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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예술공간② 공연예술

이슈 지극히 평범하고 한없이 자유로운 공간

  • 강성국·김민수·이성수 
  • 등록일 2021-06-02
  • 조회수508

이슈

내가 꿈꾸는 예술공간② 공연예술

지극히 평범하고 한없이 자유로운 공간

강성국·김민수·이성수

장애 예술에서 배리어프리 공간은 늘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였고, 휠체어 경사로를 비롯한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장애 유형을 고려한 장치, 안전한 환경, 장소의 분위기까지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작업실·연습실·전시장·공연장 등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이상적인 공간은 무엇을 갖추어야 할지 여섯 명의 예술가에게 물었다.

  • 강성국
    행위예술가이자 무용가.
    2005년부터 국내외 페스티벌에서 공연

  • 김민수
    청각장애 무용수.
    케인앤무브먼트 <시선 1+1> 출연

  • 이성수
    시각장애인 연극배우.
    2015년부터 장애인문화예술판, 안은미컴퍼니 등에서 활동

마음껏 소통하고 역량을 펼치는 공간

글. 강성국 퍼포머

예술창작자에게 작업실이나 연습실은 제2의 집처럼 꼭 필요한 공간이다. 화가나 작가는 그림이나 글에 몰두할 수 있는 작업실이, 안무가나 무용수는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크고 넓은 연습실이 필요하듯 창작공간은 작품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도 경제적 부담으로 대관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대관하여 이용하고 그 외엔 집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나에게는 대관 신청조차 쉽지 않다. 대관 문의를 할 때도 발음이 좋지 않아 ‘거절당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서 전화 거는 것도 꺼려지고 두려움마저 든다. 요즘은 주로 문자나 이메일로 문의하고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고 장애인 예술가에게 대관을 기피하는 곳도 많다. 그래서 절차가 복잡하고 접근성이 부족해도 되도록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연습실 이용을 선호한다. 수많은 연습실 중 내가 좋아하는 곳은 서울무용센터다. 집에서 멀기는 하지만 홀이 크고 대관료도 싸고 장애인 편의시설이 너무나 잘 되어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무용수가 작업이나 연습하고 있어서 동기부여도 되기 때문에 좋다.

나는 지원사업 신청이나 프로젝트 진행, 공연구성안 작성 등 문서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발로 컴퓨터 작업을 하기 때문에 카페를 이용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그렇지만, 발로 작업할 수 있는 적절한 높이의 의자와 테이블이 갖춰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장애가 있는 창작자가 편안하고 자유롭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작업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문서작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업도 이루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서 운영 중인 커뮤니티룸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2015년 개관한 장문원은 장애인 예술문화발전과 창작활동에 아주 의미 있고 꼭 필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연습실이 하나뿐이라 대관이 치열하고 연극이나 무용공연 연습을 하기에는 조금 좁다. 바닥에 댄스플로어가 깔려 있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 대관료도 비싼 편이다. 이음아트홀은 다목적공간으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조명과 음향시설, 등·퇴장 공간, 객석 등은 공연장으로서는 부족한 면이 있다. 지금보다 장애인 무대공연예술을 발전시키고 수준을 높이려면 공연에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진 전문 공연장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에 맞는 전문인력도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 예술인이 공간이나 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떠한 제약이나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우리나라 예술발전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 강성국 <Keep Going>(사진. 조인성)

강성국

행위예술가이자 무용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2005년 한국실험예술제에서 퍼포먼스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 2006년에 무용작품 <핏줄>로 CJ YOUNG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여러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해오고 있으며, 무대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 철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koreaingan@empas.com

예술가와 관객을 함께 품어주는 공간

글. 김민수 무용수

나는 예술 활동을 위해 정진하고 있는 청각장애를 가진 무용 예술인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공연을 하면서 섰던 무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다. 그 이유는 무대 뒤 공간이 넉넉하고 각각의 출연자를 위한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휠체어도 다니기 쉽도록 경사로가 완만하면서도 폭이 넓기 때문이다. 대기실과 무대를 오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무대 뒤의 장치들과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관객의 눈에 띄지 않도록 커튼 뒤의 통로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다. 무대가 넓어서 사람과 사람 간에 충돌하는 일 없이 동작할 수 있었기에 부담감이 없었다. 그래서 공연을 한다는 것에 늘 새로이 긴장되지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가장 빨리 긴장이 풀렸던 기억이 있다.

예술공간은 생활공간과는 달리 예술가 혹은 예술적 특성에 따라 제한된 자원을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공간이 넓어야 할 것이다. 다만 공간이 있다면 사람도 있으며 사람을 위한 장비도 있으니 장비의 배치와 그 장비의 활용하기에 용이한 동선도 고려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배치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을 기대하고 싶어진다.

좀 더 나은 장애 예술 창작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역시 무대에 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예술을 보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하는 이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누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무대 위에서 열정과 에너지를 펼치는 이들을 보고 열정과 꿈을 얻어갈 수 있는 관객 중에도 장애인이 당연히 있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관객을 위한 환경 또한 잘 구성되어야 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모니터석이나 휠체어석의 무대 앞쪽 배치,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이스 플레이어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 같다. 장애 예술 창작공간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기 어려운 것은 오늘날과 같이 정보의 취득이 중요한 시대에서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밖에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가 더욱 활발해지기 위해 ‘대중적 확산’이 필요하다. 직접 조사해본 것은 아니기에 단정하기 어렵지만,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연 중에 장애 예술인이 참여하는 공연은 얼마 안 될 것 같다. 어느 순간 장애 예술인의 공연도 많아지고, 비장애 예술인의 공연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 대중적인 인식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호주 레스트레스 댄스 씨어터 <친밀한 공간>(2019 서울거리예술축제)

김민수

청각장애인 무용수. 2017년 현대무용협동조합 창립공연 <가을운동회 with CODA>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2018 평창문화올림픽 인증사업 ‘두리새로 서로하나’ 공연 <시선 1+1>에 출연했으며, 2019 서울거리예술축제 초청공연 호주 레스트레스 댄스 씨어터의 <친밀한 공간>에 함께 공연했다. 공간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며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dhzero_dlsht@naver.com

평범하고 상식적인, 서로를 이해하는 공간

글. 이성수 배우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연극을 하는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이 된 지는 13년째이며 연극을 한 지는 7년째가 되었다. 지난 7년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략 20편 정도의 작품 혹은 놀이를 통해 무대에 올랐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언젠가부터 나를 ‘배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제법 생겼다. 그러나 아직도 낯설기만 한 ‘배우’라는 수식어를 앞에 놓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노라면 공연했던 작품의 제목, 함께 했던 동료들, 내가 입었던 의상, 무대, 연습실, 조명, 음악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어쨌든 내가 처음 무대에 올랐던 공연은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배리어프리 낭독극이었다. 관객의 대부분이 시각장애인 혹은 그 지인이었다. 그렇다. 배리어프리 공연. 장애인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배리어프리에 대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하던 무렵, 그러한 시대의 흐름 덕분에 나는 운 좋게 시각장애인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관객이자 배우인 나는 배리어프리에 대해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입장이며, 관객으로서 감상하고 즐길 때와 창작자로서 만들어가는 과정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오늘 여기서는 ‘창작자’로서 공연장이나 연습실 같은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처음엔 다소 얼떨떨하기도 했고 그저 무대에 올라간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긴장감 때문에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여러 해 꾸준히 공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쉽고 불편한 점과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몇몇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난히 무대 장치가 많아 가뜩이나 작은 무대가 더 좁게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시각장애인은 바닥에 물건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특성상 의상도 복잡하고 소품도 많은 공연이었으니 나 혼자만의 입장만 고집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조금 더 조심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연습에 임했다. 그런데 맨발로 빠르게 등장하는 장면에서 상대 배우가 깜짝 놀라며 연습을 중지시켰다. 꽤나 위험한 소품이 바로 내 발 옆에 있었던 것이다. 분명 이전 연습 때까지만 해도 없던 물건이었는데, 디테일을 잡아가던 연출의 요구로 추가된 것이었다. 잔존 시력이 있다고는 해도 시력이 낮고 시야가 좁은 나로서는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었고,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연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바깥쪽으로 좀 더 밀어.”라고 짧게 한마디 하고 마는 것이다. 공간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작년에 1인극을 한 적이 있다. 리허설 중 홀로 무대에서 한참 독백을 하고 있는데 연출이 끊고 들어오더니 나의 몸 방향이 틀어졌다며 정면을 바라보도록 바로잡아 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조명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내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만약 그런 상태로 관객을 맞이하게 된다면 관객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 앞이 보이지 않아서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대사를 치는구나.”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러려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당당하고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시각장애인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그때 그 1인극에서는 연출의 지시대로 방향에 대해 더 인식하고 정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연습했지만, 나중에 영상을 확인하니 어느 순간 나는 삐딱하게 선 채로 공연을 마무리하고야 말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연출, 배우, 스태프 등 다른 사람들은 연습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게 연습실이란 열정이 있는 곳, 아이디어가 넘치는 곳, 갈등과 화해가 있는 곳 등 로망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그러한 로망보다도 앞서는 현실적 괴로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본 리딩’이다. 작업 초반이라 아직은 부담이 없고 가볍게 즐기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장난도 쳐가며 읽는 모습이 화기애애하고 재밌어 보인다. 다들 그렇게 즐거운데 나는 홀로 괴롭다. 잔존 시력을 활용하거나 화면 낭독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한 글자씩 더듬더듬 읽을 수밖에 없는 나에겐 초반부터 남모를 스트레스가 있고 눈치도 많이 보인다. 그런 이유로 연습실 가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다. 연습실. 그 공간을 언제쯤 편하게 느끼고 즐길 수 있을까. 나에겐 여전히 희망 사항일 뿐이다.

연습실이나 공연장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으나 결국 사람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공간’이라는 것도 ‘물리적 공간’과 ‘정서적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언젠가 ‘차별 없는 가게’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 장애인이 더 선호하는 가게는 시설이 잘 갖추어진 가게보다는 사장님의 인식이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물리적 공간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시각장애인으로서 나의 경우는 정서적인 부분이 더 크게 느껴진다. 물리적인 부분을 맞춘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누구에게나 100% 완전한 공간이 있을 수 있을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서적인 부분이 틀어지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공간은 정서적 유대감이 짙은 공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이 있는 공간이다. 상호 존중하는 공간이다. 뻔히 보이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정직하게 대하는 공간이다. 그런 사람이 모인 공간이라면 지금 당장 물리적으로 불편한 것은 금세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공간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사람으로 채워지는 곳이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 공간을 찾아본다.

  • 쿵짝 프로젝트 <내가더잘>(2020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맞;춤’)

이성수

시각장애인 연극배우, 장애인식개선 강사, 국가공인 안마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도시각장애인이며 저시력자다. 2015년 1월 <뮤직드라마 당신만이>로 데뷔하였으며 스튜디오뮤지컬, 극단다빈나오, 장애인문화예술판, 안은미컴퍼니, 쿵짝프로젝트, 제로셋프로젝트, 퀴어연극제 등에서 활동해 왔다. 2021년 극단 이나정을 창단하여 활동하고 있다.
hansole11@naver.com

사진제공.강성국, 김민수, 이성수

2021. 6월 (20호)

 


상세내용

이슈

내가 꿈꾸는 예술공간② 공연예술

지극히 평범하고 한없이 자유로운 공간

강성국·김민수·이성수

장애 예술에서 배리어프리 공간은 늘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였고, 휠체어 경사로를 비롯한 물리적 접근성뿐 아니라 다양한 감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장애 유형을 고려한 장치, 안전한 환경, 장소의 분위기까지 여러 가지 고려해야 할 점이 있다. 작업실·연습실·전시장·공연장 등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이상적인 공간은 무엇을 갖추어야 할지 여섯 명의 예술가에게 물었다.

  • 강성국
    행위예술가이자 무용가.
    2005년부터 국내외 페스티벌에서 공연

  • 김민수
    청각장애 무용수.
    케인앤무브먼트 <시선 1+1> 출연

  • 이성수
    시각장애인 연극배우.
    2015년부터 장애인문화예술판, 안은미컴퍼니 등에서 활동

마음껏 소통하고 역량을 펼치는 공간

글. 강성국 퍼포머

예술창작자에게 작업실이나 연습실은 제2의 집처럼 꼭 필요한 공간이다. 화가나 작가는 그림이나 글에 몰두할 수 있는 작업실이, 안무가나 무용수는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크고 넓은 연습실이 필요하듯 창작공간은 작품에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도 경제적 부담으로 대관해서 창작활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프로젝트가 있을 때만 대관하여 이용하고 그 외엔 집에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몸이 불편한 나에게는 대관 신청조차 쉽지 않다. 대관 문의를 할 때도 발음이 좋지 않아 ‘거절당하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앞서 전화 거는 것도 꺼려지고 두려움마저 든다. 요즘은 주로 문자나 이메일로 문의하고 있지만, 이것도 한계가 있고 장애인 예술가에게 대관을 기피하는 곳도 많다. 그래서 절차가 복잡하고 접근성이 부족해도 되도록 공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연습실 이용을 선호한다. 수많은 연습실 중 내가 좋아하는 곳은 서울무용센터다. 집에서 멀기는 하지만 홀이 크고 대관료도 싸고 장애인 편의시설이 너무나 잘 되어있다. 그뿐만 아니라 여러 무용수가 작업이나 연습하고 있어서 동기부여도 되기 때문에 좋다.

나는 지원사업 신청이나 프로젝트 진행, 공연구성안 작성 등 문서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데, 다른 사람들과 달리 발로 컴퓨터 작업을 하기 때문에 카페를 이용하기 쉽지 않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도 그렇지만, 발로 작업할 수 있는 적절한 높이의 의자와 테이블이 갖춰진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장애가 있는 창작자가 편안하고 자유롭게 언제든 이용할 수 있는 작업카페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문서작업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 소통하고 협업도 이루어질 수 있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하 ‘장문원’)에서 운영 중인 커뮤니티룸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2015년 개관한 장문원은 장애인 예술문화발전과 창작활동에 아주 의미 있고 꼭 필요한 기관이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움이 있다. 연습실이 하나뿐이라 대관이 치열하고 연극이나 무용공연 연습을 하기에는 조금 좁다. 바닥에 댄스플로어가 깔려 있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 대관료도 비싼 편이다. 이음아트홀은 다목적공간으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조명과 음향시설, 등·퇴장 공간, 객석 등은 공연장으로서는 부족한 면이 있다. 지금보다 장애인 무대공연예술을 발전시키고 수준을 높이려면 공연에 필요한 시설이 잘 갖춰진 전문 공연장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에 맞는 전문인력도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 예술인이 공간이나 시설을 이용하는 데 어떠한 제약이나 차별을 두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가진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여 우리나라 예술발전에도 이바지할 것이다.

  • 강성국 <Keep Going>(사진. 조인성)

강성국

행위예술가이자 무용가.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2005년 한국실험예술제에서 퍼포먼스 작가로 데뷔했다. 이듬해 2006년에 무용작품 <핏줄>로 CJ YOUNG 페스티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국내외 여러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해오고 있으며, 무대를 통해 자신만의 작품 철학,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koreaingan@empas.com

예술가와 관객을 함께 품어주는 공간

글. 김민수 무용수

나는 예술 활동을 위해 정진하고 있는 청각장애를 가진 무용 예술인이다. 그동안 크고 작은 공연을 하면서 섰던 무대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다. 그 이유는 무대 뒤 공간이 넉넉하고 각각의 출연자를 위한 대기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휠체어도 다니기 쉽도록 경사로가 완만하면서도 폭이 넓기 때문이다. 대기실과 무대를 오가는 과정에서 서로의 동선이 겹치지 않으면서도 무대 뒤의 장치들과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그리고 관객의 눈에 띄지 않도록 커튼 뒤의 통로 공간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었다. 무대가 넓어서 사람과 사람 간에 충돌하는 일 없이 동작할 수 있었기에 부담감이 없었다. 그래서 공연을 한다는 것에 늘 새로이 긴장되지만,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는 가장 빨리 긴장이 풀렸던 기억이 있다.

예술공간은 생활공간과는 달리 예술가 혹은 예술적 특성에 따라 제한된 자원을 다른 곳에 활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공간이 넓어야 할 것이다. 다만 공간이 있다면 사람도 있으며 사람을 위한 장비도 있으니 장비의 배치와 그 장비의 활용하기에 용이한 동선도 고려해야 한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하여 효율적으로 배치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것을 기대하고 싶어진다.

좀 더 나은 장애 예술 창작공간을 만들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역시 무대에 서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예술을 보는 사람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공연하는 이들이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별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을 누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무대 위에서 열정과 에너지를 펼치는 이들을 보고 열정과 꿈을 얻어갈 수 있는 관객 중에도 장애인이 당연히 있다는 것은 필연이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관객을 위한 환경 또한 잘 구성되어야 한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 모니터석이나 휠체어석의 무대 앞쪽 배치, 그리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보이스 플레이어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 같다. 장애 예술 창작공간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누리기 어려운 것은 오늘날과 같이 정보의 취득이 중요한 시대에서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 밖에 장애 예술인의 창작과 발표가 더욱 활발해지기 위해 ‘대중적 확산’이 필요하다. 직접 조사해본 것은 아니기에 단정하기 어렵지만,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연 중에 장애 예술인이 참여하는 공연은 얼마 안 될 것 같다. 어느 순간 장애 예술인의 공연도 많아지고, 비장애 예술인의 공연만큼이나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게 당연하게 여겨지는 그런 대중적인 인식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호주 레스트레스 댄스 씨어터 <친밀한 공간>(2019 서울거리예술축제)

김민수

청각장애인 무용수. 2017년 현대무용협동조합 창립공연 <가을운동회 with CODA>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섰다. 2018 평창문화올림픽 인증사업 ‘두리새로 서로하나’ 공연 <시선 1+1>에 출연했으며, 2019 서울거리예술축제 초청공연 호주 레스트레스 댄스 씨어터의 <친밀한 공간>에 함께 공연했다. 공간을 통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바라보며 더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
dhzero_dlsht@naver.com

평범하고 상식적인, 서로를 이해하는 공간

글. 이성수 배우

나는 시각장애인이다. 연극을 하는 시각장애인이다. 시각장애인이 된 지는 13년째이며 연극을 한 지는 7년째가 되었다. 지난 7년간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대략 20편 정도의 작품 혹은 놀이를 통해 무대에 올랐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언젠가부터 나를 ‘배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제법 생겼다. 그러나 아직도 낯설기만 한 ‘배우’라는 수식어를 앞에 놓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노라면 공연했던 작품의 제목, 함께 했던 동료들, 내가 입었던 의상, 무대, 연습실, 조명, 음악 등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데뷔작이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하지만 어쨌든 내가 처음 무대에 올랐던 공연은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한 배리어프리 낭독극이었다. 관객의 대부분이 시각장애인 혹은 그 지인이었다. 그렇다. 배리어프리 공연. 장애인의 인권이나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가는 사회적 분위기 그리고 그에 따라 필연적으로 배리어프리에 대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기 시작하던 무렵, 그러한 시대의 흐름 덕분에 나는 운 좋게 시각장애인 배우가 될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관객이자 배우인 나는 배리어프리에 대해 생각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입장이며, 관객으로서 감상하고 즐길 때와 창작자로서 만들어가는 과정 등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오늘 여기서는 ‘창작자’로서 공연장이나 연습실 같은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처음엔 다소 얼떨떨하기도 했고 그저 무대에 올라간다는 막연한 기대감과 긴장감 때문에 미처 의식하지 못했지만 여러 해 꾸준히 공연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는 아쉽고 불편한 점과 개선되었으면 하는 점이 인식되기 시작했다. 몇몇 일화를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유난히 무대 장치가 많아 가뜩이나 작은 무대가 더 좁게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시각장애인은 바닥에 물건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품의 특성상 의상도 복잡하고 소품도 많은 공연이었으니 나 혼자만의 입장만 고집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조금 더 조심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연습에 임했다. 그런데 맨발로 빠르게 등장하는 장면에서 상대 배우가 깜짝 놀라며 연습을 중지시켰다. 꽤나 위험한 소품이 바로 내 발 옆에 있었던 것이다. 분명 이전 연습 때까지만 해도 없던 물건이었는데, 디테일을 잡아가던 연출의 요구로 추가된 것이었다. 잔존 시력이 있다고는 해도 시력이 낮고 시야가 좁은 나로서는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모른다. 아무도 나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었고,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다. 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연출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바깥쪽으로 좀 더 밀어.”라고 짧게 한마디 하고 마는 것이다. 공간은 결국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따라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작년에 1인극을 한 적이 있다. 리허설 중 홀로 무대에서 한참 독백을 하고 있는데 연출이 끊고 들어오더니 나의 몸 방향이 틀어졌다며 정면을 바라보도록 바로잡아 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 아니다. 조명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내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만약 그런 상태로 관객을 맞이하게 된다면 관객은 어떻게 생각할까? “저 사람 앞이 보이지 않아서 엉뚱한 곳을 바라보고 대사를 치는구나.”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다. 그러려고 무대에 오르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부분이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 당당하고 자유롭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배우로 거듭나기 위해 시각장애인으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지점이다. 그때 그 1인극에서는 연출의 지시대로 방향에 대해 더 인식하고 정면을 바라볼 수 있도록 연습했지만, 나중에 영상을 확인하니 어느 순간 나는 삐딱하게 선 채로 공연을 마무리하고야 말았다.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연출, 배우, 스태프 등 다른 사람들은 연습실을 어떻게 생각할까? 나에게 연습실이란 열정이 있는 곳, 아이디어가 넘치는 곳, 갈등과 화해가 있는 곳 등 로망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그러한 로망보다도 앞서는 현실적 괴로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대본 리딩’이다. 작업 초반이라 아직은 부담이 없고 가볍게 즐기며 마음대로 아무렇게나 장난도 쳐가며 읽는 모습이 화기애애하고 재밌어 보인다. 다들 그렇게 즐거운데 나는 홀로 괴롭다. 잔존 시력을 활용하거나 화면 낭독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한 글자씩 더듬더듬 읽을 수밖에 없는 나에겐 초반부터 남모를 스트레스가 있고 눈치도 많이 보인다. 그런 이유로 연습실 가는 것이 두려울 때가 많다. 연습실. 그 공간을 언제쯤 편하게 느끼고 즐길 수 있을까. 나에겐 여전히 희망 사항일 뿐이다.

연습실이나 공연장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으나 결국 사람 이야기가 되어버린 듯하다. ‘공간’이라는 것도 ‘물리적 공간’과 ‘정서적 공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언젠가 ‘차별 없는 가게’ 워크숍에 참여했을 때 장애인이 더 선호하는 가게는 시설이 잘 갖추어진 가게보다는 사장님의 인식이 좋은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체장애인의 경우 물리적 공간의 중요성을 더 크게 느낄지도 모르겠으나, 시각장애인으로서 나의 경우는 정서적인 부분이 더 크게 느껴진다. 물리적인 부분을 맞춘다는 것은 분명 한계가 있다. 누구에게나 100% 완전한 공간이 있을 수 있을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서적인 부분이 틀어지면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다. 따라서 내가 원하는 공간은 정서적 유대감이 짙은 공간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이 있는 공간이다. 상호 존중하는 공간이다. 뻔히 보이는 잔머리를 굴리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정직하게 대하는 공간이다. 그런 사람이 모인 공간이라면 지금 당장 물리적으로 불편한 것은 금세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공간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며 사람으로 채워지는 곳이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마음 공간을 찾아본다.

  • 쿵짝 프로젝트 <내가더잘>(2020 혜화동1번지 7기동인 가을페스티벌 ‘맞;춤’)

이성수

시각장애인 연극배우, 장애인식개선 강사, 국가공인 안마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중도시각장애인이며 저시력자다. 2015년 1월 <뮤직드라마 당신만이>로 데뷔하였으며 스튜디오뮤지컬, 극단다빈나오, 장애인문화예술판, 안은미컴퍼니, 쿵짝프로젝트, 제로셋프로젝트, 퀴어연극제 등에서 활동해 왔다. 2021년 극단 이나정을 창단하여 활동하고 있다.
hansole11@naver.com

사진제공.강성국, 김민수, 이성수

2021. 6월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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