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웹진 이음

[좌담]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역할과 방향

이슈 단단한 토양을 만들기 위한 만남

  • 김현정, 안경모, 오로민경, 최선영, 신상미 
  • 등록일 2021-01-28
  • 조회수1018

이슈

[좌담]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역할과 방향

단단한 토양을 만들기 위한 만남

김현정, 안경모, 오로민경, 최선영, 신상미

개요

  • 일시2021년 1월 6일(수) 오후 7시

  • 장소온라인(zoom)

  • 참석자

    좌장.
    신상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예술지원부 과장
    패널.
    김현정 억압받는사람들의연극공간-해 대표, 창작 프로젝트 <담론의 연극화 ‘노멀 질문하기’> 기획‧운영
    안경모 연출가, 아카데미 기획 자문 및 <현대예술과 장애미학> 패널, ⓔ메이킹 참여
    오로민경 미디어아티스트, 매체확장 워크숍 <다양한 몸들의 소리산책 워크숍> 연구 및 기획
    최선영 창작그룹비기자 대표, 장애예술 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기획‧운영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안경모, 신상미, 오로민경, 김현정, 최선영

창작을 향한 첫발을 내디디며

신상미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서 장애 예술인의 창작역량 강화를 위해 2020년 처음 시도한 사업이다. 장애 예술의 전문 교육이나 협업, 교류지점, 새로운 매체 등에 대한 학습 요구가 많이 있었다. 모든 요구를 한꺼번에 반영할 수는 없지만, 토양을 만든다는 자세로 시작했다. 창작자 랩, 매개자 랩, ⓔ메이킹 등 3개 영역 총 20개 과정을 기획했고, 코로나19로 인해 매개자 양성과정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과 창작 프로젝트 <신체현상의 무용화-기억 속 시간의 춤>는 부득이 운영하지 못했다. 그 외 18개 과정은 많은 변수와 어려움 속에서도 약 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전체 80여 회 이상 진행했다. 이번 좌담은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함께 기획하고 교육을 운영하신 네 분을 모셨다. 아카데미에 참여하신 소감과 진행하며 겪었던 어려움, 발굴한 성과와 발전 가능한 지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안경모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전체 기획 과정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있었다. 첫째 기존 전공 교육체계의 예술교육에서 장애 예술인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질문, 자신의 활동에 대한 고민과 성장 등 목마름이 컸던 상황이다. 이러한 현장의 교육적 요구를 하나의 과정으로 설계하고자 했다. 둘째 장애 예술이 기존의 비장애 중심 예술에 복속하려고 하기보다는 현대 예술로서 비평가나 미학자 등 예술적 고민을 가진 분들이 장애 예술의 독자성, 또는 다양성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기회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어떤 답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하나의 질문 속에서 많은 의견이 서로 교차하고, 시너지를 만들고, 자극받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현재 장애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당사자성에서 출발하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포용적 가치에서 장애 담론 등 비장애 예술가나 학자의 매개 활동에 대한 요구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 영역도 한 축으로 설계되었고, 각각의 첫 출발을 하는 게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오로민경<다양한 몸들의 소리산책 워크숍>은 소리, 주로 사운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모였다. 소리라는 감각이 가진 의미를 확장하는 작업이 되기를 바라며 워크숍을 준비했다. 저희가 장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과 함께할 때 배울 것도 많았고 이 주제로 인해 워크숍 안에서 오히려 배제되는 느낌이 드는 참가자가 있을까 싶어 시작 전부터 두려움과 긴장이 있었다.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서 진동을 이용한 재료를 같이 만져보면서 피부로 느낌을 찾아갈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하며 워크숍을 준비하다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단시간에 다시 온라인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하고 소통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양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소리 워크숍이 모두에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 나누면서 각자의 상황을 공유하고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고 협력해가면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사운드 아트가 소리라는 성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장르다 보니 아웃사이더적인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 작가들이 각자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나 소리에 접근하는 태도를 공유하는 자체가 이미 비아카데미적이고 자유롭고 독창적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런 감정이 드는 순간이 몇 번씩 찾아왔었고 그것이 저한테 의미 있었다. 주류 장르나 아카데믹한 태도나 대중적인 말하기와 만들기 방식에서 살짝 비켜서 있는 사람들끼리 만났다는 느낌이 들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안도해 가며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게 됐던 것 같다. 소리로 참여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워크숍에 참여한 다이애나밴드 팀이 텍스트나 이미지로도 소리를 번역하면서 믹싱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마지막에는 소리 해설을 같이한 사운드 믹싱을 진행했다.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 함께 만들어서 소리를 전하는 방식이 풍성해지고, 들리지 않아도 이미지나 텍스트만으로도 리듬감이 전달되는 상황 등 아쉬운 대로 가능성을 꿈꾸거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현정 창작 프로젝트 〈담론의 연극화 ‘노멀 질문하기’〉는 총 11회 중 1회만 비대면으로 하고 나머지는 대면으로 진행하여 발표까지 했다. 16명이 신청했는데, 대면 프로그램이다 보니 결국 장애인 2명을 포함한 6명으로 진행했다. 장애인과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많지 않아 우려와 걱정이 있었지만 코로나19의 특수상황에서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혹은 무심하게 지나갔던 ‘노멀’이라는 것을 화제 삼으니 여러 지점이 걸렸고 시의적절하게 이야기가 잘 진행됐다는 생각이 든다. 참여한 분들이 예술가라는 공통분모가 크게 작용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이고 예술 장르가 섞였지만, 각각의 경계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의 일상 이야기를 한다는 부분에서 공통분모가 컸고 그래서 굉장히 쉽게, 혹은 깊게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었다. 저희가 쓰고 있는 방법론도 담론을 만들어낸다는 부분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저희는 얘기를 나누고 그것을 연극으로 이슈를 만들고 관객을 만나 같이 확장하는 작업을 하는데 전공 등을 벗어나 보편예술로 가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그때그때 이슈를 던지고 각자 고민하는 지점에서 그것을 나누고 몸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이었는데 이야기가 하고팠던 분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예술이 기술이나 지식이 아닌 일상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참여 예술가들은 최근 갑자기 유행처럼 늘어나는 배리어프리예술에 대해 각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비장애인 입장에서 잘못 알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었던 것을 서로 배웠다. 그리고 갑자기 장애 예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장애 예술에 대한 명확한 이해나 동의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장애 예술인이라는 이유로 장애 예술에 대한 공공연한 발언을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편 수년 동안 장애인으로서 예술 활동을 해오고 있고, 외국의 장애 예술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작업을 했음에도, 외국의 장애 예술작업만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 자괴감을 느꼈던 경험도 공유되었다. 주류나 외국 것은 노멀이 되고 우리는 비주류이자 비노멀이 되는 현실이랄까. 노멀이라는 주제로 매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동질감과 공감을 느끼게 됐다. 하고 싶고 공론화시키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11회의 수업과 발표 안에 다 담아낼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예술가들의 고민을 공감할 수 있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둔다. 한편, 장애인 참가자는 가시적인 ‘장애’ 자체가 중심으로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시적인 장애나 비장애의 문제보다는 우리사회의 노멀에서 벗어나는 사회적인 ‘장애’와 ‘비노멀’의 문제를 이슈로서 더 부각시키기를 원했다. 장애인만 있을 때와 비장애인과 같이 있을 때의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보편의 유대로 작업한다는 것이 힘이 될 수 있고 긍정적 작용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최선영 인포숍카페별꼴 유선 매니저와 〈장애예술 기획자 양성과정-서론이 길다〉를 운영했다. 홍보할 때도 실무 역량이나 직업군 개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점을 안내했다. 신청자가 예상보다 많아서 이틀간 1:1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관심 있는 사람만 참여하도록 했다. 저희가 기획자나 매개자의 역할과 태도에 관해 어느 정도 전제했던 것이 있었다. 뭔가를 생산해내고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력을 가진 사람만이 기획자인가. 계속 질문하는 사람, 질문할 수 있는 자기 동력과 자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장애 예술 현장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론이 길다는 의미는 장애와 장애 예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러한 이슈, 혹은 복잡한 어떤 현상이나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좀 더 깊게 깔려 있었다. 장애나 장애 예술을 저기 먼 곳에 있는 사회적 주제로 보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보다는 왜 조심스럽고 어려워하는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총 8회 비대면으로 진행했는데 거의 내내 난상 토론 및 끝장 토론을 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본론을 빨리 쓰기 위한 서론이 아니며, 계속 서론만 쓸 수도 있고 그것이 본론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어떤 참가자는 많이 공감하기도 했지만 어떤 참가자는 낯설고 불편해했다. 뭔가 더 어렵게 만든 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장애 예술 담론이나 정책이 확장되고 있어 반갑지만 동시에 깊이 있는 사례나 활동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논의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주 천천히 가는, 앞으로 더 못 나가게 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장애를 규정하는 사회와의 관계성, 기존 예술의 패러다임에서 보여주는 한계 지점과의 관점 등을 두루 살폈다. 참여자의 자율성과 적극성을 기대하며 궁금한 점이나 만나고 싶은 사람을 최대한 연결을 해드리고자 했으나 그러한 요청과 질문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 스스로 알게 되거나 마주하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롭거나 다층적인 질문이 나오지 못하고 장애 예술이 대체 뭔가라는 질문이 반복되기도 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좀 건조해지거나 혹은 각자의 답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어떤 질문을 가지고 기존 장애 예술의 개념으로부터 도망가려 하는지 생각해보자고 얘기했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대화 외에도 현장과 연동되면 좋겠다. 언어에 집중됐던 〈서론이 길다〉 과정이 앞으로는 다른 것들과도 섞일 수 있으면 좋겠다.

안경모 강의 시리즈 1부 〈장애학〉과 2부 〈장애, 예술, 인문학〉에서 사회적 장애의 영역으로 집중된 부분을 많이 포착해주셨고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패널로 참여한 3부 〈현대예술과 장애미학〉에서는 ‘장애 미학, 장애 예술이 가진 현대 예술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미학적, 예술학적인 고민을 확장 시켰다. 다만 사회적 장애를 다룬 강의들과 장애 예술이라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모색하는 강의들 사이의 브릿지 설계가 조금은 미숙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장애 미학, 장애 예술 담론이 확장되어 있지 않아 촘촘하게 설계할 인프라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메이킹 과정에 참여했다. 장애 예술의 구체적 실천 사례를 샘플링해보고 그것을 온라인 영역에서 가시화할 방법에 관한 질문과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콘택트라는 영역에서 장애 예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핸드스피크의 농인과 청인 간의 협업 작업에서 번역, 통역의 과정이 어떻게 설계되고 진행되는가? 특히 농문화 내에 밀착되어있는 농수어를 어떻게 청인들과 교류할 것인가? 이런 질문으로 메이킹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농어가 가진 언어 체계와 음성어가 가진 언어 체계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고 교환할 것인가 보다는 농인과 청인이 함께 예술작업을 했다는 사회적 의미 자체에 집중되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에 ⓔ메이킹을 과정을 통해 직접 〈브레이크:BREAK〉라는 작품을 쓰고 연출하게 되었는데, 소통을 위해 음성해설을 부가하고 수어에 캡션을 넣는 것만이 정말 배리어프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장애인 중심에서 비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를 하는 방법, 수어가 기본 언어이고 음성어가 옆에서 번역되는 역전을 설계할 수 없을까? 이런 고민에서 수어와 음성해설을 하나의 양식으로 구축해 작품 안으로 넣어보는 작업을 시도해봤다. 결과적으로 농인과 맹인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관객의 검증과 반응이 필요하다. ⓔ메이킹 과정에서 배리어프리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나름의 성과를 가질 수 있었다. 한계라면 제가 수어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수어가 가진 맥락을 충분히 무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점이었고,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극복될 수 있는 영역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 창작 활동과 작업 속에서 풀어가야 할 것이다.

신상미 <브레이크:BREAK>는 시각장애인 이동우 배우와 청각장애인 이소별 배우가 주연으로 참여했고, 수어를 쓰는 비장애 예술인과 음성해설가가 코러스 역할을 맡아 전체 30여 분의 극을 만들었다. 1월 27일에 공개할 예정이니 그때 보고 다양한 의견을 부탁드린다.

실험과 교류를 위한 열린 기획

신상미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가 만났다. 장애 예술가의 직접 참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19 등 아직은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아카데미라는 명칭 때문에 오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교육 강사가 어떤 정보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담보로 고유한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 부분에서 전문가와 참여자들도 다른 교육과정과 차이를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장애 예술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실험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서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가 앞으로 어떤 전망이나 과제, 방향성을 중심에 두어야 할지 의견을 부탁드린다.

최선영 올해는 장문원이 설계하고 기획해서 현장에 전달된 측면이 컸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참가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지를 찾아가면 좋겠다.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장문원이 가진 사회적인 역할이나 상징성 때문에 장애 예술과 관련해 동시대 담론이나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호를 받은 것 같다. 그것보다는 각자가 동시대의 장애 예술을 해석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참여자들이 조금 더 주도성을 가져가는 열린 기획이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장문원에서 뭔가 보여주거나 충족시켜줘야 하는 시기도 있어야 했겠지만, 앞으로는 장문원과 참여자가 함께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참여자들이 점점 장애 예술에 관심이 커지는 것만이 성과는 아닌 것 같다.

안경모 당사자가 가진 예술교육에 대한 갈증, 또는 장애와 비장애 매개와 관련된 위계감이 있는 것 같다. 장애 당사자가 느끼는 기존 전공 교육체계에 대한 위계감, 즉 때로는 그 위계에 오르고 싶은 강박, 현재의 장애 예술과 미학의 실천 상황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는 전제가 깔린 것 같다. 아카데미가 누가 누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방식의 접근이 아니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음에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어떤 위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움 자체를 어떻게 반교육적이고 비교육적인 언러닝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가 핵심인 것 같다. 그냥 만나서 작업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앞서 최선영 선생님이 의식적인 교환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런 기회가 우리 모두에게 배움의 과정이 될 것이고 그렇게 설계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사회적 토대는 안 바뀌는데 장애 예술, 장애 미학, 장애 예술교육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를 놓고 우리가 어떤 책무감과 악전고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토대 자체를 흔들어 버리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흘러갈 것인데 둑을 막아 놓고 그 둑을 깨야 한다는 말만 계속하는 건 아닐까. 궁극적으로 장문원의 역할, 또는 아카데미와 배움의 영역 자체가 확장되고 자유롭기 위해 가로막고 있는 어떤 조직적인 틀을 허무는 작업에 집중할 수는 없을까 질문이 든다.

오로민경 이번 워크숍을 하면서 예술이 무엇인지, 그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참여했던 워크숍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저는 권병준 선생님 워크숍에 참여한 후 사운드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함께했던 동료들과 이번 워크숍을 이끌게 된 것이 특별했다. 각자 기술적으로 잘하는 부분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물어보고 격려해 줄 수 있는 동료를 만났던 자리였다. 저에게는 동료들을 만났던 워크숍이 중요했고, 그런 워크숍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 워크숍 시작 전에 청각장애 예술가 동료와 문자통역을 하는 에이유디(AUD)사회적협동조합 후원의 밤에 갔었다. 청각장애 중에도 인공와우를 사용하는지, 수어를 사용하는지 등 다양했다. 함께 간 동료도 그 만남이 너무 신선했고 같은 청각장애인이지만 여러 사람이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져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아카데미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비장애인에게도 장애 문화와 장애 예술을 알려주는 것도 있으면 좋겠다. 비장애인이 소수자가 되는 경험도 중요하다. 이번 교육프로그램에서는 대부분 비장애인 창작자가 아카데미를 주도했다. 비중을 강박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지만, 아카데미 구성 초반 단계에서 장애인 창작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현정 장애인 당사자 의견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 장애인보다는 비장애인을 마주하는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차별적 혹은 부자연스러운 태도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장애를 신체적인 특징이나 다름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사회에, 예술에 더 많이 드러나고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가 확장되고 공론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 예술의 담론과 정의가 중요하겠지만,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답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정답에 근사하게 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과 책무, 또는 자격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이미 하고 있고 내 안에 있는 게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이면 좋겠다.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공유할 수 있는 장에 목말라 하는 예술가가 많은 것 같다. 서로 다른 개념과 층위, 방향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맞다 틀리다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장애 예술이든 비장애 예술이든 예술가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이다. 그 안에서 나누기보다는 예술 보편으로 확대되어 장애 예술이 낯설고 특수하거나 수혜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론으로 나왔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일반인에게도 같이 공감되는 문제와 고민으로 갈 수 있도록 그들만의 예술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우리로 확장해가는 방향이면 좋겠다.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아는 것을 키워가는 학습공동체

신상미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끝나고 나서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뭔가 실험하든 혹은 그대로 보여주든, 장애와 비장애 예술가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정을 기획하고 방향성 측면에서 더 보완하도록 하겠다. 한편 공공기관의 인력양성 사업이나 교육 사업은 단편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관의 지원사업과 연계되거나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과 아카데미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대상이나 영역을 좀 더 제한하거나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든다.

최선영 그동안 비기자에서 장애인과 진행한 창작과 교육을 기반으로 5~6년 전에 개발한 워크숍을 〈서론이 길다〉에서 활용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질문을 쪼개고 다층적으로 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지를 실험해 보는 워크숍이다. 아주 간단한 그림을 가지고 하거나 수수께끼처럼 소프트한 방식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과정으로 설계되었다. 미궁을 헤매던 많은 대화와 기록이 있는데 만약 이런 기록이 아카데미 전반에서 이루어졌다면 지금쯤 엄청난 담론을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걸 읽어내는 다층적인 시선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아카데미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면 좋겠다. 예전에 김월식 선생님과 경기문화재단 워크숍을 했을 때 저를 포함한 세 명이 관찰과 기록 역할을 했다. 각자의 관점이 교차하거나 충돌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었고 진행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거나 그다음 워크숍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이런 설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워크숍을 할수록 저에게는 장애가 아니라 예술이 문제로 보인다. 예술에 대한 해석은 경험과 학습, 혹은 관념이나 이상에 의해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에 다시 장애를 끄집어 와서 자기가 생각하는 예술의 상과 붙여 말하는 순간 이상한 모양이 되는 거다. 이런 대화가 재미있고 충분히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장문원에서 했던 아카데미는 얼마나 다양한 예술의 상이나 뉘앙스를 보여주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소박하고 만만하고 웃기고 이상한 예술도 아카데미에 들어오면 좋지 않을까?

안경모 지금까지 아카데미의 설계는 교육자 중심, 담론을 이끄는 사람을 중심이었다. 그로 인해서 어떤 교육 내용을 학습자가 연계하는 방식이었다면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학습자 중심에서 자기 주도성을 가질 수 있는 상태를 장문원이 지원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문가로부터 배우고 익혀 다시 발현하게 만드는 전통적인 학습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폭력적인지, 장애와 관련된 일에 집중하면서 특히 더 많이 느낀다. 예를 들어 학습자 스스로 자기 주도적 학습을 기획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기존 대학교육기관과 반대되는 대안 교육의 설계 과정에서 학습 체계를 자극하는 것인데, 이런 정반대의 시선에서 출발해 본다면 근사하게 포장되어야 할 것 같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서 벗어나 모르는 것과 알고 싶은 것에 솔직해지지 않을까?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에서부터 딜레마는 계속 있을 테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최선영 7~8년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학습공동체 지원사업을 통해 발달장애인 부모님과 함께 인권단체 사람도 만나보고 인권교육도 받았는데 그때 했던 공부가 지금의 자산이다. 열린 지원 방식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예술가에게도 언러닝, 혹은 자기 주도적이거나 질문을 찾아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기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가끔 서로 만나서 난항을 겪고 있어도 괜찮다는 신호를 받을 수 있는 대화모임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거나 흐름을 읽어내는 관점도 필요하다.

김현정 1년 차에 모든 것을 판단하기보다는 이제 막 싹이 트려는 것을 좀더 시간을 갖고 지지하고 관찰하면서 판단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자발적 학습공동체가 이상적이지만 어떤 이유와 목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가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통분모를 가진 분들이 모이더라도 함께 나아갈 동기와 동력으로서의 목적과 방향성이 없으면 위태할 것 같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발견하며 그것을 채워가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강점으로 키워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안다는 착각을 깨는 것은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것만 파고들다 자괴감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고 익숙한 부분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게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아카데미의 한 축으로서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상미 말씀해주신 여러 가지를 올해 사업 방향 등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하겠다. 아카데미에서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꼭 해야 할 과정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주시고 질문해주시면 좋겠다. 이번 좌담이 아카데미에 관한 논의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고,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어가겠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김현정

브라질 연극인 보알(A. Boal)의 연극방법론 ‘억압받는사람들의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을 활용하여 개인과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적 이슈_억압’을 풀어내는(解) 작업과 연구를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오고 있다. ‘토론연극(forum theatre)’은 그 대표적 형식으로 ‘인권’을 기본 화두로 기후, 환경, 외국인주민, 평화통일, 폭력, 양성평등, 장애, 한가족엄마, 진로 등을 이슈로 그 담론을 사회 여러 층위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kkokzzii@hanmail.net https://blog.naver.com/theaterhae

안경모

연극을 중심으로 뮤지컬, 무용, 가무악 등 다양한 공연을 구성하고 연출한다. 대학에서 연극제작과 연극교육방법을 지도했고, 현장에서 작품활동과 예술교육을 컨설팅한다. 주요작품으로 연극 〈SWEAT스웨트〉〈해무(海霧)〉〈진실x거짓〉〈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그리고 또 하루〉〈가극 금강〉(낭독), 뮤지컬 〈찰리찰리〉, 가무악 〈안숙선과 떠나는 민요여행〉, 무용극 〈행복동고물상〉, 무용 〈안녕〉〈TWO〉〈산행〉 등이 있다. 2007년 한국연극베스트7, 2012년 서울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다.
thtrman@hanmail.net

오로민경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소리의 풍경을 마주하고 들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의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 등을 관찰하며 ‘더 작은 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질문해 보고 있다.
baahram@gmail.com

최선영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현재는 창작그룹 비기자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의 비언어적 표현언어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를 통해 예술과 표현에 대한 확장된 관점을 연구하고 있다.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2019) 등에 참여했다.
voslss@hanmail.net

정리.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2021년 2월 (18호)

상세내용

이슈

[좌담]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의 역할과 방향

단단한 토양을 만들기 위한 만남

김현정, 안경모, 오로민경, 최선영, 신상미

개요

  • 일시2021년 1월 6일(수) 오후 7시

  • 장소온라인(zoom)

  • 참석자

    좌장.
    신상미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예술지원부 과장
    패널.
    김현정 억압받는사람들의연극공간-해 대표, 창작 프로젝트 <담론의 연극화 ‘노멀 질문하기’> 기획‧운영
    안경모 연출가, 아카데미 기획 자문 및 <현대예술과 장애미학> 패널, ⓔ메이킹 참여
    오로민경 미디어아티스트, 매체확장 워크숍 <다양한 몸들의 소리산책 워크숍> 연구 및 기획
    최선영 창작그룹비기자 대표, 장애예술 기획자 양성과정 <서론이 길다> 기획‧운영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안경모, 신상미, 오로민경, 김현정, 최선영

창작을 향한 첫발을 내디디며

신상미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서 장애 예술인의 창작역량 강화를 위해 2020년 처음 시도한 사업이다. 장애 예술의 전문 교육이나 협업, 교류지점, 새로운 매체 등에 대한 학습 요구가 많이 있었다. 모든 요구를 한꺼번에 반영할 수는 없지만, 토양을 만든다는 자세로 시작했다. 창작자 랩, 매개자 랩, ⓔ메이킹 등 3개 영역 총 20개 과정을 기획했고, 코로나19로 인해 매개자 양성과정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해설>과 창작 프로젝트 <신체현상의 무용화-기억 속 시간의 춤>는 부득이 운영하지 못했다. 그 외 18개 과정은 많은 변수와 어려움 속에서도 약 5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전체 80여 회 이상 진행했다. 이번 좌담은 아카데미 교육과정을 함께 기획하고 교육을 운영하신 네 분을 모셨다. 아카데미에 참여하신 소감과 진행하며 겪었던 어려움, 발굴한 성과와 발전 가능한 지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안경모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 전체 기획 과정에 참여하면서 두 가지 문제의식이 있었다. 첫째 기존 전공 교육체계의 예술교육에서 장애 예술인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예술에 대한 질문, 자신의 활동에 대한 고민과 성장 등 목마름이 컸던 상황이다. 이러한 현장의 교육적 요구를 하나의 과정으로 설계하고자 했다. 둘째 장애 예술이 기존의 비장애 중심 예술에 복속하려고 하기보다는 현대 예술로서 비평가나 미학자 등 예술적 고민을 가진 분들이 장애 예술의 독자성, 또는 다양성의 가치를 발견해 주는 기회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것이 어떤 답을 가지고 있다기보다는 하나의 질문 속에서 많은 의견이 서로 교차하고, 시너지를 만들고, 자극받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현재 장애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당사자성에서 출발하는 것도 있겠지만,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포용적 가치에서 장애 담론 등 비장애 예술가나 학자의 매개 활동에 대한 요구도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 영역도 한 축으로 설계되었고, 각각의 첫 출발을 하는 게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라 생각한다.

오로민경<다양한 몸들의 소리산책 워크숍>은 소리, 주로 사운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모였다. 소리라는 감각이 가진 의미를 확장하는 작업이 되기를 바라며 워크숍을 준비했다. 저희가 장애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청각장애인과 함께할 때 배울 것도 많았고 이 주제로 인해 워크숍 안에서 오히려 배제되는 느낌이 드는 참가자가 있을까 싶어 시작 전부터 두려움과 긴장이 있었다.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서 진동을 이용한 재료를 같이 만져보면서 피부로 느낌을 찾아갈 방법이 있을 거로 생각하며 워크숍을 준비하다가 코로나19 상황에서 단시간에 다시 온라인 프로그램을 구축해야 했다. 그 상황에서 순발력 있게 대처하고 소통해 나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양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모인 소리 워크숍이 모두에게 처음이었기 때문에 계속 이야기 나누면서 각자의 상황을 공유하고 서로 가르쳐 주고 배우고 협력해가면서 작업을 마무리했다. 사운드 아트가 소리라는 성질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모여 만들어진 장르다 보니 아웃사이더적인 부분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참여 작가들이 각자 음악을 만드는 방식이나 소리에 접근하는 태도를 공유하는 자체가 이미 비아카데미적이고 자유롭고 독창적이다. 이와 같은 흐름을 만날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그런 감정이 드는 순간이 몇 번씩 찾아왔었고 그것이 저한테 의미 있었다. 주류 장르나 아카데믹한 태도나 대중적인 말하기와 만들기 방식에서 살짝 비켜서 있는 사람들끼리 만났다는 느낌이 들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안도해 가며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게 됐던 것 같다. 소리로 참여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워크숍에 참여한 다이애나밴드 팀이 텍스트나 이미지로도 소리를 번역하면서 믹싱할 수 있는 웹페이지를 만들어 마지막에는 소리 해설을 같이한 사운드 믹싱을 진행했다. 충분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다 함께 만들어서 소리를 전하는 방식이 풍성해지고, 들리지 않아도 이미지나 텍스트만으로도 리듬감이 전달되는 상황 등 아쉬운 대로 가능성을 꿈꾸거나 지혜를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김현정 창작 프로젝트 〈담론의 연극화 ‘노멀 질문하기’〉는 총 11회 중 1회만 비대면으로 하고 나머지는 대면으로 진행하여 발표까지 했다. 16명이 신청했는데, 대면 프로그램이다 보니 결국 장애인 2명을 포함한 6명으로 진행했다. 장애인과 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많지 않아 우려와 걱정이 있었지만 코로나19의 특수상황에서 우리가 너무 당연하게, 혹은 무심하게 지나갔던 ‘노멀’이라는 것을 화제 삼으니 여러 지점이 걸렸고 시의적절하게 이야기가 잘 진행됐다는 생각이 든다. 참여한 분들이 예술가라는 공통분모가 크게 작용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섞이고 예술 장르가 섞였지만, 각각의 경계가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의 일상 이야기를 한다는 부분에서 공통분모가 컸고 그래서 굉장히 쉽게, 혹은 깊게 이야기가 들어갈 수 있었다. 저희가 쓰고 있는 방법론도 담론을 만들어낸다는 부분에 잘 맞았던 것 같다. 저희는 얘기를 나누고 그것을 연극으로 이슈를 만들고 관객을 만나 같이 확장하는 작업을 하는데 전공 등을 벗어나 보편예술로 가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그때그때 이슈를 던지고 각자 고민하는 지점에서 그것을 나누고 몸과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작업이었는데 이야기가 하고팠던 분들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었다. 예술이 기술이나 지식이 아닌 일상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참여 예술가들은 최근 갑자기 유행처럼 늘어나는 배리어프리예술에 대해 각자의 직간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비장애인 입장에서 잘못 알고 있었거나 모르고 있었던 것을 서로 배웠다. 그리고 갑자기 장애 예술이 주목을 받으면서 장애 예술에 대한 명확한 이해나 동의가 아직 없는 상황에서 장애 예술인이라는 이유로 장애 예술에 대한 공공연한 발언을 강요받는 느낌이 든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편 수년 동안 장애인으로서 예술 활동을 해오고 있고, 외국의 장애 예술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작업을 했음에도, 외국의 장애 예술작업만 상대적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 같아 자괴감을 느꼈던 경험도 공유되었다. 주류나 외국 것은 노멀이 되고 우리는 비주류이자 비노멀이 되는 현실이랄까. 노멀이라는 주제로 매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동질감과 공감을 느끼게 됐다. 하고 싶고 공론화시키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는데 11회의 수업과 발표 안에 다 담아낼 수가 없어 아쉬웠지만, 예술가들의 고민을 공감할 수 있는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둔다. 한편, 장애인 참가자는 가시적인 ‘장애’ 자체가 중심으로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가시적인 장애나 비장애의 문제보다는 우리사회의 노멀에서 벗어나는 사회적인 ‘장애’와 ‘비노멀’의 문제를 이슈로서 더 부각시키기를 원했다. 장애인만 있을 때와 비장애인과 같이 있을 때의 장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보편의 유대로 작업한다는 것이 힘이 될 수 있고 긍정적 작용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을 발견하는 기회였다.

최선영 인포숍카페별꼴 유선 매니저와 〈장애예술 기획자 양성과정-서론이 길다〉를 운영했다. 홍보할 때도 실무 역량이나 직업군 개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점을 안내했다. 신청자가 예상보다 많아서 이틀간 1:1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관심 있는 사람만 참여하도록 했다. 저희가 기획자나 매개자의 역할과 태도에 관해 어느 정도 전제했던 것이 있었다. 뭔가를 생산해내고 사업이나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력을 가진 사람만이 기획자인가. 계속 질문하는 사람, 질문할 수 있는 자기 동력과 자기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이 장기적으로 장애 예술 현장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론이 길다는 의미는 장애와 장애 예술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이러한 이슈, 혹은 복잡한 어떤 현상이나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가 좀 더 깊게 깔려 있었다. 장애나 장애 예술을 저기 먼 곳에 있는 사회적 주제로 보고 조심스럽게 접근하기보다는 왜 조심스럽고 어려워하는지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이었다. 총 8회 비대면으로 진행했는데 거의 내내 난상 토론 및 끝장 토론을 했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본론을 빨리 쓰기 위한 서론이 아니며, 계속 서론만 쓸 수도 있고 그것이 본론이 될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어떤 참가자는 많이 공감하기도 했지만 어떤 참가자는 낯설고 불편해했다. 뭔가 더 어렵게 만든 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 장애 예술 담론이나 정책이 확장되고 있어 반갑지만 동시에 깊이 있는 사례나 활동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논의 과정이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주 천천히 가는, 앞으로 더 못 나가게 하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장애를 규정하는 사회와의 관계성, 기존 예술의 패러다임에서 보여주는 한계 지점과의 관점 등을 두루 살폈다. 참여자의 자율성과 적극성을 기대하며 궁금한 점이나 만나고 싶은 사람을 최대한 연결을 해드리고자 했으나 그러한 요청과 질문이 많지 않아 아쉬웠다. 내가 무엇이 궁금한지 스스로 알게 되거나 마주하는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새롭거나 다층적인 질문이 나오지 못하고 장애 예술이 대체 뭔가라는 질문이 반복되기도 했다. 이 질문에 대해 우리가 좀 건조해지거나 혹은 각자의 답을 찾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나는 어떤 질문을 가지고 기존 장애 예술의 개념으로부터 도망가려 하는지 생각해보자고 얘기했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대화 외에도 현장과 연동되면 좋겠다. 언어에 집중됐던 〈서론이 길다〉 과정이 앞으로는 다른 것들과도 섞일 수 있으면 좋겠다.

안경모 강의 시리즈 1부 〈장애학〉과 2부 〈장애, 예술, 인문학〉에서 사회적 장애의 영역으로 집중된 부분을 많이 포착해주셨고 대단히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제가 패널로 참여한 3부 〈현대예술과 장애미학〉에서는 ‘장애 미학, 장애 예술이 가진 현대 예술적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놓고 미학적, 예술학적인 고민을 확장 시켰다. 다만 사회적 장애를 다룬 강의들과 장애 예술이라는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모색하는 강의들 사이의 브릿지 설계가 조금은 미숙하지 않았나 반성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장애 미학, 장애 예술 담론이 확장되어 있지 않아 촘촘하게 설계할 인프라가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그리고 ⓔ메이킹 과정에 참여했다. 장애 예술의 구체적 실천 사례를 샘플링해보고 그것을 온라인 영역에서 가시화할 방법에 관한 질문과 코로나 시대가 만들어내는 디지털 콘택트라는 영역에서 장애 예술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핸드스피크의 농인과 청인 간의 협업 작업에서 번역, 통역의 과정이 어떻게 설계되고 진행되는가? 특히 농문화 내에 밀착되어있는 농수어를 어떻게 청인들과 교류할 것인가? 이런 질문으로 메이킹을 했는데 결과적으로 농어가 가진 언어 체계와 음성어가 가진 언어 체계의 접점을 어떻게 만들고 교환할 것인가 보다는 농인과 청인이 함께 예술작업을 했다는 사회적 의미 자체에 집중되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번에 ⓔ메이킹을 과정을 통해 직접 〈브레이크:BREAK〉라는 작품을 쓰고 연출하게 되었는데, 소통을 위해 음성해설을 부가하고 수어에 캡션을 넣는 것만이 정말 배리어프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장애인 중심에서 비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를 하는 방법, 수어가 기본 언어이고 음성어가 옆에서 번역되는 역전을 설계할 수 없을까? 이런 고민에서 수어와 음성해설을 하나의 양식으로 구축해 작품 안으로 넣어보는 작업을 시도해봤다. 결과적으로 농인과 맹인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는 관객의 검증과 반응이 필요하다. ⓔ메이킹 과정에서 배리어프리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전제에서부터 이루어진다는 나름의 성과를 가질 수 있었다. 한계라면 제가 수어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수어가 가진 맥락을 충분히 무대 언어로 표현하기 힘들다는 점이었고, 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극복될 수 있는 영역인지에 대한 질문은 앞으로 창작 활동과 작업 속에서 풀어가야 할 것이다.

신상미 <브레이크:BREAK>는 시각장애인 이동우 배우와 청각장애인 이소별 배우가 주연으로 참여했고, 수어를 쓰는 비장애 예술인과 음성해설가가 코러스 역할을 맡아 전체 30여 분의 극을 만들었다. 1월 27일에 공개할 예정이니 그때 보고 다양한 의견을 부탁드린다.

실험과 교류를 위한 열린 기획

신상미 아카데미에서 다양한 작업을 하는 장애 예술가와 비장애 예술가가 만났다. 장애 예술가의 직접 참여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코로나19 등 아직은 적극적인 참여가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아카데미라는 명칭 때문에 오해가 있을지 모르지만, 교육 강사가 어떤 정보와 지식을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다양성을 담보로 고유한 목소리를 최대한 반영해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이다. 그런 부분에서 전문가와 참여자들도 다른 교육과정과 차이를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장애 예술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실험하고 교류할 수 있는 장으로서 이음 예술창작 아카데미가 앞으로 어떤 전망이나 과제, 방향성을 중심에 두어야 할지 의견을 부탁드린다.

최선영 올해는 장문원이 설계하고 기획해서 현장에 전달된 측면이 컸다고 생각한다. 장기적으로는 참가자들이 무엇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은지를 찾아가면 좋겠다. 이번 아카데미에서는 장문원이 가진 사회적인 역할이나 상징성 때문에 장애 예술과 관련해 동시대 담론이나 이슈에 집중해야 한다는 신호를 받은 것 같다. 그것보다는 각자가 동시대의 장애 예술을 해석할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할 것이다. 참여자들이 조금 더 주도성을 가져가는 열린 기획이라면 더 재미있을 것 같다.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스스로 생각해 보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 장문원에서 뭔가 보여주거나 충족시켜줘야 하는 시기도 있어야 했겠지만, 앞으로는 장문원과 참여자가 함께 찾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참여자들이 점점 장애 예술에 관심이 커지는 것만이 성과는 아닌 것 같다.

안경모 당사자가 가진 예술교육에 대한 갈증, 또는 장애와 비장애 매개와 관련된 위계감이 있는 것 같다. 장애 당사자가 느끼는 기존 전공 교육체계에 대한 위계감, 즉 때로는 그 위계에 오르고 싶은 강박, 현재의 장애 예술과 미학의 실천 상황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는 전제가 깔린 것 같다. 아카데미가 누가 누구에게 뭔가를 가르쳐 주는 방식의 접근이 아니어야 한다는 대전제가 있음에도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어떤 위계 속에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배움 자체를 어떻게 반교육적이고 비교육적인 언러닝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가 핵심인 것 같다. 그냥 만나서 작업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앞서 최선영 선생님이 의식적인 교환을 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런 기회가 우리 모두에게 배움의 과정이 될 것이고 그렇게 설계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사회적 토대는 안 바뀌는데 장애 예술, 장애 미학, 장애 예술교육이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를 놓고 우리가 어떤 책무감과 악전고투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토대 자체를 흔들어 버리면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흘러갈 것인데 둑을 막아 놓고 그 둑을 깨야 한다는 말만 계속하는 건 아닐까. 궁극적으로 장문원의 역할, 또는 아카데미와 배움의 영역 자체가 확장되고 자유롭기 위해 가로막고 있는 어떤 조직적인 틀을 허무는 작업에 집중할 수는 없을까 질문이 든다.

오로민경 이번 워크숍을 하면서 예술이 무엇인지, 그동안 작가로 활동하며 참여했던 워크숍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계속 돌아보게 되었다. 저는 권병준 선생님 워크숍에 참여한 후 사운드 작업을 시작했다. 그때 함께했던 동료들과 이번 워크숍을 이끌게 된 것이 특별했다. 각자 기술적으로 잘하는 부분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서로 부족한 부분을 물어보고 격려해 줄 수 있는 동료를 만났던 자리였다. 저에게는 동료들을 만났던 워크숍이 중요했고, 그런 워크숍이 많았으면 좋겠다. 이번 워크숍 시작 전에 청각장애 예술가 동료와 문자통역을 하는 에이유디(AUD)사회적협동조합 후원의 밤에 갔었다. 청각장애 중에도 인공와우를 사용하는지, 수어를 사용하는지 등 다양했다. 함께 간 동료도 그 만남이 너무 신선했고 같은 청각장애인이지만 여러 사람이 다양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져서 도움이 많이 됐다고 했다. 아카데미에서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많았지만, 비장애인에게도 장애 문화와 장애 예술을 알려주는 것도 있으면 좋겠다. 비장애인이 소수자가 되는 경험도 중요하다. 이번 교육프로그램에서는 대부분 비장애인 창작자가 아카데미를 주도했다. 비중을 강박적으로 맞출 필요는 없지만, 아카데미 구성 초반 단계에서 장애인 창작자들과 이야기를 나눈다면 재미있는 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현정 장애인 당사자 의견에 의하면, 일상생활에서 장애인보다는 비장애인을 마주하는 경험이 압도적으로 많은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경험 부족으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차별적 혹은 부자연스러운 태도가 나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장애를 신체적인 특징이나 다름으로 인정할 수 있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이 사회에, 예술에 더 많이 드러나고 장애인 당사자의 이야기가 확장되고 공론화되는 것이 필요하다. 장애 예술의 담론과 정의가 중요하겠지만,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답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정답에 근사하게 가야 한다는 것이 부담과 책무, 또는 자격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아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내가 이미 하고 있고 내 안에 있는 게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는 과정이면 좋겠다. 예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사유를 공유할 수 있는 장에 목말라 하는 예술가가 많은 것 같다. 서로 다른 개념과 층위, 방향을 가지고 있는데 무엇이 맞다 틀리다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장애 예술이든 비장애 예술이든 예술가는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이다. 그 안에서 나누기보다는 예술 보편으로 확대되어 장애 예술이 낯설고 특수하거나 수혜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일상으로 스며들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담론으로 나왔던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일반인에게도 같이 공감되는 문제와 고민으로 갈 수 있도록 그들만의 예술로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우리로 확장해가는 방향이면 좋겠다.

모르는 것을 발견하고 아는 것을 키워가는 학습공동체

신상미 사업을 기획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끝나고 나서야 보이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뭔가 실험하든 혹은 그대로 보여주든, 장애와 비장애 예술가가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과정을 기획하고 방향성 측면에서 더 보완하도록 하겠다. 한편 공공기관의 인력양성 사업이나 교육 사업은 단편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기관의 지원사업과 연계되거나 시너지를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장애인 문화예술 지원사업과 아카데미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 대상이나 영역을 좀 더 제한하거나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고민도 든다.

최선영 그동안 비기자에서 장애인과 진행한 창작과 교육을 기반으로 5~6년 전에 개발한 워크숍을 〈서론이 길다〉에서 활용했다. 이것은 사람들이 질문을 쪼개고 다층적으로 하는 것에 얼마나 익숙하지 않은지를 실험해 보는 워크숍이다. 아주 간단한 그림을 가지고 하거나 수수께끼처럼 소프트한 방식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하는 과정으로 설계되었다. 미궁을 헤매던 많은 대화와 기록이 있는데 만약 이런 기록이 아카데미 전반에서 이루어졌다면 지금쯤 엄청난 담론을 형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걸 읽어내는 다층적인 시선도 함께 갈 수 있도록 장기적으로 아카데미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하면 좋겠다. 예전에 김월식 선생님과 경기문화재단 워크숍을 했을 때 저를 포함한 세 명이 관찰과 기록 역할을 했다. 각자의 관점이 교차하거나 충돌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었고 진행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거나 그다음 워크숍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 이런 설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워크숍을 할수록 저에게는 장애가 아니라 예술이 문제로 보인다. 예술에 대한 해석은 경험과 학습, 혹은 관념이나 이상에 의해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에 다시 장애를 끄집어 와서 자기가 생각하는 예술의 상과 붙여 말하는 순간 이상한 모양이 되는 거다. 이런 대화가 재미있고 충분히 의미 있다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장문원에서 했던 아카데미는 얼마나 다양한 예술의 상이나 뉘앙스를 보여주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소박하고 만만하고 웃기고 이상한 예술도 아카데미에 들어오면 좋지 않을까?

안경모 지금까지 아카데미의 설계는 교육자 중심, 담론을 이끄는 사람을 중심이었다. 그로 인해서 어떤 교육 내용을 학습자가 연계하는 방식이었다면 궁극적으로 필요한 것은 학습자 중심에서 자기 주도성을 가질 수 있는 상태를 장문원이 지원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전문가로부터 배우고 익혀 다시 발현하게 만드는 전통적인 학습이 얼마나 제한적이고 폭력적인지, 장애와 관련된 일에 집중하면서 특히 더 많이 느낀다. 예를 들어 학습자 스스로 자기 주도적 학습을 기획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어떨까. 이것은 기존 대학교육기관과 반대되는 대안 교육의 설계 과정에서 학습 체계를 자극하는 것인데, 이런 정반대의 시선에서 출발해 본다면 근사하게 포장되어야 할 것 같고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압박에서 벗어나 모르는 것과 알고 싶은 것에 솔직해지지 않을까? 어떻게 선정할 것인가에서부터 딜레마는 계속 있을 테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최선영 7~8년 전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학습공동체 지원사업을 통해 발달장애인 부모님과 함께 인권단체 사람도 만나보고 인권교육도 받았는데 그때 했던 공부가 지금의 자산이다. 열린 지원 방식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예술가에게도 언러닝, 혹은 자기 주도적이거나 질문을 찾아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자기 사유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마련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다만 가끔 서로 만나서 난항을 겪고 있어도 괜찮다는 신호를 받을 수 있는 대화모임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하거나 흐름을 읽어내는 관점도 필요하다.

김현정 1년 차에 모든 것을 판단하기보다는 이제 막 싹이 트려는 것을 좀더 시간을 갖고 지지하고 관찰하면서 판단해보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자발적 학습공동체가 이상적이지만 어떤 이유와 목표, 목적과 방향성을 가지고 가는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공통분모를 가진 분들이 모이더라도 함께 나아갈 동기와 동력으로서의 목적과 방향성이 없으면 위태할 것 같다. 그리고 모르는 것을 발견하며 그것을 채워가는 것도 큰 의미가 있지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새롭게 발견하고 강점으로 키워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다. 안다는 착각을 깨는 것은 성장의 기회가 될 수도 있겠지만, 모르는 것만 파고들다 자괴감의 구렁텅이에 빠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고 익숙한 부분을 더욱 키워나갈 수 있게 방향을 잡아주는 것도 아카데미의 한 축으로서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상미 말씀해주신 여러 가지를 올해 사업 방향 등 다양한 각도에서 고민하겠다. 아카데미에서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꼭 해야 할 과정에 대해 계속 이야기해주시고 질문해주시면 좋겠다. 이번 좌담이 아카데미에 관한 논의를 확장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고,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며 이어가겠다. 어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함께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

김현정

브라질 연극인 보알(A. Boal)의 연극방법론 ‘억압받는사람들의연극(Theatre of the Oppressed)’을 활용하여 개인과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적 이슈_억압’을 풀어내는(解) 작업과 연구를 다양한 형태로 지속해오고 있다. ‘토론연극(forum theatre)’은 그 대표적 형식으로 ‘인권’을 기본 화두로 기후, 환경, 외국인주민, 평화통일, 폭력, 양성평등, 장애, 한가족엄마, 진로 등을 이슈로 그 담론을 사회 여러 층위로 확장해 나가고 있다.
kkokzzii@hanmail.net https://blog.naver.com/theaterhae

안경모

연극을 중심으로 뮤지컬, 무용, 가무악 등 다양한 공연을 구성하고 연출한다. 대학에서 연극제작과 연극교육방법을 지도했고, 현장에서 작품활동과 예술교육을 컨설팅한다. 주요작품으로 연극 〈SWEAT스웨트〉〈해무(海霧)〉〈진실x거짓〉〈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그리고 또 하루〉〈가극 금강〉(낭독), 뮤지컬 〈찰리찰리〉, 가무악 〈안숙선과 떠나는 민요여행〉, 무용극 〈행복동고물상〉, 무용 〈안녕〉〈TWO〉〈산행〉 등이 있다. 2007년 한국연극베스트7, 2012년 서울연극제 대상을 수상했다.
thtrman@hanmail.net

오로민경

들리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소리의 풍경을 마주하고 들어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개인의 기억, 흔들리는 잎의 미묘한 떨림 등을 관찰하며 ‘더 작은 힘’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질문해 보고 있다.
baahram@gmail.com

최선영

학부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현재는 창작그룹 비기자에서 활동하고 있다. 장애인의 비언어적 표현언어에 관심을 가져왔으며 이를 통해 예술과 표현에 대한 확장된 관점을 연구하고 있다. 장애인 문화예술 교육 방향성 및 교보재 연구 「기대하지 않고 표현으로 만나기」(2019) 등에 참여했다.
voslss@hanmail.net

정리.프로젝트 궁리 최엄윤 PD omyunchoi@hanmail.net

2021년 2월 (18호)

댓글 남기기

제 2021-524호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WA-WEB 접근성 (사)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 | 1.업체명: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2.주소: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고 112 3.웹사이트:http://www.ieum.or.kr 4.유효기간:2021.05.03~2022.05.02 5.인증범위:이음 온라인 홈페이지 | 「지능정보화 기본법」 제47조제1항 및 같은 법 시행규칙 제9조제5항에 따라 위와 같이 정보통신접근성 품질인증서를 발급합니다. 2021년 05월 03일 사단법인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국웹접근성인증평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