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살아오는 동안 함께해온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음악이라 말할 수 있다. 청소년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랫동안 음악을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예술활동을 하는 데 있어 중심은 늘 지속 가능한 자기만의 콘텐츠, 자기 계발과 도전을 향한 열정이라고 생각해 왔다. 어린 시절 병을 앓고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었다. 젊은 날부터 지휘를 전공하여 합창과 관현악을 하고 단체 활동에도 익숙했지만, 점차 심각해지는 청력 손실로 인해 고도의 예술활동을 하기에는 벽이 생기고 자신감도 잃었다. 나만의 장르를 선택해 보며 달라진 예술활동의 조력자와 활동을 적극적으로 찾고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고자 했다. 평생 해오던 클래식 음악에서 장르를 바꿔 새롭게 접목하면서, 다양한 동료와 파트너를 만날 수 있었고, 활동방식도 크게 바뀌면서 나름 새로운 세상을 열어가는 과정에 적응하고 있다.
결국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예술가는 무대에서 만나게 되고, 무대에서 보여주는 것은 작은 만남이다. 그렇기에 지휘자라는 예술인으로의 만남을 접고 보컬과 연주자로 전환했다. 무대는 낯설게 느껴졌고, 관객층이 바뀌니 예술 작업을 하고 관객에게 보여주며 공감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나 스스로 선택한 것이기에 피하지 않고, 다시 공부하고 생업의 중심에 보컬 관련한 강의와 행사를 했고, 기획에도 집중하게 되었다. 음향장비와 스피커도 한 조 마련했다. 2015년부터 시작해 해마다 300회 이상 버스킹을 하며, 클래식에서 대중음악으로 바뀐 관객과의 접점을 넓히고 다양한 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클래식에서 크로스오버로, 대중음악으로 전환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클래식을 하려니 대중적인 음악은 아니어서 활동의 폭이 넓지 않을 것 같았고, 합창단은 가능한데 고도의 합창단을 지휘하는 것은 어려웠다. 그래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고민하다가 작곡하고 작사하고 시 쓰는 작업은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찾아가는 음악치료사가 되겠다는 마음에 음악심리상담사 자격증도 땄다. 그러면서 치매센터, 주간보호센터, 어르신 대상 찾아가는 프로그램을 매주 진행하고 있다. 만 58세 환갑을 맞이해 언어치료학과에도 진학했다. 입술 모양을 보고 말을 듣고 싶어 구조학적으로 배워야겠다 싶었다. 하지만 실습을 할 수 없어서 결국 공부만 하고 마무리해야 했다.
작년에야 비로소 나의 장애를 세상에 드러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장애가 드러나지 않아서 가능하면 숨기려다 보니 일상에서도 실수가 잦았고 음악활동을 하는 데도 어려움이 많았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드러내는 데 적응해가고 있다. 2024년에 처음으로 전남문화재단에 장애예술인 지원사업 공모 신청을 했다. 장애예술인뿐만 아니라 고령의 예술인이 설 수 있는 무대가 없는 것이 안타까워 ‘가인의 길’이라는 타이틀로 12명의 예술가와 함께 시 낭송, 선무, 노래 등의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후에 장애인협회에서도 연락이 오고, 여기저기서 함께 해보자는 연락이 많이 왔다. 구례, 하동 사람들 모아 시 낭송을 하는 ‘남도 세월에 묻다’라는 프로그램도 기획했다. 노래나 악기는 기술과 실력이 갖춰져야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시 한 편은 낭송할 수 있으니, 낭송가를 만들어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을 만든 것이다. 순천과 광양 등을 포함한 ‘전남동부’ 지역은 인구 100만 규모인데도 음악대학이 없다. 장애예술인을 발굴하고, 그들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고 조명하는 게 필요하다. 대부분 무대가 비장애인이 중심이고 장애인은 항상 서브로 들어간다. 메인이 안되는 거다. 그래서 더욱 발굴하고 조명해 줘야 한다.
그동안 장애여성협의회, 장애인복지관 등에서 장애인합창단, 장애인 보컬 노래교실, 장애인 콘서트, 강연 등을 열었다. 합창도 가르치고 발표도 했다. 이 중에는 노래 잘하는 분도 많아서 전국 경연대회에서 1등을 한 적도 있다. 교도소에도 찾아가 한 달에 한 번씩 인성 음악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장애인 수감자들과 발표도 한다. 치매 어르신과 소리 치료도 한다. 2022년에는 스튜디오와 별도로 광양 구도심에 60평 규모의 소극장을 열었다. 소극장 주변에는 공단 지대여서 원룸과 숙박업소가 많고 이주노동자도 많았다. 커피숍 하나 없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해 동네 거실, 사랑방 문화를 만들고 싶어 노래방 기기도 놓고 문화 뷔페 같은 형태로 포트럭 파티나 소규모 행사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수시로 동네 독거 노인에게 음식을 대접하기도 했다. 연주자들도 자연스럽게 공연하기도 했다.
올해 63세. 고향은 전주이지만 광양은 어쩌면 내 여생을 보낼 곳이다. 농촌에도 문화소외계층이 많다. 면사무소에서 부탁을 받아 매주 한 번씩 지역의 매실 농장에 찾아가 어르신들과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일하고 돌아와 피곤할 텐데도 다들 즐겁게 그 시간을 즐기신다. 앞으로 나의 길은 후학 양성에 뜻을 두기로 했다. 합창단도 만들려 한다. 올해 9월부터는 여성장애인협회 합창단 프로그램도 진행할 예정이다. 올해도 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신청했다. 지역에서는 젊은 장애예술인을 보기 어렵다. 젊은 해금 연주자 등 주변에 수소문해서 함께 서는 무대를 만들어볼 생각이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내가 직접 무대에 서지 않더라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줄 수 있는 기획자 역할을 하고, 장애인 예술활동의 디렉터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활예술인으로 더 많은 곳에서 친근하게 만나고 싶다.
이우연
지휘자, 크로스오버싱어, MC로 활동하며 순천시 KBS 합창단, 광양시 여성합창단 등 다수의 합창단에서 지휘와 합창,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보컬트레이너, 노래강사로서 순천시 시민대학과 광양청소년문화센터 보컬 클래스에서 활동했고, 현재 순천교도소 인성 음악치료 강사와 다수의 주간보호센터에서 활동한다. 순천 KBS 음악여행, 여수 극동방송국 힐링 프레이즈 등의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광양경제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금빛소리 그린봉사단 대표, 이우연LF하모니기획 대표로 공연전시, 강연, 녹화, 음반 제작 등의 활동을 한다. 금빛소리 소극장, 금빛소리 스튜디오도 운영하고 있다.
21dml@hanmail.net
사진 제공. 필자
2025년 2월 (61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제공하는 자료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 4유형 : 출처표시, 비상업적 이용만 가능, 변형 등 2차적 저작물 작성 금지」의 조건에 따라 이용이 가능합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