다.
이장우 작가의 그림에는 다양한 색이 담겨 있다. 규격화된 유화 물감을 컬러 믹싱해서 작가의 눈으로 해석한 풍경의 색을 만든다. 그가 많은 작품에서 사용하는 주조색은 검정, 파랑, 흰색이지만, 그 사이사이를 채우고 있는 색은 우리의 눈으로 지각하는 색보다 많다. 그곳에서 그때 경험한 색이 작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었다가 캔버스 위에서 소환되면서 그림 속 색들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박미연안 쓰는 색도 있어요?
이장우안 쓰는 색, 싫어하는 색은 없어요.
이장우 작가의 그림 속에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한 색이 어우러져 있었던 이유는 작가의 이런 마음이 그림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색은 시시각각 변화하고, 그림마다 선택한 좋아하는 색이 모두 달라지는 게 아닐까.
박미연작가님 그림에는 마티에르(질감)가 있어요. 왜 이렇게 물감을 두껍게 바르세요?
이장우내 생각엔, 리얼로 그리고 싶어서 그래요.
근대 이후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는 회화의 오랜 숙제였다. 세상이 3차원으로 보이는데, 어떻게 캔버스 위에 담을 것인가는 작가 이장우에게도 숙제였던 셈이다. 그가 찾은 방식은 평면 위에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것이었고, 캔버스에서 탈락하지 않을 정도로 물감의 두께를 조절하면서 역동성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었다.
박미연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는 뭘 하세요?
이장우유튜브도 하고, 피규어도 만들고 있어요.
가족의 말에 따르면 이장우 작가가 유튜브 개인 방송을 시작한 지는 6개월 남짓 되었다. 초반에는 여행지에서 찍은 동영상을 게시하다가, 최근에는 컬러 믹싱으로 콘텐츠를 바꾸었다. 유화 물감을 짜서 머릿속에서 상상한 색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영상으로, 아직 구독자 수가 700명을 약간 밑돌지만, 이장우 작가가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콘텐츠이지 않을까. 저녁 8시 정도에 작업을 마치고 다시 물감을 갖고 놀이를 즐긴다는 건 천생 화가이기에 가능한 유희일 것이다.
2023년 4월에 발생한 강릉 산불로 집과 작업실이 전소되면서 작업실에 보관하고 있던 그림들도 모두 사라졌다. 다행히 이장우 작가의 작품을 사랑해 주는 컬렉터들과 미술관 소장품이 남아 있어서 강릉시립미술관에서의 특별전 ≪그날의 분위기≫ 개최가 가능했다. 근 1년 동안 국내외 여행을 다녀온 뒤 지금까지 30여 점의 작품을 완성한 이장우 작가는 아직도 그리고 싶은 그림이 많다. 필요할 때마다 사진을 골라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은 단조롭고 반복적인 일상일 법도 한데, 작가는 자기의 호흡을 스스로 가다듬고 있다.
박미연내년에는 어떤 그림들로 전시를 계획하고 계세요?
이장우내년에는 유럽 풍경 그림으로 전시할 거예요. 그리고 경포호수 벚꽃, 사천 바다, 인제 자작나무도 같이 전시하고 싶어요.
박미연전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서 그림 이야기할 때 어떠세요?
이장우행복해요. 자주 전시하고 싶어요.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가서 작가 이장우는 다음 전시를 기다린다. 전시 때 자신과 작품이 주인공이 되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일까?
박미연작가님에게 그림은 뭐예요?
이장우나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려고 그림을 그려요. 그림은 내 친구예요. 그림 그릴 때 옆에 아무것도 없이 혼자서 그리는 것이 편하고 행복해요. 그리고 전시장에서 사람들이 내 그림을 보고 좋아할 때가 행복해요.
얼마 전 이장우 작가는 장애인 고용 기회로 교보문고에 미술 일자리로 취업하게 되었다. 교보문고 관계자들은 한눈에 그의 그림에 매료되었고, 앞으로 그의 행보를 기대하고 있다. 그의 사원증은 이제 작가 이장우가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았음을 상징한다. 또한, 작가로서 한 걸음 더 발돋움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림을 사랑하고, 그림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기를 희망하는 작가 이장우. 그림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발 딛고 있는 그에게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낸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그림으로 세상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느끼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이장우
자폐화가. 초등학교 이후 미국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유화를 배웠고, 풍경을 담은 유화 작업을 한다. 초기작으로 〈자화상〉, 집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그린 〈메이(May)〉 등이 있고, 이후 풍경을 담은 유화 작업에 몰입해 강릉의 풍경, 제주의 풍경 등을 담았다. 2017년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첫 개인전으로 데뷔해 평창올림픽 기념전(《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성지 순례전》(2019), 《경험의 풍경》(2020), 《아빠와의 여행》(2021), 《물. 바람. 돌》(2022) 등의 개인전을 열었다. 2022년에 강릉문화재단 박준용청년예술문화상을 수상했다. 2023년 4월 발생한 강릉 산불로 인해 작가의 작업실에 보관 중이던 400여 점의 작품이 전소된 아픔을 겪고 재기하는 첫 전시의 의미를 더해 강릉시립미술관에서 특별전 《그날의 분위기(Mood of the Day)》를 열기도 했다.
∙ 유튜브 채널. SonamuGood
박미연
전시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가나아트갤러리 및 가나오케이, 캠프그리브스 DMZ 피스 플랫폼, 강원국제예술제 큐레이터를 거쳐, 화이트블럭 천안창작촌 학예팀장을 역임하였다. 현재 전시기획사 바다를 채우는 통조림 대표를 맡고 있다.
∙ 인스타그램 @park____mi
사진. 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 사진 제공. 이장우 작가
2024년 11월 (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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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작가님의 작품 앙티브 너무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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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작가님의 작품 사진을 보니 여행을 가고싶은 생각이 물씬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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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만 봐도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오고, 철썩철썩 물소리가 들리고, 거센 바람소리가 들려오네요ㅎㅎ "눈으로 본 것을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그려왔던" 이란 대목이 그림만 봐도 느껴지는 것 같아요. 질감 덕분도 있지만 작가님께서 마음으로 느끼신 바를 그림으로 옮겨주시니 더더욱 그림이 입체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 드는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