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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가윤 전통목공예가 삶의 아름다움을 깎고 다듬는

  • 신이명 미술작가
  • 등록일 2025-08-20
  • 조회수 65

인터뷰

연일 폭염이 이어지던 뜨거운 여름날, 공예가 김가윤을 만났다. 소박한 텃밭이 있는 마당 곳곳에는 여섯 마리 고양이를 위한 나무 물고기 모빌들이 매달려 있었다. 작업실이기도 하고 집이기도 한 김가윤의 공방 안으로 들어서자 반려견 또롱이가 낯선 손님을 향해 야무지게 짖었다. 실내는 크고 작은 장승들의 유쾌한 웃음으로 왁자지껄했다. 사이사이 솟대와 팔찌, 글과 그림이 새겨진 목공예 오브제까지, 공간은 김가윤의 손길이 깃든 목공예품으로 가득했다. 김가윤은 낡은 튜너에서 흘러나오는 FM 라디오를 들으며 대부분이 시간을 작업장에서 보낸다. 요즘은 주문받은 팔찌를 깎느라 여념이 없다. 가늘고 긴 각재로 구슬 한 알 한 알을 깎아 만드는 작업이 수양이나 다름없단다. 나는 어쩐지 그녀의 손에 자꾸만 눈이 갔다. 여물고 묵묵한 손끝. 자신만의 인생을 깎고 다듬는 장이의 이야기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 목공예 작업실에서 김가윤 작가가 휠체어에 앉아 미소짓고 있다. 뒤편 선반과 벽에는 다양한 나무 조각품과 공예 도구들이 정리되어 있고, 작업대 위에는 목재와 공구, 장식품이 놓여 있다.

    김가윤 전통목공예가

 

공예가의 일상이 궁금하다. 요즘 어떤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나.

소소하기 그지없다. 오전 9시쯤 기상해서 같이 살고 있는 강아지와 마당의 고양이 여섯 마리에게 밥과 간식을 챙겨준다. 마당 작은 텃밭도 한번 돌보고 그렇게 분주히 움직이다 보면 오전이 훌쩍 지나간다. 오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다. 요즘에는 주로 스마트스토어나 블로그로 주문받은 팔찌나 낙관을 만들 때가 많다. 작업은 많이 하는 편이라 밤 11시까지 할 때도 있고 새벽 2~3시까지 이어질 때도 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밤에는 머리만 대면 그대로 잠든다.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연극배우를 꿈꿨다. 어려서부터 예술에 뜻이 있었나?

그렇지는 않았다. 오히려 어릴 때는 소위 문제아였다. 반항심도 많고 사고도 많이 쳤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조건 강요되는 규칙이나 금기가 싫었던 것 같다. 다만 책 읽는 걸 좋아했다. 교과서부터 시작해서 책이란 책은 잡히는 족족 읽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과 관련 있는 학과를 선택하게 된 것 같다. 연극은 대학 동아리에서 우연히 접했다. 너무 매력적이라 보자마자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그 길로 극단에 들어가 막내 생활을 하며 연극배우가 되려고 꽤 진지하게 준비했다. 그러던 와중에 크게 다치면서 모든 게 바뀌었지만.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오랜 병원 생활까지, 20대 초반의 청년이 감내하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목공예는 그때 시작하게 된 것인가?

사고로 인한 장애는 생의 첫 번째 전환이 된 것 같다. 정말 길고 힘든 시간이었다. 연극배우의 꿈을 막 키우기 시작했던 스무 살 한창 웃고 떠들 나이에, 6층에서 떨어져 척수를 다쳤고 이후 거의 5년 가까이 병원에서 보내야 했다. 욕창, 방광염, 재수술….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되어갔다. 수술비에 치료비, 재활비까지 대느라 집안의 경제상황도 안 좋아졌다. 절망감에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러던 중, 수술 후 재활치료를 하러 간 삼육재활병원옆 삼육재활센터에서 장애인들이 쇠를 두드려 종을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상하게 그 장면이 마음에 남더라. 나도 한번 만들어봤으면 하는 생각에 귀금속가공과에 들어가 귀금속 가공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그때 종을 만들면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고, 목공예로도 이어지게 되었다. 목공예를 하면서 인생의 두 번째 전환점이 찾아왔다

목공예가 잘 맞는다고 느꼈던 이유는 무엇인가?

쇠를 다루던 손으로 나무를 만졌을 때, 그 감각이 너무 달랐다. 부드럽고 따뜻했다. 작업도 확실히 쉽게 느껴졌다. 나무 만지는 작업은 말 그대로 ‘재밌었다’. 결과가 손에 잡히는 느낌이랄까. 성취감이 확실했다. 당시 일산장애인직업훈련원 목공예과에 여자 훈련생은 나밖에 없었는데, 주변에서 모두 잘한다고 칭찬을 해주니 신이 났다. 사실 장애인은 무력감을 느끼기 쉽다. 특히 나 같은 중도 장애인은 더 그럴 수밖에 없다. 목공예는 그런 내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주었다. 그것이 큰 힘이 되었고, 제2의 삶이 시작됐다. 일산직업훈련원으로 들어가 기술 공부와 재활치료에만 전념하며 각종 자격증을 따고 운전면허도 취득했다. 전국장애인기능경진대회에 출전해 은메달을 받기도 하고, 라디오나 잡지 인터뷰도 하고 매스컴을 타보기도 했다. 무너졌던 삶이 조금씩 회복되는 느낌이었다.

장승공예가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장승에 매료된 계기가 특별히 있는가?

당시 갑작스럽게 화상을 입고 6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하느라 일이 끊긴 상태였다. 덥고 추운 컨테이너 박스에서 살고 있을 때였는데 몸도 마음도 아프고 암담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대한민국 공예대전에서 쪽동백으로 만든 미니 장승을 보고 ‘이거다’ 싶었다. 온몸에 전율이 올랐다. 한참을 서성이며 구경하고 있으니 긴 머리에 긴 수염을 한 예수님 같은 남자가 다가왔다. 훗날 나의 사부님이 되는 채용병 장승공예가였다. 그날 이후 장승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받아온 명함의 번호로 연락해, 장승을 깎아보고 싶으니 나무를 오만 원어치만 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고는 길거리에 쓰러진 나무만 보면 주워다 장승을 깎고 또 깎았다. 나무가 생긴 대로 이렇게도 깎고 저렇게도 깎는 과정이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장승공예로 전시에도 참여하게 되고 장승 소품을 판매하며 다시 돈도 벌게 되니 더욱 신이 났다. 그때 사부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무 보내준 것 좀 깎아봤냐고 하시기에, 전시도 하고 판매도 했던 터라 자신감이 붙어 그 길로 내가 여태까지 만든 장승들을 싸들고 홍천에 있던 사부님의 공방으로 찾아갔다. 그때 들었던 사부님의 평이 “땔감으로나 쓰면 딱 좋겠다”였다. 왕복 5~6시간 걸리는 먼 길을 찾아가 받은 평가가 고작 땔감이라니, 충격이었다. 사부님에게 제자로 받아달라고, 제대로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그날 이후 1년 동안 일주일에 두세 번씩 사부님의 공방을 드나들며 장승공예를 배웠다.

장승 만드는 과정을 소개해 달라.

나는 주로 쪽동백나무나 다릅나무를 쓴다. 굉장히 단단하면서도 겉껍질이 얇고 안과 밖의 대비가 분명한 나무들이다. 입동부터 입춘 사이에 간벌한 나무를 구해서 1~2년 말려야 비로소 작업을 할 수 있다. 나무가 준비되면 그것을 자세히 관찰한다. 나무의 옹이와 갈라진 틈, 휘어진 모양과 결을 보면서 뭐 만들까 궁리한다. 나무 안에 제각각 얼굴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나무의 표정이 보이면 그때부터 날을 잘 세운 조각도로 깎기 시작한다. 나무가 단단해서 칼질이 재미있고 깔끔하게 떨어진다. 물론 힘은 좀 들지만. 마무리는 천연 오일로 마감한다.

장승의 매력은 무엇인가. 또 본인이 추구하는 장승의 미학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인 장승은 액운을 막아주고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예전 형상들을 보면 험상궂고 무섭고 기괴한 모습일 때가 많다. 오랜 세월 눈・비바람을 맞다 보면 흉물스러워지기도 한다. 나는 그 모습이 나처럼 느껴진다. 장애를 가진 다른 몸, 시련을 견디는 몸을 가진 내 모습이 장승과 겹쳐 보인다. 나도 한자리에서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내어 후배 장애인들에게 이정표 역할을 하고 싶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한 번이라도 더 웃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장승을 깎는다. 그저 편안함을 주고 싶다. 이 팍팍한 세상에서 찰나의 웃음으로 잠시나마 숨통이 트이게 해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최근에는 민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

2017년쯤부터였던 것 같다. 원래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고, 민화 특유의 알록달록한 색감이 마음에 들어 자연스럽게 끌렸다. 기본 도안 위에 나만의 색을 더할 수 있다는 점도 창작의 부담 없이 다가갈 수 있었던 이유였다. 지금은 민화가 유일한 취미가 됐다. 일주일에 한 번 문화센터에서 하는 수업을 듣고, 주에 이틀은 민화 작업을 하려 애쓴다. 최근엔 척수장애인들과 함께하는 전시에 민화 작업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목공예 위에 민화를 얹으면 어떨까 싶어, 인두와 비슷한 우드 버닝기로 나무에 민화를 얹는 작업을 시도 중이다. 민화의 색감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상징도 큰 매력이다.

민화 외에 또 무엇에 흥미를 느끼고 있나. 최신 관심사가 궁금하다.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열심히 챙겨 본다. (웃음) 영화도 드라마도 안 보는데 그 프로그램만큼은 꼭 본다. 자연인들이 삶을 개척하고 거친 환경을 견디며 살아가는 모습이 너무 공감된다. 요즘은 동물들 돌보면서 주문 들어온 작업을 하며 보내는 단조로운 일상이 좋다. 예전에는 대학원도 다니고, 행사부스에 나가거나 그룹전도 많이 참가하고, 수강생도 받으며 변화무쌍하게 살았다. 이제는 큰 욕심 부리지 않고 주문받은 작업을 하면서 동물들과 재밌게 지내는 게 좋다.

궁극적으로 어떤 공예가로 남고 싶은가?

나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숙련된 기술자, 장이를 추구하며 작업할 뿐이다. 자연이 본래 가지고 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주는 기술자랄까. 그게 내 역할이다. 물론 죽기 전에 누가 봐도 아름답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작 하나쯤 남기고 싶은 꿈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 큰 바람은 내가 가진 재주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나도 많은 사람에게 도움받으며 지금까지 살아왔다. 내가 받은 만큼 나눔을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장이가 되고 싶다.

공예가가 아닌 인간 김가윤은 어떤 사람이고 싶은가?

그저 오늘처럼 이렇게 계속 살아가고 싶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매일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나는 날이 갈수록 모든 면에서 점점 더 좋아지고 있다” 그 말이 나를 버티게 해주었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내일도 오늘보다 조금 더 나아진 삶을 살아갈 것이다.

끝으로,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나눠달라.

나무를 깎을 때 초벌은 거칠고 어설플 수밖에 없다. 엉망인 것처럼 보여도 자꾸 다듬고 또 다듬다 보면 어느 순간 제 모습을 드러내며 완성된다. 나는 삶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우리 자신을 조각처럼 다듬어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항상 ‘삶을 조각하듯 살자’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순간순간 정성을 다해서, 언젠가 나 자신이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만들어 가자고. 칼을 잘 갈아서 정성껏 다듬지 않으면 언제든 불량품이 될 수도 있다. 그저 매 순간 정성을 다해 자신의 인생을 조각해 나가면 좋겠다.

  • 공예가가 한 손에 장승을 들고 다른 한 손에 조각도를 잡고 세심하게 다듬고 있다.

    장승을 조각하고 있는 김가윤 공예가

  • 테이블 위에 조각도와 공구들이 나란히 놓여 있다.

    조각도와 공구들

  • 벽면에 다양한 목공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무판에 금속 장식을 더한 소품, 유리 안에 작은 오브제를 넣은 상자, 나뭇결이 살아 있는 판에 여러 개의 두루마리 형태 종이를 꽂아둔 고비 작품 등이 걸려 있으며, 각기 다른 크기와 형태의 작품들이 조화롭게 배열되어 있다.

    벽에 빼곡하게 걸린 목공예 작품

  • 나무의 질감과 곧거나 휜 형태와 표정을 살린 크고 작은 장승이 가지런히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다양한 모양의 목공예 장승

김가윤

김가윤

전통목공예가. 연극배우를 꿈꾸며 문예창작과를 다니던 시절, 사고로 장애가 생겼다. 그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었던 손을 이용해 귀금속 가공, 지점토 등 손으로 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목공예의 매력에 빠져 우리나라만의 독창적이면서도 동시대인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인형을 만들고 싶은 마음으로 장승공예를 시작했다. 대학원에서 목칠공예를 전공하기도 했다. 다수의 그룹전과 행사에 참여했고,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mayumkr@hanmail.net

신이명

신이명

작은 서사에 주목하는 창작자. 읽고 쓰고 그리고 만드는 일을 한다. 2023년 개인전 《모든 슬픈 것들은 길 위에 있다》 외 다수의 전시에 참여했으며 글과 영상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다큐멘터리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책과 이야기가 머무는 작은 도서관 ‘효창서담’을 운영 중이다.
corrocorrorider@gmail.com

사진. 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2025년 8월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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