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장애 예술의 여정에서 만난 아카데미
갈피를 잡았으면, 본론으로 가자
1.
사회 활동을 처음 시작하고 7~8년 정도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 일했다. 그 단체의 연극팀 활동은 연극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자는 것이었는데, 옆에서 보면서 저건 운동의 방법일까 아니면 순수한 예술 활동일까 하는 생각이 스쳐가는 시간이었다. 퇴사 이후 가끔씩 그 비슷한 공연을 접할 때도 그런 생각이 떠올랐지만 구체적인 질문을 갖지 못한 채 사라지곤 했다.
그러던 중 어느 공연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무용수가 비장애인 무용수와 너무나 자연스럽게 앙상블을 이루는 것을 보고 앞의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그 공연이 내게 신선했던 것은 휠체어를 전면에 부각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장애를 내세운 홍보 문구 하나 없었다는 게 적지 않은 세월을 한국 사회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굉장히 신선한 기분을 갖게 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장애 예술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되었다.
일단 관심을 갖고 보니 꽤 많은 장애인이 예술인으로서 미술작업을 하고 연극무대에 서고 연주 활동을 하 고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장애 예술에 대한 질문은 옛날 것처럼 느껴졌고, 사회운동 측면보다는 개인의 이야기를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작품이 더욱 많다는 것을 여러 매체를 통해서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장애인에게 예술 활동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현실에 많은 장벽이 줄줄이 늘어서 있는 한국 사회에서 예술 활동을 하고 싶은 장애인은 어떤 경험을 하며 살고 있는지 더 궁금해졌다. 또 이런 질문에 대해 공부하고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내가 직접 작품을 만들어내는 건 아니더라도 예술인의 이야기를 듣고 전하는 작업을 해보고 싶어진 것이다.
2.
하지만 난 그저 작품으로 나온 결과물을 즐기고 있었을 뿐 작품이 기획되고 제작과정을 거치고 다듬어져 나오는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마찬가지였다. 구체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어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던 중에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에서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를 진행하며 기획자 양성과정도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8주 과정, 좀 짧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 갈피를 못 잡은 장애 예술의 개념 정리만 해도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신청자가 많아 정원을 넘었다고 들었지만 다행히 합류했다. 아쉽게도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온‧오프 방식을 병행하며 진행되다보니 집중도가 덜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좋은 강사진이 있었고 좋은 얘기가 많이 나왔다. 나름의 리서치도 하고 페이퍼도 쓰며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머리를 쥐어짠 8주가 지났지만 우리 사회에서 장애 예술이 지닌 의미와 정의는 내게 영원한 질문이 되었다. 같이 참여한 사람들은 이미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거나 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이었다. 그래서인지 조금 전문적이고 이론적인 얘기도 나왔고 나로서는 도저히 방향을 잡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아마도 일하는 사람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주제일 것이다. 그중 하나가 실무에서 장애 예술의 개념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분야에 관련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이고, 나를 비롯한 참여자들이 영원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할 주제일 것이다. ‘장애인이 주체가 되어 결과물을 내놓은 것만이 장애 예술인가, 아니면 장애인이 참여한 예술은 다 장애 예술로 봐야 하는가’라는 한 주제를 놓고도 진행 과정 내내 명확한 답을 내지 못했다. 답이 나올 수 없는 주제이긴 했다. 나로서는 그런 고민에 대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은 자리였지만, 정말 서론만 길게 나열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서론은 맨 나중에 고쳐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니었나? 이 분야에 관심을 두는 사람에겐 여러 번 수정해야 하고 어쩌면 영원히 완성될 수 없을지도 모르는 게 서론 아닐까? 그래도 관심 있던 분야에 대해 여러 갈래의 길을 보여준 과정임은 틀림없다.
3.
과정을 마치고 보니 개인적으로는 좀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시작 전에는 장애인 기획자가 참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굳이 장애와 비장애를 나누는 건 아니지만 장애인 당사자만 이해할 수 있는 작품과 기획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역시 이론, 토론과 리서치 중심의 과정은 그들에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일까.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도 이야기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장애 예술인의 참여가 저조해서 무척 아쉬웠다. 아카데미 측에서 적절한 비율을 설정했으면 어땠을까? 구성원이 (무척 좋았지만) 대부분 일정 연령대의 비슷한 직종 종사자여서 더 다양한 답을 만들지 못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 과정은 인터뷰나 리서치를 주로 활용했다. 참여자의 필요에 맞는 인물을 연결하고 인터뷰를 하며 나름의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을 거쳤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면 꽤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었고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식이었다. 개별 리서치와 토론을 병행하는 과정이었기에 인터뷰를 진행하려면 어느 정도 상대방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했고, 나의 고민 역시 그에 맞아야 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계속 원론적인 고민만 하다가 구체적인 사항을 만들지 못했고 적절한 인터뷰이가 되어줄 사람에 대한 정보도 한정된 상황이라 원래의 취지와는 조금 다른 인터뷰를 진행해야 했다. 그에 대한 좀 더 실질적인 이야기까지 진행하기엔 8주가 너무 모자랐다. 게다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적극적으로 인터뷰를 나가기도 어려운 시기였던 점 등 여러모로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후속 과정이 있다면 참여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때는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 이런 과정이 우리나라에선 아주 귀하니깐 말이다. 두 주 정도 시간을 늘리면 더 좋겠다. 그만큼 실제적이고 풍성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말이다.
비록 아카데미에서 내건 제목처럼 길고 긴 서론만 생각하다 마친 과정이었지만, 나에게는 한 번 더 한국 사회에서의 장애 예술이 가진 위치와 통념, 전망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였다. 올해는 그 질문을 바탕으로 내 나름의 활동을 만들어보고 싶다. 이번에는 꼭 본론을 쓰리라.
이희연
편집자. 책을 만들고 가끔 글을 쓴다. 다양한 분야에 대한 관심을 글에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를 고민한다.
sarafina95@naver.com
2021년 2월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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