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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선환 동판화가 숱한 두드림으로 동판 위에 그리는 수묵화

  • 천윤희 독립기획연구자
  • 등록일 2025-02-05
  • 조회수 38

인터뷰

동판을 매체 삼아 수백 번의 두드림으로 회화와 입체 사이의 독창적인 작업을 해온 김선환 작가를 만났다. 사진 촬영을 할 때 그의 품 안에 있던 작품은 알브레히트 뒤러의 〈기도하는 손〉을 연상시키는 동판화였다. 해외에 사는 친척이 장애예술인창작센터 보둠(이하 보둠)에 입주작가로 있던 작가의 작업실에 처음 방문했을 때, 천주교 신자였던 그에게 선물하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고 했다. 오늘은 인터뷰 자리인 장애인미술협회 사무실에 오면서 들고 오기 좋은 소품이라 골랐다고 무심하게 말한다. 그러기엔 휠체어 이동자인 그가 들고 온 세 점의 작품 중 하나라는 게 자꾸 마음에 머문다. A4 사이즈 만한 〈기도하는 손〉, 이 작품이 왜 나에겐 작가로서 가장 소중해진 ‘손’과 작가가 되어가는 그를 위해 기도하는 여러 ‘마음’의 염원처럼 보이는 걸까. 그는 자신이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 표현했지만,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예술을 하며 다시 살아낸 삶의 힘이 들리는 듯하다.

  • 동판화 〈기도하는 손〉을 한 손에 들고 환하게 미소짓고 있는 김선환 작가

자신과 잘 맞는 매체를 찾아가는 것이 작가로서 중요한 작업 과정이다. 동판이라는 매체는 보기 흔치 않은데,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기억이 가뭇하지만, 약 18년 전 우연히 지인을 통해 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하는 귀금속공예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팔찌, 반지 등 귀금속을 만드는 1년 단기 과정이었다. 그중 동을 다루는 기법을 배우면서 ‘동판’이라는 재료를 알게 되었다. 몇 년 후 프로그램을 종료했는데, 그때는 특별한 감흥 없이 지나갔지만, 그 시간이 사라지니 너무 무료하고 답답했다. 혼자서 궁리하던 차에 동판이 생각났다. 인터넷으로 책을 구해 동판화는 어떻게 만드는지, 어떤 작업이 가능한지 고민했다. 귀금속공예를 하면서 망치질, 톱질은 계속해 왔으니 연장선상에서 해보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동판화 재료를 구입해서 집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당시는 아파트에 살다 보니 소음 문제로 망치질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여러모로 연구하다가 어깨 힘으로 동판을 눌러 손으로 입체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작업했는데, 그러다 보니 1년에 소품 몇 개 작업하기도 어려웠다. 귀금속공예를 할 당시에도 특히 동판을 만졌을 때의 질감과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물성이 마음에 들었다. 그 느낌이 좋아 동판화를 시작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동판화는 조각 도구를 이용해 동판에 얇은 선으로 새긴 후 종이에 인쇄한 작업이나, 동판에 왁스를 바르고 도구를 이용하여 선을 새긴 뒤 부식시켜 원판을 만들어 인쇄하는 에칭, 즉 오목판화 기법이다. 작가님은 인쇄 방식이 아니라 부조 혹은 입체적 회화를 조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내 경우는 동이라는 판재를 넓게 펴서 그 위에다 작업한다. 이를테면 앞판에 그림을 그린 후 뒷면에 망치를 두드려 입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그림을 만들어내는 방식이다. 초기에는 얇은 판재를 손으로 눌러서 둥글고 부드러운 느낌의 조형 작업 경향이었고 입체감이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동판이 얇은 경우 손작업이어도 판재가 찢어지기 쉽다. 입체감을 살리고 싶어 두꺼운 판재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망치를 도구로 사용하여 두드리며 완성해 갔다. 수백 번의 두드림 작업을 통해 조형해 가는 방식이다.

한 작품을 작업하는 데 얼마나 걸리나? 그 숱한 두드림의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다.

작은 작업은 1~2주면 가능하지만, 큰 작업은 몇 달씩 소요된다. 〈무등산〉 작업은 석 달, 〈금강산〉 작업은 네다섯 달 걸렸다. 보둠에서는 내 개인 작업실이 있어서 마음대로 두드려서 표현할 수 있어 대작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작업 공간은 다양한 장르의 작가가 같은 시간대에 사용하다 보니 크게 망치질하기 어렵다. 내가 망치질하면 힘들어하는 작가도 있다. 그래서 작은 망치로 따닥따닥 수준으로 하는데, 글씨 표현하는 정도의 작업이나 가능하다. 동판을 두드리다 보면 나조차도 그 망치 소리가 거슬릴 때가 있다. 내가 듣기에도 시끄러운데 남들은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망치 소리를 의식적으로 줄이기도 하지만, 작품에 몰입해서 작업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망치 소리가 커지곤 한다. 작품에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다 보면 그렇게 되는 듯하다.

선생님의 망치 소리를 들으면 작업이 어떤 상황인지, 어느 정도 집중하고 있는지 알 수 있겠다. 망치 소리의 강약과 리듬이 동판화에 조형미를 더해가니, 소리가 회화가 되고 리듬이 평면에서 입체가 되어가는 과정 같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작업은 드로잉을 한 앞면에 작업하는 게 아니라, 뒷면을 두드리면서 머릿속으론 앞면을 그려가는 작업이다. 천천히 약간씩 두드리면 이 정도 나오겠구나, 이 부분을 세게 두드리면 모양이 이만큼 튀어나오겠다, 계속 그런 양감을 상상하고 예측해야 한다. 자칫 다른 생각을 하다 두드려야 할 곳이 아닌 다른 곳을 두드리면, 앞면의 입체 그림이 달라진다. 그러면 다시 돌아와서 수정하고 보정해서 재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거꾸로 작업하는 게 아주 힘드시겠다.

맞다. 거꾸로 뒤집어서 하는 작업이라 집중력과 생각이 많이 필요하다. 뒷면에서 두드리면서 앞면을 만들어가야 하는 것에서 기인한다. 두드리는 강도에 따라 많이 튀어나와야 할 부분, 적게 튀어나와야 할 부분이 궁극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많이 생각하며 두드린다. 그러다 보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에너지가 많이 든다.

동이라는 매체의 물성은 금속성인데, 작가님은 의외로 산수화나 풍경 작업을 많이 하셨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동판화로 산수화나 풍경화 작업을 했을 때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산수나 풍경의 경우 주변이나 여행 가서 보았던 산세, 즉 그 선에 매료되곤 한다. 풍경을 볼 때면, 내 머릿속에 프레임을 만들어 놓고, 이런 부분은 이렇게 만들면 되겠다 상상하며 사진을 찍어둔다. 직접 갈 수 없던 곳을 담은 작품 중에는 〈백두산〉 〈금강산〉도 있는데, 인터넷으로 사진을 검색하여 활용한다.
다치기 전에는 매우 활동적인 편이어서 산에 무척 즐겨 다녔다. 산을 오르내리면서 그 어느 시점마다 바라본 각각의 풍경에 매료되곤 했다. 다친 이후로는 직접 산에 올라갈 수 없으니 동판으로 만들어보자 했다. 그리워만 했을 때는 마음이 아주 힘들었는데, 작업하면서 많이 편안해졌다. 작품을 만들면서, 마치 내가 그 산 그 풍경 속에 직접 가서 보는 느낌이 들었다. 다치지 않았다면 직접 가서 보았을 백두산 천지나 금강산도 그런 느낌으로 작업했다. 일반 그림이 다양한 색감과 기법으로 돋보인다면, 동판화는 화려하지는 않아도 은은한 멋과 느낌이 있다. 오래 볼수록 매력이 있다. 오래된 수묵화를 보는 느낌이랄까. 은은한 동판의 색이 수묵화의 한지 같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나는 동판 위에 수묵화를 그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판 위의 수묵화’라는 표현이 제게 감각적으로 와닿는다. 동판에서 낼 수 있는 색이 한정적인데도, 마치 수묵의 농담처럼 느껴진다. 작업할 때 색 표현에 대한 실험과 고민이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 동판에서 낼 수 있는 색은 두세 가지다. 동판 본연의 구리색 외에 갈색, 붉은색, 검은색 정도다. 그 색을 염두에 두고 상상하며 작업한다. 동판 자체로는 검은색은 안 나고 약품 처리를 해서 오래 놓아두면 공기와 동이 만나 산화되면서 색이 약간 거무스름하게 변한다. 그 색 외에는 페인트를 칠하거나 약품 처리해서 부식시켜 만들어낸 것이다. 책을 사서 보거나 다른 사람의 작업도 보면서 색을 어떻게 낼지 연구했다. 오래된 사찰에 걸린 풍경이 청색으로 보이는 이유는 동이 부식했기 때문인데, 나름대로 약품을 섞어가면서 그 청색을 만들려고 연구했다. 지금은 작업에 청색도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산과 계곡, 산수풍경 작업에 종종 사용한다.

  • 김선환 작가가 자신의 동판화 작품을 배경으로 앉아 있다.

스스로 작가, 예술가라고 느낀 시점은 언제인가? 작가로서 자긍심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궁금하다.

첫 개인전을 할 때였다. 아파트에 살며 작업실이 없어 망치 대신 손으로 눌러서 작업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보둠에 개인 작업실이 생기면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하루 종일이라도 작업할 수 있으니 모든 게 수월했다. 이 작업을 모아 2022년과 2023년에 개인전을 두 번 열었다. 개인전을 할 때는 소풍 가는 아이들의 들뜬 마음처럼 굉장히 흥분된 기분이었다. 관람객들이 과연 내 작품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개인전을 할 역량이 되나 하는 걱정도 들었다. 많은 사람이 전시를 보고 동판이라는 작업이 특별하다, 보기 좋다며 다른 일반 그림에서 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받아들여서 너무 기분이 좋았다. 20여 년 동안 작업을 해왔지만 그동안 작품이 많지 않았고, 일 년에 한 번씩 우리 협회 전시회에 참여하는 것 외에 단체전, 정기전 등에 두세 번 참여하는 정도였다. 내 작품만으로 개인전을 했다는 것, 그 점이 성취감과 함께 큰 의미로 다가왔다. 또한 많은 사람이 내 작품을 보고 좋아하니 감동이 있었다. 중증장애인이 동판화 작업을 하는 사례는 없는 것 같다. 유일하게 내가 하고 있다는 자긍심 또한 느껴졌다.

작가의 길을 가면서 영감을 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

나에게 귀금속공예를 가르쳐준 선생님이다. 그분을 통해 귀금속공예가 어떤 것인지 배웠고, 동판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내가 처음 작업하게 된 ‘동’이란 재료와 기법적 측면에서 최고의 영감을 주신 분이다. 선생님은 현재 70세가 넘었는데도 여전히 귀금속공예 공방을 열고 작업을 하신다. 내 개인전에도 모셨다.

그간 해왔던 대표적인 작품들을 소개해 주신다면?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이나 시리즈는 무엇인가?

내 대표작이라면 〈백두산 천지〉 〈용두암〉 〈설악산〉 〈서석대〉 등 산을 담은 작업과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 작업 등을 꼽을 수 있다. 2023년에 처음 선보인 〈훈민정음〉은 가장 애착이 가는 작업이다. 이 작업은 그간 했던 작업과는 좀 다르다. 우연히 머릿속에 벼락이 치듯 떠올라 인터넷으로 훈민정음에 관해 찾아보게 되었다. 소리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소리글자라는 점이 훈민정음의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매력으로 와닿았다. 그래서 훈민정음 총 28개의 자음과 모음을 동판에 바위 형태로 작업했다. 앞으로도 망치로 두드려서 한글에 입체감을 살려 명언이나 글귀 등을 새기는 작업을 계속해 보고 싶다.

관람객이나 동료 작가들과 자주 교류하는 편인가? 주로 어떤 대화와 피드백들이 오가는지 궁금하다.

주로 미술협회 작가들과 자주 만난다. 동판화 작업을 하는 작가는 없고, 거의 회화 작가다. 장르는 다르지만 그들의 작업과 표현 기법, 작가로서 가진 생각을 듣는 것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개인적으로는 한국화 하는 분들을 오래전부터 만나왔다. 대부분 연세가 높은데, 지금도 가끔 만나면, 이런 부분은 이렇게 표현하는 게 더 좋겠다고 조언해 주실 때가 있다. 나는 아집이 없다. 조언을 받으면 내 생각은 잠시 내려놓고 “한번 해봅시다”라며 그 자리에서 바로 작업해서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런 부분은 나아졌구나, 이것은 내가 했던 부분이 더 낫구나, 서로 이야기 나누면서 배워갈 점은 인정하고 취한다. 동료가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많이 배우고 나의 것으로 만든다.

예술가로서 작업할 때 어려운 점이나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

가장 절박한 것은 작품의 판로다. 작품은 끊임없이 만드는데 전시하고 발표할 기회가 많지 않다. 작품이 판매되어 현실적인 도움이 되면 더 좋겠다. 또한 작품은 쌓여가는데 보관할 공간이 없는 것도 애로사항이다. 상설 전시장이 있어서 지속적으로 장애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하고 판매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작년에 처음으로 ‘아트 광주’에 출품했다. 공공기관에 한 작품이 판매되었는데, 청색이 들어간 바다 풍경이었다. 아트페어에 참여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내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 것인가, 아니면 상품성이 있는 작품을 만들어 판매할 것인가. 작품성과 상품성 사이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전부터 고민해 오고 있지만, 아직은 내가 하고 싶은 작품 위주로 작업한다. 작품이 팔려 수입도 되고 재료도 살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그야말로 끝없는 고민이지 않을까.

앞으로 구상 중인 작업이나 작가로서의 계획은 무엇인가.

기존의 작업과 병행하여,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한글 작업이다. 한글을 많이 새기고 연구하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작품화해 보고 싶다. 획일적인 작품보다는 초창기에 만든 산수화나 풍경 속에 우리나라 글을 심어 글과 산수화와 조화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광주장애인미술협회 이사이기도 하다. 장애예술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달라.

사람이 결단 내리기까지가 어렵지, 결단하고 나면 도리어 쉽게 풀린다. 나도 처음 시작할 때는 이게 과연 될까 망설임이 많았다.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나 무엇이든 배우고 싶다면 용기 내어 시작해 보라. 하다 보면 스스로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일단 시작해 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 민화 속 호랑이를 모티브로 만든 작품으로 큰 호랑이 한 마리와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김선환, 〈호랑이〉, 동판, 30×40cm, 2022

  • 가로로 길게 산맥과 바위가 형상화되어 있다.

    김선환, 〈설악산 바위〉, 동판, 90×40cm, 2024

김선환

김선환

동판화가. 사단법인 광주장애인미술협회 회원이고, 협회장을 역임했다. 광주문화재단 장애예술인창작센터 보둠 1기 입주작가이다. 주로 산수를 주제로 한 동판공예 작업을 한다. 인터넷을 통해 산수의 아름다움을 연구하며 이를 작품에 생생하게 담아낸다. 자연의 섬세함과 깊이를 동판에 새겨 넣어, 예술적 표현의 힘을 보여준다. 광주장애인미술협회 정기작가전, 레지던시 작가 개인전 4인 사색(2022), 장애예술 페스티벌: 부산-광주-서울 장애예술 교류전(2023), 아르코미술관×지역문화재단 협력기획전 《여기 닿은 노래》(2024) 등에 참여했다.

천윤희

천윤희

현대미술과 비엔날레에 매혹되어 20대에 겁 없이 광주에 내려온 이래 지금까지 지역살이 중이다. 문학과 미술 사이, 교육과 전시 사이, 미술관과 비엔날레 사이, 광주와 비광주 사이, 엄마와 직업인 사이에서 살아온 날이 길다. 삶에 질문하며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의 다정한 동반자로서 미술과 책, 사람, 산책, 자연을 아낀다. 나로서 더욱 아름답고 의미 있게 나이 들어갈 수 있도록 스스로 처음이 되는 힘을 키우고 싶다.
uni94@hanmail.net

사진. 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자료사진 제공.김선환

2025년 2월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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