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나는 제주에서 태어나 제주에서 자라고 제주에서 예술 활동을 하는 제주 토박이다. 제주도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지정학적·학술적으로, 그리고 천혜의 관광자원으로 가치 있는 곳이다.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무속 신화와 설화, 이사 가기 좋은 기간을 일컫는 ‘신구간’이라는 대표적인 풍습과 아울러 다양한 풍습이 있다. 이러한 신화나 풍습, 제주의 자연 등을 소재로 삼은 예술작품도 많이 창작·발표되고 있다.
최근 제주에는 외부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도 많이 입도하고 있다. 중산간 쪽에는 ‘저지문화예술인마을’처럼 예술인마을로 지정된 곳도 있다. 이처럼 예술활동을 하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수도권이나 광역시와 떨어져 있다 보니 예술 활동에 있어 정보나 교육이 매우 부족함을 느낀다. 특히 지역에서 장애예술은 사회 인식이나 지원이 많이 나아지고 있다지만, 솔직히 내게는 크게 피부로 와닿지 않는다.
제주 지역 장애예술인 규모는 제주예술인 총연합회나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조차도 정확한 통계자료를 찾을 수 없는데, 내 생각에는 제주 인구에 비례해 추산하면 약 290~300명 정도가 되지 않을까 예상한다. 그중에서도 예술인 활동증명을 하지 않은 장애예술인이 상당수라 생각된다. 나 역시 제주 지역에서만 11년간 연극 활동을 하였지만, 예술활동증명에 대한 정보나 필요성을 인지하지 못해 3년 전에야 등록하였다.
2020년에 「장애인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고, 2021년 4월에 「제주특별자치도 장애예술인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관한 조례」도 제정되었다. 도내 장애인 문화예술활동 지원사업을 도 산하기관인 제주문화예술재단에 위탁해서 예산을 지원하고 있지만, 공모 사업의 경우도 비장애예술인에 비하면 지원금 규모와 최대한도가 너무 빈약하다. 공모사업에 선정되더라도 겨우 1년에 한 작품 공연하는 데 그친다.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장애예술인 창작물 3% 우선구매 제도’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주최하는 지역 행사에서도 장애예술인의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역시 장애인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지만, 장애예술인이 아니라 단체나 기관이 사업의 주체가 되는 현실이다. 나 역시 예전에 장애인 관련 단체나 복지기관의 장애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연극을 시작하였지만, 장애예술인이 단체나 기관의 사업 수단이 되어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채로 해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갔다.
2023년 1월에 함께 연극 하던 비장애인 배우, 노래하는 장애예술가를 중심으로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예술집합소 다담’을 창단했지만 운영이 쉽지 않다. 조그마한 연습실을 마련했지만 재원이 뒷받침 안 되고, 단원 모집도 잘 안되어 활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다. 같은 시기에 제주 지역에 또 다른 장애인·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연극단이 생겼는데 최근에 극단을 접었다는 소문을 듣고 남의 일이 아님을 실감하고 있다. 서로 간의 협력도, 같이 활동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닌, 단체나 기관의 사업에 참여하는 형식이 되고 있다. 예술인이 대부분 그렇지만, 특히 장애예술인은 경제적 어려움으로 작품 창작이나 발표 기회가 부족해서 전문 예술인으로 활동하는 데 제한적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술 활동에 있어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은 장애예술 전문기관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애예술인의 발굴과 지원, 고충 및 심리상담, 분야별 예술활동의 기본 역량을 갖출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곳이 생겨야 한다. 이를 통해 단기에 그치지 않고 평생학습으로 지속적인 교육을 하고, 청년 장애예술가와 창작자 및 기획자를 발굴하는 시스템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커뮤니티아트랩 코지에서 장애예술교육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회화, 공예, 연기 등에서 다양한 방법론과 관점으로 교육하고 있다. 나 역시 예술가로서 심화 과정 연기 파트에 지원하기도 했다. 한편 현재 제주에는 장애인이 언제든 접근 가능한 창작공간이 전무하다고 볼 수 있다. 예술활동의 기반이 되는 창작을 하기 위해서 장애 유형별 언제든 접근 가능한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장애예술가 전용 창작공간과 연습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2023년 12월 제주문화예술재단에서 주최하는 ‘장애예술축제 턴(Turn)’ 개막작 〈긴 서막〉에 출연하고 행사 전체 프로그램 내레이션을 맡았었고, 2024년까지 2년 연속으로 축제에 참가하고 내레이션을 진행하다 보니 제주 곳곳에서 활동하는 많은 장애예술가와 만날 수 있었다.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애예술가들이 모여 3일간 공연, 강연, 전시 등 작품발표를 한 뜻깊은 자리였다. 이러한 장애예술축제가 1년에 한 번이 아니라 분기별로 개최되어 제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장애예술가들에게 더 많은 활동 기회가 열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창작뮤지컬 〈딜레마〉, 2017
〈바다 한가운데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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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일
2014년부터 연극, 뮤지컬, 영화 등에서 장애인 배우로 활동하고 있으며, 연출가로 성장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연극, 음악, 퍼포먼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장애·비장애 예술인이 함께하는 전문극단 ‘예술집합소 다담’을 창단하고 대표를 맡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 연극 〈동반자〉 〈바다 한 가운데서〉 〈목마른 남자〉 〈긴 서막〉, 뮤지컬 〈딜레마〉 〈바리스타즈〉 〈더 레인보우 런웨이〉, 뮤직비디오 〈메리크리스마스라고 말해주세요〉, 다원예술 〈캄캄 season2〉 등이 있다. 다담 창단공연 〈크리스마스에 30만원을 만날 확률〉을 연출했다.
seongillk@naver.com
사진 제공. 필자
2025년 3월 (6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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