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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기획 [좌담] 중년·중견 장애예술가의 창작 환경과 지속가능성 축적된 시간, 새로운 지평을 위하여

  • 김희량·이희연·임현주·황철호·이성수 
  • 등록일 2026-06-24
  • 조회수 30

모두기획

생애주기의 관점에서 중년은 청년기와 노년기를 잇는 전환기이자, 사회적 성취와 책임이 정점에 이르는 시기로 여겨진다. 삶도 예술도 무르익는 이 시기에 도달한 장애예술가들은 어떠한 창작 환경 속에서 자신의 예술적 경로를 구축해 왔을까. 각자의 작업 세계를 형성하고 꾸준한 활동을 이어오기까지의 노력과 성취, 그리고 현재 마주한 고민과 도전은 무엇인지 짚어본다. 나아가 삶과 예술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조건과 가능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눈다.

개요

  • 일시2026년 6월 9일 오후 6시

  • 장소이음센터 이음아트홀

참석자
좌장.
이성수 힘빼고컴퍼니 대표·이음온라인 기획위원
패널.
김희량 무용수·모델
이희연 작가·출판편집자
임현주 미술작가
황철호 배우
  • 다섯 사람이 둥근 테이블에 둘러앉아 카메라를 바라보고 밝게 웃고 있다.

    왼쪽부터 이희연 작가, 김희량 무용수, 이성수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황철호 배우, 임현주 작가

중년 예술가 또는 중견 예술가

이성수오늘은 중년 장애예술가의 창작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보려 한다. 예술 활동을 시작한 지 10년, 20년이 지나 어느덧 중년이 된 지금, 우리는 어떤 위치에서 작업하고 있는지, 그동안 쌓아온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고, 앞으로의 창작과 삶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 성과나 성공담보다는 중년 장애예술가로 살아가며 마주하는 현실적인 고민과 변화,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나누고자 한다. 주변에서는 청년 예술인 지원에 비해 중년이나 장년을 위한 지원제도는 별로 없고 사각지대에 있어서 소외감이 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예술을 시작했을 때 상상했던 모습과 비교해 볼 때, 현재 자신의 위치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나? ‘중년’ 또는 ‘중견’이라는 말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임현주중년이라고 해서 별로 섭섭하다거나 억울하다는 생각은 안 했다. 섭외 연락이 왔을 때 내가 중견 작가인가, 그런 생각은 했다. 중견 작가라면 뭔가 확고한 자리에 있어야 하는데 요즘 그림도 못 그리고 있어서 망설여졌지만, 어쩌면 이것이 중년 예술가의 고민이 아닌가 싶어 참석하게 되었다. 사실 예술에는 '중년'이라는 게 없는 것이 맞지 않을까. 왜냐하면 어린 시절부터 예술계로 진입한 사람도 있지만, 뒤늦게 예술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예술에서는 나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성수맞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정체성이 복합적인 존재들이다. 사회적으로 중년이라고 하는 나이, 어떤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또 예술인으로서의 정체성 등이 섞여 있다. '중년'이라고 하는 사회적 구분과 '중견' 예술인이 같이 붙을 단어는 아닐 수도 있지만, 10년, 20년 이상 예술활동을 하면서 두 가지 포지션을 같이 가진 집합체라고도 볼 수 있다.

이희연어느 순간부터 몸이 안 좋아지기 시작한 시점이 있었다. 그때부터 내 나이가 벌써 이렇게 됐나 하고 놀랐다. 나는 아직 할 게 너무 많고,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나이 드는 게 싫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하고 싶어도 몸이 안 따라주니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있다. 특히 장애로 몸이 경직되는데, 나이 먹어가면서 더 심해진다. 아직은 내놓고 싶은 게 많은데, 그래서 좀 안타깝다.

황철호나는 일단 여기서는 청년이다. (모두 웃음) 나 어렸을 때만 해도 40이라는 나이가 많고 멀게만 느껴졌는데, 딱 마흔을 넘기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다. 지금은 평균 수명도 높아져서 중년이라고 하기엔 이른 것 같다. 시대에 따라 개념과 기준이 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50대까지는 청년이라고 하면 좋겠다. 이제는 어느 자리에 가든 소속감이 좀 떨어지는 것 같기는 하다.

김희량나는 나이를 그다지 생각하지 않고 산다. 그래서 이번에 좌담 제안을 받고서야 문득 내가 중년이 되었나 싶었다. 한참 2, 30대 못지않은 에너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어서 중년이라는 게 크게 와닿지 않는다. 50대가 되었으니 중년인가, 이런 느낌이다. 아직은 내겐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인정해야 한다면 받아들이겠다.

첫걸음에서 지금의 내가 되기까지

이성수사실 나이는 숫자일 뿐이고, 자신의 자아와 태도를 따라가는 것 같다. 다들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는 걸로 안다. 그렇다면 현재 자신은 스스로 어떤 예술가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다.

황철호배우로 활동한 지 한 20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인사이더보다는 아웃사이더 배우이고 싶다. 사람들은 대부분 '아웃사이더'라는 말을 싫어하는데, 나는 그 말이 좋다. 드라마에서도 조연이 있잖나. 비중 있지 않은 활동을 좋아하고, 남이 많이 알아봐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중년에는 연극보다는 대중매체 배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연극계에서는 장애배우가 나름 활발하게 활동하는데, 영화나 방송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몽글상담소〉가 있었지만, 아직도 2022년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 정은혜 작가와 이소별 배우가 출연했던 것에 머물러 있다.

임현주걸음마를 시작할 무렵 교통사고로 척수장애를 갖게 되었다. 늦둥이였는데, 어머니가 업고 다니고 친구들 도움받아서 학교에 다녔다. 1970년대에는 대학에 합격해도 불합격 처리되는 등 장애인을 받아주는 학교가 거의 없었다. 그러니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약사가 되었다. 의약분업이 되고 환경이 바뀌면서 결국 20년 정도 했던 약국을 접었는데, 그때야 어릴 때부터 마음에 품어왔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굉장히 즐겁게 시작했다. 첫 번째 전시회를 하고 나서는 다음에 할 작업이 막 떠올랐다. 사람들이 그림을 좋게 봐줬고, 전시회도 여러 번 했다. 나는 그림을 통해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거웠다. 그래서 전인 치유와 심리상담도 공부했다. 사람들과 소통하고 치유하는 데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몸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아이디어만 가지고 작가가 될 수는 없다고 느꼈다. 사실 그동안은 내가 게을러서 그림을 못 그리고 있다고 자책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내 몸이 이제는 앉아 있기도 힘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자각했다.
잠실창작스튜디오(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입주작가로 몇 년간 활동하면서 매일 나가서 작업했다. 그런데 창작스튜디오가 대학로로 이전하면서 가기 힘들어졌고, 집에서는 그림 작업을 할 환경이 안 되다 보니 혼자서 계속해 나간다는 게 쉽지 않았다. 내 몸의 변화가 미치는 영향이 컸다. 또 예술은 심리적인 것도 중요하잖나. 격려와 지지도 필요한데, 밀착해서 응원해 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힘들었고, 예전만큼 작업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그림 그리기가 즐겁지가 않았다. 진심으로 누군가 응원해 주고 조언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후배들한테도 이런 얘기를 해주고 싶다.

이성수무척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다르고 예술 분야에 따라서도 다르겠지만, 작품을 소통 창구로 삼는 분이 많고, 그런 측면에서 심리적 지지도 굉장히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그렇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누군가가 그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겠기에 대본을 쓰고 공연을 만드는데, 그게 잘 안된다고 생각될 때 외로워진다. 다른 사람의 부러움이나 시샘이 나를 멈추게 하기도 한다. 핵심을 딱 말씀해 주시니까, 서로 응원하고 교류하는 클럽을 만들고 싶은 맘이 생긴다. (모두 웃음)

이희연글쓰기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은데 언어장애 때문에 사람들이 내 얘기를 잘 안 들어주어서다. 어렸을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했는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다가 그곳을 나와서 혼자 있게 되었을 때부터다.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고, 내 말을 자기 멋대로 해석해 버리는 일을 거듭 겪으면서, 안 되겠다는 생각에 본격적으로 글을 썼다. 글을 쓰다 보니 편집 일도 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본격적인 글쓰기를 한 것은 아니고, SNS에서 활발히 글을 쓰다 보니 여기저기서 연락이 왔고, 글을 쓰게 되었다. 주로 장애여성의 일상, 장애인식개선 관련 칼럼과 에세이를 쓴다. 글쓰기를 통해 자존감과 자신감을 찾게 되었고, 글쓰기는 내 존재감을 지키는 시간이 되었다. 커다란 성취라기보다는, 그래도 사람들이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구나 싶다. 나는 아마도 사회생활을 지속하기 위해서라도 계속 글을 쓰며 살 것 같다.

김희량내가 무용과 모델 활동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비장애인이었을 때 꿈은 무용수였지만, 그 당시에도 시력이 안 좋아서 포기했었다. 그러다가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 취미생활로 춤을 춰보자 싶어 복지관에서 무용을 배웠던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거다. 플라멩코로 시작해서 지금은 현대무용도 하고 있다. 공연도 하고 창작 활동도 한다. 그러면서 또 다른 길이 생겨서 모델 활동도 하게 되었다. 작년부터 새로운 것도 시작하고 있다. 저는 오히려 비장애인일 때 꾸었던 꿈을 시각장애인이 되어서 다 이루어 가는 것 같아 너무 좋다. 2025년에 장애인문화예술대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을 받았는데,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지난 16년간의 활동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헛되지 않게 알찬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했다.

  •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진주 귀걸이를 착용하고 하얀 바탕에 검은색 꽃무늬가 있는 민소매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미소 지으며 두 손을 앞쪽으로 모으고 있다.

    김희량 무용수

  • 검정색 뿔테 안경을 쓰고 카키색 라운드 티셔츠를 입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턱 밑에 모은 남성이 노트북 앞에 앉아 정면을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다.

    이성수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 금속테 안경을 쓰고 단발머리 펌을 하고 검정색 티셔츠를 입은 여성이 두 손을 책상 위에 모은 채 옆을 보며 웃고 있다.

    이희연 작가

잃어버린 것, 새롭게 얻게 된 것

이성수임현주 선생님은 16년, 황철호 배우도 20년 경력이다. 제가 12년인데, 여기서 경력은 제일 짧은 것 같다. (웃음) 긴 세월 활동하면서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고 잃은 것도 있고, 울고 웃었던 시간이 있었을 것 같다. 오랫동안 예술 활동을 이어오면서 잃어버린 것과 새롭게 얻게 된 것은 무엇일까? 나이가 들면서 달라진 예술관이나 작업 방식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달라.

이희연학교 다닐 때부터, 비장애인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가 과제였다. 그때까지는 다른 장애인과의 인연도 없었다. 그래서 간접 경험을 위해 책을 읽으려고 했다. 비장애인 사회에서는 내가 어떤 활동을 하기가 너무 어려웠고, 그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이 너무 다르다는 걸 많이 느꼈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사람들에게는 "장애인은 착하다"라는 상이 있었다. 제 글에 대해서도 "글은 잘 쓰는데, 우리가 원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반응이 와서, 이 길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다.
장애인단체에서 활동하면서부터, 내가 왜 비장애인에게 맞추기 위해 애를 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그냥 있는 그대로 내가 느낀 것을 썼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달라지는 몸에 대해서도 쓰게 된 것이 변화된 점이 아니었을까. "내 몸이 너무 아프다"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프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는 것까지 들어가고 온전히 보여주는 게 내가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다.

임현주약국을 그만둘 때쯤 조금씩 그림을 그리다가 2005년 처음 동호회 전시를 했고, 잠실창작스튜디오에 들어간 게 2008년이었다. 지금이라면 훌륭한 작가들이 많아서 경쟁도 굉장히 셀 것 같다. (웃음) 집도 일부러 잠실로 이사했는데 창작스튜디오가 대학로로 이사 갔다. 나도 예술을 하면서 잃어버린 것과 달라진 것에 있어서, 이희연 선생님 이야기에 굉장히 공감되었다. 처음에는 그림 작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그림을 팔아야겠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일부러 온 이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누군가 내 그림을 보고 막 눈물이 난다고 하면 그런 그림을 그리려 했고, 내 그림이 밝아서 좋다고 하면 또 밝은 그림을 그리려 했다. 그러면서 나 자신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잠시 그림을 안 그리면서 오히려 내면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황철호극단에 있다가 매너리즘에 빠지면서 관계도 안 좋아져 극단을 나와 활동하고 있다. 옛날에는 언어장애가 있는데도 아나운서 오디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지원할 만큼 열정과 패기가 있었다. 지금은 오디션도 잘 안 본다. 오랫동안 해오면서 처음의 순수성과 초심을 잃은 것 같았다. 요령만 늘었다고 할까. 좋게 표현하면 유연해지고 융통성이 생긴 거겠지만, 그에 비례해서 망설임도 같이 오고, 쉽게 접근하기 힘들더라. 그래서 공연을 하더라도 옛날 같지 않고 각오를 굳게 다져야 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예술활동을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동료와 창작진, 관객 때문인 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소중함이 더 깊이 다가온다. 그리고 여전히 매체 배우를 꿈꾼다. 이왕이면 빌런 역할을 하고 싶다.

이성수제가 황철호 배우님을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진취적이고 앞뒤 가리거나 계산하지 않고 그냥 돌진했다. 패션 감각도 남다르고 미적 감각도 좋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장애에 대한 편견도 황철호 배우님을 통해서 많이 깨졌다. 나 역시 장애인은 다 착하고 욕망이 없고 무해한 존재로만 보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표현하는 것을 응원하게 된다.

김희량시각장애가 있다 보니 무용을 배우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 초창기에는 무용 선생님 몸을 만져보고 소리를 들으면서 동작을 만들어갔는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다.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그것을 한 번에 표현하면 쉬울 텐데, 머리 어깨 팔다리를 따로따로 익히고, 머릿속에서 상상한 다음 몸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래서 도중에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이것이 아니면 내 감정 내 이야기를 풀 데가 없었다. 연습실에서 연습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걸 내려놓고 오로지 춤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힘들어도 이겨내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이나 행사 무대에 서다 보면, 관객은 임팩트 있고 화려한 퍼포먼스를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정작 하고 싶은 것을 못 하게 되더라. 그래서 인기나 인정받겠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감정 표현에 더 집중하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아름다움을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사람들 마음 깊이 있는 두려움과 공포 같은 억압된 감정을 끄집어내서 표현하는 데 관심이 많다. 거칠고 날카로운 것들을 표현해 보고 싶어 감각을 다시 훈련하고 있다.

이성수요즘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장애예술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미학에 질문을 던진다.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 기존 미학을 해체하고 새로운 미학을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장애예술은 가장 주도적인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임현주초창기에는 양을 소재로 그림 그렸다. 사막에 버려진 양, 메마른 사막에서 혼자 가는 양, 오아시스를 만난 양 등 내 마음을 양에 투사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나를 "양 작가"라고 부르는 거다. 그저 양을 몇 번 그렸을 뿐인데 거기에 묶여버렸다. 그래서 잠시 작업을 멈추었다가, 요즘은 추상화 작업을 하고 있다. 일전에 모두예술극장에서 키아라 베르사니의 〈젠틀 유니콘〉이라는 공연을 봤다. 골형성부전증이 있고 체구도 조그마한 분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무대를 천천히 이동하며 관객 한 사람 한 사람 눈을 마주치며 교감했다. 강렬하고 인상적이었다. 그러면서, 과연 아름다움이란 뭘까, 라는 질문을 떠올렸다. 우리 동호회에서 크로키 작업을 한다. 항상 몸매 좋은 모델들을 섭외하는데, 몸매가 예쁘지 않은 분이 오면 불평하는 멤버도 있었다. 그걸 보면서 또다시, 도대체 아름다움이란 뭘까, 생각하게 되었다. 동호회에 장애인 모델을 섭외하자고 건의했다. 결과적으로 우리 동호회 멤버들이 서로 돌아가며 모델을 섰다. 부족하다는 느낌보다는, 한 사람 한 사람 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 빨간 볼캡을 쓰고 한쪽에 귀고리를 한 파란 티셔츠를 입은 남성이 노트북을 앞에 두고 옆을 보며 웃고 있다.

    황철호 배우

  • 숏커트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쓰고 파란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여성이 두 손을 모으고 옆을 보며 웃고 있다.

    임현주 작가

지속 가능한 창작을 위한 필요 조건들

이성수청년 예술가 지원이나 원로 예술가 지원에 비해서 중년·중견 예술가에 대한 지원이나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실제로 현장에서 활동하면서 소외를 느낀 적이 있나? 중년 장애예술인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지원이나 환경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

김희량창작 기반에는 지원금과 발표 기회뿐 아니라 활동 기록, 비평, 건강과 돌봄 등 다양한 기반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나 지원사업에 선정되기 쉽지 않아 비장애 예술가와의 협업에만 의존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아쉬운 점이 많다. 장애예술가도 다른 예술가들의 공연을 경험하고 느끼며 창작의 영감을 얻을 수 있지만, 관람 과정에는 여전히 많은 어려움이 있다. 시각장애인 지인들을 무용 공연에 초대해도 관람 비율이 낮고, 음성해설 수신기를 착용하거나 영상해설을 제공해 주더라도 공연에 몰입하기 어렵다. 저시력·약시 관객은 무대와 가까운 좌석이 있어야 움직임과 장면을 더 잘 느낄 수 있고 좀 더 몰입할 수 있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지정석이 있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을 위한 무대 앞 전용 좌석과 실질적인 관람 지원이 마련되어야 한다. 창작에서도 멘토나 서포트할 수 있는 전문 조력자가 필요하다.

이성수장애예술인이 창작해보고 싶다고 할 때, 사람들은 너무 쉽게 "지원서 쓰세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너무 현실을 모르는 말이다. 시각장애인의 경우 지원신청 양식에 맞춰서 작성하기가 너무 어렵고, 음성 프로그램 접근이 잘 안 된다. 지원기관에서 대필해 주는 시스템도 있지만, 오랫동안 소통해 온 게 아니니 협업이 안 되고 한계가 많다. 동료와 인적 자원이 굉장히 필요하다. 말씀하신 것처럼, 공연·전시를 보며 영감이나 창작 소스를 얻기도 하는데, 접근성이 떨어진다. 온라인에서도 접근성이 낮으니 정보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현주중년 장애예술가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첫 번째가 디지털 환경이다. 2013년에 지원사업에 신청했다가 완전히 진을 다 빼고 다시는 신청하지 않았다. 그때가 신진 작가 지원사업이었는데, 지원금 정산에 1원까지 맞춰야 했다. 작가가 그림 그리면서 그런 모든 걸 챙긴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연말 연초가 되면 지원신청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혼란스럽다. 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몸이 안 따라주고, 디지털 환경은 여전히 어려운 거다.

황철호일단 중년 예술인 지원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진다. 가장 필요한 지원을 생각해 보면, 저는 근본적으로 예술가 자신의 건강과 돌봄, 경제적 지원이라고 본다. 중년의 건강은 청년이나 노년보다 변화가 빠르고 깊어서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상대적으로 급박한 중년 예술인 건강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아낌없이 지원해 주었으면 한다.

이희연직업이 따로 있고 프리랜서로 글을 쓰다 보니 공모전 같은 데 지원하기도 애매하고, 공식적인 활동이 적다 보니 지원사업에 신청해도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지원 범위가 넓어지면 좋겠다. 장애인 대상 글쓰기 지원사업을 보면 주제가 한정된 경우가 많아 아쉽다. 좀 더 다양하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전문인력 지원 얘기에도 완전히 공감한다. 전문인력 지원이 필요하다. 나는 활동지원을 받지 않아 어려움이 있는데, 지원받을 수 있는 조건이지만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이 짧고 원하는 분이나 맞는 분을 찾기 어렵다 보니 특히 전화로 할 일 같은 것들은 포기하게 되고, 결국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챙겨야 해서 쉽지 않다.

십년 후 나의 미래에게, 후배 예술인에게

이성수창작을 하려 해도 건강과 돌봄에 대한 기본적인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10년 후 자신을 상상해 본다면 어떤 예술가로 남아 있고 싶은가? 앞으로의 창작 환경과 장애예술의 미래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달라. 또 선배 세대로서 청년·신진 예술인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눠달라.

황철호10년 후에는 적어도 내세울 프로필이 열 개쯤은 나오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리고 앞서도 얘기했지만, 장애인의 특수성이 반영되고 고유한 가치를 인정받으면 좋겠다. 청년세대에 선배로서 조언하기보다는, 거꾸로 선배들이 후배들을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청년 예술인은 중년·원로 예술인과는 또 다른 관점으로 뛰어나다. 배우들의 경우 연기할 때 감정선이 요즘 시대와 잘 맞고 기성 배우들과 사뭇 다르다. 그런 점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AI에 불안해하지 않고 잘 활용하면서, 기죽지 말고 꿋꿋하게 자리매김하면 좋겠다.

김희량10년 후에도 여전히 에너지 넘치게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다. 장애인 후배들을 양성하는 데도 힘쓰고 싶다. 지금도 발달장애인들에게 모델 워킹을 가르치고 있는데, 모델과 무용을 접목해서 뭔가 만들어보고 싶다. 해외의 장애인 모델과도 협업해서 퍼포먼스를 해보고 싶다. 무용을 통해서 모델 활동을 하고, 모델 활동을 하면서 배우를 하게 되었듯이, 또 다른 길이 있을 거로 생각한다. 어떤 길이 나오는지 끝까지 가보고 싶다. 시각장애인이 무용수가 되는 과정은 쉽지 않아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즐기면서 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예술을 접해 보고 도전해서 기회를 찾고 잡아야 한다. 그 기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또 새로운 기회가 만들어진다.

이희연공연·전시 보는 것을 정말 좋아한다.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것들을 꾸준히 챙겨나가겠다. 세상을 깊이 관찰하고 내 안에서 머무르는 것을 들여다보며 나의 언어로 나의 글로 표현하고 싶다. 이전에는 내 것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내 것만 보지 않고 주위도 살피려 한다. 청년 예술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하다.

임현주처음 그림 그릴 때를 떠올리며 청년 예술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생각해 봤다. 특히 미술 분야에서는 작가라는 명칭을 빨리 얻는 것 같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라는 명칭에 갇히지 말고, 마음껏 실험하고 시도해 보면 좋겠다. 여러 현장에 가보면, "너에게는 안 어울려", "이런 그림을 그려야 잘 팔리지" 하면서 틀에 갇히는 경우를 본다. 물론 상도 받을 수 있고 그림이 잘 팔릴 수도 있지만, 길게 본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고 스스로 기법이나 재료들을 더 많이 탐구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다. 또 하나는, 비교하지 말고 자유롭게 즐기면서 하라는 거다. 다른 사람이 빨리 인정받았다고 해서 초조해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말에 너무 휘둘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히 평론가의 칭찬에 기분이 고조되고, 반대로 비판에 의욕을 잃는 분들도 많이 봤다. 근데 나는 평론가보다 더 위에 있는 게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어느 시대든지 평론가들을 뛰어넘은 사람이 기억되는 예술가로 남기 때문에, 그것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기를 소중히 여기고 자기 작업을 해나가면 좋겠다.

이성수꾸준히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을 잘 잡아야 할 것 같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장애예술에 대한 관심이 최근 몇 년 사이 굉장히 높아지고,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다. 이음온라인도 국내 독자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장애예술에 관심을 보이는 외국인 독자도 많이 보는 사이트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 계신 분들을 포함해서, 최근 웹진이음에서 장애예술인 역사전 등을 톺아보는 기획 기사를 보면서 선배의 역할과 의미가 컸다는 걸 새삼 느끼는 시간이었다. 우리도 더 자부심을 갖고 서로의 활동도 지켜봐 주면 좋겠다.

  • 앞에 휠체어를 탄 두 사람이 나란히 있고, 뒷줄에는 이들과 엇갈린 위치에 세 사람이 서 있다. 밝게 웃는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황철호 배우, 임현주 미술작가. 뒷줄 왼쪽부터 이희연 작가, 김희량 무용수, 이성수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김희량

김희량

시각장애인 무용수, 시니어 모델. 2010년부터 시각장애인 플라멩코 무용수로 장애인 문화예술축제 및 장애인식개선 공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불편한 시선〉, 〈기후위기〉(2022), 〈메타 프리즘〉(2023) 등 다수 공연에 참여했다. 2021년부터 시작된 한국콘텐츠진흥원 연구 사업 ‘시청각 장애인의 문화예술 창작 및 협업 지원 기술 개발’의 일환으로 선보인 〈수를 세는 사람들〉(2024) 공연에 출연했다. 2025년 장애인문화예술대상 문화문체부장관상을 수상했다.
ckc2437@naver.com

이희연

이희연

작가. 출판편집자. 책을 만들고 가끔 글을 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글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일했던 장애인권 단체에서 연극팀 활동을 접했다. 이후 휠체어 무용 공연을 보고 장애예술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기획자 양성과정에 참여하는 등 장애예술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sarafina95@naver.com

임현주

임현주

지체장애를 가진 미술작가이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약사로 활동하다가 2005년 본격적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다. 주로 사람의 마음에 관심을 두고 자신의 성찰을 작품에 녹여낸다. 2013년 서울문화재단 신진 장애예술가 육성사업에 선정되어 개인전 《외치다》를 열었다. 개인전 및 초대전 10여 회, 단체전 200여 회 참가했다.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 입주작가,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이음리뷰클럽 4기로 활동했다.
jaea2000@hanmail.net

황철호

황철호

전동휠체어를 타는 뇌병변장애 배우다. 2006년 우연히 연극을 접한 지 어느덧 20년을 향해 뉘엿뉘엿 가고 있는 중년 아웃사이더 배우다. 삼육재활학교에서 초중고 시절을 보낸 뒤 제주대학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했다. 이후 서울로 올라와 광고교육원에서 카피라이터 과정을 수료했다. 극단 다빈나오를 기반으로 활동했다. 적당한 주변 응시도 놓치지 않으려 노력 중이다. 주요 출연작으로 〈나인 프리다〉(2021), 2022 예술날개 페스티벌: 〈3인 3색 이야기〉(2022), 〈생활의 비용〉(2023, 2024), 낭독공연 〈크립스〉(2025) 등이 있다.
1venture@hanmail.net

이성수

이성수

힘빼고컴퍼니 대표, 이음온라인 기획위원. 중도 저시력 시각장애인. 연극, 글, 장애인식개선, 워크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대화하고, 놀이하는 사람. 배리어컨셔스 연극 〈국가공인안마사〉, 모두의 연극 〈도깨비안마원〉, 컨셔스 연극 〈ㅈ〉, 도슨트 퍼포먼스 공연 〈미술관에 VVP가 뜬다〉 등을 쓰고 연출하고 출연했다. 현대무용 〈안심댄스〉, 연극 〈몬스터콜스〉, 〈당신 좋을 대로〉 등에 출연했다. 2024년 배리어프리 에세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해』를 함께 썼다.
hansole11@naver.com

정리.최순화 프로젝트 궁리 PD suna.choe@gmail.com
사진.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2026년 6월 (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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