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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한층 부드러워진 가을이 되었다. 가을이 되면 단풍 구경, 천고마비의 계절 등을 떠올리면서 나들이를 하고 싶어진다. 좋은 날씨를 즐기기 위해 뚜벅뚜벅 밖으로 걸어 나간다. 울퉁불퉁한 것 없는 반듯한 인도, 깨끗한 거리, 차와 자전거, 사람이 이동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길을 만났을 때 더욱 기분 좋은 외출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보도블록이 고르지 않거나 인도가 좁아서 나의 앞뒤에서 자전거의 따르릉거리는 소리가 들린다면 곧 짜증이 나서 괜히 나왔다고 후회하게 된다.
일상 속 유니버설 디자인
나만 이런 것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나보다 더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이 많다. 작은 불편함부터 심각한 불편함까지를 개선하기 위해 누구나 이용하기 편리한 “모두를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또는 “보편적 디자인”으로 불리는 ‘유니버설 디자인(Universal Design)’이 1974년 로널드 메이스에 의해 창시되었고, 그 중요성이 점차 대두되어 많은 전문가가 연구하고 있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장애를 가진 이용자를 위해 문제해결을 도모하는 배리어프리 디자인의 개념을 포함하며 보다 넓은 범위의 이용자 중심 디자인이다.유니버설 디자인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현관문의 스토퍼, 센서등, 레버형 손잡이, 구둣주걱 등 우리 주변에는 많은 유니버설 디자인이 있다. 가정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작업장에서는 항상 긴장감이 있어서 유니버설 디자인이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작업하기에 적합한 조명이다. 강한 조명을 3초만 바라보아도 잔상이 한참 따라다녀 불편함을 느낀다. 그래서 작업장에서는 부분적인 강한 조명보다는 은은한 간접등이 적합하다. 벽지의 무늬, 바닥재의 무늬, 커튼의 무늬를 심플하게 하여 업무의 산만함을 줄이는 것이 좋다. 약간 흥분된 상태에서 지나친 시각 자극이 들어오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작업 공간은 층을 맞대고 있고, 벽을 마주 보고 있어서 소음 문제가 많이 발생한다. 발달장애인이나 유아의 경우 감정의 동요가 잘 생기고, 옆방의 소음이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외부 자극을 막는 방음이 중요하다. 방음은 흡음재와 차음재, 이 두 가지로 대처할 수 있다. 내부의 소리 울림을 줄이는 것이 흡음재이고, 외부의 소리를 차단하는 것이 차음재이다. 차음재를 쓸 경우에는 칸막이 안에 충전재를 충분하게 채워주고 벽을 천장 끝까지 채워야 차음이 가능하다.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많은 사례를 보면 대부분 주된 목표는 ‘이용자의 편의’다. 주차장 관리인보다는 주차하는 운전자, 서비스하는 직원보다는 서비스를 받는 손님, 공연 진행자보다는 관객을 위한 유니버설디자인은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주차 관리인, 직원, 공연 진행자의 편의성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공연장의 유니버설 디자인
1인당 GDP(국내총생산)가 높아지면서 개인의 여가에 많은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문화예술에 대한 소비 형태도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문화예술을 관람하거나 직접 문화예술을 배우고 향유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뮤지컬을 관람하러 가면 휠체어 이용자를 위해 휠체어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해 좌석 번호를 점자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자막을 제공하는 노력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대 뒤 환경은 어떨까? 관람석을 더 쾌적하게 만들기 위해 무대 뒤는 좁고 불편한 경우가 많다.
필자의 아들은 자폐성 장애를 가지고 있고 첼로를 연주하는 음악가다. 한번은 무대에 오르기 전 공연을 준비하며 대기실에 있는데 아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했다. 대기실에는 화장실이 없었고 복도에만 남자, 여자 화장실이 있었다. 입은 옷이 쉽게 입고 벗기가 어려워 따라 들어가려고 했더니 여자 화장실을 가야 할지, 남자 화장실을 가야 할지 곤란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자폐성 장애뿐만 아니라 돌봄이 필요한 연기자의 경우에도 같은 문제에 맞닥뜨릴 것이다.
휠체어 이용자라면 어떨까? 각자의 집에서 출발하여 지하철을 이용하고, 인도를 지나 공연장에 들어서는 데까지 이동에 대한 장애물이 없어야 한다. 장애물이 없다는 것은 턱이 없고 경사로가 잘 설치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사로를 설치할 수 없는 경우에는 엘리베이터와 같은 이동수단이 필요하다. 이동하는데 장애물이 하나라도 있어서 이동의 연결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많은 경사로가 무용지물이 된다.
만약에 화재가 발생한다면 어떨까? 상상할 수도 없는 인명 피해가 예상된다. 미로와 같은 무대 뒤 동선으로는 이동하기가 힘들다. 경사로가 없는 곳이 많고 좁아서 대피 동선을 찾기도 어렵다. 사고는 예정된 곳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방심하고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발생한다. 즐거움과 감동으로 가득해야 할 공연장에서 이와 같은 사고가 생겨서는 안 될 일이다.
인간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누구나 이용하기 편리한 유니버설 디자인 연구에 힘쓰고, 누구나 안전하고 동등하게 즐길 기회, 물리적 접근성을 고려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모든 이들이 생명, 자유, 행복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 세상이 올 것이라 기대한다.
조명민
유니버설 디자인 전문가로, 밀리그램디자인 대표다. 대학에서 첼로를 전공했고, 대학원에서 건축과 사회복지를 공부했다. 자폐성 장애가 있는 아들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연구해온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을 지향하는 ㈜밀리그램디자인을 설립했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공간을 연구해 디자인하고 의료기관이나 복지관 등의 건물에 구현하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세심하게 공간을 바꿔나간다.
jangingagu@naver.com
사진 제공.필자
2023년 10월 (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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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설 디자인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연 예술공간이나 일상공간에서의 동등한 권리와 안전 권리는 누구에게나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공간에 대한 성찰이 배리어프리 사회를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