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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성다인 〈beingbeingbeing〉 물음표가 많은 존재들

  • 양근애 연극평론가
  • 등록일 2025-02-05
  • 조회수 25

리뷰

극장에 왜 갈까.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질문을 놓지 못한 적이 있다. 공연을 보러 가지, 이렇게 간단하게 답해지지 않는다. 극장에 가면 공연만 보게 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로는 공연 말고 다른 걸 더 오래 보다가 오기도 한다. 가령 맞은편에 앉은 관객이라든가, 무대라든가. 도무지 공연에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상황에 둘러싸여 극장에 있는 나라는 존재만 오롯이 느끼다 오는 날도 있다. 여러모로 극장은 쉽지 않은 곳이다. 낯선 사람이 옆에 앉아 있고 의자는 딱딱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잘 알고 있다. 극장에 간다는 건 관객으로서 예상치 못한 일회적인 체험을 하는 일이다. 극장은 배우의 몸과 관객의 몸이 만나는 장소다. 사람들을 모았다 흩어지게 하고, 텅 빈 곳에 한 세계를 구축했다 무너뜨리는 극장은 소리 내지 않는 아우성과 보이지 않는 힘이 각축을 벌이는 장이다. 따라서 어쩌면 필연적인 불편과 불화를 감당해 내는 일 역시 체험에 속한다. 관객은 집단을 칭하지만 체험은 개별적이라는 점에서, 공간의 점유가 밀도를 가늠하게 할 수 없다. 그럼에도 극장에 가는 일은, 나의 체험을 다른 ‘나’들과 나누는 일이다. 같음이 아니라 여러 다름을 전제로 한 하나의 체험.

극장이 어떤 공간인지 생각하게 된 것은 〈beingbeingbeing〉(빙빙빙)의 첫 대사 때문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들려온, 그래서 관객과 함께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전자 음악이 끝나자 이윽고 무대에 등장한 ‘극장’(백혜경 배우)은 이렇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관객 여러분. 지금까지 극장이었습니다.” 극장이 건네는 말은 극의 처음을 여는 마지막 인사로 관객이 앉아 있는 곳을 재인식하게 한다. 객석은 회전의자가 놓인 A 구역과 갤러리석인 B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B 구역이 A 구역을 니은(ㄴ) 모양으로 둘러싸고 있다. 타공판처럼 회전의자가 배치된 A는 ‘머릿속 극장’, B는 그곳을 바라볼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머릿속 극장에 ‘아리’ ‘마지’ ‘사키’가 등장한다. 그들은 몸에 꼬리를 달고 있다. 아리(박하늘 배우)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 꼬리를 둘둘 메고 무대를 가로지른다. 마지(이우람 배우)는 마디에 철제 링이 달린 꼬리를 접었다 펴며 관객 사이를 오간다. 사키(백소정 배우)는 가슴에 뿔 모양의 꼬리를 달고 비틀비틀 움직여 벽으로 간다. 공연을 보기 전에 미리 공개된 캐릭터 사전음성소개를 통해 그들이 어떤 형상인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 당연히 머릿속 상상이 실재보다 모호하고 다채롭다. 그러니 눈앞에 있는 그들을 보는 일은 그 너머를 보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극장에서 일했다고 주장하는, 여기가 극장인지 극장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극장에 관해 생각하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은 눈앞에 있는 실체로서가 아니라 극장에 깃든 흔적들로 존재한다. 그것은 마치 어떤 일을 겪고 난 후에 남아 있는 상념들의 연쇄, 부질없는 복기의 난입을 방불케 한다. “부정적 사고의 무한루프에 갇힌 사람 내부의 고통스러운 감정들에 관한 이야기”라는 드라마터그의 설명처럼, 연극은 고통스러운 감정이 몸이 되어버린 상황을 현시하며 한때 거기 있었지만 지금은 없는 것(thing)이 아니라 결코 사라지지 않는 존재(being)로 그들을 불러온다.

마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것처럼 반복되는 대사들은 물음표를 지울 수 없는 질문들로 이어진다.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답을 기다리지 않을 수 없는 마음은 출입문을 향한다. 이 반복을 끝내기 위해서는 ‘들어온 문으로 나가야 한다’는 간명한 사실이 연극의 전부라 할지라도 질문을 멈출 수 없다. 연극의 제목처럼 이 공간에 있는 존재들은 연결되어 있고, 반복되며 회수되지 않는 질문들과 함께 일종의 패턴을 이룬다. 타공판처럼 배치된 A 구역도 그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회전의자에 앉은 관객들이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면 전체적으로 무질서한 흔들림이 만들어지지만, 그 움직임 역시 정해진 배치 안에서 이루어진다. 아리와 마지와 사키가 관객 사이를 이동하면서 관객과 접촉할 때 작은 파장이 일다가 사라지기도 한다. 이것은 공연을 열고 닫는 음악으로 쓰인 KIRARA(키라라)의 〈숫자〉와 상응한다. 극장이 읽어준 연극의 줄거리가 곧 〈숫자〉의 세계라는 점에서, “일 이 삼 사 오륙 칠 팔구 십일 십이 십일 십이 삼천 육백 구”를 외치는 극장의 목소리는 공연의 구조를 비트의 세계로 옮겨 놓는다. 무작위처럼 보이는 숫자들이 모였다가 흩어지면서 패턴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그 패턴이 다시 깨지고 다른 숫자가 리드미컬하게 반복된다. 일정하지 않은 패턴이라는 형용모순의 사태, 그리고 그 끝에서 외치는 “따뜻해!”

이따금 신호에 맞춰 들어왔다 나가는 빛과 소리가 경계를 자각하게 할 뿐, 여기서 나가지도 못하고 여기 완전히 적응할 수도 없는 존재들이 명멸하는 이곳은 극장이다. 열린 문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닫힌 문을 쳐다본다. 오지 않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여러 차례 다시 시작되는 이 공연에서 끝은 끝난 적이 없고 시작은 시작된 적이 없다. 연결이면서 단절인 문의 개폐는 극장에 묶인 존재의 소관이 아니라는 듯 굳건하다. 대신 다른 문이 열리는 순간이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비상구를 통해 빠져나가자, 연극이 잠시 중단된다. 소리가 사라지고 침묵이 자유롭게 들어온다. 그 이격의 시간에 살아있는 현재처럼 반복되는 과거의 일이 틈입한다. 우울하지만 흥이 나고 기존의 언어를 잃었지만 다른 표현을 모색하는 이상한 힘이 〈beingbeingbeing〉을 존재하게 한다. 불편과 불화를 자기 몸에 난 꼬리처럼 안은 다양한 몸들이 오늘도 극장에 가고, 극장이 된다.

  • 가슴에 뿔 모양의 꼬리를 단 사키와 온몸에 긴 꼬리를 둘둘 멘 아리가 가운데에 있는 구조물에 등을 기대어 있다. 주변에 관객이 회전의자에 앉아 있다.
  • 마디에 철제 링이 달린 꼬리를 한 마지가 쭈그려 앉아 꼬리를 머리 앞으로 내려뜨리고 있다.
  • 긴 꼬리를 늘어뜨린 아리가 1인용 의자에 머리와 어깨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다.
  • 조명효과로 붉은 공간에 영상이 프로젝션되고 있고 사키, 아리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beingbeingbeing (빙빙빙)

beingbeingbeing (빙빙빙)

성다인|2024.12.24, 26, 27, 30.|아트코리아랩 시연장 B, C

〈beingbeingbeing〉은 부정적 사고의 루프에 갇힌 사람이 겪고 있는 일상적인 루틴이다. 화자는 머쓱하게 서서 비릿하게 웃으며 자신의 머릿속을 훑어본다. 화자의 머릿속에는 괴물들이 살고 있다. 괴물들은 가해와 피해의 관계를 끝없이 뒤바꾸며 무언가를 주장하고 서로를 비웃는다. 괴물들이 농담에 가까운 말들을 늘어놓는 동안, 관객들은 이들이 헤집어 놓은 극장에 뒤섞인다. 공간은 관객 모두가 비슷한 감각으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연출되어 모두 일정 부분 시각적 방해를 받게 된다. 회전의자에 착석하는 앞쪽과 이동이 자유로운 옆면과 뒤쪽의 스탠딩형 객석은 관객이 배우와의 거리를 자발적으로 결정할 수 있게 한다.

이음온라인 문화소식

양근애

양근애

연극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문화의 미학적, 정치적 수행성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쓴다. 「다른 몸들, 복수의 언어, 감각의 분별」, 「드러냄과 머묾의 미학적 실천」, 「장애연극의 시간성과 극장 바깥의 연극」, 「장애연극의 접근성과 재현의 딜레마」 등을 썼다.
rootsfly@hanmail.net

사진 제공.성다인(ⓒ송은혜)

2025년 2월 (6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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