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무용수들이 로비로 나와 관객들에게 인사하고 자신들을 소개한다. 함께 극장으로 들어가자고 제안한다. 신발을 벗고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 바닥 중앙에 하얀 사각형의 무대와 그 주변으로 방석이 놓여 있다. 관객과 무용수들이 원하는 자리에 앉으면 조명이 바뀌고, DJ가 믹싱한 음악이 라이브로 흐르고 무용수 한 명이 중앙으로 나와 움직임을 시작한다.
이번 ‘2024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영국의 세컨드 핸드 댄스(Second Hand Dance)는 〈We Touch, We Play, We Dance〉를 3세 이하의 영유아를 위한 〈베이비 클럽〉과 4세부터 11세의 신경다양성 및 장애가 있는 어린이를 위한 〈모두의 클럽〉 두 가지 버전으로 공연했다. 공연의 형식은 같았지만, 함께 완성해 가는 관객에 의해 두 공연의 질감이 달라졌다. 영유아와 신경다양성 및 장애 아동이라는 범주화된 대상의 특징을 덜어내면 감각적 자극에 반응하는 몸이 남는다. 몸의 메커니즘에 주의를 두면 그 몸만이 가진 고유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두 공연을 보고 나에게 남은 하나의 메시지는 ‘감각적 자극에 반응하는 몸들을 어떻게 흐름에 포함시킬 것인가?’였다.
끊임없는 제안
네 명의 무용수는 뛰기, 서 있기, 돌기, 간지럽히기, 두드리기, 쓰다듬기, 바닥에 눕기, 서로를 들어올리기, 안기, 올라타기, 하이파이브 하기 등의 움직임으로 끊임없이 관객에게 제안한다. 움직임을 먼저 보여주고, 적극적으로 관객과 눈을 맞추고, 손으로 터치하며 움직임을 유도하기도 하고, 관객 옆에 앉아 함께 무대를 바라보기도 한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는 느슨하여 언제든지 관객은 무대 중앙으로 나갈 수도, 자리에 머물 수도 있다. 부드럽고 친절한 제안으로 관객들을 ‘클럽’으로 초대한다. 무용수들은 초대에 응한 관객이 만들어 내는 움직임을 수용하고 변형한다. 이 모든 과정이 관객에게 함께 춤추며 놀자는 몸의 제안이다.
포용적 공간
공연은 즉흥의 제안하기와 수용하기 방식으로 흐름을 만들어 낸다. 끊임없는 제안은 극을 흐르게 하는 구심점이 된다. 무용수는 끊임없는 제안을 하지만, 강요하지도 서두르지도 않는다. 관객의 그 어떤 반응도 수용하고 허용한다. 제안하기와 수용하기 사이를 쭈욱 늘려 공간을 만든다. 그 공간에서 서로에 대한 탐색이 일어나고,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고, 어떠한 충동이 담기기도 한다. 그 넉넉한 포용적 공간에서 관객은 충분한 자기 시간을 갖고 자기만의 리듬을 찾는다. 개별성이 피어나는 공간이다. 각 개별성은 서로에 기대어 풍성해진다. 너의 ‘그러함’ 덕분에 생겨난 나의 ‘이러함’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된다. 개별성을 허용한 포용적 공간에서 관객은 대화의 주체가 되어 계속해서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 낸다.
대화는 놀이가 되고
〈베이비 클럽〉에서 한 관객이 중앙으로 달려 나와 원을 그리며 무대를 한 바퀴 돌고 자리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반복한다. 다른 관객은 직선으로 달려 나왔다가 자리로 돌아가는 움직임을 반복한다. 또 다른 관객은 보호자의 손을 끌어 무대 중앙으로 데리고 나온다. 어떤 관객은 무대로 나와 앉아 있기도 한다. 무용수는 그 사이에서 팔을 뻗기도 하고 다리를 들기도 하고 바닥을 구르기도 한다. 서로의 움직임이 공간에 포개어진다. 〈모두의 클럽〉에서는 공연이 시작되고 몇 분 되지 않아 허리를 숙이고 무대 중앙으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관객의 움직임을 따라 무용수도 무대 중앙으로 나온다. 한 관객은 객석의 자리로 표시한 방석을 무대 중앙으로 던진다. 무용수는 그 방석을 들고 움직이기도 하고 바닥에 내려놓기도 한다. 돌발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러한 행동은 포용적 공간에서 움직임의 또 다른 제안으로 작동하며 끊임없는 창조의 순간으로 연결된다. 또 다른 관객은 극장 경험의 암묵적 약속을 깨고 극장 벽을 손으로 터치한다. 극장 안내원이 관객에게 다가와 제한의 메시지를 보낸다. 무용수는 관객의 움직임에 동참한다. 명확한 아우트라인을 확인하며 놀이는 이어진다.
놀이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세컨드 핸드 댄스는 무대와 객석을 느슨하게 하고, 나아가 관객에 의해 무대가 극장 전체로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두었다.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설정하여, 움직임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조건을 감각하게 하였다. 예상 불확실성의 움직임을 포용하기 위해 극장의 공간성을 활용하고, 끊임없는 제안으로 관객의 주의를 끌어당긴다. 또한, 놀이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새로운 순간의 요구에 실시간으로 응답할 수 있는 능력과 책임감을 가진 숙달된 무용수가 있어서 가능하다. 자신들이 계획한 것을 온전히 수행하는 것을 포함하여 관객의 움직임을 수용한다. 상황과 조건에 집중하여 흐름 속에서 펼쳐지는 것들을 발견하며 생생한 ‘지금, 이 순간’에 발을 딛고 있다.
***
〈모두의 클럽〉 〈베이비 클럽〉으로 선보인 〈We Touch, We Play, We Dance〉 공연은 무대에 다른 소품 하나 없이 오직 몸이, 몸에게, 몸으로 말을 건다. 놀이의 재료는 감각적 자극에 반응하는 몸이었고, 몸의 움직임은 놀이의 자원이었다. 특정한 대상을 위한 클럽이라고 했지만, 누구라도 관객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객은 자기만의 리듬이 허용되는 공간에서 다른 몸과 만나 반응하며 어느새 춤을 추고 있었다.
모두의 클럽
(사)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2024.7.23.~7.24|모두예술극장
어린이를 위한 포용예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아시테지 코리아·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공동기획하여 ‘2024 아시테지 국제여름축제’에서 선보였다. 영국의 장애인 중심 무용단 세컨드 핸드 댄스가 영유아를 위해 제작한 작품을 4~11세의 장애 및 신경발달장애 아동을 위해 각색했고, 장애인 창작자 및 청소년과의 협업을 통해 제작되었다. 네 명의 댄서들이 공간 곳곳을 누비며 아기와 어린이들을 초대해 따뜻한 마음과 장난기 가득한 공연을 펼친다.
임금님
안무가, 생태움직임연구소 소행성 대표. 수치심, 몸 키워드로 예술작업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 듣는 일을 한다. 대표 작품으로 〈수치심 감옥〉 〈상실공간〉 〈트랜스 몸 숲〉 〈이몸저방구석〉이 있다.
king0922@hanmail.net
∙ 인스타그램 @so.haengseong
∙ 페이스북 @so.haengseong21
사진 제공.아시테지 코리아
2024년 9월 (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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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이 다양한 경험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클럽>이 그러한 기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 공연을 통해 아이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도 꼭 한번 관람하고 싶습니다. 이 멋진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더 많은 아이들이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